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1미터는 이렇게 정의됩니다.
빛이 1/299 792 458 초 동안 간 거리
암기력이 부족한 사람이 외우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숫자입니다. 그런데 1미터는 처음에는 직관적으로 도출되는 거리였습니다. 1미터를 정의하려는 첫 번째 시도는 진자시계입니다.
갈릴레이는 20대 시절에 진자로 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해야 할 일이 많았던지라, 진자시계에는 노년에나 관심을 보입니다. 그것도 케플러가 행성의 공전궤도가 타원형이라고 제시하자 이 이론을 깨겠다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행성이 타원으로 공전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갈릴레이는 진자시계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후학들은 마침내 진자시계를 완성했습니다.
1657년, 네덜란드인 하위헌스는 갈릴레이식 진자를 실용화한 진자시계를 최초로 만들었다. 이 시계는 지구 중력이 달라지지 않는 한 틀릴 리 없는 시계였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이치와 달리 최초의 진자시계는 하루에 수십 초씩 틀렸다.
도대체 이유가 뭔가?
하위헌스는 최초로 자연과학에 수학적 기법을 본격적으로 적용했다. 진자의 주기에 대한 현대적인 수학 관계식을 만든 것도 그였다. 그의 연구 결과, 진자의 등시성이 참이려면 진자의 추는 원이 아닌 사이클로이드라는 곡선 위를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하자 시계의 오차는 하루에 수 초 이내로 줄었다. 진자의 공기저항도 오차를 발생시키는 원인이었는데, 진자의 팔길이를 늘리고 흔들리는 각을 줄이자 진자의 움직임이 느려지면서 공기저항이 작아졌다. 이후로 진자시계는 키다리 괘종시계 형태가 된다.
진자시계는 매우 빠르게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진자가 만들어내는 ‘시간’을 이용해서 길이를 정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것을 초진자라고 불렀다.
- 『눈금 위에 놓인 세계』 중
이렇게 정밀한(하루에 오차가 수 초 정도인) 시계가 만들어지자 사람들은 이를 기준으로 길이를 정하자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1미터는 2초의 주기를 갖는 진자의 길이
오늘날 99.4cm(정확히는 99.36214cm)가 되는 셈인데 만약 한 가지 조건만 충족했다면 이 길이가 1미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지구가 타원이 아니었다면… 갈릴레이가 이를 갈았던 타원이 여기서도 발목을 잡습니다. 위도에 따라서 2초에 해당하는 진자의 길이가 달랐습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이 머리를 쥐어짰습니다. 마침내 아이작 뉴턴이 답을 제시합니다.
1687년 뉴턴은 지구는 자전에 의한 원심력으로 약간 납작해졌고 중력도 이에 따라 찌그러져 있다는 가설로 초진자 이상(?) 현상을 설명했다. 지구가 찌그러져 있다니! 우주의 중심이었던 지구의 성스러움이 갈릴레오의 발에 차인 후 다시 한번 굴욕을 당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신성모독이라는 둥 시비를 걸지 않았다. 쿨하게 ‘자오선 따라 위도 1도의 길이를 재서 지구의 곡률을 알아보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시대로 변했다. 고작 반세기 만에! 파리 과학아카데미는 북극과 적도까지 지구의 곡률을 구하기 위한 원정대를 보냈고 원정대의 활약으로 지구가 타원체인 것이 확인되었다.
- 『눈금 위에 놓인 세계』 중
하지만 그 외에도 사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온도에 따라 진자의 길이가 달라진다는 사실. 온도는 이후에도 1미터의 정의를 계속 바꾸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1720년대에 들며 진자시계가 점점 정확해지자 밤과 낮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대기의 온도도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팽창으로 진자의 팔길이가 길어지면 시계는 미세하게 느려졌고 짧아지면 빨라졌다. 당시의 자로는 측정할 수 없었던 길이 변화를 진자시계는 안 것이다. 영국의 시계공 그레이엄은 수은 기둥 진자를 써서 팽창(또는 수축)으로 인한 길이 변화를 체온계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액체 수은 기둥으로 보상했다. 얼마 뒤 또 다른 시계공 해리슨은 열팽창률이 다른 두 금속을 팽창(또는 수축)이 상쇄되는 방향으로 이어 붙인 진자를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만든 진자시계는 오차가 일주일에 1초 이내로 줄었다.
