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큰 여자, 엉덩이 큰 남자
리승환: 전국구 유명인을 알게 돼서 반갑다. 본인에 대한 뉴스는 잘 보고 있나?
송아영: 노트북이 구려서 클릭 못 했는데, 중앙일보 댓글 많은 뉴스에도 떴더라. 이제 TV조선만 남았나 하는 생각이…
리: 중앙일보 기사 댓글은 봤나?
송: 아니, 무서워서 못 보겠더라.
리: 내가 읽어 주겠다.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우크라 피멘들은 그래도 봐줄만하던데…”, “당신의 그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부당한 것에 대한 분노는 계속되어져야합니다”, “생긴대로 꼴값질 하는구만 그래 차라리 벗고다녀라 인간답지 않는 돼지같은 것이네 그렇게 밖에 생각을 하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송: 나한테 고기도 안 사줬으면서 왜 살쪘다고 불만을 표시하시는 지 모르겠다. 누구든 한 사람의 생김새가 모든 사람의 미적 취향을 백 퍼센트 만족시켜줄 수도 없는 것이고, 그게 욕할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체 왜 그런 데에 본인의 소중한 감정적 에너지를 낭비하시는 지 모르겠다. 나를 깐다고 해서 그대들이 조각같이 완벽한 미남미녀가 되는 것도 아닌데.
리: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응원의 댓글도 있다. 닭도 패션쇼하고 전셰계를 돌아다니는데 돼지가 낫지요… 라고.
송: …… 돼‘지’보단 돼‘냥’이라고 해 주면 뭐가 좀 덧나나. 귀엽게!
리: 아무튼 고기 사주면 돼지라고 해도 되나?
송: 당연히 안 된다. 그리고 당신도 배 나오지 않았나?
리: 나는 그래도 배하고 엉덩이만 나왔는데, 당신은 전반적으로 찌지 않았나?
송: – 그렇긴 하지만 남자가 배하고 엉덩이만 나온 것도 사람에 따라 만만찮은 꼴사나움일 텐데…ㅋㅋㅋ
리: ……
송: ……
리: 나한테 고기도 안 사주고 왜 이러는가?
송: ……
한예종 극작 전공자가 공공미술로 뛰어들기까지
리: 아무튼 자기 소개를 해 보자.
송: 서울 어딘가에 서식하고 있는 젊은 외설가다.
리: 음? 왜 스스로를 외설가로 정의하나?
송: 그게 아니라 이번 노출 시위로 경찰서에 가지 않았나. 아저씨가 서에서 커피 타주며 경범죄 과다노출로 5만원 물어야 한다고 하더라. 순식간에 ‘공공외설가’가 되었다.
리: 엥? 그렇게 작은 일이었나?
송: 생각보다 훨씬 노말하게 이뤄졌다. 인터넷에서 후폭풍이 있을 뿐이지… 원래 예술가로 우기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외설가라 소개할까 한다.
리: 겨우 5만원이라니, 나도 광화문에서 팬티 내려도 되겠다.
송: 당신이 원빈이면 모를까, 나보다 10배는 더 욕 먹을 것 같다.
리: ……
송: 그리고 내려봐야 딱히 메시지를 쓸 곳도 없을 것 같고(…)
리: 시위에서 벗은 건 이번이 처음이냐?
송: 처음이다.
리: 그 전에는 안 벗고 뭐 했나?
송: 저기, 뭔 소리인 줄은 알겠는데, 표현 좀;;;
리: …… 일단 당신 삶을 돌아보자. 전공은 극작인데, 어쩌다 공공미술로 나가게 됐나?
송: 정말 어쩌다가… 원래는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서 전공 맞춰 갔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림을 좀 끄적였던 적이 있다. 근데 이 그림이 내가 봐도 좀 특이한지라, 이걸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 뿌렸다. 그때도 그림 왜 이리 이상하냐, 못 그리냐 소리 많이 들었다. (사실 그때부터 멘탈은 단련됐었다.) 그런데 대학 들어가서 아는 선배님을 통해 안산 대안공간의 큐레이터 선생님을 추천 받았다. 거기 아카데미 들어가서 배우다가 다음 해 아시아프에 서양화부문으로 작품 걸고 개인전, 단체전 여럿 하게 됐다.
