선거용 야합으로만 존재해 온 야권연대
2012년 총선은 야권연대가 전 지역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진 선거였는데, 이명박 정부의 형편없는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과반을 확보하며 끝났다. 그 전부터 야권연대에 대한 회의론은 있었으나, 그게 주류로 부상한 건 아마 이 총선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두 정당의 선거용 연대는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사실 한 정당 안에서도 계파간, 후보간 갈등이 수면위로 부상하면 온갖 파열음을 낳는 법인데, 그게 당대 당 규모로 이뤄졌으니 어련했겠는가. 당장 통합진보당 대표인 이정희 후보가 부정경선을 벌였고, 이것이 발각되면서 그는 후보직을 내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부정경선이 발각된 결과 같은 통합진보당의 이상규 후보가 후보직을 대신 승계했다는 것이다.
이게 유권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적어도 나에게, 야권연대는 더이상 거악인 새누리당을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저 선거용 야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떤 가치를 위해 연대하는가가 아니라, 그저 자기 당에 한 석이라도 끌어오기 위한 부정경선만 눈에 띄었으니 말이다. 이 야권연대는 이후 통진당의 종북 논란과 당내 부정경선 논란으로 완전히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단일화하지 않으면 욕 먹는 다른 가치의 정당
이때까지 야권의 연대는 대체로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요구사항이었다. 단순하게 도식화해 표심이 대강 새누리당 5 : 민주당 4 : 진보 1 정도로 갈린다면, 민주당과 진보가 단일화해 한 명의 후보를 내면 5 : 5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회찬은 그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던 그는 3% 수준의 지지율을 얻었는데, 당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에게 한명숙 민주당 후보가 석패하며 그 책임을 덮어써야했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단일화 압력을 이겨내고 완주한 결과 그는 야권 지지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진보계열 지지자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비난이었는데, 민주당과 진보계열은 어디까지나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다른 정당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을 막아야 한다는 것 외에 공통으로 추구하는 어떤 가치, 어떤 공약이 있지 않고서야, 서로 다른 당의 후보가 단일화해야만 한다는 건 군소후보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것이다.
지역 기반 없는 네임드 후보로 가득찬 동작을
재보선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동작을 재보선은 기이한 면이 있었는데, 상당한 지지를 얻으며 경쟁하던 세 명의 후보가 모두 해당 지역의 정치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노회찬은 노원에서 활동했고, 기동민은 광주에 공천을 신청했던 바 있으며, 나경원은 중구에서 내리 2선을 했던 국회의원이다.
세 사람은 여당의 나경원이 앞서가고 야권의 노회찬, 기동민이 뒤따르는 1강 2중의 구도를 형성하며 경쟁했는데, 여론조사에서는 노회찬의 대 나경원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구도에서 노회찬은 사전투표를 앞두고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가 사퇴하겠다”고 선언했고, 기동민은 단일화 방식으로 담판을 제안햇으나 노회찬은 이를 거부했다. 노회찬 측은 여론조사 안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후보가 뒤쳐지는 후보에게 사실상 사퇴를 종용하는 것. 이건 노회찬 본인이 서울시장 선거 등에서 당했던, 그리고 진보 군소정당 후보들이 늘 당하던 구도다. 늘 당했으니까 한번쯤은 양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유권자들에게는 그게 그리 곱게 보일리가 없다.
이 와중에 잊혀진 건 유일하게 동작을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정치인이었던 노동당 김종철이다. 그는 1000표의 득표를 얻으며 낙선했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그가 노회찬이 낙선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회찬과 나경원의 득표 차이는 약 900여 표다.)
단일화, 그 근거는 대체 무엇인가?
나는 동작을 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투표권도 없었지만, 만일 투표권이 있었다 해도 노회찬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차마 나경원에게 던지지도 못했을 것 같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써는 나경원 쪽에 6:4 정도로 마음이 기운다. 이건 마치 이정현을 찍은 순천 주민과도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는 노회찬이 단일화를 요구하면서도 단일화가 왜 필요하며, 무엇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과 연대해야 하는지 그 가치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으며, 담판 요구를 구태로 몰고 여론조사라는 방법만을 고집한 데 대한 반감 때문이다. 하물며 기동민은 두자리 수 지지율을 얻었던 인물이다. 만일 기동민이 여론조사에서 뒤지기 때문에 노회찬에게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면, 지지율이 3% 대에 불과했던 서울시장 선거 때의 노회찬이 한명숙에게 자리를 내놓지 않은 것을 변명할 수가 없다.
나경원의 목소리 중 가장 잘 들렸던 것은 ‘강남 4구’였지만, 노회찬의 목소리 중 가장 잘 들렸던 것은 ‘단일화’였다. 단일화를 통해 새누리당과 ‘국X’ 나경원을 처단해야 한다는 목소리. 나는 이 목소리가 듣기 싫다. 그저 단일화가 전부라면, 그리고 한 석의 의원 자리가 전부라면, 나는 그게 노회찬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나타난 백마 탄 한 명의 초인이라 해도 표를 주고 싶지가 않다.
‘닥치고 단일화’를 넘어, 단일화를 해야만 하는 그 하나의 가치란 무엇인가? 긴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대답을 듣지 못했다. 심지어 이번 재보선에 이르러 노회찬은 아예 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나경원의 당선이 썩 유쾌하지도 않지만, 노회찬의 낙선이 딱히 불쾌하지도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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