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이 근본주의적인 이슬람과 부패 때문에 망할 만했다”는 해석들이 꽤 보이는데, 복잡한 종교 문제를 너무 단편적으로 편리하게 해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중동은 종교뿐 아니라 근소한 정치적 차이만으로도 극명하게 여러 파벌로 갈린다.
한국 또한 한때는 군사 독재자를 찬양하고, 독재자가 죽자 마치 왕이 서거한 것처럼 오열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간첩처럼 몰아가던 사회상이 있었다. 그중 일부는 아직도 그 독재자를 신격화하고 탄신제를 모시기도 한다.
오늘 발전한 한국에 대한 기여를 두고 개발독재를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개발독재도 한 축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의 발전은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남미에서도 개발독재 국가들이 10% 넘는 성장을 했고, 이 때문에 영미권의 자유주의적인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이 남미 개발독재 모델을 연구하기도 했다.
남미의 개발독재가 부패로 몰락하는 동안 한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발독재 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와 국제시장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 결정적 요인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군사 독재자인 전두환조차 미국 눈치를 보며 시장 개방과 동시에 보다 많은 자유를 보장해야만 하지 않았나.
또한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전두환 집권기까지 약 40년간 미국으로부터 유럽이 받았던 마셜플랜과 거의 같은 액수의 지원을 받았다. 전두환이 집권하던 당시의 한국은 군부가 정부를 장악하고, 정치인과 학생들을 체포해 간첩으로 몰고, 부정선거는 물론 정경유착은 사업의 필수였다. 삼성, 현대를 비롯해 굵직한 대기업들은 죄다 정경유착을 통해 사업을 펼쳤고, 분야 또한 건설, 무역, 군수산업 등 가릴 것이 없이 다양했다.
한국인은 자유로웠는가 하면, 한국인의 해외여행 자유화는 오랜 개방 압박에 밀려 1989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실현되었다. 1989년 이전에 해외여행은 소위 공직자, 기업가, 지역 유지 등으로 소위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참고로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절대다수의 한국인은 외국-세계에 대해 헐리웃 영화와 검열된 뉴스 미디어를 통해 배우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도 매우 관련 있다.
1990년 이전까지 한국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부랑아, 행려자, 고아, 장애인, 질병환자, 매춘부 등의 사회적 약자를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수용소에 감금해 고문하고, 노동 착취하고, 살해당하도록 방치했다.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성 착취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이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1990년대 서울의 길거리 풍경에선 열 살도 채 안 되는 아이들이 껌을 팔거나 구걸하는 모습과 길거리 강매를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다시 아프간 문제로 돌아와서
1980년대에 탈레반과 무자헤딘 등이 정부를 세우면 소비에트에 반대하는 친미정부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그들에게 전쟁무기와 자금을 지원한 것은 미국이었다. 또한 소위 강대국이라는 외부 세력 이외에 이슬람 신자들간 내전이 발생하는 역사적 이유는 단순히 정치 세력 간의 다툼이 아니라 어떤 종교 파벌이 해당 지역을 장악하냐의 문제라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이슬람은 하나의 종교지만 수많은 파벌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을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탈레반쯤이야 가볍게 때려잡고, 친미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는 기대만 했지, 실질적인 정부 수립과 미군 철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아무 계획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는 동안 아프간 송유관 사업, 재건사업에 개입하면서 중동국가들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국제유가시장을 뒤흔들면서 통제하는 쾌감이 엄청났을 것이다.
왓슨 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이 2001년부터 아프간에 쏟아부은 돈이 2조 2,610억 달러(한화 2,656조 6,750억 원)가량 된다고 하는데, 사실 미국이 돈을 잃었다고 보긴 어렵다. 아프간 재건사업이라며 송유관 사업에 개입해서 국제유가를 조절하고 중동국가들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러시아의 석유가스 산업까지 견제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서방세계가 충돌하면서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송유관을 인질로 삼았던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미국에서 셰일가스 혁명이 터지고 손익계산 끝나버리니 아프간에서 단물을 빨 수 있는 데까지 빨고 황급히 나오는 상황이다.
트럼프와 탈레반의 평화협정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2월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영구적이고 포괄적인 정전’을 실현하기 위해 아프간 내 대화, 테러 방지, 그리고 군사 규모에 대해 약속을 강조했다. 주요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미군 철수와 5,000명의 탈레반 수감자들을 풀어주는 것. 탈레반은 알카에다를 포함해 모든 단체와 개인이 미국이나 동맹국의 안보를 위협할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이용하는 것을 막는 것.
탈레반 수감자 5,000명 석방. 그간 미군이 제 살 깎아 먹으며 싸워온 주체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니, 미군이 행정부의 그런 합의사항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현대 전쟁은 무력뿐 아니라, 에너지, 무역 등 전 분야에서 이뤄진다.
미군이 이런 현대전의 조건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탈레반의 합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 압박이 지속되는 상황을 우려한 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장관은 철군 요구를 거절하면서 “탈레반이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4,500명 이하로 군 병력을 감축하지 않겠다. 그렇지 않으면(철수하게 된다면), 현재 이미 여러 방식으로 전개된 많은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공식 서신을 보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1월 대선 패배 직후 에스퍼를 해임했다.
