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모 언론에 SW 교육 정규과정화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가 실렸었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보고 정말 다행이다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난데없이 SW 정규과정화를 내년부터 중학교에 강제하고 2017년부터는 초등학교에도 실시겠다는 기사가 나왔고, 곧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SW 교육을 입시와 연계하라는 지침까지 직접 내렸습니다.
내년도 중학교 입학생부터 SW 교육 의무화한다 / 朴대통령 “SW교육, 입시연계 안되면 안배우려는 경향”
저는 SW 개발자이고 또 작으나마 SW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SW 개발 공부를 했었고, 그것이 제 SW 개발자로서의 진로에 지대한 도움이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정책에 단연코, 절대적으로 반대합니다.
SW 교육만이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좋은가?
어릴때부터 SW 교육을 정규교육화 해서 가르치면, 물론 긍정적인 효과가 많이 있습니다. 저도 꽤 어릴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했고 IT 정책에 대해 수도 없이 많은 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그 긍정적인 효과를 꼽으라면 하룻밤 내내 장광설을 뿜어내도 모자랄만큼 긴 목록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SW교육만이 그런 탁월한 장점이 있는 걸까요? 머릿속에 룰렛을 돌리다가 아무거나 콱 찍었습니다. 의학입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의학을 기본 교과로 포함시키면 어떨까요. 아, 당연히 좋습니다. 그럼 전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 있게 되니 국민들의 건강 수준도 훨씬 나아질 거고, 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건강보험료 지급도 크게 줄어들 겁니다. 초중고 총 6년 동안 의학 과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수료할 경우 의사처럼 의약품 처방 권한을 주면 어떨까요? 대박입니다.
그뿐입니까. 어렸을 때부터 국영수와 함께 의학을 공부했으니, 아무래도 그중에 의사, 약사로 진로를 정할 아이들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나올 겁니다. 오옷! 의사풍년입니다. 남산에서 돌 던지면 맞는 사람 셋중에 하나는 의사일 수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긴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스튜어디스가 ”여기 의사 없어요?” 하면 전문의 수십명이 우루루 달려들 수도 있습니다. 비행기에 장비는 부족해도 전문의가 수십명이니 최고급 시술을 받고 비행기 착륙후 119 부를 필요도 없이 멀쩡하게 걸어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곳보다 그 의사 풍년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고 반길 곳은 대형병원들입니다. 사회적으로 의사가 넘쳐나니 의사 연봉이 턱도 없이 파삭 가라앉습니다. 지금 연봉을 2억씩 준다면 의사가 넘쳐나면 3천만 줘도 경쟁률 수십대 1이 될 수 있습니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대형병원들의 수익률이 하늘을 찌를 겁니다.
좀 비꼬았는데, 엄연한 사실입니다. 아이들에게 교육을 의무화했을 때 긍정적인 효과가 나오는 건 SW뿐만 아니라 그 어떤 학문 분야라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대학교 수준에서 배우는 학문들, 어릴때 배우기 시작한다고 해서 나쁜 학문이 있겠습니까? 어떤 학문을 찍어도 그 장점은 리스만해도 운동장 열바퀴를 돌 겁니다.
여기서 그럼 가장 좋은 방법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대학 교육 과정에 등록된 모든 학문을 초등학교 1학년부터 모조리 다 가르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학문에 통달한 슈퍼 아이들을 대량으로 양성하는 거죠. 네? 그건 불가능하다고요? 뭐 그럼 전부는 아니고 대학 학문의 절반만 하기로 하죠. 말 한마디에 절반을 팍 깎았습니다. 엄청난 선심인데, 네? 그것도 불가능하다고요? 그럼 반의 반만 합시다. 그것도 안돼요? 반의 반의 반으로 해요. 이제 더 이상 협상은 없어. 이렇게 많이 양보해줬는데 뭘 더 양보하라는 거야?
이런 게 전형적인 ”탁상공론”입니다. 실제 현장의 여건이 되든 말든 책상머리에 앉아 ”말”만 가지고 일부가 주장하는 좋은 효과만 내세워서 정책을 강행하는 겁니다.
물론 어렸을 때 많이 배워두면, 또 전문적인 과정을 배워두면 좋습니다. 이런 게 ”조기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핵심 논리입니다. 그런데, 현행 교과과정은,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아이들이 ”배워두면 좋은” 것들을 추리고 추리고 추려서,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하면서도 소화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들만 모은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있었고, 또 그것이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에 당연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겁니다.
