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김종철의 7월 독서모임 경연 강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어쩌다 정치인이 됐나?
원래 아버지 영향 받아서 좀 보수적이었다. 큰형이 학생운동을 했는데, 논쟁에서 자꾸 밀리고 책을 보니 형이 맞는 것 같았다. 그 계기로 대학 입학 후 사회주의 운동 공부하고 그랬는데, 시작하자마자 사회주의가 바로 몰락해 버렸다.
그런데 돌아보니 내가 학생운동 했던 계기가 사회주의 때문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직장 다니면서 IMF 때 노동자 잘려나가는 것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 직장 관둔 계기도, 직장 다닐 때 일 너무 해서 죽을 것 같이 일을 많이 해서였다. 난 벤처 계통에 있었는데 정말 일 많이 해서 많이 죽을 것 같더라. 그래서 노동시간 줄이는 거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당신이 진보정당에 뜻을 두고 있는 이유는?
나는 학생운동을 좀 세게 했다. 이후 병특으로 회사생활을 4년 정도 했는데, 그 중에 결혼도 했다.병역특례를 마치고서 회사를 계속 다닐지 고민하다, 그만두고 민노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권영길 대표의 비서 생활을 했다. 민노당, 진보정당 만들자며 99년 전국을 돌아다녔다.
일을 마친 노동자들과 저녁 때 회의, 강의, 토론하고 으쌰으쌰도 한다. 그러면 항상 새벽에 늦게 끝난다. 다음 날 아침에 또 돌아다녀야 하는데, 권영길 대표와 사우나에서 자고 그랬다. 가는 지역마다 “우리 민주노총 위원장님 왔다”며 술을 권했는데 만으로 59세인 분이 소화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 드시고 다음날 목욕탕 때밀이 탁자 위에서 깨고 그랬다.
이 분이 이걸 왜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면 언론노조 위원장,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에, 노동부 장관, 비례대표 제의도 받은 분이다. 같이 돌아다니며 이야기도 듣고 토론도 많이 했는데, 이 분은 진보정당이 한국에서 자리잡지 못하면 어떤 사회적 변화도 없다는 확신, 사명이 있었다.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하나의 정치세력, 정당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어떤 한 개인이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당을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그는 가치에 기반한 정당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걸 보면서, 내가 저 연배까지 할지는 몰라도 진보정당이라는 것을 내 인생의 사명으로 걸고 가져가자는 생각을 했다.
한국은 양당제인데, 진보정당이 자리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겨우 작년쯤에야 양당제 고착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2년 전만 해도 안철수의 독자 세력이 뭔가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안철수 위치에는 지난 20여년 간 다른 세력이 있었다. 92년 대선에서는 정주영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2002년은 민노당이 커지고 있었고, 2007년은 문국현 지지가 있었다. 2012년은 양당으로 가면서도, 안철수를 통한 다른 흐름이 존재했다.
지금도 전체 큰 틀에서는 왼쪽보다 오른 쪽으로 가고 있지만, 양당제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안철수와 기존 민주당이 합쳐졌지만, 나는 시너지가 대단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치에 있어 새로운 걸 가지고 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새정치는 혁신과 관계 없는 것으로 꾸려지고, 전략공천으로 편한 대로 할 수 있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한국은 미국처럼 강하고 안정된 나라가 아니다. 미국이야 양적완화 해도 외국이 그냥 지켜볼뿐, 할 말이 없다. 외려 달러를 더 사야 하는가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힘이 없다. 언제든 양극화 등의 문제가 터질 잠재적 위험이 있고, 이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어떤 세력도 안정적일 수 없다. 그렇기에 진보가 자리 잡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게 내 소신이다.
빅 텐트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쓴 “복지국가의 정치학”이라는 책에서 왜 미국은 복지국가 안 되고, 유럽은 복지국가 됐는가 분석했다. 두 가지 요소가 핵심적이었다. 일단 인종적으로 유럽이 좀 더 단일하다. 그래서 가난한 같은 민족에 대한 유대감이 더 크고, 세금 걷어 쓰는 것에 대한 반발이 적다.
