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제목 ‘실전 리더십’에 걸맞게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2005년부터 동화홀딩스에서 일하던 내가 2007년에 동화기업/대상목재의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 매출액은 3000억원이 넘는 규모였다. 업계의 상황을 간략하게 표로 보자. 80년대에는 영업이익률이 50%에 육박하던 시기도 있었다고 들었다. 초기엔 국내에서 독점 공급자였고 대리점 사장들이 물건을 더 받으면 돈이 되니 영업사원보다 먼저 출근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경쟁사가 많이 늘었고 해외 쪽 공급마저 빠르게 늘어나면서 공급과잉 시장이 되었다.
1990년대까지는 수요가 늘며 그래도 수익률이 제법 괜찮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업이익률 2%대에 수년간 머물 만큼 시장이 어려워졌다. 내가 대표가 된 후 팀장들과 간담회를 하는데 한 팀장이 “임원들의 무덤에 오신 소감이 어떠신지요?”라고 물었다. 나 이전에 5년간에 대표이사 여러 명이 교체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분은 1개월 만에 물러났고, 2년을 넘겨 재직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난 그만큼 힘든 상황에서 일을 시작했다.
동화말레이시아 법인 상황을 보자. 내가 동화기업/대성목재 대표이사 맡고 한 3개월반이 지나니, 말레이시아 대표이사까지 겸직으로 맡으라고 했다. 한국에서 단시간에는 회사의 성과가 개선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말레이시아는 당시 6개월간 연속 적자가 나고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회장의 판단이었다.
말레이시아 법인은 세울 때 현지의 3개사를 인수했기에 인수합병의 후유증으로 조직상의 갈등이 심했다. 또, 시장 상황도 어려워 지고 있어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말레이시아까지 맡게 되자 어떤 사람들은 김종수의 운도 끝났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그만큼 상황은 어려웠다.
2010년 12월부터 뉴질랜드도 맡게 됐다. 여기는 생긴지 15년 동안 환율이 급변한 덕에 한해 흑자를 낸 것을 빼고 계속 적자상태의 기업이었다. 현지에서 5년 주재한 임원이 실적개선의 가능성이 1%도 없다고 했을 만큼 구조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던 회사였다.
나처럼 외부에서 영입된 임원은 용병이다. 용병은 원주민과 다르다. 야구에서 용병의 타율, 방어율이 안 좋으면 바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내가 한샘이라는 가구 회사에 2년 있었는데, 입사할 때 삼성을 비롯해 국내 유수의 기업에서 10명 이상이 임원으로 동시기에 입사했다. 다들 학벌 좋고 빵빵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1년 지나니 두 사람 말고 다 전사했다. 2년이 지나니 나를 포함해 남은 두 사람도 퇴사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일한 동화에서도 2006년부터 13년 초까지 많은 외부 영입 임원이 회사를 떠났다. 이처럼 용병의 생존확률은 높지 않다. 더구나 대부분의 오너들은 성격이 급하다. 오래 기다리지 않고, 단시간에 성과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많은 급여를 주는 임원이니 그에 걸 맞는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난 새로 맡은 회사의 사업영역에서 평생 일한 사람도 아니라서, 업계의 상황에 익숙하지도 않았다. 업력이 짧으니 전체를 파악하거나 전략을 수립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무슨 힘으로 일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내게 활용할 마지막 카드는 직원들뿐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대개 그 업계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경험의 범위는 한정되어 있지만, 자기들이 일해온 영역에서는 전문가였다. 그들의 지식과 경험과 열정을 끌어낸다면 해 볼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영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가 듣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작은 이랬다. 내가 아는 게 없으니 물어봐야 했던 거다. 할 수 있는 게 물어보는 것 밖에 없었고, 거기서 시작했다. 개별적으로 만나서도, 모아서도, 회의에서도, 계속 열심히 들으려 했다. 어떤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한 거룩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로 모르니까, 배우려고 물어봤다. 그런데 물어보니 직원들이 감동하더라.
