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리승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은호: 영상제작사 매칭 플랫폼 ‘비드폴리오’를 운영 중인 이은호입니다. 고객사가 원하는 영상 프로젝트를 무료로 설계해드리고, 가장 잘 맞는 프로덕션을 연결해드립니다.
리승환: 요즘 영상 수요 엄청 늘던데, 장사는 잘되고 있습니까?
이은호: 올해 거래액은 연 20억 가까이 될 것 같습니다. 만으로 4년 정도 됐는데, 그래도 연 30% 정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리승환: 연 30%면 플랫폼치고 빠르지는 않은 듯한데요?
이은호: 매출 욕심에 고객사 수를 늘려서 더 많은 영상을 제작한 적이 있는데, 제작 전 컨설팅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고객사와 영상제작사 간 갈등이 커지고,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좀 느리더라도, 좋은 영상이 나오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리승환: 영상 제작 전 컨설팅은 뭐죠?
이은호: 영상을 만들기 전,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파악합니다. 이때 첫 번째 일은 ‘영상이 굳이 필요하지 않는 경우’를 추려내는 것입니다. 아직도 “야, 우리도 유튜브 채널 하나 만들어야지”로 시작하는 곳 많고, 그러면 서로 힘만 듭니다. 그래서 의뢰가 5건 들어오면 작업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1건 정도입니다.
리승환: 아니, 왜 굴러들어오는 돈을 걷어차는 거죠? 그거 다 매칭하면 매출액이 5배인데…
이은호: 무작정 매칭시킨다고 매출이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데이팅앱은 소개만 해주는 것만으로 소개비를 받지만 저희 매출은 3개월 뒤에 프로젝트가 잘 끝나야 들어오거든요. 고객이 만족스럽게 100% 프로젝트를 완수하도록 도와드리는 게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
Part 2.
리승환: 일단 영상을 만들고자 작정했다면 어디에 공을 들여야 합니까?
이은호: 가장 적합한 영상 프로덕션을 잘 고르는 것입니다.
리승환: 그러면 비딩, 경쟁 PT를 하나요?
이은호: 아니오. 비딩은 하지 않습니다. 대기업 TV CF가 아닌 한 비딩은 좋은 영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리승환: 왜죠? 좋은 아이디어 채택하는데 비딩만한 게 있나요?
이은호: 큰 곳이야 잘하면 억대로 벌 수 있으니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대부분 영상 프로덕션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요. 며칠씩 밤 새서 제안서를 썼는데 10:1 비딩에서 떨어졌다고 해요. 9개 업체는 1주일 가까이를 날린 거예요. 수주도 못 받고, 비용도 못 받고, 계속 쌓이다 보면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엄청나요. 그래서 영상업을 접는 분들도 적지 않아요.
리승환: 비딩도 안 하고 좋은 업체를 찾으려면 어떻게 찾죠?
이은호: 프로젝트 공고를 정성 들여 쓰면 됩니다.
리승환: 넘 심플한데요…
이은호: 영상 제작자들은 돈이 유일한 동기가 아닙니다. 멋진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창작욕도 강하고,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들겠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그래서 발주자분도, 업체에게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으로 지시를 내리기보다, 동기를 끌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세세한 내용 하나하나를 프로젝트 공고에 쓰면, 그에 맞는 영상제작사가 자발적으로 멋진 영상을 만듭니다.
리승환: 그렇긴 하지만, 스토리보드 없이 어떤 영상이 나올지 예상하기 힘들지 않나요?
이은호: 기업이 필요로 하는 영상은 유튜버처럼 자기 개성을 담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어찌 보면 정답이 있는 게임인 거죠. 경우의 수를 하나씩 검토해보면 가능한 선택지는 많지 않아요. 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퀄리티는 주관적인 것이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Part 3.
리승환: 그런데 영상을 잘 모르는 클라이언트가 발주서를 잘 쓰기도 힘들어 보이는데요.
이은호: 그래서 저희가 프로젝트 설계를 도와드립니다.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거의 대신해드려요. 말로만 하면 서로 다른 걸 떠올리는데, 그 초안 문서작업을 저희가 해드리는 거죠. 그러면 프로젝트의 윤곽이 잡히고, 이후에 덧붙이고 수정하는 것은 쉽게들 하십니다.
리승환: 오… 문서화를 아예 대신해주는군요?
이은호: 네. 감독님들은 영상 제작 경험이 많은 전문가잖아요. 그분들은 잘 정리된 문서만 보면,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예상이 가능합니다. 반대로 어떤 문제가 생길지도 보이고요.
리승환: 고객이 왕이라고 하는데, 왕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시는군요.