시계공 해리슨은 크로노미터라는 항해용 시계를 만들어 “경도를 지배하는 자가 바다를 지배한다”는 격언을 실현합니다. 대영제국의 시대를 연 것이죠. 하지만 살아생전에는 파워 게임에 밀려 그 공로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2002년 BBC가 선정한 위대한 영국인 100명 중 39위에 오를 정도로 후대에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시 미터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런데 1미터를 정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이것은 프랑스 혁명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18세기 프랑스, 인간적 단위의 폐단이 극한을 치닫고 있었다. 프랑스를 여행하던 어느 영국인은 “프랑스에는 너무 많은 단위가 얽혀 있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할 정도였다.
심지어 밭 면적을 따질 때 토질이나 수확량을 기준으로 했다. 그러니 면적 단위는 마을마다, 작물의 종류에 따라서 제각각이었고 18세기 프랑스에서 사용된 도량형의 단위가 무려 800개나 되었다고 한다. 어떤 프랑스 군인은 “파리의 1팽트(pinte) 맥주는 생드니의 팽트 맥주의 3분의 2밖에 안 된다.”라며 불평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는 성직자, 귀족 그리고 평민, 이 세 계급으로 이루어진 신분 사회였다. 평민 계층은 성직자 및 귀족 계층의 잣대에 따라 소작료를 바쳐야 했는데 문란한 잣대로 인해 평민 계층의 피해가 커져만 갔다. 신분 사회의 모순과 이를 증폭시킨 도량형의 난맥상은 프랑스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했다. 프랑스혁명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사용하는 도량형의 진정한 기원이다.
바스티유 감옥이 털린 이듬해인 1790년 프랑스 국민의회는 “새로 통일된 단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자.”는 도량형 개혁안을 내놓았다. 새로운 길이 단위는 시간과 공간에 영향받지 않고, 시대와 권력자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것이어야 했다.
같은 해 프랑스 국민회의는 초진자의 길이를 길이 단위로 정했다.
- 『눈금 위에 놓인 세계』 중
그러나 앞서 언급한 문제점 때문에 초진자로 1미터를 정의하는 방법이 무산되자 과학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1m는 북극-적도 사이 자오선 길이의 천만분의 1로 한다.
이게 오늘날 1미터의 길이를 결정한 정의입니다. 이제 지구가 존재하는 한 1 미터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자오선의 길이는 어떻게 재죠?
1791년에 과학연구기관인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파리를 지나는 사분자오선의 천만분의 일을 길이의 기본단위로 제안했다. 그리고 이 기본단위를 ‘미터’라 불렀다. 미터의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자오선을 정밀하게 측정해야 했다.
1792년 측량을 위한 두 원정대가 파리에서 출발했다. 들랑브르(1749~1822)는 북쪽 측량을 맡아 덩케르크로 갔고, 메셍(1744~1804)은 남쪽을 맡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갔다.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삼각측량법으로, 삼각형 한 변의 길이와 그 양 끝 각을 알면 그 변을 마주하는 꼭짓점의 위치를 구할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덩케르크와 바르셀로나 사이의 땅들을 여러 개의 붙은 삼각형으로 나눈 후 하나씩 측량해 나갔다.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수없이 오르내린 험난한 고지대, 목숨을 위협하는 전쟁 등으로 인해, 1년짜리 프로젝트는 무려 7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이렇게 얻어진 값진 덩케르크-바르셀로나 간 거리는 1070km였다.
두 도시의 위도를 반영하고, 지구가 타원체임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사분자오선의 길이를 결정했으며, 그 길이의 천만분의 일을 1 m로 정의했다. 그 뒤에 들랑브르는 『미터법의 원리』라는 책을 펴냈는데, 책 표지에 나폴레옹은 “정복은 순간이지만 이 업적은 영원하리라.”라는 서명을 남겼다. 이 글은 진실이 되었다.
하지만 지구 자오선을 들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미터를 나타낼 자가 필요했다. 1799년 6월 22일, 단면이 직사각형(25.3 mm × 4 mm)이고, 길이가 1m인 백금제 미터막대를 제작해 프랑스 국립문서 보관소에 보관했는데, 이것이 실질적으로 미터원기 역할을 했다.
