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어난 대형 사고 치고 인재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느냐만, 세월호 참사는 개중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인재 중의 인재였다 하겠다. 국회는 그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열었고, 무능과 부패의 사슬이 끊임없이 그 베일을 벗고 있다.
그런데 그 국정조사 과정에서, 뜬금없이 세월호 참사와 한 발짝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정신과 의사들이 분노한 일이 있었다. 그것도 연일 해경과 정부를 향해 강공을 펴고 있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향해서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신과 상담 내용의 제출을 요구하다
세월호 사고 이후, 생존 학생들이 입은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돌보기 위한 정신과 치료가 이루어졌다. 이를 주관한 것은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로, 일전에도 비슷한 역할을 담당한 적이 있는 곳이다. 세월호 참사는 워낙 그 규모가 크고 심각한 사건이었으므로, 이 센터 뿐 아니라 각계에서 특히 소아 및 청소년의 정신과 진료를 해온 전문의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일종의 야전 병원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작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단원고가 당시 학생 상담 자료의 제출을 요구했으나 이것이 곧바로 제출되지 않고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제출된 것이다.
이에 7월 4일 교육부/교육청/복지부/노동부 기관보고 자리에서,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바로 그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 정운선 센터장(경북의대 소아정신과 교수)에게 왜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는지를 추궁했다.
여기에서 그 ‘자료’란 다음과 같다.
학생상담일지 원본, 상담자현황, 상담대장, 상담누적실적, 고위험군 명단, 학부모교육자료, 학부모교육등록부, 교육실시현황, 투입인력전체규모, 단원고 활동내용일지, 심리검사척도내용, 초반투입예술치료계획서, 학부모 및 학생상담동의서, 심리검사척도 개인별결과 프로파일, 개인정보보호서약서
그런데 이상의 자료 중에는 의사가 결코 제 3자에게 내줘서는 안 될 자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당장 상담일지 원본만 해도 학생의 내밀한 정신과 상담 내용이 그대로 기록된 것이다. 이것을 내준다는 것은 의사 윤리를 저버리라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며, 의료법상으로도 엄격한 불법이다. 학교가 요구한다고 곧바로 제출할 수 있을 만한 자료가 아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면, 정진후 의원은 이 자료를 왜 제출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정 센터장을 강압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대답하려는 정 센터장의 말을 가로막고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자신이 증거를 가지고 있는데 위증을 해선 안 된다며 정 센터장의 발언을 이미 위증으로 확정한다. 그 고압적인 태도로 트라우마 전문 의사가 맞느냐거나, 무슨 계약이 되어 있는 거냐는 등의 질문도 던진다.
이러한 국회의원의 고압적인 태도, 불가능한 요구를 하면서 오히려 상대를 범죄자처럼 추궁하는 태도 때문에 학생들의 정신적 충격을 치료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나섰던 정신과 의사들의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왜 정신과 의사들은 학생과의 상담 내용을 제출하지 않았는가
좀 더 정확한 내용을 살펴보자.
국정조사 내용에 따르면, 사고 당시 정운선 센터장을 비롯, 트라우마 전문가로서 정신과 의사들이 자원봉사자로 파견되어 학생들을 상담 치료했다. 그리고 5월 28일에 정운선 센터장은 파견기간이 끝나 먼저 철수하였다. 이에 단원고는 정 센터장에게 심리치료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이 자료는 5월 28일 이후 7월 1일까지 제출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왜’다. 왜 학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 달의 기간동안 제출되지 않았는지 하는 점이다. 사유 없이 한 달이나 제출을 미루었다면 정 센터장을 포함한 센터 직원들과 의사들의 잘못이라 할 것이지만, 위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저 자료들은 제출을 요구한다고 아무데나 제출할 수 없는 자료다.
학교가 만일 상담 자료 원본을 요구했다면 그 제출 요구 자체가 불법적이다. 학교는 의사의 의무기록을 제출받을 권한이 없으며, 의사는 이 기록을 제출해서는 안 된다. 아래의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 질의 영상에서 이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 센터장은 왜 먼저 철수했는가? 정 센터장은 경북의대의 임상 교수이기도 하므로 병원을 언제까지나 내팽개칠 수 없었다고 증언한다. 설득력 있는 증언이다. 문제는 그래서 정 센터장이 여기에서 철수한 뒤, 단원고에 상주 의사가 온 것이 그로부터 한 달이 훌쩍 지난 7월 1일의 일이란 점이다. 국정조사 내용에 따르면, 상담자료는 진료기록 인계의 형태로 이 상주 의사에게 인계되었다. 세월호 사태가 매뉴얼이 갖춰지지 않은 초유의 상황이었으며 위급상황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가장 적절한 합법적인 형태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정신과 상담 내용이 교사들과 공유되어야 한다?
한편 새정치 최민희 의원은 이어지는 질의에서 정신과 의사들과의 상담 내용이 학생들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인데, 이것이 상담교사, 담임교사, 교감 등과 공유되지 않았음을 문제시한다. 당시 정신과 의사들은 정리된 엑셀 파일(최민희 의원은 이것을 ‘한 줄짜리, 의미 없는’이라고 묘사한다)만을 교사와 공유했다.