회식 하다가 잠시 밖에 나왔다가 만난 직원이, 낮에 울 뻔 했다고 하더라. 왜냐고 물으니 회의에서 그 직원의 의견을 묻고 진지하게 경청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가 회사 와서 3년 간 아무도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적이 없는데, 먼저 말을 시키고 정말 들으려 하는 모습에 감동 받아서 눈물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는 거다. 또 나랑 10여년전에 같이 일한적이 있는 직원이 지금까지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는 이유가 내가 자기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이처럼 듣는 것은 정보, 지식을 얻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사람의 가슴을 깊이 뒤 흔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야기 시키면 말은 하는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정작 해야 되는 이야기를 못 한다. 이걸 바꿔야 하는데 조직에서 대개의 경우 많은 문제의 근원은 보스들이니 어렵다. 감성 리더십이라는 책을 보면 “CEO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설명한다. 모든 사람들은 아는데 정작 CEO만 모르는 것이 많은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직원들이 보스가 싫어하는 이야기는 감히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말했다가 누군지 추적하여 불이익을 당한 경험들을 몇 차례 한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니 누가 진짜 이야기를 쉽사리 하겠는가?
그래서 모아놓고 익명을 보장하며 말을 하도록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회사가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는지 의견을 내라고 했다. 예를 당신이 대표라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다. 무엇을 개선하고 어떤 전략을 구사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계속하게 시켰다. 누가 이야기했는지 모르도록 그룹을 만들어 토론하고 발표하는 방법을 썼다.
요즘 카톡 보내고 나서 상대가 읽었는데 답이 없으면 ‘이 인간이 내 카톡을 씹어?’ 이렇게 생각한다. 이처럼 듣고 아무 액션이 없으면 직원들은 얘기를 안 하게 된다. 워크숍 중 나오는 이야기 중 의미 있는 이야기는 바로, 그 회의하는 자리에서 결정하고 누군가에게 실행을 맡겼다. 그러면 진짜 듣는다고 직원들이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이를 귀로 듣지 않고 “행동으로 듣는다”고 표현한다. 한 연구팀은 미국의 에너기 기업 엔론이 망한 후에 메일을 받고 응답하는데 걸린 시간과 메일 발신자의 권력 간의 관계에 대해 조사했다. 그런데 발신자의 권력과 수신자의 이메일 응답에 걸린 시간의 길이는 아주 놀라울 정도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힘센 사람이 보낸 메일에는 바로 답하고, 별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 보낸 메일에 대해서는 바쁜 일부터 처리한 후에 천천히 응답하는 거다.
그러니 이렇게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즉시 그 자리에서 실행하는 방식으로 반응을 보이면 직원들은 회사가 정말로 자기의 말을 듣는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더구나 자신을 진정으로 존중한다고 가슴 깊이 느끼는 것이 이해가 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인데 못하는 이야기가 회사들마다 참 많다. 특히 윗사람이 시켜서 하거나 윗사람이 원할 거 같아서 하기는 하지만 불합리해 보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감히 말을 못한다. 내가 직원들에게 말 좀 해 보라고 하고 진지하게 경청하기 시작한지 몇 주 지나니까, 직원들이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더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직원들이 보고서와 회의가 너무 많아 일을 못할 정도라고 하는 거다. 먼저 필요한 보고서와 불필요한 보고서를 정리하라고 했다. 정리해 왔는데 90% 정도가 필요 없다고 하더라. 영업 나가야 할 시간에 파워포인트로 회의자료, 보고서 만들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윗사람과 관련이 되니 감히 없애지도 못한 채로 보고서와 회의체 수만 끝도 없이 늘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윗사람이 지시한 일이니 감히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필요 없으면 바로 버리고 본질적인 것에 시간을 쓰라고 했다. 앞으로 나에게 올 때는 보고서 없이 입으로만 이야기하고, 정 필요하면 실무용 엑셀자료 뽑아오거나 메모해 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웬만하면 파워포인트 그려오지 말라고 했다. 가수가 노래하는데 악보 보고 하냐? 실무책임자들이 나보다 많이 아는데, 내가 실무책임자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도만 알면 되지 그 이상은 굳이 알 필요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 많던 불필요한 보고서들이 거의 한 순간에 사라졌다. 공장장들이 이제 자유롭게 공장에 나가서 생산관리도 잘 되고, 영업본부 직원들도 영업현장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아마 이러한 조치들은 직원들 입장에서는 꽤나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자신들이 이야기한대로 회사가 만들어 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는 경험이었으니.