리: 주로 어떤 그림을 그렸나?
송: 그림은 잘 안 그린다. 대부분 퍼포먼스였다. 내 전공인 극작은 가상의 인물과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가상의 인물, 가상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굳이 ‘전부 다’ 남의 입과 세계를 빌려서 이야기해야 하나 생각했다. 사회적, 역사적 이슈는 내가 소설이나 극작 작업을 하면서 항상 고려하던 부분이었다. 큰 서사 작업을 위해선 생각보다 길고 정교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당대에 바로, 직접적으로 말을 꺼내야만 의미가 있는 일도 있다.
예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 대해 좀 더 직접적이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나는 항상 내가 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관찰하고 생각하곤 한다.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를 알아야 독자들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가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각예술은 굳이 ‘누군가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시각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4대강의 삽질을 비판한 삽질 퍼포먼스
리: 어떤 퍼포먼스를 펼쳤나?
송: 지금보다는 많이 아기자기한 퍼포먼스였다. 2010년에 맨 처음 단체전에 들어갔는데, 그 때 했던 작업이 안산 쪽 중국인 거리에서 타로카드 퍼포먼스를 하고 점괘를 기록해 설치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자화상에 관객의 입술도장을 찍는 것도 있었고. 대부분의 팬 여러분(?) 들께서는 제가 뜬금없어 보이시겠지만 은근 뭔가 하긴 했었다.
리: 갑자기 왠 타로카드 점괘냐?
송: 당시에는 지금처럼 외국인을 혐오하는 정서가 만연하지는 않았다. 아시안 게임에 맞춰서 안산 계신 수많은 외국인들, 특히 중국 동포들과는 말이 통하니까 그 분들이 왜 여기에 오셨고,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이를 상담하고 기록하고자 했다. 아시다시피 원곡동에는 외국인이 많이 산다. 그 분들의 고민에 대해 피상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같이 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고 싶었다.
리: 이후에도 안산 쪽에서 활동해 왔나?
송: 여기저기 했지만, 안산에서 많이 활동한 건 사실이다. 최근엔 2013년 안산 거리 축제, 퍼레이드 <삼일유가>에서 해바라기로 만든 옷을 입고 퍼레이드 걸처럼 춤을 추면서 걸어 다니기도 했었다.
리: 점점 삼천포로 빠지는 듯하다. 그건 또 무슨 의미인가?
송: 아, 2011년에 ‘해바라기’꽃을 매개체로 1인 공공미술 작업을 진행했었다. 이 작업은 2010년 낙동강 상주보 공사 현장에 해바라기 꽃씨를 심은 게 시작점이다. 4대강 사업이 여러 모로 환경을 많이 망치지 않았나?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그 ‘커다란 삽질’로 만들어지는 인공적미가 아름다운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움은 장난감 삽으로 해바라기를 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움과 친환경을 이야기하는데, 왜 거대한 포크레인으로 환경을 갈아 엎어야 하나? 그래서 해바라기 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비폭력 저항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말 그대로 삽질이다.
리: 어떤 의미의 삽질을 이야기하는 건가?
송: 정말로 삽을 썼다. 모종삽도 아니고, 너무나도 작고 약해서 사람을 공격할 수 없는(무기화가 불가능한) 도구들로만 작업을 진행했다. 커다란 삽은 너무 무섭지 않나? 그래서 낙동강 상주보에서 어린애들 소꿉놀이 용구 플라스틱 삽과 6.25 때 미군들이 버린 작은 숟가락으로 해바라기를 심었다.
리: 당신이 이야기하는 폭력이란 자연을 인공으로 바꾸는 것인가?
송: 그보다 4대강이라는 사업 자체가 이뤄지는 과정이 되게 폭력적이지 않았나. 4대강이 좋은 일이라고 해도, 대통령 한 사람 마음대로가 아닌, 국민 여론 수렴하고 부작용 없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과정 없이 4대강 사업 반대하면 종북이고 빨갱이였다. 이 폭력에 대해서 그들의 폭력이 ‘건드릴 수조차 없는’ 가장 약한 비폭력으로 맞서는 저항을 해 보자. 이런 생각으로 되고 활동한 것이었다.