두 번째로 비례대표제의 힘이다. 미국처럼 비례대표 없고, 소선거구제 중심인 나라에서는 두 정당이 중간층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그래서 사회변화가 필요한 시점에도 가운데에서 수렴한다. 그때그때 이슈에 대해 듣기 좋은 말 하는 것이 많고, 근본적 사회변화가 힘들다.
반면 유럽은 비례대표제가 발달되어 있어서 다양한 정당이 들어선다. 그래서 좌파정당의 표가 얼마 안 돼도 연립정부에 끼어들 수 있다. 그들은 매우 액티브하고 사회 이슈에 대해 강한 입장 내놓기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좌파 정당은 선별적보다 보편적 복지, 구조개혁을 내놓았고, 이가 관철되고 보편적 복지로 이어진 게 유럽이다.
우리는 민족적으로 매우 단일하다. 그런데 비례대표가 적다. 정치개혁으로 늘려야 하는데, 이를 받아줄 정당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비례대표로 좌파가 그리 커지지 않아도, 어느 정도 규모 있으면 방향을 틀 수 있다.
결국, 진보 정당이 살아남고, 생명력 가져야 한다고 본다. 진보 정치인이 기존 정당 들어가서 해보려 하기보다, 새로운 정당에서 뭔가 이루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권영길은 그 길을 걸었고, 노회찬, 심상정은 갈림길이다. 심상정은 진보정당 개혁에 별 관심이 없고, 노회찬은 아리까리인 것 같다. 나는 관심이 많고. 여러 차례 깨졌는데, 다시는 깨지지 않을 뭔가를 하고 싶다.
‘노동당’이라는 정당명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노동당’이라는 정당명은 투표로 관철됐다. 우리가 누구를 대변하고자 하는가, 어떤 사회를 만드는가, 어떤 가치를 좇는가, 이런 기준으로 사람들 마음 속에 와닿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나는 민노당이 있으니 평등사회당, 약칭은 평등당으로 갔으면 했다. 불평등, 양극화가 워낙 심하기에 사람들에게도 잘 와닿을 것 같았다. 그런데 느닷 없이 민노당이 사라졌다. 그래서 누구를 대변할까에 대해 고민할 때 서민, 민중, 노동 등 다양한 이름이 있었다. 노동당으로 가려 할 때, 북한의 노동당이 연상될까 걱정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치를 오래 해 보니 노동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이 있더라. 하나는 조선노동당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용산구청장 출마할 때 방촌에 북에서의 핍박 피해 온 분들의 후손들이 많았다. 그 분들이 “북쪽은 조선노동당, 남쪽은 민주노동당, 좋네…” 이렇게 비꼬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몇 년 지난 후 서울시장 나올 때는, 그 전혀 다른 반응이 있었다. 선거운동 후 술집에 들어가거나 하면, 굉장히 허름한 차림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당신 노동당 아니냐고 묻더라. 그리고 노동당 좋다고 하기에, 왜 좋아하느냐고 되물으면, “나는 노동자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처럼 이제는 내가 노동자임을 인식하고 노동당을 받아들이는 흐름이 있더라. 왜 당신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깔끔하게 인식되는 이야기더라. 무상교육, 무상보육 때문에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나는 노동자니까, 당신들은 우리를 지지하니까… 이렇게 거꾸로 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그때 이는 정치를 진실되게 오래한 것의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10년 뒤에도 피해 주지 않을 정당명이면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평등당도 여전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평등당에 대해 호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
진보 정치인으로 살며 밥벌이 문제가 힘들지 않나?
