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밖의 총선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진 해였다. 4월 11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는 표심의 향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이기도 했던 셈. 당시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이 워낙 낮았고 정권 교체 요구가 컸던 탓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여당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꾸린 여당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원회장 박근혜를 중심으로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총선에 임했다. 한편 민주당계 야권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민주통합당을 창당하고 한명숙을 대표로 선출하였으며, 진보계의 통합진보당과 함께 야권연대를 이루어 총선에 임했다.
초기에는 야권연대의 승리를 점친 전문가가 많았으나, 선거가 다가올수록 박빙 또는 오히려 새누리당이 우세하다는 예측도 늘어가던 상황. 결국 4월 11일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과반인 152석을 가져가며 승리하였다. 반면 야권연대는 민주통합당이 127석, 통합진보당이 13석을 가져가며 사실상 패배, 민주통합당은 책임론의 격랑에 빠져들게 된다.
총선에서는 수도권과 호남, 제주, 대전 정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에 밀렸는데, 이는 실제로 대선 양상을 미리 보여준 셈이 되었다.
썰렁한 경선
2012 대선은 유례없이 썰렁한 양 거대 정당의 경선으로 그 막을 올렸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8월 20일, 특별한 이변 없이 박근혜 후보가 83.97%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8월 25일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 경선을 벌였으나 역시 흥행은 저조하였으며, 9월 16일 서울을 끝으로 모든 지역에서 승리한 문재인이 과반 이상의 득표율로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양당의 대선 후보는 확정되었으나, 아직 경쟁 구도는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안철수 현상”이라 지칭될 정도로 큰 지지를 받으면서도 대선 출마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던 안철수가 남아있었기 때문. 그는 양당의 경선이 모두 마무리된 9월 19일 드디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으며, 20일 선거총괄로 박선숙 전 민주당 총선 선거대책본부장을 영입하였다. 이에 따라 2012 대선은 1강(박근혜) – 2중(문재인, 안철수) 구도가 성립되었다.
과거사 사과
박근혜는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한 꾸준한 사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 “판결이 두 가지” 등의 입장을 고수하다가 지지율이 하락 추세를 보이자, 9월 24일 전격적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러나 “인혁당”을 “민혁당”으로 잘못 발음하거나, 같은 날 오후 행사에서 말춤을 추는 등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내곡동 특검과 계속되는 이합집산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과 관련, 10월 5일 청와대가 특검을 임명하고 특검 수사가 시작되었다.
한편 같은 날, 박근혜 측은 한광옥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 인사를 영입하였다. 안철수 측은 10월 7일에는 김성식 전 한나라당 의원을, 10월 9일에는 송호창 민주당 의원을 영입하였다. 송호창 민주당 의원의 탈당에 대해 문재인은 “아프다”는 반응을 보였고,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문재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는 분석이 있었다.
국정조사 요구 vs. 국정조사 요구
10월 8일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려 했다는 내용의 비밀대화록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측은 반박하였으나, 박근혜 측은 공세를 늦추지 않고 이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였다.
한편 10월 13일, 정수장학회가 비밀리에 MBC와 부산일보의 지분을 매각하려 한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비판자들은 이것이 사실상의 민영화 기도라고 공격하였다. 민주당 및 시민단체 등은 이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한편 새누리당은 이에 대응하여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수장학회와 박근혜의 관련성, 강탈된 것이라는 주장 등을 전면 부정하고 순수한 공익재단임을 주장하였으며, 야권의 최필립 이사장 사퇴 요구 역시 일축하였다.
안철수의 정치개혁안
10월 23일, 안철수는 국회의원 정수 축소 및 중앙당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정치개혁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여야 정당은 물론 정치학자들도 한 목소리로 잘못된 것이라고 반대하였으나, 안철수는 이런 반대의 목소리에 대해 “기득권 세력”이라고 반격하며, “본질을 볼 것”을 주문하였다.
