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압박 속에 글을 쓰는 생활
저는 기자입니다. 벌써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반드시 내일 제출해야 할 글은 있는데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키보드는 멈춰있고, 머리는 멍합니다. 다행인 것은 써야 할 글의 주제는 정해져 있고 검색해보니 관련 글은 상당히 많이 떠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나요?
아마 자신의 신분이 대학생이고 위의 상황이 리포트 제출 정도라고 한다면 꽤 많은 분들이 그냥 이곳저곳의 자료를 골라 짜맞춘다거나 문맥만 살짝 바꾸는 정도로 표절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운이 좋으면 적당한 선에서 골칫거리를 손쉽게 해결하게 될 일이고, 표절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반성문 제출이나 꾸중, 조금 깐깐한 교수님에게 걸린다면 F 학점 정도 맞는 수준에서 끝날 일일 테니까요. 아주아주 드물게 제적이나 그 이상의 제재를 받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 사회는 대학생에게 조금 관대한 편이고 표절에 있어서도 (대학생에게) 아주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는 않습니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대학원생 이나 그 이상이라면 또 모를까요.
그렇다면 평소 수많은 기사를 처리하는 기자라면 어떨까요? 기자들도 과연 표절을 할까요?
우라까이, 왜 이렇게 자주 행해지나?
질문이 너무 황당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당연한 문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찌되었 건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그것도 어쩌다 가끔씩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우라까이’라는 은어가 있을 정도로 언론계의 심각한 병폐 중 하나입니다.
미디어오늘(클릭)에 따르면, 우라까이라는 표현은 사실 일본어에는 없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것으로 ‘우라가에스(裏反す) – 뒤집다, 계획을 변경하다’ 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동사가 있는데, 거기서 변형된 것은 아닌가 추측된다고 합니다. 뜻은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죠?
과거에는 기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현장에서 기자가 원고지에 글을 적은 뒤 회사에 전화하여 담당자가 받으면 불러주는 데로 받아 적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능력이라면 놀라운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요즘은 대다수의 언론에서 온라인 환경에서 글쓰기를 하게 됩니다. 집배신시스템이라고 하는데 CMS(Content Management System)라고도 불립니다. 온라인을 통해 글을 작성하고 데스크로 넘기면 데스크는 이를 검토한 후에 기사를 최종 송고합니다.
이렇게 온라인 환경에서 글을 쓰게 되면서 기사 우라까이는 더욱 쉬어졌습니다. 흔히 디지털에서는 복제가 쉽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지금 여기서는 기사(article)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동영상이나 음원 등이 아닌 텍스트로 한정하도록 합시다.
동영상과 음원은 DRM(Digital Rights Management)이라도 걸 수 있는데 텍스트의 경우에는 기술적으로 구현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혹시라도 DRM을 걸더라도 눈으로 보고 바로 손으로 쳐 버리만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1분에 500타 이상 치는 분들도 많으니까 A4 한 장도 2,3분이면 금방 칠 수 있다는 뜻이겠죠. 마우스 우 클릭을 방지하지 않은 곳이라면 단순하게 ctrl+c 그리고 ctrl+v로 옮기면 끝입니다. 밥 로스 아저씨의 그림 따라히기는 참 어려웠지만 온라인에서 글 베끼기는 그야말로 “참 쉽죠~” 인 상황인 것이죠.
조금 편드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업무의 양과 보도자료 역시 우라까이를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사를 기자가 직접 취재하여 작성하면 참 좋겠지만 직접 맡아서 처리해야 할 기사나 사건은 많고 그밖에 잡무까지 할 일은 태산입니다. 할 일은많은데 요즘 언론사가 불황이다 보니 신참기자들도 잘 안 뽑아주죠. 홍보의 수단으로 정부나 기업에서는 보도자료라는 걸 나눠주곤 하는데 바쁜 기자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땡스 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건이 경미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보통 이 보도자료를 베껴쓰거나 조금 갈무리하는 수준에서 기사를 내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나 기업이 발표하는 내용을 기초로 하는 기사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형태를 취하기 마련입니다. 출처도 동일하고 크게 보강 취재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봤자 통신사인 연합뉴스 기사를 참고삼아 한두 군데 더 인터뷰를 하거나 검색한 내용을 추가하는 정도에서 마무리하겠지요.
정작 아주 큰 문제는 다른 기자의 기사를 베끼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통신사인 연합뉴스 기사는 참고의 수준을 떠나 아주 좋은 표본이 되며 다른 매체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온라인 연예 매체 기사의 경우 대부분이 이렇게 본사 컴퓨터 앞에서 마무리된다고 합니다.(클릭) 다른 곳의 기사를 보고 썼다면 적어도 바이라인 정도는 달아주는 게 의무일 테고 예의일 텐데 그런 건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뻔뻔하게 자기 이름과 이메일을 박는 경우도 많고 조금 부끄럽다면 온라인 뉴스 팀 정도로 둘러댑니다.