진보정신으로 살다 보니, 굉장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특히 다른 당은 엘리트 수혈을 통해 정치인을 늘려간다. 굉장히 돈 많거나, 변호사로 대성공했거나, 관료로 오래 살아남아 전관예우로 뭐든 할 수 있거나… 이런 성공한 이들을 정계로 끌어 온다. 대개 새누리당이 제일 잘난 엘리트를 끌어오고, 그보다 약간 아래를 새정치연합이 끌어 온다.
그런데 진보 진영에서 생업을 하면서 정치하기란 쉽지 않다. 정치인은 자영업자인데, 돈을 벌지 않는 자영업자라 보면 된다. 심지어 돈을 써야 한다. 내가 동작구 당원협의회 위원장인데, 사람들을 자주 만나서 이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투여하는 시간이 많아야 하고, 돈벌이는 포기해야 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 어디선가는 살림을 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와이프가 고생을 많이 했다. 또 그나마 친구들이 후원을 해 주는 편이었다. 덕택에 조금씩 후원 받아서 정치할 수 있었다.
노회찬, 심상정처럼 비례대표로 일단 정치인으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큰 문제는 없어진다. 또 울산, 창원 쪽 후보들처럼 노동조합에서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고, 여유 없는 분들이 많아 고민이다. 그래서 청년 정치 한다는 사람들이 고민하던데, 정치를 하려고 하면 어떤 정당이든 엘리트적 요소가 있다. 자기 문제 해결하고 기반 갖춘 이들이 이미 어느 정도 힘을 쥐고 있다. 이를 어찌 극복할 수 있는지는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금민 대표는 돈이 많다는 소문이 있다.
이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이 바닥은 잘 살아도 티 내면 안 된다. -_-;
노동당 보면 너무 타협 없고 딱딱하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너무 공고한 것 같기는 하다. 좀 전까지 같은 이슈로 잘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술자리에서 징병제 이야기 나오면 근본적 평화를 포기하는 거냐고, 쓸데 없이 뒷풀이에서 싸우고 그런다… 내가 봐도 유연성이 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때 그때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하는 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런데 좀 더 큰 틀에서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는, 현재 어떤 선택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결국 과거, 미래와 연계되어 있다. 1990년 내가 학생운동 할 때 속한 정파는 정치에 대해 좀 비판적이었다. 그런데 진보정당은 필요하다고 봤다. 레닌은 혁명으로 세상 바꾼다 했는데, 거기에 필요하다면 당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근본적이지만 현실에 맞춰 가는 레닌주의에 가까운 정파였다.
그런데 내가 서울대 총학 선거 나섰을 때, 나와 같이 낙선한 친구가 경실련 있던 김동성이었다. 이 친구가 참 합리적이다. 합리적인 건 좋은데 너무 기성 질서 기준에서 합리적이었다. 나중에 보니 한나라당 입당해서 수구적으로 되더라.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최소한 한 사회 바꾸겠다는 진보는 자기 위치보다 항상 약간 왼쪽을 좀 더 봐야 한다고 본다고. 타협적인 자세가 강하면, 의석은 좀 더 얻겠지만 실제로도 굉장히 보수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40살 좀 넘어가면서 지론이 있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내가 이 사안에 대해 32살이라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가 이상과 현실의 경계선에 있던 나이였다. 젊은 사람 생각도 이해할 수 있고, 현실화된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때를 고려하려 한다.
예로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갈라졌을 때, 노회찬, 심상정, 두 분은 합치지 않으면 국회의원 당선 어렵다는 판단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28, 32세 청년은 어찌 볼까? 그들에게 꿈을 줄까? 아니면 자기 자리 찾는 환멸 줄까? 물론 선택은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길을 선택하건, 충분히 설명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한 순간의 판단이 아니라 현재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것이 된다.
교육 쪽으로 진보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당신 아들은 외고 안 보낼 것인가?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딱히 학원 보내거나 하며 공부 시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걔가 공부 잘 못해서 외고 걱정은 아예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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