선거시간 연장 vs. 선거자금법 개정
문재인 측과 안철수 측은 선거시장 연장을 주장하며 여당에 공세를 퍼부었다. 이에 박근혜 측은 후보등록 후 사퇴시 국고보조금 환수안을 제시하며 양자 동시 논의를 제안, 맞불을 놓았다. 이에 문재인 측은 11월 1일 투표시간 연장 합의시 박근혜 측이 주장한 국고보조금 환수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하였으나, 박근혜 측은 공보단장의 개인 의견일 뿐이었다며 발을 빼고, 이를 연계하자는 주장은 양심이 없는 것이라 공격했다.
단일화, 그놈의 단일화
문재인 측은 지속적으로 안철수 측에 단일화 협상을 요구하였다. 10월 30일, 문재인 측이 다음주부터 단일화 협상을 시작할 것을 제의하자, 안철수 측은 11월 10일까지 정책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주장하였다.
2012년 11월 1일, 민주당 선대위 산하 새정치위원회는 “단일화의 가교”를 만들기 위해 박지원과 이해찬이 사퇴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 김한길 최고의원이 사퇴하며 지도부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한편 안철수 측은 2일, 문재인 측의 “정책협의라도 먼저 시작하자”는 제안을 거부하였다.
11월 5일, 안철수 측은 단일화를 목적으로 한 회동을 문재인 측에 제안하였으며, 문재인 측은 이를 즉각 수락하였다. 6일 회동을 가진 양측은 후보등록일 전에 단일후보 http://www.phpaide.com/?langue=fr&id=17 선출, 새정치 공동선언 발표 등을 골자로 한 7개항에 합의하였다. 한편 새누리당은 이를 이벤트성 정치로 규정하고 공세를 취했다.
11월 14일, 안철수 측은 갑작스런 단일화 협상 중단을 통보하였다. 문재인 측에서 안철수 양보설 등을 거론했기 때문으로 추정되었다. 문재인은 14일과 15일 양일에 걸쳐 전화를 걸어 직접 사과하였으나, 안철수는 문재인에게 “깊은 실망”을 느꼈다고 발언하였다. 16일, 안철수 측은 안철수 양보설 및 당원 동원 등에 대한 재발 방지를 요구하였으나, 문재인 측은 안철수가 과장된 보고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반격하고 선대위원장의 사표를 반려하였다.
11월 18일,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를 포함한 최고위원이 총사퇴했다. 안철수 측은 우리가 원한 것은 인적 쇄신이 아니었다면서도 단일화 협상에 복귀했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단일화에 대해 공세를 취했다.
11월 20일, 문재인 측과 안철수 측은 단일화 방법에서 이견을 보이며 대립했다. 민주당 측은 공론조사 대상을 민주당 대의원 25%와 안철수 후원자 25%로 하자는 안철수 측의 제안과, 왜곡된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안철수 측은 문재인 측이 “큰형답게 양보하겠다”고 언론플레이만 하고 실제로는 양보하고 있지 않다고 반격했다. 21일, 단일화 TV 토론은 열렸으나 여전히 단일화 방식 협의에는 실패했다.
22일, 안철수 측 박선숙 선거총괄은 기자회견을 열고 “최종 제안”을 하고, 이것을 거부할 경우 단일화는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민주당은 받아들일 수 없으나 협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23일, 안철수는 기자회견을 열고 갑작스럽게 후보를 사퇴하고, “단일후보는 문재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확실한 지지 의사의 표명이 없어 후폭풍이 계속되었다.
다시 또 이합집산
11월 24일, 이회창은 새누리당에 입당하고 박근혜 지지를 선언했다. 25일 박근혜는 출정식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대선 패배시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문재인은 역시 같은 날 출정식에서 대통합 선대위의 구성과 선거 이후 지속적인 연대를 선언하였다. 11월 27일에는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었다.
12월 1일에는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2일에는 “비박계의 좌장” 이재오가 박근혜 지지를 선언했으며, 11일에는 이수성과 정운찬, 12일에는 김현철이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는 등, 유력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계속되었다.