이은호: 저희가 올해부터 직함을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바꿨습니다. 개입 많이 하겠다는 거죠. 광고업계에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든다”는 말이 있어요. 저희 회사 사훈은 “좋은 광고주는 내가 만든다”입니다.
리승환: 좋은 광고주로 만들기 위해 주로 어떤 부분을 강조합니까?
이은호: 많이 강조하는 부분은 ‘영상에 너무 관여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리승환: 제작자의 자율성 존중이야 많이 나오는 말이지만, 그래도 광고주가 영상을 그냥 내버려 두기도 좀…
이은호: 저희는 영상 제작을 전략-기획-연출-제작, 이렇게 4단계로 나눠요. 이 중 전략과 기획은 광고주의 영역, 연출과 제작은 프로덕션의 영역입니다. 물론 기획과 연출은 좀 같이 가져가긴 하죠. 그럼에도 광고주는 앞의 두 단계, 전략과 기획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제작사들은 거기에 맞는 연출을 찾아내서 제안합니다. 제작영역이야 당연히 업체가 잘해야 하는 영역이고요.
리승환: 그럼에도 클라이언트는 원하는 대로 요구해야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은호: 맞습니다. 요구를 잘하라는 뜻이지, 요구를 하지 말란 뜻이 아니에요. 사실 제작사 입장에선 요구사항이 없는 고객이 제일 어려워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걸 알아 맞춰 보라는 느낌이거든요. 업체와의 계약서에 “수정요청은 3회만 가능, 추가 수정 시 비용 발생”이라고 적혀 있는데, 추가 작업해서 돈 벌겠다는 의도가 아니에요. 책임감 없이 요구사항 막 던지지 말고 충분히 고민해서 컨펌하라는 거죠.
Part 4.
리승환: 그러면 클라이언트는 어떤 제작사와 매칭되나요?
이은호: 업체들도 각자 잘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장르에 특화되어 있거나, 특정 고객에 대한 이해가 있거나, 연출력이 압도적이거나, 기술이 압도적이라거나… 저희가 각 프로젝트에 적합한 프로덕션 30곳 정도 추려 공고를 전달하면 5~10곳 정도가 지원하고,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드는 제작사와 미팅을 하게 됩니다.
리승환: 5~10곳 정도면 마음에 들어 하시나요?
이은호: 네, 이미 결격사유가 있는 제작사는 1차적으로 걸렀고, 프로젝트 수행능력이 충분한 곳들만 지원하니까 안정적이죠. 경험이 많지 않은 클라이언트는 멋진 영상을 만들었냐를 보는데, 사실 이 프로젝트에 적합한가, 그리고 광고주와 얼마나 합이 맞아 편하게 일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리승환: 클라이언트가 발주서를 내면, 프로덕션은 무얼 제출하나요?
이은호: 마찬가지로 지원서를 냅니다. “이 프로젝트를 나는 이렇게 이해했고, 이전에 이렇게 해봤고, 이번엔 이렇게 하자’라는 내용을 담죠. 그럼 무거운 비딩이나 발표심사를 거치지 않아도 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업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어떤 프로덕션과 일해야 할지 고민할 때도 많은데, 이 부분도 저희가 컨설팅으로 풀어드립니다. 예로 좋은 질문을 제공하는 등이죠.
리승환: 그래도 스토리보드 같은 걸 요구하면, 좀 더 실패확률이 낮아지지 않나요?
이은호: 아닙니다. 그러면 오히려 좋은 업체는 안 들어와요. 잘 되는 곳은 그런 작업할 시간 없습니다. 무거운 심사 과정을 요구하면 파리 날리는 업체, 신생 업체, 새로운 분야 도전하려는 업체만 들어오겠죠. 파멸확률 급증합니다. 기존 광고 업계의 무거운 전형 과정이 필요한 프로젝트는 실제로는 1할도 안 돼요. 기업활동에서 필요한 영상 대부분은 창작이 아니라 조립입니다. 기획과정은 업체선정 다음 단계로 미뤄도 되는 이유죠.
리승환: 그래도 이것만큼은 광고주가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는 게 있다면?
이은호: 다들 비딩이나 스토리보드 없이 어떻게 제작사를 구하냐고 하는데, 이는 프로덕션을 잘못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프로덕션은 그냥 영상 인력의 집합체가 아니라, 고객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영상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솔루션 업체’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객사에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자사 레퍼런스’가 아닌 ‘외주 레퍼런스’를 보란 거예요. 자기 유튜브 채널 잘 굴리는 업체와, 외주로 고객사 잘 도와주는 업체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Part 5.
리승환: 그나저나 비석세스 출신이시죠?
