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올바르지 않으니’, 정부가 개입하겠다
한국 앱 장터 점유율은 대략적으로 볼 때, 구글과 애플, 원스토어가 7:2:1 정도. 한국콘텐츠사업자연합회가 앱 장터별 매출 비중을 집계한 결과, 2019년 기준으로 구글 플레이스토어는 63.4%, 애플 앱스토어는 24.4%, 통신3사-네이버의 원스토어는 11.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자료 출처: 한겨레)
건강한 경쟁을 위한 토양을 제공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그 경쟁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정부가 강제해 주입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문제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플랫폼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흔들 수 있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법률은 경직적이고, 시대가 변하면 구태의연해지기 마련
위피(WIPI) 의무화가 한국에 스마트폰 상륙을 몇 년이나 늦췄던 역사가 고작 십수 년 전이다. 아이폰 등장 초기 한국 모바일 시장의 혼란상은 국회와 행정부의 구시대적인 규제가 크게 한몫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스마트폰 등장을 가로막았던 한국의 갈라파고스적인 규제도, 원래는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법이란 원래 융통성과 탄력성 없이 경직적인 법이다. 이미 수명을 다하고 오히려 모바일 혁신을 가로막는 악법으로 전락한 뒤에도, 여전히 명문에 살아남아 시장을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그런 악법으로 전락하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모바일 앱 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격변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는 이제 우리 삶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인프라 수준의 위치를 점하고 있고, 쿠팡은 미국 증시에 상장하며 시가총액 100조를 돌파했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빨라진 ‘혁신의 속도’ 앞에서, 법과 제도는 과연 변화에 충분히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앱 마켓 운용에는 비용이 든다. 앱 마켓이라는 플랫폼이 필요로 하는 어마어마한 트래픽을 감당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앱을 검수하고 보안을 유지하는 것도 앱 마켓 운용사의 몫이다. 좋은 앱을 발굴하고 홍보해 앱 마켓을 생동적으로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애플, 구글 등은 중소 개발자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결제 시스템을 운용하고 PG, 카드사, 통신사 등에 수수료를 지급해야 함도 물론이다. 특히 구글은 애플과 달리 통신사 등 파트너사에도 수수료 수익을 분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앱마켓의 유일한 수익원이 수수료다. 대부분의 앱은 무료이고 1% 남짓하는 유료 앱 중에서도 디지털 재화(콘텐츠, 게임 아이템 등)를 인앱에서 판매하는 앱에서만 수수료를 부과한다. 앱 마켓은 이 수수료로 전 세계 190여 개국의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앱 마켓 운용에 필요한 이와 같은 비용을 무시하고, 무조건 인앱 결제 수수료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앱 마켓이라는 플랫폼을 만들고 운영하는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가 그렇듯, 통신3사의 원스토어도 결코 자원봉사는 아니다. 물론 거대한 모바일 생태계에서 서로 상생해야 한다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이익 포기를 강제당해야 하는 건 아니다.
원스토어는 낮은 점유율을 극복하기 위해 수수료를 20%로 인하하고 외부 결제 솔루션을 받아들였다. 사실 이처럼 낮은 요율을 내세운 효과는 꽤 컸던 것 같다. 2018년 7월 앱 수수료를 인하한 이후 원스토어는 꾸준히 성장해 8분기 연속 성장을 기록했고, 작년 8월 기준으로는 국내 앱 마켓 시장 점유율을 18.4%까지 끌어올리기도 했기 때문이다(모바일인덱스 기준). 최근에는 애플 앱스토어를 누르고 모바일게임 매출 점유율에서 2위에 오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와 같이 ‘반사이익’으로 승부하는 전략은 당연하게도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개발사들로 하여금 모든 앱 마켓에 발매를 강제하고, 앱 마켓 운용사에게도 결제 시스템 오픈을 강제하는 개정안의 내용이 당장은 원스토어의 점유율을 상승시킬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사업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실제로 조선비즈의 기사에 따르면, 올해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 원스토어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도 상당한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원스토어는 지난해 9월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는 등 기업공개(IPO)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앱 마켓 운용의 주요 수입원인 인앱 결제를 포기하게 되면 회사의 성장성도 포기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전기통신사업법 논란을 촉발한 ‘수수료 전쟁’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에 앞서, 이 개정안이 힘을 얻은 까닭은 구글 플레이스토어 발 ‘수수료 전쟁’ 때문이었다. 구글이 자사의 인앱 결제 시스템 ‘구글 빌링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자, 국내 콘텐츠 업계는 이를 ‘통행세’ 등으로 표현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사실 인앱 결제에 ‘구글 빌링 시스템’을 사용해야 하며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것은 갑작스레 생긴 조항이 아니다. 원래부터 있던 약관이다. 다만 적용을 유예하고 있었을 뿐. 많은 콘텐츠 기업과 국내 언론이 이를 구글이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갑작스럽게 횡포를 부린 것으로 해석하지만, 원래부터 있던 약관을 그동안 유예하다가 발효한 것을 높은 점유율을 이용한 횡포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약관을 무시하고 사업을 벌여왔던 콘텐츠 기업들의 잘못 아닌가.