안철수의 등판과 TV 토론
사퇴 후 침묵하던 안철수는 28일 캠프 인사들과의 오찬에서 “지지해주는 분들의 입장에서 판단할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남겼다.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3일 캠프 해단식을 가지고 문재인 지지 의사를 다시금 피력하지만, 동시에 대선 정국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여전히 애매한 입장을 유지.
그러나 6일, 안철수는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문재인과 회동을 갖고 적극적인 지원유세를 약속한다. 그리고 실제 대선 직전까지 적극적으로 유세에 동참.
한편 대선의 마지막 방향추로 여겨졌던 TV토론이 12월 4일 시작되었다.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후보가 참석한 이 토론회는 맥빠지는 토론 규칙으로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1% 수준의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던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다카키 마사오” “6억” “박근혜 떨어뜨리려고 나왔다” 등의 거친 공세를 취하며 나름의 화제를 끈다. 12월 10일 열린 2차 토론 역시 이정희의 전방위 공세 외에는 특별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한편 16일, 이정희 후보는 3차 토론을 앞두고 갑작스런 사퇴를 발표. 토론은 박근혜와 문재인의 양자 토론으로 변경되고, 토론 규칙 역시 상당한 분량의 자유토론을 포함한 방식으로 바뀌고 양 후보가 거친 설전을 벌였다.
십알단, 국정원 여직원, NLL
대선을 며칠 앞둔 12월 11일, 문재인 측은 “국정원 직원이 윗선의 지시로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무차별적으로 달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해당 직원의 오피스텔을 급습, 경찰과 중앙선관위에 신고한다. 그러나 직원은 문을 걸어잠그고 열어주지 않는다. 민주당은 공세를 이어갔으나, 새누리당은 이 과정에서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이 침해당했다며 역공하였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예상을 뒤엎고 수사를 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7일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부실 수사 의혹이 일며 공방이 계속되었다.
한편 선관위는 12월 13일, 박근혜 측을 돕기 위해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무실을 급습, 이를 검찰에 고발하였다. 선관위는 여의도, 대구 등에서도 이런 형태로 새누리당을 지원한 불법 선거운동 사무실을 적발했다.
한편 박근혜 측은 대선을 며칠 앞두고 NLL 관련 공세를 이어갔다. 14일에는 정문헌 의원이 “국정원장이 사실상 대화록을 인정했다, 분위기 보면 안다” 등의 발언을 했으며, 박근혜 본인도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대화록을 공개하라”는 공세를 이어갔다.
보혁 총집결, 보수의 승리
12월 19일, 대선 당일. 예상과는 달리 대단히 높은 투표율을 보이며 야권은 고무된 표정이었다. 그러나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박근혜 50.1%, 문재인 48.9%로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점치자 분위기는 다시 역전.
어느 정도 개표가 이뤄진 이후부터 줄곧 무난하게 박근혜가 앞서는 결과가 나오며 새누리당의 표정은 상기된다. 서울의 투표함이 열리며 2002 대선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으나, 서울의 표 차이가 적게 나타나면서 역전에 실패. 출구조사보다도 큰 차이로 박근혜가 꾸준히 리드하면서, 8시 50분경에는 박근혜의 당선 유력이, 9시 15분경에는 당선 확실이 보도된다.
최종 투표율은 75.8%. 득표율은 새누리당 박근혜 51.55%, 민주통합당 문재인 48.02%, 무소속 강지원 0.17%, 무소속 김순자 0.15%, 무소속 김소연 0.05%, 무소속 박종선 0.04%. 박근혜 당선의 주요 요인으로는 50대 이상 노년층의 압도적 지지와 수도권 및 호남을 제외한 지방의 강력한 박근혜 지지세, 경기도 외곽 지역 및 인천에서의 승리, 노년층에 어필한 경제관 및 안보관 등이 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