리: 간디도 아니고 비폭력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
송: Be폭력하게 옥수수를 다이아몬드와 바꾸기 위해… 가 아니고 내 대부분의 작업이 ‘저항의 방식’에 대한 모색이 모티브다. 비폭력, 비무장은 오히려, 폭력의 가해자에게서 정당성을 앗아가는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무장 없이 꽃송이를 든 이에게 총을 쏠 정당성은 그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폭력에 저항하는 방식으로서, 폭력을 가하는 주체로부터 그 ‘정당성’을 빼앗는 저항의 방식을 생각해 왔다. 지금도 난 이 방식을 좀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리: 저항하되 비폭력적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인가?
송: 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정치적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혼자 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느 정도 크기 위해서는 사회가 반드시 서포트해줘야 한다. 나는 나라는 사람의 삶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가장 약한 ‘1인’으로서의 내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그래서 홀로 하는 ‘공공적’ 활동이라 하여 ‘1인 공공미술’이라 이야기한다.
리: 하필 왜 해바라기인가?
송: 해바라기의 학명인 Helianthus annuuse, 즉 ‘한해살이 태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꿈과 희망, 온기와 같은, 즉 ‘햇빛’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곳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아현동 철거촌, 파주 구제역 매립지 등 누군가에게는 개인적인 의미이지만 사회적 의미가 함께 내포된 곳을 주로 골랐다. 퍼레이드에서는 나 자신이 해바라기가 돼서 다른 사람에게 이 에너지를 나눈다는 의미였다.
리: 되게 재미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슈가 안 된 건가?
송: 맞다. 너무 착했다. 강가에 갔는데 소심하게도 그 흔한 비키니조차 입지 아니하였으니. 모 기자님이 사진은 찍었는데 언론에 올라가지는 않더라.
옷을 벗은 것은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
리: 활동의 아이디어나 당신의 이름값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송: 그런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뭔가, 내 목소리가 세상으로 흘러가기 힘들게 하는 어떤 단단한 벽 – 같은 것이 있다고 느껴졌었다. 세월호 전에도 미술관, 갤러리 안에서는 계속 ‘저항’에 관한 이야기를 해 왔었다. 부산에서 단체전할 때는 가공의 드링크 만들어서 약을 파는 퍼포먼스를 했다. 세상에 진실이 넘쳐난다고 하지만, 그 어디서도 진실이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갤러리 오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대부분 종사자들끼리 보고 마는 거지.
리: 깔끔하게 무시 당하니 어떤 느낌이었나?
송: 무기력함을 느꼈다. 소심하게 살면 아무리 내가 목청 높여 반대하는 일이라도 깔끔히 무시당하고 저렇게 추진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반대하고, 무서워했던 모든 일들이 현실에 딱 그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억압으로서 구현되었다. 세상은 점점 이상해지는데 나는 과방에, 내 방에, 갤러리 혹은 극장에 갇혀서. 어차피 세상으로 흘러 나가지 못할 소리만 내고 있구나… 나는 내 작업이 자연스럽게 갤러리 밖, 극장 밖으로 흘러 나가 이 세상에 뭔가를 할 것이라고 믿었었지만, 세상은 그 이야기들을 굳이 방에서 ‘꺼내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내가 스스로 밖에 나가지 않으면 내 목소리는 계속 묻힐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 순간 들더라.
리: 그래도 교복 입고 세월호 침묵 시위한 건 좀 이슈가 되지 않았나?
송: 그래봐야 별로 눈길은 끌지 못했다. 어떤 사안에 대해 페이스북이든 블로그든 갤러리든… 아무리 무언가를 쓰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 나는 되게 공을 들였는데, 세상은 듣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어떻게 보면 그냥,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한 사람 분량의 정치성과 사회성을 가진 존재로서 ‘예술적’양식의 프레임 바깥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고생 1인시위는 1인 시위이기도 하지만 퍼포먼스이기도 한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에 대해 여러 사람에 대해 나가 서 있어보고 질문과 대답을 받고 싶었다.