그 ”사회적 합의”에서 그 어떤 다른 목소리보다 더 먼저 들어야 할 목소리가 교육계의 목소리입니다. 교육의 시행자인 동시에 교육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고민하는 업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래부가 SW 정규교과 과정화를 추진하면서 교육계의 목소리를 경청했습니까? 안했습니다. 그냥 ”하면 조차나?” 하면서 교육계를 밀어붙여온 겁니다. 지금까지 논의가 된 것도 교육계가 명분을 내건 미래부에게 떠밀려온 것 뿐입니다.
”아이들에게 국영수뿐만 아니라 SW교육도 필요하다”라는 결론은 해당 업계 주무부처인 미래부가 판단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주도적으로 그런 고려를 할 수 있는 것은 미래부가 아닌 교육계이며, 더욱이 그 결론을 내는 과정에서는 교육계조차도 독자적으로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국가적,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반론들도 다 수용해가며 가부를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 아닌 SI 업계의 이익을 위한 로비의 결과
업계 주무부처가 교육계를 밀어붙여 업계 이익을 위한 정책을 강행하려 한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진 것은, 현정권이 미래부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네? SW 정규과정화가 업계 이익을 위한 일이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덩달아 찬성의견을 던진 SW개발자들도 업계와 정부의 장난질에 놀아난 겁니다.
”SW 정규과정화”라는 테마는 현정부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 시작은 ”SW 개발자 대량 양성 필요”라는, 아주 오래된 테마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벌써 90년대 말부터 IT 업계의 대기업 일부, 특히 SI 기업들이 그동안 치열하게 각 정권들에 로비해서 ”개발자가 부족하다, 대량 양성 정책을 추진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정말로 개발자가 부족할까요? 아닙니다. 실제로 각 정권마다 SW산업협회의 허울을 쓴 SI 대기업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줬고, 그래서 정권마다 대량 양성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대규모 국가 예산이 매년, 매 정권마다 들여 업계의 이익을 위한 사업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SI 기업들은 물먹는 하마처럼 계속 개발자가 부족하다고 계속 외치고 있는데, 그럼 그동안 양성된 개발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상당부분은 SW업계를 떠났고, 또 상당부분은 SI를 떠나 앱 개발등의 다른 쪽으로 전직했습니다. 그래서 SI 인력 시장에 개발자가 항상 부족하게 된 겁니다. 즉 SI 업계 자체가 밑빠진 독입니다. 아무리 퍼부어도 계속 새나가고 있으니 항상 부족합니다. 그러면 구멍을 막아야하는데, SI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잘못인 그 구멍을 막을 생각은 안하고 정부더러 물이 다 안찼으니 더 많이 퍼부으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구멍이란 어떤 것일까요. SI 업계를 좀이라도 아는 분들은 다들 학을 떼는 구멍들이 여기저기 숭숭 나 있습니다. SI 개발자들의 현실적인 평균 정년은 40세입니다. SI 개발자들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며 인력용역업체 등의 명의를 빌린 껍데기만 정규직까지 합치면 국내 여러 업계들 중 최고의 비정규직 비율일 것입니다.
야근은 밥먹듯이 하지만 야근 수당은 없습니다. 오판이나 설계의 문제로 작업이 지연되면 그 부담을 책임자가 지는 것이 아니라 말단 개발자가 그대로 다 뒤집어씁니다. 뭐 한둘이 아닙니다. 이러니 그나마 조금 낫다는 다른 업계로 줄줄이 빠져나가는 겁니다.
SI 대기업들의 이런 ”개발자가 부족해요” 드립의 최종 결정판이 SW 조기교육 요구입니다. 처음 누구의 입에서 나온 ”기발한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명제가 확산되고 정부 미래부에까지 로비로 작용되어 실제 정책이 추진된 것은, 제 손목을 걸고 장담하건대 SI 대기업들의 입김이 주된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SW 교육과정화에 대한 반대를 비판하는 기사는 주로 IT대기업들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경제지들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경제, 매일경제 등이 대표적인데요. 이들은 SW 정규과정화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것을 교육계의 ”밥그릇 지키기”로 매도하는 기사를 연이어 실어왔습니다. 실상은 IT업계 일부의 이익을 위한 교육정책 왜곡인데도 말입니다.
일부 개발자들은 순진하게도 ”우리의 소박한 희망을 정부느님이 받아들여주셨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동안 말단 개발 실무자들의 의견이 정책이 되어 반영되는 꼴을 단 한번이라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미래부 정책에 반영되는 의견은, 정치권에서 나왔거나, 혹은 대기업 업계에서 나온 것들 뿐입니다.
