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 뉴스를 통해 보도됐듯이 벽지 노선을 다니는 무궁화호 열차가 점점 줄어듭니다. 특히 전라남도 보성군의 경우에는 지난 8월 1일 자로 서울로 바로 가는 열차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같은 날, 지리산 등산객들이 애용하는, 새벽에 구례구역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1517 열차 또한 운행이 중단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문제는 2017년으로 올라갑니다. 2014년부터 철도공사는 영업 흑자를 보았죠. 고속철도 영업이 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17년, 철도공사의 적자는 무려 4,699억 원에 달합니다. 적자는 2019년까지도 해소되지 않았고, 마침내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적자액이 1조 원이 넘고 말았습니다. 누적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푼돈이라도 건지기 위해 열차를 줄이는 것이 철도공사의 현실인 셈이지요.
2017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016년 12월 9일 바로 수서에서 SRT가 운행을 시작합니다. 2017년 철도공사의 적자 4,700억, 그리고 2016년 철도공사의 흑자 1,216억 원을 더하면, SR의 매출액인 5,801억 원과 거의 같습니다. SRT 운행이 2017–2019년 사이 발생한 철도공사의 적자와 밀접하게 연결된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SRT가 철도의 적자에 영향을 끼친 이유는 바로 이 열차가 경부고속선과 호남고속선만을 운행하기 때문입니다. 고속선이란 300km/h로 열차가 달리는 노선을 말합니다. 이 노선으로 운행하면 속도가 빨라 승객도 많고, 열차도 빠르게 회전시킬 수 있습니다. 반면 KTX는 고속선 외에 200km/h 이하의 일반선도 달립니다. 속도가 느려 상대적으로 승객도 적고, 열차 회전도 느려져 하루에 운행할 수 있는 열차가 줄어들죠. 승객당 운임도 낮은 편입니다. 결국 일반선 운행 비중을 높일수록 고속철도는 이익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림을 보시면 알겠지만, 경부고속선과 호남고속선에서 SRT와 KTX는 거의 동일한 수의 열차를 운행합니다. 부산행 SRT는 하루 편도 40회, KTX는 42회입니다(수원이나 구포 등 일반선 경유 열차 제외). 목포행 SRT는 하루에 9편(KTX는 18편)입니다. 상대적으로 돈이 되는 광주행의 경우에는 SRT가 20편으로 KTX(21편)와 거의 횟수가 같습니다. 결국 SRT는 KTX에 비해 돈이 될 만한 노선만 골라 운행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고속철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들까지 생기고 말았습니다. 전주, 남원, 순천, 여수를 잇는 전라선, 밀양, 김해, 창원, 진주를 잇는 경전선, 포항을 잇는 동해선 지역 국민이 바로 이들입니다. 수서역으로 KTX가 진입하지 못하게 된 결과, 이들 지역 600만 명의 국민은 고속철도를 타고 수서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승을 해야만 합니다.
최근 SRT를 전라선, 즉 여수 방면으로 투입하겠다는 논의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SRT로 투입될 열차가 사고 차량이라, 수리가 늦어지는 듯합니다. 또한 이렇게 투입될 차량이 단 한 편성뿐이라, 여수와 수서를 하루에 3회 이상 왕복하는 열차를 투입하려면 다른 노선의 열차를 줄여야만 합니다. 코레일 측은 강릉선에서 운행하다가 최근 여유분으로 돌아간 KTX 산천 열차를 즉시 투입하자는 대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최소 6–7편성의 열차가 여유분으로 존재하는 만큼, 수서발 전라, 경전, 동해선 방면으로 투입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평택에서 오송 사이 병목 구간이 있지만 SRT의 대부분이 10량 편성으로 운행하는 만큼, 이들 열차에 추가 KTX를 붙여서 운행하면 이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SRT는 현재 시각표대로 열차를 운행하면 됩니다. 익산이나 동대구에서 열차를 떼고 붙이는 작업을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렇게 열차 운행량이 늘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금 SRT가 나름의 인기를 얻는 이유는 운임이 10% 싸기 때문인데, 고속철도가 통합되면 KTX의 운임을 10% 낮출 수 있는 여력이 생깁니다. 코레일의 고속철도 수익이 한 해 2조가량 되니, 10% 운임을 인하하려면 2,000억 정도가 필요합니다. 철도공사에서는 열차 운행량이 늘어 약 3,000억 원 정도의 운임 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2019년 KTX의 운임 수익은 약 2조 원이니, 줄어드는 비용과 늘어나는 운임 수익만으로도 운임을 10% 낮추고도 남는 돈이 생기는 셈입니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의원에 따르면 고속철도가 두 회사로 나뉘어 운영되는 탓에 해마다 560억가량의 중복비용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 비용이면 무궁화호를 굳이 감축할 이유도 없겠죠.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절약된 비용이 이번에 폐지된 보성군의 무궁화호 열차와 같이 공공성을 위해 꼭 필요한 노선으로 투입될 것인지 계속해서 감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통합을 통해 국민들이 고속철도 서비스에서 불만으로 꼽았던 별도 앱 사용, 별도 마일리지 적립과 같이 SRT와 KTX가 서로 고객을 붙잡기 위해 쌓았던 장벽을 허물고 진정 국민을 위한 네트워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감시해야겠죠.
아직 적지 않은 국민들이 철도에도 경쟁이 필요하다고 보신다는 것을 압니다. 지난 수십 년 간의 철도청 체제에서 생겼던 불신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상태의 SR로 경쟁에 충분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SR은 현재 열차 운전과 수서, 동탄, 평택지제역의 영업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철도공사에 위탁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SRT 차량의 정비, 선로 유지보수는 물론, 매표까지도 철도공사가 모두 도맡아 해줍니다. 경쟁하는 회사의 설비를 정비해 주고, 상품을 팔아 주라고 하면서 경쟁을 하라는 것 역시 상식과는 어긋나는 일입니다. 이렇게 상식과 어긋나는 모습이 ‘철도경쟁체제’의 실상입니다.
상식과 어긋난 체제는 다시 상식에 맞게 돌려놓아야만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어느 곳에 살든 철도 이용에 차별받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누구에게나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철도를 건설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기후 위기 시대 ‘모달 시프트’를 선도할 우리 철도의 나아갈 길입니다. 공감하신 국민께서는 아래 청원에 참여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