이은호: 네. 정현욱 대표님과 연이 닿아 비석세스에서 몇 년 일했습니다. 미디어와 행사로 정보공유 네트워킹을 촉진해서 스타트업 산업 성장에 도움 되었다는 게 뿌듯했어요.
리승환: 비석세스를 나와서 바로 비드폴리오를 차리게 된 건가요?
이은호: 아니오. ‘셰프뉴스’라는 미디어를 창업해서 3년 반 만에 말아먹었네요. 돌이켜 보니 그건 사업이 아니었어요. 트래픽만 있고 고객은 없었으니까요. 할 줄 아는 게 미디어밖에 없어서 한, 창업을 위한 창업이었죠.
리승환: 제가 그렇게 8년째 살고 있습니다…
이은호: 그러다 제가 뭘 잘할 수 있을지, 그중 고객이 돈을 쓸 수 있는 영역이 어딘지 고민했어요. 제 전공과 사회생활 시작이 영상이었는데, 그런데 1년도 못 버티고 관뒀어요. 한 달 평균 72만원 받으며, 하루에 3~4시간씩 자니까 몸만 망가지더라고요. 그런데 지금도 열악한 프로덕션이 많아요. 클라이언트들은 쉽게 던지는데, 영상은 글과 달리 1컷 수정하는 데만도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잖아요? 심지어 계약서 안 쓰는 곳도 많아서 소송도 잦아요. 이런 문제를 해결할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리승환: 막상 창업해 보니까 어떻던가요?
이은호: 힘들었죠. 사실 광고주야 구글이나 네이버 광고 세팅 잘해서 유치할 수 있었는데, 정작 제작사 분들이 안 오는 거예요. 가뜩이나 단가 박한데 수수료 떼어먹는 놈이라고 의심하는 거였죠. 그렇게 몇 달을 쫄쫄 굶다가 영상 카페에 글을 하나 썼어요. 제가 원래 영상 전공인데, 그 일을 하면서 어떤 걸 느꼈고, 이걸 꼭 해결하고 싶다… 이걸 구구절절 하나하나 썼죠.
리승환: 그러니까 반응이 좀 있던가요?
이은호: 놀랍더라고요. 몇 달간 온갖 광고를 하고 영업해도 오지 않던 제작사 분들을 수십 팀 모실 수 있었어요. 그 이후로 계속해서 그분들과 함께 해나가며 매년 30%씩 성장한 게 지금입니다. 이미 억대로 가져가는 제작사도 몇 생겼어요. 그리 큰돈이라 할 건 아니지만, 나름 자부심을 느낍니다.
Part 6.
리승환: 경험이 쌓이며 공급자 분들에게 하실 말씀 많을 것 같은데, 한 가지만 꼽으신다면?
이은호: 일 중구난방으로 받지 마세요. 김밥천국 제작사 됩니다. 시장 파편화가 이뤄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버티컬 전문화하셔야 합니다. 분야 정해서 가려 받으세요. 한 분야에서 전문성 키워서 압도하셔야 합니다.
리승환: 말이 쉽지, 레퍼런스 없이는 계속 낮은 단가만 받아야 하잖아요?
이은호: 레퍼런스는 중요하지만, ‘일 들어오는 대로 다 하면’ 안됩니다. 영상으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한 우물을 파는 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영상 프로덕션이 궤도에 오르는데 3년 정도 걸리는데, 대개 어느 한 분야를 깊게 판 후 브랜드가 형성된 곳이 살아남습니다. 그제야 이름 없는 제작사들보다 돈을 더 받고, 고객사는 믿고 맡겨서 안정적인 영상을 받게 되지요.
리승환: 요즘 영상 수요가 많은데, 경쟁사들 걱정은 없나요?
이은호: 아… 없습니다. 제가 17년도 여름에 시작했는데 사실 저희가 최초도 아니었고, 비슷한 회사들 많았어요. 그때도 중개플랫폼은 유행이 끝나가고 있었어요. 지금도 1년에 3~4개씩 나오는데, 다 금방 사라져요.
리승환: 왜 사장님만 존버에 성공한 거죠…?
이은호: 결국 플랫폼은 중개잖아요. 클라이언트와 프로덕션을 모두 만족시켜야 생존할 수 있어요. 저희는 성장을 좀 늦추는 대신, 사고 안 나고 원하는 퀄리티의 영상이 나오는 걸 우선으로 했지요. 그래서 속도는 가장 느렸지만, 살아남는 데에는 성공했죠.
리승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업도 영업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 것을 요즘 많이 배웁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곤 있지만 결국 고객 접점은 사람이 맡아야 하거든요. 좋은 광고주 만드는 일 하면서 산업 발전을 이끌어갈, 영상 컨설턴트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편히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