특히 SW산업협회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SW산업협회는 공식적으로, 법률로 규정된 SW업계에서 유일한 대정부 협의체입니다. 즉 SW개발자들 몇만명, 몇십만명이 뭐라고 떠들던 말던,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렴하는 SW 정책은 오직 SW산업협회만을 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SW산업협회는 사실상 SI대기업협회라고 할만큼 SI대기업들이 쥐락펴락 해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SW개발자들이 원하는 정책이 아닌 SI 대기업이 원하는 정책들만이 정부 정책에 반영되어왔습니다. SI 대기업들은 초등학교에서 SW를 정규과목화 하면 장기적으로 개발자가 넘쳐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싼 값에 풍부한 SI 인력들을 탱자탱자 하며 굴릴 수 있게 됩니다. 지금 5천만원을 지급해야 하는 SW 개발 작업이 있다면, SW개발자가 넘쳐나는 인력 시장에서는 1천만원만 줘도 수십대 1 경쟁률이 됩니다.
아까 의사 시장을 비꼬았지요. 그런데 SW 개발자 시장은 그보다 더한 상태입니다. 퇴근시간대 지하철에서 퇴근하는 젊은이들 얘기들을 가만히 들어보면, 여기저기 다 개발자입니다. 자바, C++, PHP, 파이썬, 오라클, MySQL, 등등등 온갖 기술 전문 개발자들이 지하철에 널려있습니다. 이미 넘쳐나는 개발자들이 왜 부족합니까.
과연 개발자가 부족합니까. 아닙니다. 단지 SI 개발자가 부족한 겁니다. 혈세를 동원해서 아무리 퍼부어서 양성해내도 SW개발자들의 ”헬게이트”이기 때문에 도망나오는 겁니다. 여기다가, 지금까지의 개발자 양성책보다 몇단계나 더한 SW 기본교과과정화를 추진한다고요. 개발자들은 다 죽어나고 SI 대기업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잔치를 할 일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IT 사업주라면 몰라도, 현직 SW개발자가 SW 정규과정화를 찬성하고 나서는 것은 적군의 손에 내 칼을 쥐어주는 꼴입니다.
SW교육이 필요하다면 실질적인 대안은 수학, 논리학 강화
기술, 가정 등의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부딛히는 이슈들을 다루는 과목들을 제외하면, 초중등 과정에서 다루는 과정은 모두 순수학문입니다. 반면 SW 개발은 순수학문이 아닌 응용학문, 즉 공학으로서, 엄연히 ”SW공학”입니다. 순수학문이 아닌 공학의 특성은, 오직 그 분야에서만 필요로 하는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초중고 과정에서는 의학이 아닌 순수학문인 생물을 배우고, 재료공학이 아닌 화학을 배웁니다. SW공학의 기초가 되는 학문은 수학과 논리학입니다.
특히 SW 개발을 위해서는 논리적 사고가 대단히 많이 필요합니다. 논리학적 기초가 없는 아이에게 SW 교육은 전혀 무의미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교육 과정으로 주입을 하더라도 논리적 사고의 기초가 탄탄하지 않은 사람은 SW개발 분야에서는 전혀 한발도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수학과 논리학은 초중고등학교 과정에서 꼭 필요한 학문이면서도 단순 주입식 교육으로 진행되어오면서 그 본질적 필요성이 무색해진 상황입니다.
정말로 국가적으로 SW 분야가 중요하다면,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논리학과 수학입니다. 논리학과 수학을 어려서부터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교과 과정을 조정하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더욱이 이 논리학과 수학은 초중고 과정을 거친 아이들이 대학을 가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든 인생 전반에 거쳐서 도움이 되는 학문입니다.
결론
그러니 SW가 중요하다고 해서 초중고등학생들에게 SW 개발 교육을 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 부작용이 훨씬 더 큽니다. 업계의 논리로 아이들의 교육과정을 좌지우지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며, 개발자들이 시장에 넘쳐나게 함으로써 SI 대기업들의 인력 로테이션 애로를 줄이려는 끈질긴 업계 로비에 의한 정책일 뿐입니다.
미래부와 대통령은 당장 SW 교육과 관련한 일체의 논의와 진행을 중단해야 하며, 교과부를 비롯한 교육계, 그리고 사회적 협의를 해나가야 합니다. 심지어 ”입시와 연계”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그야말로 미친짓입니다.
(지난달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원문: Imp on Delphi & C++ Bui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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