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전쟁’의 배경
모바일 앱 생태계는 중요하다. 쿠팡, 배민, 마켓컬리 등 최근 대세로 떠오른 스타트업 유니콘들은 모두 모바일 앱을 중심으로 그 기반을 구축했다. 비단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가 아니더라도, 모바일 앱은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수수료 전쟁’은 그런 사업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일어났다. 앱 개발사들이 구글, 애플 등 스마트폰 앱 마켓 운용사에 지불하는 30%의 수수료가 과도하다고 들고 일어난 것이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 스토어에서 앱을 유통하는 앱 개발사들은, 인앱 결제를 포함해 결제액의 30%를 구글 및 애플 측에 수수료로 지급한다. 이는 스토어 플랫폼 운용과 유지 보수, 앱 검수 및 개발자 지원, 결제 및 컴플라이언스 솔루션, (특히 구글의 경우) 통신사 등 파트너사와의 수익 분배 등에 이용된다.
사실 이는 스마트폰 시대 이전, ‘위피’ 가 지배적인 플랫폼이었던 시절 50% 수준에 이르는 수수료를 감당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합리적인 수수료였다. 실제로 스마트폰 앱 마켓이 등장한 이후, 모바일게임 업체들은 ‘7:3’ 비율을 이른바 ‘황금율’ 이라고 부르며 ‘제대로 된 콘텐츠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고 환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며, 앱 개발사들은 인앱 결제 수수료 30%가 과도하다며 이런 정책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에픽게임즈는 자사의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에 구글과 애플의 결제 시스템을 우회하는 자체 결제 시스템을 탑재했고, 많은 앱 개발사가 이런 에픽게임즈의 행동에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한국판 ‘수수료 전쟁’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구글이 인앱 결제에 ‘구글 빌링 플랫폼’ 이용을 의무화하고 수수료 30%를 부과하기로 하자, 국내 인터넷 업체들이 이를 “통행세” “거대 플랫폼의 횡포”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사실 구글이 갑작스런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 약관상 분명 명시된 사항이었으나 그간 적용을 유예해왔던 것에 불과함에도 말이다. 게다가 구글은 애플과는 달리 웹 결제는 허용을 하기 때문에 인앱결제를 ‘강제’한다는 것은 잘못된 말이기도 하다.
앱 개발사들은 자신들이 ‘유저를 위해’ 이런 행동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봐주는 건 무리다. 특히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개발사들은, 정작 웹툰, 웹소설 등 자사가 플랫폼 사업자 역할을 하는 사업 분야에서는 콘텐츠 제작자들로부터 30–50%의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공룡 기업의 ‘헤게모니 싸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판 ‘인앱 결제 의무화’ 금지법, HB2005
최근 미국 애리조나에서는 흥미로운 법안 하나가 올라왔다. ‘HB2005’로 불리는 이 법 개정안은, 다운로드 100만 건이 넘는 대형 앱 마켓이 애리조나 거주 개발자에게 인앱 결제를 강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쉽게 말해, 애플과 구글의 인앱 결제를 의무화를 막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애플과 구글의 결제 시스템을 회피하는 앱 개발사에 애플, 구글 등 앱 마켓 운용사가 보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법안은 지난 3월 3일, 31대 29로 하원을 통과했다.
국내 언론은 주 의회가 미국 국회가 아닌 지방자치 영역에 가까움에도 이를 두고 “미국 본토에서도 구글, 애플 양사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또한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한국판 ‘인앱 결제 의무화’ 금지법 + 알파,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현재 한국 국회에도 유사한 법안이 계류 중이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안은 1) 구글, 애플 등 앱 마켓 운용사가 자사 인앱 결제 시스템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2) 모바일 앱 개발사가 게임 등 모바일 앱을 출시하고자 할 때는 일정 점유율 이상의 ‘모든’ 앱 마켓에 차별 없이 똑같은 조건으로 앱을 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말하자면 HB2005에 플러스알파가 담긴 법안인 셈이다.