리: 당연히 결과는 질문과 대답이 없었을 테고.
송: 있긴 있었다. 페이스북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을 뿐. 그래도, 선거가 끝나면 좀 잘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도 여전히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세게 나가보자고 결심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어떻게든 듣고, 페이스북 바깥에서 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방식으로 한 번 이야기를 해 보고자 했다. 그러면 조금은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정신적 에너지 소비하는 만큼, 세상은 딱 고만큼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벗었는데…
리: 바뀌던가?
송: 바뀌는 걸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이 이야기가 얼마나 간절한지 누군가는 알 거라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FEMEN도 결국 간절하기 때문에 벗은 것이다. 나는 세월호 관계자, 유가족도 아니고, 안산 사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그냥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것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미술관 바깥, 무대 바깥에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딱 우리가 마주쳐야 할 현실에서 간절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리: 그래도 벗을 필요까지 있었나? 벗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송: 빡쳐서 벗었다.
리: 무엇에 그렇게 빡쳤나?
송: 결정적 도화선은 정치인들의 태도였다. 사람을 못 구했다면 적어도 그 가족들에게 미안해 할 줄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법을 제정하라는데 있지도 않은 내용으로 호도하고, 사고 발생일부터 쭉 유가족을 모욕하려 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진짜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어지간한 시위로는 딱 인터넷에나 머물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번도 벗었으니 뉴스에 뜬 것 아닌가?
시위 방식을 욕하는 사람은 애초에 그 이슈에 부정적일 뿐
리: 나는 여성의 탈의 시위에 대해 좀 부정적이다.
송: 야동은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리: 나체 자체에 압도 당해서 메시지 전달이 힘들지 않나? 우크라이나 FEMEN도 국내에서는 그냥 히히덕 감이다.
송: 일단 내가 우크라이나의 그 분들처럼… 감자 캐는 김태희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시위 방식을 도입시켰다 하면 감자 캐는 김태희 급의 미인을 생각하시는데, 이 점에서는 정중한 사과를… 고승덕 식으로 말하자면… 감자 캐는 김태희가 아니라 미안하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리: ……
송: 하지만, 내가 그렇게 예쁘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메시지가 잘 드러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리: 말이 꼬이는 것 같은데 나체 시위는 야함보다 불편함, 혹은 불쾌함으로 다가오는 문제도 있다.
송: 불쾌할 게 뭐가 있나? 누구나 찌찌 있고 뱃살도 다 있는 건데… 어떤 구호를 외치든 그것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불쾌해 하고 불편해 한다. 그 어떤 몸매도 타인에 100% 맞출 수 없고, 주장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어떻게 벗고 어떻게 생기고 어떤 구호를 외치든, 어차피 100% 지지를 얻진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당당하게 하고 사는 게, 사회 틀에 맞춰 ‘평범한 요조숙녀’처럼 사는 삶보다 훨씬 나은 삶이라 생각한다.
리: 사람들의 관용은 크지 않다. 당신의 이미지가 왜곡되는 게 무섭지 않은가?
송: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 틀 안에서 나만 그 사회 속 정상인 되겠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더 무서운 거 아닌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 비정상적인 규칙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남한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률적인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시선에 길들여져 사는 게 훨씬 더 무서운 폭력이고 왜곡이라고 본다. 어차피 미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에서 내가 ‘미쳐 보이는 짓’ 좀 한다고, 그게 무섭거나 이상한 짓이라거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참정권을 가진 한 시민으로서 내 이야기를 한 것일 뿐이다.
리: 앞으로는 뭐, 어떤 변화를 주고 싶나?
송: 주목 한 번 모았으니 옷을 입든 벗든 똑바로 해야지. 팬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의 초점은 생명존중
리: 이미 당신은 팬보다 일베에서 더 주목 받는 것 같던데…
송: 지지하건 안티하건 안티팬도 팬이니까… 제가 얼마나 매력적이면 그렇게 격렬히 안티를 하실까 하고 등이라도 토닥토닥 해 드리고 싶다.