최초의 자연 단위인 미터는 이렇게 탄생했다.
- 『눈금 위에 놓인 세계』 중
미터가 정해지자 내친김에 1kg도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1dm3의 부피 (가로, 세로, 높이가 10 cm인 큐브의 부피)에 해당하는 물을 1kg으로 정한 것입니다.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가장 밀접한 단위가 이 시기에 정해진 셈이죠. 미터법은 예상대로 세계를 거의 제패하다시피 했지만 완벽하게 통일하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 극소수의 나라가 야드법을 사용합니다. 그중에는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역시 미터법을 채택할 뻔했습니다. 건국 초기 미국의 정치가들은 공화주의자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였고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상황.
미국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1767~1848)는 국무장관 시절 1821년에 작성한 135쪽짜리 도량형 보고서 「Report upon Weights and Measures」에서 이렇게 썼다. ‘미터법은 인쇄술 이후 인간의 창의력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다. 미터법이 가져올 도덕적·정치적 발전은 노예제 폐지와 맞먹는다.’
- 『눈금 위에 놓인 세계』 중
어느 때보다 유리한 환경이었지만 이를 방해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바다와 해적이었습니다.
1794년 1월, 센강이 파리를 관통하여 바다에 흘러드는 곳, 르 아브르 항. 바람은 살을 벨 듯했지만 하늘은 맑았다. 끊임없이 드나드는 무역선을 배경으로 출항 준비를 하는 범선 ‘순’호에 한 중년의 사내가 올랐다. 상냥한 인상과 피로해 보이지만 빛나는 눈. 뱃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품위 있는 태도. 그는 프랑스 의사이자 식물학자 조제프 돔베였다.
행선지는 미국 필라델피아. 미국 초대 국무장관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이 도량형 개혁안을 작성하기 위해 프랑스에 요청한 물건을 전달하고, 미국의 식물 표본을 수집하는 것이 임무였다. 프랑스 공안 위원회도 새 도량형을 전 세계에 전파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돔베의 품속에는 공안위원회의 편지가, 단단히 쥔 가방 속에는 구리로 만든 임시 길이표준기(미터원기가 아님:편집자 註)와 임시 무게표준기가 들어 있었다. 멀리 육지가 보였다. 필라델피아였다. 그러나 사납게 몰아치는 폭풍에 심하게 흔들리는 배 안에서 돔베는 불안에 몸을 떨고 있었다. 이윽고 파도가 집어삼킬 듯 솟더니 범선의 선미를 때렸다. 순호는 부서진 채 앤틸리스 제도로 떠내려가 과들루프의 푸앵타피트르 항에 정박하게 되었다. 과들루프는 프랑스 식민지였다. 그러나 왕당파였던 총독은 돔베를 체포하고 수감한다. 군중의 요구로 풀려나긴 했지만 사고로 강물에 빠지고 나서 돔베는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다. 시간이 지나 총독은 돔베가 혁명 선동가가 아닌 것을 확인하고 다시 순호에 오르도록 허락했다.
돔베의 불행이 그치는 듯했으나,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순호는 캐리비안 해적의 습격을 받게 된다. 해적들은 화물을 빼앗고 돔베를 감금하고 몸값을 요구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돔베는 3월 말에 감금된 채 사망하고, 임시 표준기들은 다른 화물과 함께 경매에 붙여졌다. 결국 미국 의회는 도둑맞은 표준기를 제때 받지 못했다. 잃어버린 표준기가 미국 정부 손에 들어온 것은 20세기 중반이나 되어서였다.
- 『눈금 위에 놓인 세계』 중
미국이 그저 그런 국가였으면 미터법이 손쉽게 세계를 통일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이었고 더군다나 항공업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그래서 항공업계에서는 미터법 대신 야드법이 통용됩니다. 덕분에 NASA의 화성 탐사선 이 추락하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화성 궤도 진입 시에 사용된 탐사선 제작사 록히드마틴의 소프트웨어는 야드법이었고, NASA의 소프트웨어는 이를 미터법으로 오인해서 계산한 것이죠. 3천 5백억짜리 프로젝트가 캐리비안 해적의 활약으로 화성에서 불탔습니다.
