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위 컨텐츠는 의뢰에 따라 원고료를 받고 작성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1. 가까운 이웃 대만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대만의 관문 타오위안(桃園)국제공항까지의 비행 거리는 2시간 30분이다. 인천 하늘에서 날아오른 비행기가 정상궤도에 들어 선 후 서비스가 시작된 기내식을 즐기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때 쯤이면, “타오위안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라는 기내방송을 들을 수 있다. 2012년 여름부터는 서울의 도심공항 김포국제공항과 타이베이(臺北) 시내의 쑹산(松山)국제공항을 잇는 셔틀노선까지 열려 한국과 대만의 ‘물리적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임에도 정서적인 거리는 왠지 멀게 느껴진다. 작년 9월 방영된 <꽃보다 할배> ‘대만 편’으로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낯선 것은 어쩔 수 없다. 장년 세대들에게는 ‘자유중국(自由中國)’이라는 이름으로 ‘형제의 나라’라 불리던 기억도 나지만, 젊은 세대들은 ‘타이(Thai 泰國)’와 ‘타이완(Taiwan 臺灣)’을 헷갈려 하기도 한다. 이것이 불과 20년 전만 해도 중국(중화인민공화국)보다 더 가까이 지냈던 대만(중화민국)의 현실이다.
1992년 8월 24일, 한국정부는 본토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와 수교하고, 대만의 중화민국 정부와는 공식결별 했다. 그로부터 20년, 대만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잠시 잊혀진 이웃’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한국과 대만은 가깝다. 두 나라는 서로가 5번째로 비중이 큰 무역대상국이다. 대만과의 연간 무역액은 유럽연합(EU), 중국, 미국, 일본 바로 다음이며, 대만과의 무역규모는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전체 국가를 합친 것 보다도 크다.
비록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는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만(중화민국)과의 공식 외교관계는 끊어졌지만, 이처럼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두 나라는 단교 전 보다 훨씬 더 긴밀해 졌다. 여기에 대만을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에 힘입어 한국을 찾는 대만 관광객 수는 매년 큰 폭으로 늘어 나고 있으며, 한국 또한 ‘대만 다시 보기’ 바람에 힘입어 대만을 찾는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2. 아름다운 섬 포모사(Formosa)
대항해시대의 선두주다로 전세계를 무대로 ‘땅따먹기 게임(?)’을 벌이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494년 로마 카톨릭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중재로 토르데시야스조약을 체결, 지구를 동·서로 분할한다. 이후 동방으로 세력을 뻗혀 오기 시작한 포르투갈은 ‘지팡구’로 불리던 일본으로 가는 항해로 상에 위치한 대만 섬을 발견 하고 이리 외친다.
“일하 포모사(일하 포모사(Ilha Formosa)!”
“아름다운 섬이여!”라는 뜻을 지는 포모사(Formosa, 美麗島)는 대만의 또 다른 이름. 명실상부(名實相符)하게 에메랄드 빛의 대만 섬은 아름답다. 기암괴석이 가득한 예류(野柳), KBS 드라마 <온 에어(On Air)> 첫 장면에도 등장하기도 하는 르웨탄(日月潭, Sun Moon Lake), 동남아시아 최고봉인 위산(玉山)이 자리한 아리산(阿里山) 자락, 대만 원주민의 비애가 서린 타이루거(太魯閣) 협곡,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펑후((澎湖)제도 등 대만 섬은 자연이 선물한 볼거리로 넘쳐 난다.
이런 대만 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은 대만 사람들, 이방인들에게도 친절한 미소로 다가서는 대만 사람들은 그 자체가 아름 답다. ‘꽃보다 아름 다운 사람들’이 바로 대만 사람들이다.
3. 거대한 중화문화를 품은 보물섬
‘포모사(Formosa)’, ‘미려도(美麗島)’와 더불어 대만을 일컫는 또 다른 이름은 ‘보물섬’이다. 찬란한 중화문화의 진수(珍羞)를 고스란히 간직한 보물섬이 바로 대만이다. “베이징(北京) 고궁박물원에는 박물이 없고, 타이베이(臺北) 고궁박물원에는 고궁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금성의 유물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바로 중국이 아닌 대만에서 만날 수 있다.
