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콘텐츠의 시대
인스타그램, 블로그, 페이스북부터 최근 각광받는 뉴스레터에 이르기까지. 유튜브가 대세가 된 시대에 웬 텍스트인가 싶지만, 텍스트는 여전히 마케팅의 기본이자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SNS 마케팅, 브랜드 스토리, 어쩌면 웹소설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근래 더욱 각광을 받고 있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텍스트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는 여간 어렵지가 않습니다. 물론 좋은 글을 쓰는 이른바 ‘작법’에 대한 지침은 많죠. 하지만 ‘잘 팔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을 찾긴 어렵습니다. 텍스트가 워낙 전통적인 도구이기도 하고,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보니 더욱 그런 경향이 있죠.
하지만 굳이 브랜딩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은 텍스트의 연속입니다. 사소한 보고서 하나하나도 모두 활자로 만들어져 있죠. 일차적으로, 우리는 텍스트로써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회사 뿐 아니라 개인을 브랜딩하는 것도 모두 텍스트죠. 지겹도록 써야 하는 보고서도 물론이고요.
『터지는 콘텐츠는 이렇게 만듭니다』는 바로 그런 수요를 저격하는 실전 지침서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박창선 대표는 실제로 브랜드 텍스트를 만드는 ‘글 쓰는 디자인 회사’ 애프터모멘트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애프터모멘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소비자의 언어를 알고 있습니다. 어떤 글이 끝까지 읽히는지, 어떤 글에 반응하는지도.
당신의 텍스트 콘텐츠가 안 팔리는 이유
이 책에서는 콘텐츠를 ‘팔리게’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으니, 저희는 좀 다른 얘기를 해 보죠. 왜 우리는 텍스트 콘텐츠를 만드는데 실패하는가, 왜 우리가 쓰는 텍스트 콘텐츠는 안 팔리는가. 왜 심지어 웃음거리가 되고, 물의를 일으키고 사과문까지 쓰게 만드는가 하는가 말이죠.
잘 팔리는 콘텐츠의 특징과 안 팔리는 콘텐츠의 특징은 사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죠. 내 콘텐츠가 안 팔리는 이유를 뒤집으면, 곧 저 콘텐츠가 잘 팔리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잘 팔리는’ 텍스트 콘텐츠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상세히 다룬 책이지만, 지금 미리 그 내용을 스포일러하면 곤란할 것 같으니까요. 여기에서는 반대로, 책에서 말하는 ‘안 팔리는’ 텍스트 콘텐츠들의 특징들을 소개해 보죠. 어떤 사람에게 이 책이 필요한지 말이에요.
1. 읽고 싶은 글이 아니라, 쓰고 싶은 글을 쓴다
텍스트 콘텐츠를 쓰면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입니다. 독자가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쓰는 사람만 만족스러운 기교를 부린 카피와 혼돈스러운 정보로 텍스트를 불리는 것이죠.
예를 들어, 맛집을 소개하는 글에 “맛집에 가기 전에 무슨 산에 들렀는데 바람이 부는 풍경이 수채화처럼 아름다웠고, 주변에는 유채꽃이 많이 피어 있는데 이 꽃의 품종은 사실 무엇이고, 가족이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 갑론을박이 있었고…” 등의 내용을 잔뜩 쓰는 것입니다. 독자는 이런 정보를 전혀 원하지 않습니다. 독자가 알고자 하는 정보는 맛과 분위기, 친절도, 메뉴판과 위치 등의 정보일 뿐이죠.
2. 방향성을 잘못 잡는다
병원 리뷰에 장난스런 이모티콘이 범벅이 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페이지 팬을 만들고 클릭과 태그를 유도해야 할 콘텐츠에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딱딱한 전문 용어들이 가득하다면 어떨까요? 사건, 사고를 묘사하는 글에 광고성 멘트를 삽입한다면?
말도 안 되는 실수처럼 보이지만, 방향성에 혼란을 일으킨 텍스트 콘텐츠를 우리는 주변에서 굉장히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비극적인 사건, 죽음, 동물 유기 같은 사건을 묘사하면서 브랜드를 광고하다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경우는 수도 없이 많죠.
우선 콘텐츠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그 방향성에 맞는 태도로 글을 써야 합니다. 책은 방향성과 문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잘 일치하는 경우를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3. 트렌드와 밈을 잘못 활용한다
미래지향적인 트렌드를 소개하고, 밈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책은 소비자에게 팔리는 글을 만들려면 ‘딱 일주일 앞서 트렌드를 소개하라’는 지침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를 ‘잘못’ 활용하는 것이죠.
최근 한 패스트푸드 회사가 밴 다이어그램 밈을 잘못 활용해, 자사 제품이 마치 비싸고 맛없고 매장도 먼 것처럼 표현한 사례도 있었죠. 밈은 글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목을 잡아 끌지만, 잘못 활용하거나 유행에 뒤쳐지면 오히려 식상하고 나쁜 이미지를 남깁니다.
4. 지나치게 각이 잡히고 글이 긴장되어 있다
SNS에 가볍게 쓰는 글과 달리, 제품과 회사, 나아가 나라는 개인을 ‘팔기’ 위해 쓰는 글은 바로 손 가는 대로 쓰여지는 게 아닙니다. 보통은 세밀한 기획 단계를 거치게 되죠. 조직 단위에서의 마케팅은 여기에 조직원들 전체의 의견이 함께 반영되죠.
