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어떻게 트렌드를 이끌어가는가
기업은 트렌드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많은 기업에 위기였지만, 어떤 기업은 소위 ‘언택트’라는 트렌드를 이끌어감으로써 오히려 승승장구했죠.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움’이죠. 그러나 지금 시대의 새로움은 이전 시대가 말하던 새로움과 다릅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움이라기보다는, 새롭게 발견되거나(rediscovered), 새롭게 해석되거나(reimagined), 새롭게 정의된(redefined) 새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새로움’이 아니라, ‘재정의된 새로움’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비대면 경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전부터 스마트폰, 태블릿, SNS에 익숙했던 MZ 세대들에게 있어, 비대면 경제는 어찌 보면 익숙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비대면 마케팅들은 소비자들로부터 그리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보통 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꼼수일 뿐, 소비자에게 더 나은 효용을 제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의사나 직원을 직접 만나 피부 상태를 문진하는 대신 온라인 설문지를 통해 뷰티 제품을 추천하는 식이었죠.
하지만 이젠 얘기가 다릅니다. ‘라이브 커머스’를 비롯해, 피지컬과 디지털을 결합한 ‘피지털’ 방식, SNS를 활용한 심리스 마케팅 등 소비자에게 더 나은 효용을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비대면 방식이 속속 개발됩니다. 새롭게 해석된 비대면이라고 할 수 있죠.
이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엘 킴벡은 ‘신선한 새로움’, 즉 ‘프레시니스(freshness)’ 코드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조엘 킴벡이 예시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루이비통이 글로벌 앰배서더로 방탄소년단 멤버 전체를 선정한 일입니다.
방탄소년단을 사실 ‘완전한 새로움’이라고 볼 수는 없죠. 음악계에선 이미 최고의 스타이니까요. 하지만 패션계에서는 다릅니다. 루이비통은 백인 할리우드 스타 일변도였던 글로벌 앰배서더에 동아시아권 팝 스타를 선정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프레시니스 코드란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는 게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던 것도 신선한 시선으로 보고, 신선한 기준으로 판단하며, 신선한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이 핵심이죠.
쉬운 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던 것’인 만큼 잘못하면 이미 본 것, 구태의연하고 식상한 것으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전략적인 관점이 필요합니다.
패션과 뷰티는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분야입니다. 문자 그대로 ‘유행의 첨단’이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참신한 그 무엇을 끊임없이 발굴해야 합니다. ‘프레시니스 코드’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영역이죠. 그렇다면 글로벌 패션하우스들은 어떤 ‘참신한 새로움’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할까요?
1. 억지스러운 메시지를 빼고, 자연스럽게 마케팅하라
MZ 세대를 단순한 마케팅 용어일 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일으킨 변화란 실로 엄청난 것이었죠.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SNS는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예전에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제품에 대한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파했지만, 이제는 소비자들이 직접 필터링해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시대가 되었죠. 이런 변화는 코로나 19로 인해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 시대에는 자사 제품의 장점만을 강조하는 억지스러운 마케팅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SNS나 라이브 커머스, AI 기반의 큐레이팅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유리하죠. 최대한 자연스럽게 정보를 전달하고 이를 구매로 연결하는 ‘심리스’ 마케팅이 대두된 배경입니다.
3CE나 에이블리, 지그재그의 성공이나, 최근 급성장하는 인플루언서 마케팅 등이 그 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튜버들의 뒷광고 논란을 비롯해, 그 커뮤니케이션이 조금이라도 억지스럽게 보인다면 소비자들은 금세 다시 브랜드를 외면하게 되죠. 어려운 균형추입니다.
2. 비싸더라도 ‘올바른’ 상품을 만들어라
윤리적인 소비를 추구한다는 것도 새로운 시대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재활용은 최근 업계의 대표적인 화두죠. 재활용 플라스틱을 이용한 아디다스의 운동화 라인업도 그렇고, 패스트 패션의 대표주자인 H&M이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실 패션이나 뷰티뿐 아니라 음료 시장에서도 재활용에 용이한 페트병 디자인을 선보이는 등의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흐름은 어떻게 따라가야 할까요? 브랜드 충성도가 점점 낮아지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할까요? 마찬가지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이 노아 NYC와 컬래버래이션해 만든 후드티는 좋은 사례입니다.
이 후드티의 특징은 컬러가 50가지나 된다는 것입니다. 뉴요커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아티스트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색상으로, 화학 약품을 쓰지 않는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티셔츠들을 자연 염색했죠. 말하자면 제품 기획부터 소비자가 색상을 선택하는 과정까지가 하나의 예술과도 같은 것입니다.