이어 최민희 의원은 치료가 수용자 중심, 학생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며, 이 자료를 교사와 공유해야 했다고 말한다. 교사가 이미 이뤄진 상담 자료를 보고 학생의 상태를 파악,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는 학생들이 누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게 느끼냐고 묻고, 교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게 느끼지 않냐고 말한다. 따라서 교사가 상담 치료의 전면에 나서고, 정신과 의사는 마지막 단계에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최 의원의 주장이었다.
정신과 상담 내용은 교사들과 공유되어서는 안 된다
한편 이어지는 질의에서, 새누리 신의진 의원은 정 센터장에게 상담 기록이 교사(담임 및 교감 등)와 공유되는 게 정말로 맞는 일이냐고 묻는다. 사실 이는 맥락상 앞서 최민희 의원이 의사가 상담 기록을 교사와 공유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노골적으로 저격한 것이었다.
이에 정 센터장은 사춘기 아이들은 어른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고, 부모나 교사와 무엇을 공유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며, 하물며 당시는 트라우마 상태였던데다, 개중 개인 상담을 원하고 교사에게 상담 내용을 알리는 것을 우려한 학생들이 많았음을 증언한다. 교사와 상담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견해였다. 이 증언에서 정 센터장은 심지어 울먹이기까지 한다.
이에 대해 같은 당 권성동 의원은 당신이 정신과에 내원하여 상담한 내용이 상사와 공유된다면 마음 놓고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두 의원 모두 최민희 의원의 주장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제출될 수도, 공유될 수도 없는 정보들, 개인의 프라이버시
정진후 의원은 최종적으로 경기도교육청에 자료제출을 요구했던 공문, 자료제출 여부를 확인해 서면 보고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자료를 (학교에) 제출하는 것과 이를 공개 및 공유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본다며, 공개 및 공유될 수 없는 자료라면 그와 같은 내용을 첨부하여 자료를 제출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그는 또 교육부에게 요구하기를, 2/3학년 대상 심리검사지 원본을 제출받아 연구 목적이 있는지를 확인하라고도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심리검사지 역시 진료의 일부다. 의료법의 보호를 받는 개인 정보이며, 제출 및 공유되어서는 안 될 자료다.
정진후 의원은 잘못된 주장을 계속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료 기록에 있어만은 학교는 물론 교육청, 교육부조차도 제 3자다. 애당초 이 기록을 받을 권한이 없으며, 의사에겐 이를 제출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개인 사이의 사적인 대화나 통화내용을 제 3자, 예를 들어 정부 기관이나 새누리당에게 ‘제출’하면서 ‘공개 및 공유를 해선 안 된다’고 첨부한다면 어떤가? 이게 정말 맞는 절차인가? 진료기록은 그 정도로 엄중하게 프라이버시로 지켜져야 할 기록이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민의의 대변자인가, 윽박지르기 전문가인가
일전 인터넷에서 새누리당 최호정 서울시의원이 시정질문에서 박원순 시장에게 예의 없는 태도로 일관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실 1000인 원탁회의의 성과가 과장되었다는 핵심 내용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문제제기였다. 그런데 질문을 하며 박 시장의 말을 계속 끊고, 죄를 인정하라는 양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이 보는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윽박지르기, 말 자르기, 강압적인 태도는 비단 최호정 시의원만의 특징이 아니다. 사실 많은 스타 정치인들도 매한가지다. 청문회, 국정조사, 국정감사, 대정부질문, 어디에서나 대답하는 사람의 대답을 채 기다리지 않는다. 결론을 이미 만들어놓고 유도신문을 벌이고, 대답하는 쪽이 조금이라도 발끈하면 호통을 치기 일쑤다. 시원시원하다며 찬사를 받는 새정치연합 모 의원의 질의는 이런 기술의 결정체다.
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당시 자료가 어떤 과정으로 제출되었는지 설명하려는 정운선 센터장의 대답을 계속 가로막았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학생들이 누구와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냐는 질문을 던지고, 교사라는 대답을 유도한 뒤, 그러므로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 내용이 교사와 공유되어야 한다는 비약적인 결론까지 일사천리로 내 버린다. 교육청 관계자는 죄인이라도 된 양 고개를 숙인다. 최민희 의원의 논리란 게 아Q만큼이나 졸속적인데, 심지어 그는 진짜 승리까지 맛본다.
청문회, 국조, 국감, 대정부질문, 무능하고 부패했다 여기지는 거대 조직을 향해서야 그런 윽박지르기가 시원시원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야당 의원들의 막무가내식 질문에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한 전문가가, 이윽고 같은 전문가인 여당 의원이 대신 질문을 가장한 해명을 해 주는 순간 울먹이는 모습은 대체 무엇을 시사하는가.
때로는 의원이 틀릴 때도 있다. 아니, 틀릴 때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늘 윽박지르고, 대답을 끊고, 강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결국 승리하는 건 의원이다. 이런 방식으로 정말 민의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 문득 이것이 멋진 인상을 남기기 위한 전략 전술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의 본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여야를 불문하고 어디에서나 윽박지르고 강압적으로 일관하는, 자칭 민의의 대변자들, 그것이 바로 그들일지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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