하지만 오히려 ‘잘 팔아보려고’ 각을 잡고 쓴 글은 생동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달하고 싶은 정보가 너무 많죠. 쓰는 사람의 욕심이 많아지니 글이 타이트해지고 부담스러워집니다. 물론 기획은 치밀해야 하지만, 쓰는 사람의 욕심을 채워 넣을 게 아니라 독자가 어떻게 하면 읽고 싶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제품 소개를 한 편의 수필처럼 쓸 수도 있고, 제품을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 대여섯 가지를 소개할 수도 있죠. 잘 팔리는 글에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공감과 개입을 유도하는 ‘빈 칸’이 있어야 합니다.
5. 텍스트를 텍스트 안에 가둔다
“텍스트는 텍스트일 뿐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차분하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때는 텍스트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하죠. 하지만 글 전체적으로는 읽는 독자에게 일종의 ‘그림’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시간 개인 재무관리 서비스” “원터치 모바일 AI 업스케일링 테크놀로지 스타트업” 같은 말은 서비스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어떤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기술적인 단어들을 쓰는 건 좋지 않습니다. 책은 일상에서 많이 쓰는 자연스러운 단어, 일상적인 풍경을 활용할 것을 추천합니다.
6.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술을 활용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으로,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모두가 금융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혁신적 금융 경험 개선 플랫폼을 선도하고 있으며…
좋은 말은 다 넣었지만, 누구에게 읽으라고 쓴 글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독자가 명확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 좋게 들리는’ 말을 채워 넣은 것에 불과합니다. 독자가 불분명하면 메시지도 혼란스러워집니다. “오늘도 은행에 가려고 오후 반차를 날린 당신에게” 같은 식으로, 명확한 독자를 설정해야 메시지도 훨씬 명확해집니다.
7. 길다
특히 온라인에서, 긴 글은 잘 안 팔립니다. 1~3,000자 정도의 호흡이 일반적으로 적당합니다.
물론 이게 무조건 짧게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글은 5~6000자, 혹 그 이상으로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긴 글은 더 세심한 기획이 필요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런 호흡으로, 리듬감을 갖고 읽을 수 있게 해야 하죠.
글이 길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길이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호흡이 막히면 물리적인 길이와 상관없이 글이 길게 느껴지죠. 글을 쓰다 막히면 우리는 자꾸만 무의미한 단어와 문장으로 분량을 ‘때우게’ 되죠. 이런 부분을 과감하게 쳐내야 합니다. 또 ‘~에 대해’, ‘~를 통해’, ‘~에 대하여’ 같은 표현이나, ‘등’, ‘및’, ‘~것’, ‘~의’ 같은 조사를 주의해주세요. 독자 입장에서 호흡이 끊어질 수 있습니다.
8. 독자에게 정독을 요한다
특히 온라인의 글을 정독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콘텐츠를 ‘훑어만’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글을 ‘띄엄띄엄 읽는’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써야 합니다.
사람들은 제목에서 글의 내용 뿐 아니라 분위기까지 유추합니다. 제목을 엉뚱하게 다는 건 특히 온라인 콘텐츠에서는 좋은 기교가 아닙니다.
또한 집중해야 할 정보를 정확히 전달해야 합니다. “영상 제작에 필요한 제반 사항은 저희가 모두 제공합니다. 단, 스탠다드 계약의 경우 스튜디오 B의 사용은 제한됩니다” 같은 표현은, 처음에는 ‘모두 제공’한다고 했다가 뒤에서는 ‘제한’한다고 말을 바꾼다는 인상을 줍니다. “프리미엄 계약 시 스튜디오 A, B 사용 가능 / 스탠다드 계약 시 스튜디오 A 사용 가능 / 이외 제반 사항은 공통으로 제공됩니다” 같은 식으로 정확하게 소비자 입장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9. 업계의 특성에 따른 톤을 캐치하지 못했다
업계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톤은 서로 다릅니다. 설명문, 사과문 등 글의 종류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톤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기업은 소비자에게 기업의 신념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글은 장황해지고 추상적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집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집에 지속가능성을 더합니다.” 이 문장도 나쁘지는 않지만, 어떤 사업을 하는지 좀 더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해주면 어떨까요?
내 방 안에 예쁜 화장실이 생겼습니다. 박스를 꺼내지 않아도 옷을 고를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갈 공간이 생겼습니다.
10. 나쁜 습관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텍스트 콘텐츠를 만드는 데 딱 맞아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오답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글을 씀에 있어서 나쁜 습관이 있기 마련이죠. 나쁜 버릇들을 퇴고 같은 과정을 통해 계속 바로잡아가야 합니다.
책은 사과문에 넣어서는 안 될 표현들을 소개합니다.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었다”, “오해가 있었다”, “본의 아니게” 처럼 핑계를 대는 표현들, “~것 같습니다”, “피해자들에게는 죄송하다”, “어쨌든” 과 처럼 진정성을 잃어버린 표현들, “안전상의 문제는 없었습니다” 처럼 면피하는 표현들이죠.
내 글 속에 어떤 나쁜 습관이 담겨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텍스트 콘텐츠의 수준은 월등히 좋아집니다. 추상적인 작법서가 아니라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실전 지침서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까닭 중 하나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