노아 NYC의 창립자 브랜든 바벤지엔은, 구매를 ‘어떤 의식을 지닌 브랜드와 함께할 것인가를 두고 투표하는 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MZ 세대는 브랜드 충성도는 낮지만, 윤리적 의식을 갖춘 기업에 대해서는 깊은 신뢰를 보입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그 윤리적 의식이 억지로 꾸며진 것에 불과하다면 오히려 불신을 품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회적으로 부도덕한 기업이 공익 광고 캠페인만 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는 없는 겁니다. 기업 활동과 상품 자체에 그 윤리적 의식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3. 신선한 조합으로 희소한 가치를 만들어라
과거의 컬래버레이션이 문자 그대로 단순한 두 기업 간의 협업을 뜻했다면, 오늘날의 컬래버레이션은 완전히 다른 장르가 결합되는 형태를 띱니다. 또한 기존의 캘러버레이션이 상상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컬래버레이션을 추구하기도 하죠.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이 칼 라거펠트를 시작으로 명품 디자이너들과 이어가는 컬래버레이션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명품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저렴하지만 패션적 가치도 충분한 브랜드’로 이미지를 상승시킵니다. 반대로, 명품 브랜드는 폭넓은 소비자를 보유한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넓힐 수 있죠.
다만 컬래버레이션이 이젠 흔한 전략이라는 점은 주의해야 합니다. 예전처럼 주목을 끌기 쉽지 않습니다. H&M의 전략도 오늘날에는 수많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시도하는 흔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2021년 4월 성사된 구찌와 발렌시아가의 컬래버레이션처럼 말입니다. 이 컬래버레이션은 ‘명품 브랜드X명품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점에서, 전혀 예상 못 한 참신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발렌시아가의 프린트가 구찌의 호보백으로, 구찌의 캔버스 프린트가 발렌시아가의 아워글라스백으로 탄생함으로써, 여전히 컬래버레이션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함을 증명했죠.
4. 리셀과 드로를 팔아라
리셀은 이제 새로운 패션 소비 양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리셀의 사전적인 의미는 ‘중고 물품을 되파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희소성 있는 제품을 구입해 정가보다 비싸게 재판매하는 것’을 의미하죠. 이제는 마케팅 전략이자 재테크 수단으로까지 확장되어, 패션 판매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나이키와 디올 옴므의 컬래버레이션 에어 조던, 슈프림과 루이 비통의 컬래버레이션 제품, 슈프림과 리모와, 팻 맥그라스와의 컬래버레이션 제품, 피스마이너스원과 나이키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인 에어포스 1 패러노이즈 등, 리셀 시장에서 판매가의 몇 배로 가격이 뛰는 제품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신제품이 발표되면 물건을 싹 쓸어간 뒤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에 리셀을 하는 ‘전문 리셀러’들까지 등장하면서, 시장이 혼탁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은 사전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들에게 신제품을 우선 판매하는 ‘드로’ 같은 고육지책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사실 ‘리셀’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이 바로 이 ‘드로’입니다. ‘드로’는 ‘전문 리셀’을 막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사의 신제품이 ‘리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높다는 마케팅 수단이기도 하거든요.
5. 있던 것을 재활용하라
이미 있던 것을 재활용하는 것은 ‘프레시니스’의 의의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펜디의 바게트백이 있습니다. 바게트백은 명품 브랜드임에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한 ‘잇백(It bag)’의 시초로,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사라 제시카 파커가 들고 나오면서 신드롬적인 인기를 끌었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펜디는 바게트백 재출시 광고 캠페인에 사라 제시카 파커를 기용했습니다. 이 광고는 20대로 보이는 네 명의 젊은 여성이 펜디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보라색 시퀸 바게트백을 구입하려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나를 사라 제시카 파커가 사서 들고 나간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죠. 바게트백이 과거의 향수이자 현재의 트렌드로 함께 빛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유행은 돌고 도는 법입니다. 과거에 사라진 것 같은 것들도 결국은 재등장합니다. 발 사이즈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투박한 어글리슈즈를 비롯해, 1970–1980년대에 유행했던 문화 코드가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활용됩니다. 지난 시대의 유행을 참고하는 게 아니라, 지금 시대의 유행 코드로 즉각 변환시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 중에는 세상에 없던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디자이너도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디자인을 재창조하는 능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도 있습니다. 『프레시니스 코드』가 전하는 메시지는 둘 중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는 게 아닙니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서 ‘새롭다’는 것은 전자뿐 아니라 후자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것이죠. 오늘날 패션계가 방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치며: ‘프레시니스 코드’를 이해할 때, 브랜드는 성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프레시니스 코드’가 뜻하는 건 무엇일까요? 경험의 홍수 속에서 자란 젊은 세대는 이미 새로운 경험을 차고 넘치게 해 봤습니다. 이들을 유혹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게 아니라 ‘신선한’ 것입니다. 책 제목이 ‘새로움(newness)’이 아니라 ‘신선함(freshness)’인 이유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복잡해져도, 사람들은 신선함을 찾는 걸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상과 접근법, 진행방식, 결과물 등 세상을 읽어내는 센스가 반영된 ‘프레시니스’를 발견한다면 MZ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사로잡을 트렌드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4개의 나라를 오가며 패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를 운영한 저자 조엘 킴벡은 경험에서 우러난 방대한 정보력과 예리한 통찰력을 자랑합니다. 유행의 첨단에 서 있는 패션·뷰티 업계에서 세상을 읽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경험한 것은 곧 업계 전반, 나아가 세상 전반에 퍼져 나갈 것입니다.
2021년은 무척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 ‘프레시니스 코드’를 이해한 브랜드는 혼돈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기획자와 마케터, 그리고 브랜드를 잘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프레시니스 코드』를 읽기를 추천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