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과당의 당도가 얼마라고?
“효소액” 속의 당류에 대한 이야기를 포스팅했는데 KBS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액상과당”을 다루었네요. 그런데 거기에 부정확한 정보들이 몇가지 나오더군요. 그 중에서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 엉터리 정보 하나가 바로 “액상과당의 당도가 설탕의 여섯 배”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어디서 유래했는지 모르는 헛소문인데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방송에서도 자주 나오더군요. 아래의 그림을 보시면 주요 당 성분과 감미료의 당도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당도의 기준 물질은 설탕이고 설탕을 1로 봤을 때 포도당은 0.7배 내외, 과당은 1.6배 내외의 당도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순수한 과당이지 액상과당은 포도당과 과당의 혼합물(보통 과당이 55%)이므로 순수 과당보다 덜 달 것입니다.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의 결합물이니까 설탕을 분해하면 당도가 대충 비슷해지거나 약간 높아지는 수준이지 설탕의 여섯배 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섯배가 달면 그만큼 적게 넣을 수 있을테니 더 좋을텐데 말이죠.
그럼 왜 설탕 대신 액상과당을 많이 사용할까요? 그건 바로 <슈가 블루스>같은 엉터리 책에서 설탕이 마약보다 나쁘다는 식의 헛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입니다. 설탕이 나쁘다니 설탕대신 과당을 넣자고 된 것이죠. 게다가 액상과당(HFCS)는 설탕으로 만들지 않고 포도당으로 만드니까요.
액상과당이 나쁘다고 한다면 설탕을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한 전화당(invert sugar)을 넣기도 하고 천연 전화당인 꿀을 넣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사실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러니까 답은 그냥 “지나친” 당류 섭취를 줄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액상과당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음료수를 자녀가 아무렇게나 맘껏 마시도록 방치한 부모님이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분량의 문제겠지
그리고 이번 뉴스에는 액상과당이 설탕의 6배가 아니라 1.5배 달다고 방송을 했네요. 그런데 여기서 또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액상과당이 설탕보다 1.5배 달다는 것은 사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설탕보다 1.5배 단 것은 액상과당이 아니라 정제된 과당입니다.
물엿과 고과당옥수수시럽 (High Fructose Corn syrup, HFCS)은 다릅니다.라는 예전 글에서 액상과당에도 몇가지 종류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보통 HFCS-42, HFCS-55, HFCS-90으로 나누는데 뒤의 숫자는 전체 당량 중에서 과당의 함유량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HFCS-42는 과당이 42% (나머지는 포도당이 58%), HFCS-55는 과당이 55% (포도당이 45%)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과당은 설탕보다 1.5배 정도 달지만 포도당은 0.7배 더 달죠. 그래서 과당이 많으면 더 달고 포도당이 많으면 덜 답니다. 그래서 HFCS-42는 설탕보다 당도가 낮고, HFCS-55는 설탕과 당도가 비슷하고 HFCS-90은 설탕보다 당도가 높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가지 빠뜨린 것이 있는데 과당은 설탕과 달리 온도에 따라 당도가 달라집니다. 저온일수록 달고 온도가 올라가면 당도가 낮아져서 상온이 넘어가면 설탕보다 당도가 낮아진다고 하죠. (당도는 원래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확한 값은 약간 들쑥날쑥합니다만 추세가 그렇죠.) 좀 더 어렵게 말하면 과당이 pyranose 형태가 되면 당도가 높고 furanose 형태가 되면 당도가 낮은데 결정과당은 저온에서 pyranose 형태만 갖는다고 하죠. 음료수에 과당을 넣는 이유가 적게 넣어도 차게 마시면 달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결국 음료나 식품의 당도란 액상과당 중 어떤 것을 얼마나 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몇%짜리를 얼마나 넣었는지는 사실 모르는 것이죠. 그건 회사에서 자기네 레시피에 따라 맛과 물성을 최적화해서 사용할 테니까요. 게다가 요즘엔 식품회사들이 한가지 당만 쓰지 않고 이것 저것 마구 섞어서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무튼 제가 알기로는 HFCS-42가 가장 싸고 과당의 함량이 높아질 수록 비싸진다고 “들었습니다”만 정확한 것은 모르겠네요.