그런데 1미터의 정의는 그 후로도 몇 차례 수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것은 미터원기의 한계 때문입니다. 만약 프랑스에 보관된 미터원기가 도난당하거나 혹은 조작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히틀러가 프랑스를 점령한 후 몰래 미터원기를 0.1mm 깎아버렸다면? 이런 인위적인 문제외에도 물리적인 한계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물체는 온도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한다. 미터원기는 온도가 섭씨 1 도 변하면 8.6 마이크로미터가 변한다. 1마이크로미터(㎛)는 천분의 1밀리미터이다. 한반도의 온도는 연중 약 30 ℃, 하루 중에는 약 10 ℃가 변한다. 공기 중에 놓아두면 미터원기는 1년간 258㎛, 하루 동안 86㎛ 이상 변하게 된다. 상대불확도(아래 인용 참조) 백만분의 일 이하가 요구되던 미터 정의는, 항상 항온실에서 보관하고, 측정도 그 안에서 해야 했다. 측정 결과는 항상 측정 시 온도와 함께 보고되었다.
그런데 만들어진 모든 것은 변하는 법입니다. 미터 막대가 예외일 수는 없겠지요. 영원할 수 없는 물체에 기초한 미터의 정의에 대한 문제점을 일찍부터 예견해 온 과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전자기파의 존재를 발견한 맥스웰(1831~1879)은 미터원기와 관련하여 앞을 내다보는 안목을 갖고 이런 말을 남겼다. “지구의 크기와 공전 주기는 현재 관점으로 볼 때 영원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구가 냉각되면 크기가 작아질 수 있고, 운석이 떨어지면 더 커질 수도 있다. 아니면 지구의 공전 속도가 느려질 수도 있다. … 절대적이고 영원한 길이, 시간, 질량에 관한 표준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들을 지구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질량과 진동 주기, 파장을 갖는 ‘분자’에서 표준을 얻어야 한다.
지구에 이런 무서운 일이 생기면 인류의 안위부터 걱정해야 할 것 같긴 하지만, 여하튼 최초로 주목받은 것은 카드뮴 램프에서 나온 단색광의 파장이었다. 빛의 간섭 현상을 이용하여 길이를 파장개수로 재는 간섭측정의 대명사 마이컬슨(1852~1931)은 미터 정의에 새겨진 1 m 안에 들어가는 카드뮴 파장의 개수를 성공적으로 측정했다. 마이컬슨은 1907년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카드뮴 파장이 미터원기와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보물처럼 모셔야 하는 미터원기가 굳이 따로 필요한가? 차이가 없다면, 더 정밀하고 더 안전한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거치면서 분광학이 크게 발달했다. 분광학은 말 그대로 파장이 다른 빛을 분리하거나 분리된 빛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분광학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헬륨, 네온, 아르곤, 크립톤, 제논, 라돈 같은 불활성 기체의 스펙트럼이 특히 안정하다(원자가가 0이면 화학적으로 활발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미터원기에 카드뮴 기체보다는 독일 국가표준기관 PTB가 제안한 불활성 기체 크립톤 86 원자의 주황색 빛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1960년 제11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미터를 새로 정의한다.
크립톤 램프는 누구나 배워서 만들 수 있다. 크립톤 램프로 간섭계를 만들고 1 미터를 잰다면 2.5 나노미터밖에 안 틀릴 것이다. 1 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미터, 즉 10-9미터이다.
- 『눈금 위에 놓인 세계』 중
어쨌든 11차 국제도량형 총회에서 정의한 미터는 이렇습니다. 상당히 어려운 용어들이 많지만, 이제는 폐기되었으니 관심 있는 분만 보세요.
