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를 구하라: 세이브코스피
한 번이라도 ‘국장(국내증시)’에 물려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분들, 혹은 국내증시의 건전성에 문제의식을 갖고 계셨던 분들. 아래 청와대 국민청원에 잠시만 눈을 돌려주셨으면 한다.
‘세이브 코스피(코스피를 구하라)’. 만 하루가 채 안 돼 1만 명이 넘는 서명을 이끌어낸 이 프로젝트는, 오너가 맘만 먹으면 ‘합법적인’ 방법으로 개미들을 ‘수탈’할 수 있는 국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주운동은 예전부터 종종 있었으나, 범국민적인 목소리를 모으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이브 코스피’는 다르다. 청원 수도 그렇지만, 중앙일보, 연합뉴스, 한국경제, 그리고 ㅍㅍㅅㅅ 등 유력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구체적인 개선안을 담았으며, 특정 단체가 아니라 현업 이코노미스트와 인플루언서들이 손을 모았다.
투자 실패는 투자자 몫? 국장은 얘기가 다르다
투자 실패는 기본적으로 투자자 몫이라지만, 국장에서의 실패를 다 개인 책임으로만 돌리는 게 억울한 측면도 있다.
근 몇 달만 따져도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던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만한 기업에서 벌어진 수백, 수천억대의 횡령.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내부자거래. 주주총회에 주주들의 입장을 물리적으로 방해한 사건 등.
이렇게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고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며, 국장은 만성적 저성장, 저평가에 빠졌다.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은 창의와 혁신을 저해하고 투자자들의 권익까지 해쳤다.
국장은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보다도, 고도압축성장 과정에서 너무나 당연시된 부정한 관행과 제도적 미비함이 문제다. 주주를 보호하는, 다른 OECD 국가에서는 당연하게까지 여겨지는 장치가 한국에는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세이브 코스피가 내놓은 국장의 8가지 문제, 그리고 개선안
‘세이브 코스피’가 특히 꼽은 문제는 여덟 가지. 세이브코스피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선안을 함께 제시한다. 구호만 내세우곤 하던 다른 주주 권리 운동과 다른 중요한 이유다.
기업 거버넌스 구조개선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위의 유튜브를 참고해 보자.
① 상장사 합병 시 해당 비율이 시장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 특히 대기업의 경우, 주가의 왜곡이 심하고 이를 심지어 인위적으로 조절한다는 의혹까지 있다. 이를 주주 의사가 반영된 공정가치로 적용해야 한다.
② 경영권 지분 인수 시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없다.
→ 의무공개매수제도란 경영권 지분을 양수할 때, 매수인이 일정 비율로, 같은 가격으로 일반 주주들의 주식을 매수해야 하는 제도를 말한다. 원래 한국에도 있었던 제도로, IMF 구제금융 때 구조조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삭제되었다가 그대로 삭제된 채로 유지되었다.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있으면 기업이 소규모 자본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꾀할 수 없어지고, 소액주주들이 모르는 새 지배권이 이전되는 일 또한 줄어든다.
③ 자회사의 물적 분할, 동시 상장이 허용되어 있다.
→ 이런 ‘쪼개기 상장’은 모회사의 주가를 떨어뜨리고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다. 쪼개기 상장 자체를 규제하거나, 최소한 완충장치를 두어야 한다. 반대 주주에게는 매수청구권을, 찬성 주주에게는 자회사 신주배정 권리를 보장하는 등의 방식이 될 수 있다.
④ 자진상폐 시 매수가격을 “대주주 혹은 이사회”가 임의로 결정한다.
→ 이 역시 특히 소액주주의 권리가 침해될 우려가 있어, 주주 의사가 반영된 공정가치로 적용해야 한다.
⑤ ‘자사주 마법’이라는 현상이 존재한다. 원래 자사주에는 의결권이 없는데, 인적 분할 뒤 지주사에 자사주 몫으로 배정된 신주에서는 의결권이 부활한다. 또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자사주를 제3자에 매각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 경영권 방어목적의 자사주 매각을 금지해야 한다. 인적 분할에서 지주사에 몰아준 자사주에 신주배정을 하는 것도 금지해야 한다.
⑥ 상법 제382조 3항(이사의 충실의무)에 ‘회사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만이 규정되어 있다.
→ 상법 제382조 3항에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함께 적시해야 한다.
⑦ 집단증권소송의 소제기요건이 너무 엄격하고, 즉시항고를 통해 중단될 수 있어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다.
→ 소제기요건을 확대하여 집단소송을 활성화하여야 한다. 즉시항고의 중단효도 폐기되어야 한다.
⑧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가 없어, 이사회 혹은 경영진이 기업가치를 훼손하여 소송을 하더라도 입증 불가로 승소가 어렵다.
→ 증거개시제도를 통해 소송 관련 증거들을 폭넓게 확인하고 확보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동학개미운동부터 시작된 개인투자자 운동, 이젠 권리를 찾을 때
세이브 코스피를 이끄는 두 명의 메인 발제자가 있다. 이효석 매니지스트(현 업라이즈 이사, CFA, 전 SK 증권 애널리스트)와 김규식 회장 (한국 기업거버넌스 포럼)이 그 주인공이다.
두 발제자는 주식투자를 ‘기업은 주주로부터 자본을 조달하고, 주주는 위험부담을 안고 투자하여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계약’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런 계약관계에서 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하다는 문제 인식을 같이한다. 세이브 코스피가 내세운 ‘8대 제도 개선안’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초석이다.
특히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운동인 만큼, 그 활동 방식이나 연계 네트워크도 뭔가 다르다. 허울뿐인 정치, 사회단체를 내세우는 대신, 필드에서 뛰고 있는 이름들이 손을 보탰다.
그 면면을 보면, 주식투자를 좀 공부해봤다는 사람이면 모르기가 힘든 이름들이다. 홍춘욱, 박세익, 김동주(김단테), 강환국, 염승환, 김탁, 김봉기, 김수헌, 고란, 오린아, 오종태, 윤수목, 이대호, 이승환, 이주원, 채상욱, 디비, 수미숨, 빈세트…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이코노미스트와 인플루언서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청와대 청원과 유력 대선주자를 향한 공개 질의 또한 그 일환이다. 풀뿌리에서부터 시작해 개인투자자이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제도권에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또 그 안에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개선안을 담음으로써, 공약과 제도로까지 연결하려는 실천적 행동을 지향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 피해를 입는 건 우리 국민 모두다.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더라도, 국내 증시에 투자된 자산은 누군가에겐 평생의 노후자금이며 누군가에겐 자녀의 성장을 위한 마중물이다. 그럼에도 국장에서는 매일같이 개인 투자자들에 대한 수탈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국내 증시에 실망하고 외면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패배주의에 갇혀서는 더 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번엔 다를 것 같다. 그리고 달라야 한다. 세이브코스피의 여덟 가지 제안은 대주주와 소액주주, 경영진과 임직원이 상생하고 공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