예전에 이런 펌프 써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 물 뽑으려면 마중물을 붓고 펌프를 막 눌러야 물이 나온다. 나도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런데, 내가 사람들 의견을 듣고 즉석에서 액션으로 취하니, 말한 사람들도 자기 이야기를 진짜 듣는다고 느끼는 것 같더라. 이게 마중물 붓기였다고 생각이 되더라. 행동으로 듣고, 기존에 끙끙 앓고 있던 불합리한 문제를 풀어주니 직원들의 느낌이 한 순간에 달라진 것 같았다.
각 부서, 각 직원에게서 일에 대해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왔다. 이해를 위해 한가지 예를 든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생산본부 목소리가 강한 회사였다. 인조목재를 만드는데 고객마다 원하는 목재의 품질이 조금씩 달랐는데도, 우리는 물건이 잘 팔리던 예전의 습관대로 자체적인 품질 기준 하나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시장은 변해서 고객이 물건을 골라서 살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고객이 원하는 품질과 차이가 나는 물건은 팔기도 어려웠고, 그래서 가격을 할인해서 팔아야 하는데, 수입품까지 몰려오면 재고는 산더미처럼 쌓이고는 했다. 그런데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니 전에는 꿍꿍 앓기만 하던 영업본부도 회사를 위해서는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머지않아 논의를 통해 고객 맞춤형 품질 개념을 정립하게 됐다.
자동차에 제일 중요한 건 엔진이 아니라 브레이크다. 엔진이 망가지면 차를 움직일 수 없지만 브레이크가 망가지면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까. 품질관리팀장에게 당신은 회사의 생명을 지키는 브레이크다, 이제부터 품질을 지켜 회사의 생명을 맡은 오너는 당신이라고 했다. 이제는 함께 논의하여 정한대로 고객 맞춤형 품질을 지켜 회사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이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이 말하고 정한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즉 자신들이 정한 것을 자신이 집행하니 회사의 주인이 아닌가? 그리고 품질에 관해서 논의한 것을 실행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이러니 일에 재미가 안 생길 수 없다. 대표의 권위가 실려서 자신들이 논의한 것을 집행하니 신이 난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기들이 회사를 운전하는 느낌이 들게 된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이건 주인의식을 강조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자기들의 뜻대로 회사를 움직여가면 자연스레 생기는 거다.
이러니 회사 분위기가 활기차고 신나게 바뀌지 않겠는가? 30-40대 직장인은 고민이 많다.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77%가 이직 준비 중이라는 기사도 봤다. 나는 직원들에게 어딜 가도 다 똑같으니, 이 회사에서 길을 찾아보자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회사에서 성공할지 꿈을 그려보자고 했다.
그래서 개인비전을 만들게 하고 발표를 시켰다. 어떤 친구는 연극 비슷하게 하고, 어떤 친구는 포토샵으로 꿈을 구체화해서 발표했다. 이는 회사가 가는 길과 자기 자신의 꿈을 엮어주는 작업이었다. 물론 그들이 자신이 발표한 비전을 100%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쯤은 위에서 시키니까 그냥 했으리라. 그런데 이 비전발표 효과가 무섭다. 안 믿더라도 일단 밖으로 내뱉는 효과가 무섭다.
자신의 말은 발표자 자신의 내면에 스며들어 변화를 시킨다. 믿고 비전을 발표하는 게 아니라 비전을 발표하고 스스로 믿게 되는 과정이 진행되는 것이다. 난 그 후에 그들이 비전이 실제로 이루어 지는 과정을 참으로 많이 목격했다.