리: 그래도 무섭지 않나? 사람들 당신 몸 가지고 언어 폭력 쩔던데. 혹시 일베는 가 봤는가?\
송: 안 가봤다. 굳이 그런 걸 보고 내 건강을 해치고 싶지 않다.
리: 왜 안 갔나?
송: 그들이 상대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던가? 악플은 안 그래도 많다. 그리고 그 악플들의 대부분은 사안의 본질에 대한 것보다 기본적 논리조차 빈약한 상태로 자기네들 맘대로 ‘욕설’을 지껄이는, 나에겐 아주 무의미한 얘기들이다. 그런 곳에 나의 정신적 에너지를 쓰는 것보단 맛난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고 바스트를 빵빵하게 키우면서 고냥이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한다.
리: ……
송: 아니… 일베든 누구든 악플러들… 내 몸은 그대들 것이 아니다. 지들은 뭐 만인의 만인에 대한 취향에 부합하는 몸매인가? 아무리 말랐다고 해도 누군가는 그 마른 몸을 매우 싫어할 수 있는 것이고, 아무리 토실토실하다 해도 누군가는 그 토실토실한 몸이 모에모에♡한 취향일 수도 있는 것인데, 왜 남의 몸매 가지고 품평하고 난리인지.
리: 앞으로 예술 활동 계획은?
송: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연극을 올릴 거다. ‘자살방지 캠페인’의 프레임을 까는 이야기인데, 내가 3년 전에 졸업작품으로 썼었던 극이다. 당시에는 도처에서 사람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부려먹어서 HP와 마나를 다 빨아먹는 구조를 해 놓고 각종 논리로 ‘사회는 책임이 없고’ 모든 걸 개인으로 환원하는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많이 가졌을 때였다. 그래서 아, 씨발 생명존중 돋네… 이런 식으로 ㅡ그러한 시스템적 부조리를 까고 싶었다.
리: 생명존중?
송: 나도 물어보고 싶었던 거다. 3년 전에 내가 썼던 그 세상을 지금 여기에 불러옴으로서. 그렇게 무책임한 카피들로 ‘생명 존중’을 한다면서 여성 수태 조절 권리를 통제하고, 자살을 개인의 무책임한 선택으로 열심히 홍보해대던 그 때. 병적일 만큼 무한경쟁을 시키고 약자를 패대기치는, 사람이 사회 시스템에 지쳐 죽을 수밖에 없게 하는, 삶에 대한 존중 없이 ‘죽으면 안 돼’라고 앵무새처럼 떠들던 매체들.
정작 그 생명이 300명 넘는 생명이 바다에서 허무하게, 노동력으로 키워지기 전에 죽을 위기에 빠져버렸을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했나? 그리고 그 이후 사고로 돌아가신 사람들을 다루는 관점이 정말 생명을 존중하는 관점인가? 그 당시에 프로파간다적으로 ‘생명존중’ 카피를 뿌리시던 높으신 분들, 이렇게 대량으로 생명이 사라지는 사태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이 시대에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던 거다.
리: 앞으로 당신이 지향할 길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송: 나의 작업은 어떤 것이든 나를 둘러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 흐름을 당분간은이어 나가겠지만, 살아가는 상황에 따라 지금과는 또 다른 맥락의 작업을 할 수도 있다. 나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위해서 사는 존재도, 누군가의 생각에 지지를 보내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도 아니다. 그저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시민일 뿐이고 한 사람 몫의 생명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지만, 그런 만큼 뭐든 잘, 제대로 하도록 노력하겠다.
리: 당신의 이런 활동이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송: 세상의 모든 변화는 ‘시기상조다’ 하는 요구들로부터 시작된다. 그 수많은 시기상조들이 모이고 모여 우리의 목소리와 권리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활동은 충분히 그 ‘시기상조’의 권리들을 현실의 자리로 옮겨 놓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canada goose outlet5 Baffling Uses of Sex Toys That Prove Humanity Is Doo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