바이든과 탈레반의 평화협정
탈레반의 봄 대공세가 예정되고 있었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월 7일 “9월 11일까지 모든 미군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도 카불의 함락이 임박한 시점에서도, 바이든은 철군을 취소하지 않았다.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 후, 미 국방부의 새 수뇌부는 전임 대통령 트럼프가 탈레반과 약속한 ‘평화 협정’의 철군 시점인 5월 1일을 취소하려 로비 총력전까지 벌였다. 미군이 단순히 예산을 보장받고,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바이든 취임 직후 새 국방장관 로이드 J. 오스틴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CIA 등 정보기관의 결론을 참고해 “탈레반은 지난 20년 동안 가장 강력해졌고, 2–3년 내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에 새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며 당시 2,500명 수준에서 증강해 3,000–4,500명 규모의 미군을 주둔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2월에는 민주, 공화 양당이 의회 내에서 만든 ‘아프가니스탄 스터디 그룹’에서도 “5월 1일이라는 철군 날짜에 집착하지 말고, 탈레반이 평화협정을 준수하는 정도를 따져서 철군 날짜를 조율하라” “날짜에 매달리면, 다국적군이 떠나는 순간 내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3월 들어, 오스틴 장관과 밀리 합참의장은 2014년 이라크에서 미군 전투병력이 철수한 뒤 이슬람 테러 집단 IS가 기승을 부려 다시 미군이 증강된 것을 바이든에게 상기시켰으나 바이든은 거절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수도 카불이 함락된 뒤,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이 아프간에 들어간 ‘분명한 목표’는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를 소탕하기 위한 것”이며, “그 두목인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것이 벌써 10년 전(2011년 5월 2일)”이라 했다. 또한 “우리의 아프간 임무는 ‘국가 재건(nation-building)’이 아니며, 통일되고 중앙집권적인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프간에서 미국의 ‘유일한 국익’은 미 본토에 대한 테러 공격을 예방하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된 직후에도 말이다. 물론 바이든은 상원의원, 부통령 시절에도 “‘대테러 작전’에 초점을 맞춰야지, 반군 진압이나 국가 재건이 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동안 많은 국가의 진보진영에서는 미군이 중동 개입을 비판하며 철군해야 한다 주장해왔지만 이런 식으로 빨대 꽂아 빨아먹을 거 다 빨아먹고, 목숨 걸고 일한 사람들을 폐기처분하고 떠나라 한 적이 있었던가. 아프간 정부의 부패도 이 사태의 문제 중 하나라 지목할 수 있지만, 사실 미국을 비롯해 재건사업에 들어간 국가 및 사업자들이 그 부패를 방조하고 방관해왔기 때문 아니었나. 그래야 아프간을 친미정부로 다루기 쉬우니까.
이런 상황은 EU의 경제 카르텔이 부패한 그리스 정치권과 손잡아 그리스의 2차 산업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 1차 농업 및 광물에서 항만, 관광 산업전반까지 주요 산업이 EU의 경제 카르텔에 잠식되도록 협력한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자신들의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는 모든 이를 빨갱이, 채무자,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며 진행한 합법적인 범죄라는 것까지…
20년 만의 탈레반 재집권이 아프간의 부패 때문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부디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오늘 우리가 빛나는 성공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의 좌절을 능력 부족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엔 한국 또한 충격적인 탄핵사태를 겪었고, 현재까지도 매우 지난한 문제를 겪으며, 단편적으로 재단하기엔 인류의 역사와 정치, 문화 종교는 너무도 복잡하다.
덧
1. 독일에서 벌어지는 아프가니스탄인 구출 작전
이에 관해서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 이외에도 활동가들을 통해 여러 다양한 경로로 받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는 정보가 다량 포함되어 있어 그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해서 포스팅하겠다.
2. 중국이 탈레반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뻔하다
미국이 중동에서 빠지고 한반도 등을 통해 중국과 북한에 주력할 것이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위구르 지역에 진입하면서 중국이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들을 보았다. 아프간에서 패주하고 도망치는 미군들 보면서 중국이나 북한이 무서워하겠나. 관타나모 수용소, 신장 위구르인 및 카자흐스탄인 수용소 둘 다 최악의 수용소지만, 중국이 탈레반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뻔하지 않나.
3. 샤리아 존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서 미리 이야기하자면
샤리아 존은 독일에서 운영되지 않는다. “샤리아 존 때문에 유럽이 이슬람화되어 망하고 있다”는 식의 멍소리 하는 사람들은 내 확신컨대 유럽에서 생활해본 적 없거나 현지 유력 언론들의 기사를 읽지 않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해당 주장은 2015년 봄부터 시작된 난민사태에서 극우-네오나치들이 하던 가짜뉴스에 기반한 주장들이었다.
독일 법원은 반나치법안으로 네오나치를 처벌할 때와 같은 관점에서, 2015년부터 헌법부정 등을 근거로 샤리아 관련 액세서리나 옷을 착용하면 최대 2년 징역을 때린다. 어떤 형식으로든 테러리스트에게 지원하거나, 샤리아 관련 조직을 했다간 죄다 잡아다 경중에 따라 유기징역형을 내린다. 종종 테러에 직간접적인 가담이나 협력으로 보기 어려운 단순 정보 제공만으로도 수만 유로의 벌금형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법원에서 잘못했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만큼 무서운 게 없지 않나.
참고로 독일은 이후 최소 15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여 GDP가 1.1% 이상 성장하는 매우 고무적인 경제적 효과를 누렸다. 전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경제 단체인 IMF조차 독일의 사례를 들어 저출산 및 경제 효과를 위해 많은 국가들에게 적극적인 이민과 난민 수용을 권장하고 있다. 물론 IMF가 좌파, 빨갱이, 페미니스트들에게 매수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