그 결과가 어땠을까? 언젠가 신문에 GE의 짐 이멜트 회장이 1주일에 100시간 이상 25년 일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워크숍 할 때 직원들에게 이 기사를 소개하며 몇 시간 일하는가 물었더니 어떤 직원들이 자기들은 주당 110시간씩 일한다고 하더라. 이건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휴일 없이 일하는 수준이다. 이게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출현했던 거다. 당연히 조직 전체의 분위기도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성과도 빠르게 개선되지 않는 게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처음 말레이시아에 가 보니 회사라고 하기 힘들 정도였다. 출근했는데 인터넷이 안 된다. 왜 안 되나 했더니 간밤에 데이터 케이블을 잘라갔단다. 공장의 바코드 리더기를 가져가기도 하고, 사무실 노트북도 사라진다. 심지어 밤에 중장비 연료통에서 기름 빼서 자기 차에 싣고 가는 직원, 업자랑 짜고 정문 통과하는 목재의 무게를 속여 기록하고 뒷돈 받는 직원도 있었다. 이게 무슨 회사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도 제대로 안 통한다. 공용어가 영어인데 한국인이나 현지인이나 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내가 부임하지 전까지는 그저 한국사람끼리 모여서 주로 한국어로 회의를 했고 현지 직원은 회사 경영에서 소외가 되어 있었다.
내가 3월 2일 부임해서 3월 4일에 워크샵을 했다. 그리고 익명성 보장할 테니, 하고 싶은 말 다 해 보라고 했다. 그 사람들에게 성역은 한국인이었다. 한국인끼리 잘해봐라, 좀 떠나다오… 이런 말이 터져 나왔고, 나는 맞는 이야기라고 하며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내 한국에서 진행했던 과정을 급속도로 진행했다. 말이 되는 이야기는 즉시 집행을 지시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하든 경영에 반영이 되도록 애를 썼다.
얼마 후에는 공장에서 24시간 교대 근무하는 직원들을 모아서 회사가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고 동참을 호소했다. 질의응답시간에 한 사람이 손 들더니 bad guy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다른 부장 불러서 bad guy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회사 물품 빼돌리는 등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때를 전후해서 도둑질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는 직원들에 대한 제보가 접수되기 시작했다. 현지 직원들은 누가 뭐 훔쳐가는지 다 알고 있었는데 아무 이야기 안 했다가 의식이 바뀌면서 회사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보에 힘입어 단시간에 도둑놈들을 잡아 해고하고 일부는 형사처벌까지 했다. 중요한 건 현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경영에 반영하면서 그들의 의식이 단시간에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전에 현지인들은 주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경영에 반영하고 한국 주재원을 반으로 줄이고 본부장도 반을 현지 직원으로 채웠다. 그리고 회의도 영어 회의 외에는 못하게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지인들의 의식이 달라진 것이다.
이렇게 직원들이 자기 영역에서 깊은 고민을 시작했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으로부터 답을 도출했다. 그러면서부터 제대로 된 실행 가능한 사업전략이 잡혔다. 미국의 유명 컨설팅회사가 미국의 대형 건축자재 판매회사를 컨설팅 한 리포트를 본 적이 있다. 우리 돈으로 몇십억원 짜리인데 불과 이십여 페이지였다. 결론이 너무 간단해서 놀랐다. 자재를 그냥 팔지만 말고 설치해 주라는 이야기였다.
그거 보고 황당하더라. 현장의 세일즈맨 몇 사람 잡고 물어보면 바로 나올 수 있는 답이다. 그 결론을 도출하는데 왜 수십 억 쓰는가? 얼마든지 현장 직원의 지식과 경험을 경청하면 잡을 수 있는 전략인데. 나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모아 전략을 만들면 최고의 실행가능한 전략이 나온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영업사원들이 고객들의 니즈를 잘 알고 있으니, 거기에 맞춰서 제품 품질을 세분화한 것이다. 영업하는 직원들 모아서 그들이 목소리가 나오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답이다. 이렇게 직원들 스스로가 이야기하여 찾아낸 전략적 선택은 자신들이 정한 것이니 자신들의 것으로 느끼고 스스로가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강력한 실행력까지 붙은 전략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조직에 시동이 걸리고 잘 굴러가게 되면 나중에는 조직이 바톰 업으로 움직인다. 밑에서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해야 합니다’하는 이야기를 먼저 한다. 한 공장장이 어느 날 나무 뿌리를 원재료로 쓰겠다고 했다. 이게 싸긴 한데 흙을 완벽하게 제거하기 힘들다. 뿌리를 투입하기 시작하니 품질불량이 발생하고 손실이 많이 났다. 그는 회장님에게 심하게 야단도 맞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보호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렇게 몇 달 비틀거리다가 결국 성공했고 원가절감에 큰 공헌을 했다. 내가 시킨 일이 아니다. 자기들이 아이디어 내고 직접 움직인 거다. 그것도 리스크를 지면서. 예전 같으면 시켜도 쉽게 하지 않을 일들을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을 한 것이다. 이렇게 바톰 업으로 움직여야 살아있는 조직인데 조직이 이렇게 변하더라.