사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여러 가지로 문제 소지가 많은 법률안이었다. 우선 이 법률안은 플랫폼의 자율성을 침해함으로써 오히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흔들 여지가 있다. 이 법안은 사실상 ‘원스토어 장려법’이라는 비판에 부딪치기도 했는데, “모든 앱 마켓에 차별 없이 앱을 출시해야 한다”는 내용은 결국 “애플, 구글 말고 원스토어에도 내라”는 말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스토어의 운용사는 통신 3사와 네이버, 말할 것도 없이 ‘공룡’급 대기업이다.
또한 건전한 경쟁을 위한 토양을 제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건 간접적인 지원 정도에 그쳐야 한다. 경쟁 자체는 어디까지나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최선이다. 시장은 급속히 변화하고, 법과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워하는 법이다. 특히 모바일과 같은 최신 기술에 대한 규제는 더욱 그렇다. 위피(WIPI)가 그랬듯이, 규제는 오래지 않아 유통기한이 지나고 오히려 시장을 발목 잡는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전기통신사업법은 한미 간 통상 마찰 가능성도 우려된다. 이 법안의 실질적인 내용이 구글과 애플의 사업 내용을 침해하고 원스토어를 노골적으로 키워주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국판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상원에서 폐기되다
사실 그래서 미국 내에서 HB2005 법안이 올라왔다는 것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일종의 ‘호재’였다. 일부 국회의원은 이를 “좋은 사례” “굉장히 유의미한 결과”라며, “네이버나 다음 등 중간 플랫폼 업체들과 개발자 등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언론은 HB2005 법안을 두고 “미국에서조차 인앱 결제 강제를 법안으로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나라 국회가 통상 문제를 이유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통과에 주저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건 ‘설레발’이 되어버렸다. 애리조나 상원이 이 법안을 의결하기를 거부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지난 24일 수요일 상원 의제의 첫 번째 리스트에 올라 있었으나, 법안 설명 없이 통과되었다. 법안의 운명은 이제 미지의 영역에 놓였다. 법안을 제안한 콥 의원과 상원 대표 그레이 의원, 애리조나 주지사 사무실 등은 모두 이 문제에 대해 응답하기를 거부했다.
전기통신사업법 논의에 중소개발자들의 입장은 거의 고려되지 못했다
이 일련의 사태는 흥미로운 함의를 담았다. 이런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작 진짜 ‘약자’ 포지션에 있다 할 중소 앱 개발자들의 애로사항은 사실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수수료 전쟁’은 사실상 애플/구글과 에픽게임즈의 ‘헤게모니 전쟁’이었다. 애플/구글이 가져가는 몫을 에픽게임즈, 나아가 페이스북이나 스포티파이 같은 대형 콘텐츠 업계에 몰아 주는 것이 이 전쟁의 거의 유일한 의의였다는 얘기다.
HB2005 역시 마찬가지다. HB2005가 통과되었을 때 그 혜택을 받는 회사는 에픽게임즈이며, 페이스북이고 스포티파이다. 슈퍼볼 광고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트래비스 스콧을 섭외해 게임 내에서 가상 콘서트를 열 수 있을 정도의 대형 콘텐츠 회사다. 에픽게임즈가 에픽스토어라는 게임 앱 마켓 플랫폼을 운영하는 또 하나의 ‘갑’이라는 것은 또 어떤가. 이게 정말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초강수를 둬 가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약자의 이익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수혜자는 원스토어였고, 네이버였고, 카카오였다. 모두 그 스스로 콘텐츠 사업을 운영하는 거대 사업자들이다.
반면 중소 개발자들은 오히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다. HB2005가 그렇듯,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혜택 또한 이들에게 돌아오지는 않는다.
‘글로벌’ 시대,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는 중소개발자들에게 글로벌 진출의 ‘발판’이 되어준다
‘글로벌’ 시대다.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고,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 픽코마도 세계 시장에서 승승장구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 양대 웹툰 플랫폼의 거래액은 6,000억, 4,000억에 달하고, 카카오 픽코마는 일본 양대 앱 마켓에서 모두 매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런 ‘글로벌한’ 사업 전개는 비단 이런 대기업들만의 몫이 아니다. 최근에는 중소개발자들도 글로벌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물론 개중에는 실제로 성공 사례도 속속들이 나온다. 이건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라는, ‘글로벌 앱 마켓’의 존재 덕분이 크다.