“미터는 크립톤 86 원자의 2p10과 5d5 준위 간의 전이에 대응하는 복사선의 진공에서의 1 650 763.73 파장과 같은 길이이다”
그런데 몇 차례 언급되었지만, 측정과학자들이 이를 가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온도입니다. 위 정의 역시 온도에 의한 오차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1미터가 처음 제정될 당시에는 0.1mm도 무리 없이 굴러갔겠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밀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길이의 측정정확도는 도대체 얼마이기에 이처럼 정확한 레이저가 필요한 걸까? 한 예로 ‘공장의 자’로 불리는 3차원 측정기라는 계측기를 보자. 3차원 측정기는 탐침을 이용하여 주물, 자동차 부품, 에어컨 부품, 그리고 정밀기계에 새겨진 눈금 등을 재는 장치로, 10-6 이하의 상대불확도를 가진다. 즉, 측정값이 1m이면 오차가 1㎛보다 작다는 말이다. 이 3차원 측정기의 정확도는 상대불확도가 10-7인 길이 기준물로 교정較正 해야 한다. 다시 이 기준물은 상대불확도 10-8의 간섭계로 교정해야 하는데, 이 간섭계의 광원으로 쓰는 레이저의 파장의 상대불확도는 10-9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레이저를 천 배의 여유를 가지고 교정하기 위해 상대불확도가 10-12인 요오드 안정화 헬륨-네온 레이저가 쓰인다.”
- 『눈금 위에 놓인 세계』 중
결국 이런 오차를 없애기 위해 과학자들은 궁극의 정의를 다시 세웁니다. 불변의 상수 c, 빛의 속도입니다. 1983년 제17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1미터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미터는 빛이 진공에서 1/299 792 458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이다.”
숫자가 복잡한 이유는 새로운 1미터의 길이를 과거의 1미터에 가깝게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이전에 기록된 길잇값들을 다 바꿔야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끔찍하지 않나요? 차라리 숫자 9개를 외우는 편이 낫겠지요.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것입니다. 빛의 속도가 불변이어서, 시계만 있으면 된다고는 하는데, 좀 막막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미터원기 역할을 하는 1미터는 필요하지 않은가?
“1972년 영국 NPL의 왈라드A. J. Wallard는 빨간 빛을 내는 요오드 기체의 분광선에 안정화한 ‘요오드 안정화 헬륨-네온 레이저’를 개발했는데, 이는 크립톤 램프보다 천 배 더 정확한 파장을 제공하며, 국제도량형총회가 명시한 상대불확도는 2 × 10-12이다.
요오드 안정화 헬륨-네온 레이저는 오늘날 미터 정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최상위 실물이 되었다. 각 국가들은 이를 개발해 자국에서 이루어지는 길이 측정이 미터 정의에 소급되도록 한다.
그러면 최상위 실물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유일한 방법은 이들을 한데 모아놓고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었다.
각국의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레이저를 들고, 정기적으로 한 곳에 모였다. 한편으로는 비교 결과가 궁금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두렵다. 모든 결과는 꼼꼼히 분석되고 알아보기 좋게 만들어져 전 세계에 공개된다. 이때마다 연구원들은 다시 입시생이 된다. 자신들의 측정 결과가 다른 기관들과 잘 일치하면 합격생이 되고, 혼자 뚝 떨어지면 낙방생이 된다. 천당과 지옥의 어느 문을 들어갈지 모를 ‘시험’은 정기적으로 반복되었다.
국제 비교가 두려운 연구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다. 그 광명은 광빗 기술이 가져왔다. 광빗은 ‘광빛’의 오타가 아니다. 빛의 스펙트럼이 머리빗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빗 이야기까지 하자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다만 광빗 덕분에 요오드 안정화 헬륨-네온 레이저의 셀프 검증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결론만 전한다. 연구원들의 애환이 묻어 있는 안정화 레이저의 국제 비교는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 『눈금 위에 놓인 세계』 중
지금까지 쭉 훑어본 이야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측정의 발전은 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미터는 처음에는 시계추의 길이를 기준으로 정의하려고 했다가, 지구의 크기를 기준으로, 원자가 내는 빛의 색깔을 기준으로, 지금은 빛이 정해진 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로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기준이 바뀔 때마다 보통 사람들이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들과 개념이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먼 미래에는 또다시 1미터의 정의가 바뀔지 모릅니다. 그때가 온다면 인류는 거대한 과학적 진보를 이룩했을 것입니다. 빛의 속도가 불변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가 아닌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이를 측정한 것일 테니까요.
측정하지 못하고 논한다면 지식의 시작은 될지언정 과학적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켈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