“적어야 산다”. 북한식 적자생존 방식을 봐라. 저 경험 많은 고위 간부들이 어린 김정은의 지시를 수첩에다 적고 있다. 반대가 되어야 정상이 아닌가? 누가 더 많이 아는가? 반면 정주영과 이명박의 사진은 지금 보아도 대단하다 싶다. 나이도 한참 어린 이명박이 정주영 옆에 주머니에 손 넣고 삐딱하게 서 있다. 아마 70년대 같은데, 지금도 오너 앞에서 이런 자세로 설 수 있는 사람 많지 않을 거다. 현대가 거저 큰 게 아니다. 정주영 회장이 이렇게 밑에서 움직일 여지를 넉넉하게 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조직내의 인간의 욕구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주도하고 싶은 욕구,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싶은 욕구다. 임상심리학자들이 모든 사람들은 성과지향성의 본능이 있다고 한다. 이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 본능이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나중에 선생님에게 직장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지울 수 없는 강한 본능이다. 그러므로 인정 받으면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성과가 높아진다.
또 누구나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한다. 미운 일곱살, 사춘기도 모두 이러한 주도성의 본능의 표현이다. 나는 직원들보다 업무 하나하나를 잘 모르니 방향을 정한 후에는 그들에게 자율권을 보장해 주었다. 그러면 참으로 열심히 한다. 이렇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율적으로 일하는데 행복하지 않겠나? 열심히 일하지 않겠는가?
가치도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자기 내면에서 가치 있다고 확신하면 같은 일을 해도 행복하게 느낀다. 내가 일했던 방식은 이러한 세가지 욕구가 충족이 되도록 조직을 운영한 것이었다. 그 결과는 내 자신이 놀랄 만큼 좋았다.
그러면 이야기할 거다. 당신은 뭐한 거냐고? 대장만이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세월호 때문에 평형수라는 말이 모든 국민 아는 말이 됐다. 중심 잡는 평형수의 역할. 이처럼 균형을 잡는 게 대장이 해야 하는 일이다. 또 목표와 방향이 어디인지 명료한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전 조직을 이에 맞게 정렬시키는 것이 대장이 하는 일이다. 나머지는 밑에 직원이 알아서 하게 해야 한다. 인천상륙 작전할 때 맥아더가 총 쐈냐?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음악을 해석하지, 연주하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다. 자기의 전략 방향을 조직전체에 아주 정확히 공유시켜 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전략의 숨은 작전의도까지도 철저하게 공유해야 한다. 인천 상륙 작전할 때 맥아더가 인천에 상륙해서 서울을 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그 명령의 진정한 의도는 북한군의 허리 끊어서 남으로 내려간 북한 주력군을 무력화시키자는 것이었으리라. 명령과 함께 이러한 작전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게 대장의 역할이다.
그런데 가장 좋은 전략과 작전의도 공유방법은 부하들과 함께 작전을 짜는 것이다. 그러면 그 전략이 내가 만든 건지, 자기들이 만든 건지조차 헷갈리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자기의 것으로 인식한다. 결국 직원들은 자신들이 만든 전략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며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좋아서 신나서 일하지 않겠는가? 이것을 나는 ‘토끼몰이’ 방식이라고 부른다.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 김교신이다. 김교신의 선생이 우찌무라 간조인데 그의 자전적 에세이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우찌무라 간조가 공업전문학교 다닐 때 크리스마스 성극을 준비하는데 그 학교에서 가장 신앙 좋은 학생이 가룟 유다 역을 맡고, 반대로 전혀 신앙 없는 사람이 예수 역을 맡았다. 그런데 몇 년 뒤 유다 역 맡은 친구는 신앙을 버렸고, 반대로 예수 역을 맡은 사람은 목사가 됐다. 연극하면서 내면이 바뀐 거다.