우라까이를 막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두가 원본을 소중히 여기고 표절과 복제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봅시다! 라고하면 참 좋겠죠. 그런데 너무 이상적입니다. 언제 그런 문화가 정착될지 너무 불확실하죠. 그러니까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접근 말고 뭔가 더 획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무엇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술적으로는 DRM은 구현의 어려움이나, 비용적인 측면, 실제 효과적인 측면에서 조금 어려운 부분이고요. 또 뭐가 있을까요?
아까 대학생의 경우에는 반성문 제출이나 꾸중, 조금 심하면 F 학점이나 제적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하였죠? 바로 그겁니다. 제도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요즘은 표절 검증 프로그램도 예전과 다르게 꽤 높은 적중률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실제로 카피킬러(클릭)라는 사이트에 가입하여 몇 가지 기사를 돌려본 결과 상당히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더군요.
민간차원에서는 소위 언론 소비자 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텐데 충격고로케(클릭)와 같은 사이트를 통해 어떤 언론사가 자극적인 제목을 많이 달았나 알아볼 수 있을겁니다. 마찬가지로 표절검증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몇가지 알고리즘을 통해 어느 매체가 가장 많이 우라까이를 했는가 검사할 수도 있겠죠.
같은 뉴스라면 어느 매체가 가장 빨리 속보를 냈는가 통계를 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느 기사와 매체가 가장 SNS 상에서 인기가 많고 반대로 어떤 것이 가장 인기가 없는 지도 분석할 수 있을 겁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면 언론사 연합 차원이라거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런 검증팀이나 사이트를 운영하는 방안도 있을 겁니다. 민간차원의 접근이 온라인상에서 공개를 통해 (표절을 한) 해당 매체에 부끄러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면, 연합이나 국가차원에서의 접근은 공신력 등을 바탕으로 일정한 제재를 가할 수도 있겠죠. 이를테면 삼진 아웃제를 도입해서 몇 번 이상 표절을 한 기자나 매체에게는 일정시간 글을 쓰지 못하게 한다거나 사과문을 게재하게 한다거나 벌금을 물리게 한다거나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민간차원에서의 접근 못지않게 연합이나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개별 언론사보다 상위의 기관이나 팀을 만들게 되면 권위와 힘이 생기는 게 그 첫째고, 표절만 전담함으로써 상당히 빠르고 효율 좋은 일처리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보통은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쉬쉬하고 넘어가거나 고객사니까 (계약등을 고려해서)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개별 언론사보다 상위에 있는 제3의 기관은 동업자끼리 서로 봐주는 카르텔 문화를 청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개별 언론사 입장에서도 비용이나 시간적인 문제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공신력이 있는 곳에서 해당 문제만 전문적으로 다루어 주니 비용이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한편, 표절을 당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권리청구를 할 대상이 표절 매체와 기자 그리고 법원 외에 또 하나 생기는 거라서 권리구제 면에서 유리해지고, 사과는 물론 금전적 보상 역시 빠르게 받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당장 해고와 사과, 한국은 어떠한가?
조금 진부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할까 하는데요. 뉴욕타임스에 제이슨 블레어라는 기자가 있었습니다. 블레어는 인터뷰를 하지 않은 채 마치 인터뷰를 한 것처럼 기사를 쓰거나 인터뷰이가 언급하지도 않은 내용을 자의적으로 꾸며 쓰기도 하였고, 타사 매체의 글을 자신이 쓴 것처럼 표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뉴욕타임스는 자체 조사팀을 가동해 그의 기만적인 취재 행위를 밝혀내었고, 이를 신문 152년 역사 – 해당 사건은 2003년에 일어났습니다 – 에서 대단히 부끄러운 순간이자 독자 신뢰에 대한 심각한 배신행위로 규정하였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해당 사건을 1면 톱기사로 다루면서 무려 4면을 광고 없이 이에 대한 해명과 사과로 꾸몄습니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다섯 명의 기자와 외부 조사 전문가 2명 그리고 부장 3명을 동원해 일주일 동안 블레어가 쓴 기사 73개를 검토하여 그의 취재 행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분석하였습니다. 블레어요? 블레어는 당연히 해고되었죠.
한국의 블레어들은 어떻습니까?
원문: 다이버시티
canada goose outletThe Evolution of the Clutch Wall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