원래 해외 진출은 중소개발자에게는 매우 큰 도전이었다. 글로벌 결제시스템을 만들려면 해외 신용카드사 및 이동통신사, PG 사와 접촉하고 계약하고, 인프라를 구축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규제다. 국가별로 다른 규제 사항을 모두 감안해 사업을 전개한다는 건 중소개발자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과업이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는 이런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단일 글로벌 마켓을 통해 앱을 배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고, 각 국가의 규제 및 법령을 준수하며 사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제공한다. “중소개발자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해 주었다”는 개발자의 증언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글로벌 앱 마켓에 앱을 유통함으로써, 중소개발자는 콘텐츠 개발에 전념할 수 있다
사실 디지털 콘텐츠는 현물 재화는 아니다. 물건을 보관할 공간을 임대하고, 재고를 쌓아두고, 물류를 이동시키는 비용만큼은 확실히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절반의 진실일 뿐. 그렇다고 클릭 한 번 하면 뚝딱 유통 경로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마켓마다 별도의 개발 빌드를 만들어야 하고, 런칭과 업데이트를 유지해야 하며, 유지 보수, QnA, 리뷰 및 환불 절차 등에도 응대해야 한다. 별도의 결제 솔루션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중소개발자들이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를 유통 경로로 선택하는 것은, 그게 구글이나 애플이 자사 앱 마켓을 사용하기를 강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중소개발자 입장에서는 가장 비용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중소개발자들은 글로벌 사업 전개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를 제공받음으로써 역량을 아끼고, 앱과 콘텐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정작 중소개발자들은 대체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일과 비용이 더 추가될 뿐, 딱히 더 넓은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용 절감 효과도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중소규모 개발자들로서는 오히려 대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외부 결제 솔루션 도입 시 벌어질 수 있는 또 한 가지 문제, ‘보안 문제’
플레이스토어, 앱스토어에서 구글, 애플이 제공하는 결제 솔루션이 아닌, 제 3자가 제공하는 결제 솔루션을 허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로는 보안 문제도 있다. 결제 솔루션은 사용자의 신용카드 정보나 휴대전화 번호, 보안 문자 등 민감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심각한 보안 유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다.
한국은 특히 피싱 범죄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유독 기승을 부리는 나라 중 한 곳이다. 철자 하나만 바꿔 만든 ‘피싱’ 결제 솔루션으로 사용자를 유도하고 사용자의 결제정보를 빼가는 범죄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대기업이라면 그래도 사용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중소 개발자들은 그럴 수가 없다.
중소규모 개발자들로서는 제 3자의 결제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글, 애플과 같이 ‘사용자가 신뢰할 수 있는’ 결제 솔루션을 팽개치고 출처가 불분명한 결제 솔루션을 택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게다가 구글과 애플은 최근 중소 개발자들을 위해 결제 수수료를 15%까지 낮추는 정책을 발표했기에, 중소 개발자들로서는 굳이 외부 결제 솔루션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이게 자연스런 ‘시장’의 흐름이다.
“기술 분야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은 좋지만, 정책적인 개입에는 신중해야 한다”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사 옹호 단체 ‘개발자 연합’이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에 전달한 답변서는 바로 이런 맥락을 정확히 짚는다. ‘개발자 연합’은 이 답변서에서 “게이트키퍼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 분야의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분과위원회의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면서도, 정책적인 개입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우리는 2020년 12월 다른 업계 조직과 연계해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으로서 가진 우려를 전달하기 위한 서신을 위원회에 전달한 바 있다. 당시 우리는 정책 발의가 작은 규모의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빅테크의 독점”만을 목표로 하면 기술 중심 산업의 혁신과 경쟁에 의도치 않은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통신 3사 등 한국의 ‘빅 테크’ 기업을 키워주고 구글, 애플 등 해외 ‘빅 테크’ 기업을 잡겠답시고, 정작 중소개발자들의 요구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눈에 띄는 공룡들끼리의 싸움에만 천착하느라 민초들이 진짜 뭘 원하는지는 보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우가 이번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공룡들의 싸움은 그냥 공룡들 스스로에게 맡겨 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