이처럼 연극의 힘은 사람을 바꾸는 굉장한 힘이 있다. 나는 직원들과 함께 전략을 짜고 비전을 만들면서 전략과 비전이 직원들 자신의 것이 되도록 했고 실제로 그 효과가 상당부분 나타났던 것이다.
책에서 언급한 임무형 지휘체계의 핵심 개념 중 또 하나가 하급 지휘관의 전술적 자율권 보장이다.(첫째는 전략과 작전의도의 철저한 공유). 실제 전쟁에서는 명령을 받은 후에 전투상황이 수시로 바뀐다. 기존의 명령 그대로만 가면 망할 수도 있다. 때문에 하급지휘관에게 작전의도의 범위 내에서는 자기 맘대로 판단해서 갈 권한을 줘야 한다.
인천상륙작전 중 서울로 직접 진격만을 고집해서는 희생이 너무 크리라 판단되면, 수원으로 진격루트를 변경해서 더 적은 희생으로 작전의도를 달성할 판단권한을 하급 지휘관에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도 그래야 한다. 철저하게 전략이 공유되어 정렬이 이루어 지면, 전술적인 판단은 담당 책임자가 알아서 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 영역은 대장이 아닌 담당 책임자가 훨씬 더 잘 아는 영역이 아닌가?
이때 주의할 점은 실수할 자유, 권리까지도 줘야 한다는 점이다. 한 직원이 직 거래처 개발 중 큰 금액의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그래도 야단 안 쳤다. 좋은 의도로 일하다가 실수한 것이니 동일한 실수는 하지 말라고 하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직원이 유통망 정비를 끝내고 얻은 금전적 이익이 참으로 컸다. 그 사람 징계했다면 본인이나 후임자 중에 누가 동일한 시도를 했겠는가? 그냥 쉬운 방법에 안주했을 것이다.
가는 길이 확실하고 그것을 공유했다면, 대장 자신도 스스로 그 길에 맞게 정렬해야 한다. 대장이 스스로 정한 방향성에 맞춰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이게 현장에서 정말 중요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 짜 둔 방향에서 리더 자신이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6개월 정도 지나면 대장이 할 일이 줄어든다. (단, 6개월 동안은 엄청나게 집중해서 말하고 또 말하고 듣고 또 듣고 움직여야 한다.) 조금씩 AS만 한다. 1년 지나면 AS도 많이 줄어든다. 3년 지나면 그냥 놀아도 된다. 물론 난 다른 회사를 계속해서 추가로 맡으라 해서 놀지는 못했다. 어쨌든 한 군데에서 이 방법 적용하면 3년 지나면 정말 할 일이 없어진다. 대신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정말 대장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에 삼성과 현대그룹 회사들에 마케팅 자문을 많이 한 교수가 말하더라. 삼성 임원들은 만나기 쉬운데, 현대 임원들은 너무 바빠서 만나기도 힘들다고. 그 이야기 듣고 삼성이 다르구나 싶더라. 고위 경영진은 실무에 너무 개입하지 않아야 기업의 미래가 있다. 이렇게 하니 재무적인 성과도 당연히 따라온다. 한국의 동화기업/대성목재는 영업이익률이 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말레이시아도 흑자전환하여 영업이익률이 두 자리 숫자가 되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행복한 직원들이 많이 생긴다. 베트남에서 예전에 함께 일하다 퇴직한 직원과 만났는데. 옛날에 일요일마다 회사 너무 가고 싶어서 월요일이 기다려졌었다고 말을 하더라. 이미 퇴직했으니 나한테 잘 보이려 한 소리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꽤 있었다. 자기가 직접 주도해서 자기 일을 하니 왜 신나지 않겠는가? 그러니 회사 가기가 재미있는 거다. 내가 말한 게 큰 조직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 똑같다. 부하가 한 사람 있어도 똑같다.
뭔가 뜬구름 잡는 강의를 한 것 같지만, 나는 실용적인 사람이다. 이런 방법을 쓰면 정말 아웃풋으로 이어질 거라 확신한다. 또 그러면 본인과 아래 사람들 모두 놀랍도록 빠르게 성장하고 성과가 나온다. 다들 이 방법을 잘 도입해서 성장하고, 좋은 성과를 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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