그리고 과당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 중 하나가 과당을 많이 섭취하면 혈당이 올라간다는 것인데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순수 과당은 혈당을 높이지 않습니다. 물론 혈당을 높이지 않는다고 해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죠. 예전에는 혈당을 높이지 않아서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엔 오히려 그래서 더 해롭다는 이야기도 나오니까요. 물론 HFCS는 과당과 포도당이 섞여 있으므로 HFCS-90은 혈당을 많이 높이지 않겠지만 HFCS-42는 혈당을 꽤 높이겠죠. 이건 설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실 설탕의 당지수(glycemic index)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입니다.
HFCS가 해롭다는 이야기는 최근 여기 저기서 많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 HFCS보다는 과당이 나쁘다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과당이 과식을 유발한다?) 물론 HFCS가 위험하다는 보고도 있지요.(HFCS, 당뇨병 발생과 연관성 있어) 하지만 저는 액상과당(HFCS)이 설탕보다 더 나쁘다는 것은 여전히 좀 과장이 아닐까, 또는 이제 설탕의 위해성은 많이 우려먹었고 사람들이 잘 아니까 새로운 타겟으로 액상과당을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런 기사도 있지요.(액상과당, 만성질환 유발 근거 없다.) 물론 뭐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과학자들의 소리,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아무튼 이건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요. 하지만 역시 대원칙은 얼마나 먹느냐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설탕이나 액상과당이라는 물질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욕망”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럼 얼마나 먹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설탕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 걸까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의 원문은 접속이 안되어서 네이처의 해설 기사만 읽었네요.
‘Safe’ levels of sugar harmful to mice (안전한 수준의 당도 쥐에게 해롭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설탕(당)의 해악과 관련된 연구들은 지나치게 과량의 설탕(또는 당)을 사용한 문제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번 논문은 보통 미국에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최고 용량을 쥐에게 먹여서 실험을 했다는군요.그게 얼마냐, 하루 칼로리의 25%를 당으로 섭취하게 만드는 것이죠. 사람으로 따지자면 매일 하루에 청량음료 3캔에 해당한답니다. 물론 우리 기준에는 좀 높다고 생각되지만 세계 최고 비만국인 미국에서 당을 그정도로 섭취하는 사람이 전체 미국인의 13-35% 정도라는군요.
그런데 실험방법이 매우 흥미롭고 독특합니다. (네이처 기사의 댓글을 보시면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연구자들은 야생쥐 한쌍을 잡아서 그 자손들을 기른 다음 26주간 설탕(이 아니라 포도당과 과당인가 봅니다!)을 먹이고 컨트롤로는 옥수수 전분을 먹인 쥐와 함께 같은 공간에 풀어 놓은 후 경쟁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자 암컷들의 사망률이 2배 높았고 수컷의 영토 지배율과 자손수는 4분의 1정도 낮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조군 쥐들이 같은 야생쥐 한 쌍의 자손인지 아닌지가 기사만 읽어서는 불명확합니다.ㅠㅠ) 아마 이 연구자들이 진화생물학자들이기 때문에 자연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보기 위해 이런 방식의 실험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을 많이 먹인 쥐와 아닌 대조군 사이에 몸무게나 인슐린 수준이나 다른 다섯가지 건강 관련 지표들(아마 혈당,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등)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혹자는 우리가 보통 측정하는 지표만 갖고는 설탕의 해악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하고, 반대쪽에서는 실험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두가지 가능성이 다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연구진은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설탕의 기준치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방식의 실험으로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는 다른 연구자들의 의견을 좀 들어봐야겠습니다.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가는 점이 많네요. 물론 지나친 설탕(액상과당, 벌꿀 등등)의 섭취는 누가 뭐래도 해롭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