흥미로운 건 ‘시리즈’나 ‘카카오스토리’ 등 콘텐츠 앱을 운용하는 네이버, 카카오 등 콘텐츠 기업 역시 또한 작가로부터 30–50%의 수수료를 징수한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비슷한 비율의 수수료를 부과하면서,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가 거두는 수수료는 과도하다고 주장한다는 점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물론 웹툰과 웹소설은 산업이고,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이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데 있어 이들 콘텐츠 기업의 몫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산업이 대형화되고 고도화되기 위해서는 플랫폼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 플랫폼을 만들어낸 역할은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플랫폼을 유지, 보수, 홍보하는 데도 당연히 비용은 계속 소요되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앱 마켓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얘기다. 스마트폰 그 자체, 앱 마켓 그 자체도 플랫폼이다. 그것도 콘텐츠 플랫폼보다 훨씬 크고 근본적인 종류의 플랫폼이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는 그야말로 우리의 삶의 양태 전체를 뒤엎어버린, 21세기 들어 우리가 본 최대의 IT 혁명이고 말이다. 플랫폼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단순히 ‘통행세’로 격하한다면, 대체 어떤 기업이 이런 혁신에 나설 것인가?
원스토어는 구글이나 애플처럼 플랫폼을 ‘처음부터 만드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SKT, KT, LG U+ 등 통신 3사의 지배적인 통신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국내에 유통되는 거의 모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선탑재되는 등 비교적 편하게 시장에 진입했다. 그럼에도 원스토어조차 인앱 결제 수수료가 없으면 충분한 수익성을 담보받지 못하고 사업 영위에 곤란을 겪을 정도라는 것이다.
법률로서 개입하면 당장에는 기업의 허리띠를 조여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결국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혁신을 저해한다. 특히 법률은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경직된 상태로 아무리 적어도 몇 년, 길면 십 년 이십 년까지도 구태의연한 규제를 유지하는 법이기 때문에, 시장을 함부로 건드리는 건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재화는 손에 잡히는 현물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앱 출판과 유통에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현물을 유통하는 데 드는 비용은 분명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재화 유통에도 틀림없이 비용이 발생한다. 마켓마다 별도의 개발 빌드를 만들어야 하고, 런칭하고 각각 업데이트하는데도 별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유지 보수와 QnA, 리뷰, 환불 응대에 대응하는 데도 추가적인 수고가 들어간다. 다양한 앱 마켓에 대응하기 위해 플레이 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의 자체 결제 솔루션 외에 결제 모듈을 추가/변경하기도 해야 한다.
“소규모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빅테크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
네이버, 카카오 등 콘텐츠 대기업이 중심이 된 한국 인터넷기업협회는 구글의 수수료가 과도하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구글의 인앱 결제 확대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행위라 이를 방통위에 신고하기까지 했다.
반면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사 옹호 단체 ‘개발자 연합’은,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에 전달한 답변서에서 “게이트키퍼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 분야의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분과위원회의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면서도, 정책적인 개입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우리는 2020년 12월 다른 업계 조직과 연계해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으로서 가진 우려를 전달하기 위한 서신을 위원회에 전달한 바 있다. 당시 우리는 정책 발의가 작은 규모의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빅테크의 독점”만을 목표로 하면 기술 중심 산업의 혁신과 경쟁에 의도치 않은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이는 한국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얘기다. 많은 언론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구글이라는 공룡이 국내 사업체들을 ‘통행세’로 핍박한다는 식의 프레임 속에서 보도한다. 하지만 실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국 이는 대기업 간의 헤게모니 다툼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구글, 애플 등 앱 마켓 운영사가 자사 인앱 결제 시스템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은, 실질적으로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콘텐츠 회사의 이익이 걸려 있는 문제다. 실질적으로 구글의 인앱 결제 정책 변경에 영향을 받는 앱은 전체 앱의 1%에 불과하며, 특히 인앱 결제 매출 수위권을 차지하는 앱들은 대부분 네이버, 카카오 등 대기업 앱들이다.
또한 ‘앱 개발사가 모든 앱 마켓에 동등하게 앱을 올려야 한다’는 조항은, 실질적으로 원스토어 하나만을 위한 조항이다. 원스토어는 통신 3사와 네이버가 주축으로, 이들을 어찌 보더라도 ‘공룡에 핍박받는 중소기업’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른바 ‘동등접근권’으로 각종 앱의 원스토어 입점을 강제한다 하더라도, 인앱 결제를 통한 수수료가 유일한 수익원인 이상 인앱 결제 강제 금지의 덫에 걸려 수익원까지 같이 없어지게 되는 결과만 초래될 뿐이다.
이는 ‘개발자 연합’의 지적을 다시 되새기게 되는 부분이다. 어떤 정책적 개입도, 소규모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고 ‘빅테크’에만 초점을 맞춰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룡을 잡기 위해 혁신을 저해하고 중소개발사의 발목을 잡는 꼴, 이에 더해 애초에 목표로 했던 국내 앱 마켓의 발전마저 저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통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