1928년 장제스(蔣介石)에 의해 북벌(北伐)이 완성된 후 유물들은 국민당정부 소유가 되었고, 1931년 만주사변 발발과 일본의 침략 속에서 유물들은 임시 수장고를 전전한 끝에, 1948년 최후의 보루인 대만으로 옮겨졌다.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된 유물을 다 보려면 3개월에 1번씩 로테이션 전시를 8년 동안 빼놓지 않고 봐야 할 정도로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은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미술관, 미국 스미소니언자연사박물관에 이어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고궁박물원의 유물들과 더불어 비록 힘에서 밀려 중국본토를 내주었지만, 정신적 정통성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대만의 자존심은 문자 사용에서 나타난다. 간체자를 정착시킨 중국과 달리 대만은 옛글자(번체 한자)를 고수한다. 여기에는 ‘문화적 정통성’을 계승·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글씨뿐 아니라 어법이나 표현 면에서도 고문(古文)에 충실하여, 전반적인 표현이 격식 있고 세련되며 어휘도 풍부하여, 대만에서 사용하는 중국어에는 아취(雅趣)가 있다. 이는 오늘날 다수 중국인들이 한자를 사용하면서도 번체와 고문에 익숙치 않아, 자신들의 조상이 남긴 글들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문화 단절 현상을 겪는 것과 비교된다.
이렇듯 중화문화의 진수를 맛 보려면, ‘보물섬’ 대만으로 가야 한다.
4. ‘상유천하 하유대만’ – 미식천국 대만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杭,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하늘 아래는 쑤저우·항저우가 있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중국 쑤저우와 항저우는 물산이 풍부하고, 미녀가 많으며 맛난 음식들로 가득한 지역이다. 이 말에 쑤저우·항저우 대신 대만을 넣어 “상유천당 하유대만”이라 해도 될 정도로 대만도 미식 천국이다.
대만은 대만 섬의 ‘원주인’인 대만원주민에 더하여, 중국 푸젠성과 광둥성 일대에서 건너온 한인, 1945년 대만 광복과 1949년 중화민국 정부의 대만 천도 시 중국 각지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들이 모여서 만든 나라다. 이들은 대만 섬으로 이주 하면서, 각기 다른 ‘고향의 맛’을 옮겨 심었는데, 본디 대만의 풍부한 먹거리들과 결합하여 대만을 ‘미식천국’으로 만들었다.
진한 쇠고기 국물에 큼지막한 고깃덩이가 가득 담겨 나오는 뉴러우몐(牛肉麵), 한약 냄새 가득한 알싸한 향이 일품인 육수에 각종 고기, 해산물, 야채를 데쳐 먹는 쓰촨(四川)식 마라훠궈, 비록 한국 사람이 먹기에는 다소 역겨운 편이기는 하나 세계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처우더우푸우(醉豆腐), 대만 특산 파인애플향 케이크인 펑리수, 여름의 더위를 한번에 날려 중 망고빙수에 더하여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버블티인 전주나이차까지. 대만은 입을 즐겁게 해 줄 맛있는 요리들로 가득하다. 여기에 세계적인 레스토랑 체인으로 자리잡은 딩타이펑의 원조도 바로 대만이다.
여기에 빠트릴 수 없는 매력은 ‘착한 가격’ 본래 물산이 풍부한데다, 정부 차원의 국민생활안정 정책까지 더해져서, 대만의 음식들은 맛은 물론 가격도 착하다. 대략 한국의 60% 수준. 때문에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라 할지라도, 미식천국 대만에서는 VIP로 대접받을 수 있다.
5. ‘형제의 나라’에서 배우자
다소 어폐는 있지만 지난 시절 두 나라는 ‘형제의 나라(兄弟之邦)’으로 불려 왔다. 각기 36년, 50년의 일본 식민지배를 거쳐, 오랜 권위주의 통치기를 경험 하였다. 이 속에서 각기 ‘한강의 기적’, ‘대만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발전을 이루어 내, 전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경제 발전 이후 ‘민주화’ 여정도 순조로워 제도적 민주화도 달성 하였다. 이처럼 비슷한 역사의 궤적을 걸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온 한국과 대만은 ‘지구상의 가장 유사한 나라’의 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중요 표결이 벌어질 때 마다 늘 상 싸움이 벌어지는 국회의 모습, 퇴임 후 행복하지 않은 전직 대통령(총통)의 모습들, 경제·사회 발전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정치 발전 수준, 입시위주의 교육제도와 치열한 대학입시와 청소년 자살 문제 등 사회의 모습들을 들여다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이러하기에 대만을 들여다 보면, 한국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어떤 면은 나은지, 어떤 면은 못 한지?’를 비교해 보면서 말이다. 한국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반사경 같은 나라가 바로 대만이다.
비록 1992년 단교 이후, 다수 한국 사람들의 눈에서는 잠시 멀어졌지만, 결코 멀지 않은 대만을 찾아 대만사회의 모습과 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 해 본다면, 보다 정확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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