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전태일 열사 50주기
한국 노동계에 11월은 의미가 깊은 달이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투쟁이 있었던 달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라 더 의미가 깊다. 분신자살할 때의 그는 22살의 젊은이였다.
전태일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는, 1일 14시간의 작업 시간을 10-12시간으로 줄이고 1개월에 이틀뿐인 휴일을 적어도 일요일마다 쉬게 해 달라는 지극히 온당한 요구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노동권은 열악하다. 이런 열악한 노동권을 많은 사람들에게 환기하기 위한 공모전이 시작되었다.
한국노총 2020년 제2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상금 있음)
한국노총은 ‘2020년 제2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를 연다. 12월 13일까지이니, 아직 열흘 정도 남아 있다.
분야는 독후감 분야와 영상 분야. 독후감 분야는 청소년 부문과 일반 부문을 나누어 공모한다. 혜민스님 풀소유 논란 이후 ‘베스트셀러는 수준이 낮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럴 때 깊이 있는 책도 읽고, 용돈도 좀 벌어보면 어떨까? 1등은 무려 100만 원, 2등도 50만 원이다.
책도 보고 돈도 벌자, 독후감 지정 도서 9선 소개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독후감을 제출해도 되는 건 아니다. 지정도서는 다음과 같다.
책은 앞선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를 전달받는 가장 최적화된 도구다. 기술의 발전 속, 소외받는 노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고찰할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1. 전태일 평전 (조영래, 청소년 / 일반 공통 도서)
- 한줄평: 시대를 넘은 필독서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에 발을 맞추어, 인권변호사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이 청소년부와 일반부 공히 지정도서로 올랐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 투쟁으로 세상을 떠난 지 13년 만에 출간된 이 책은,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전태일 열사의 투쟁사를 조망하는데 가장 귀중한 사료이다.
2. 열 가지 당부 (이수정 외, 청소년부)
- 한줄평: 노동계 네임드 북콘서트
우리나라는 노동권에 대한 교육이 부실한 나라로 악명이 높다. 노동권은 당장 졸업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임에도, 너무할 정도로 교육이 부실하다. 이 책은, 청소년과 청년을 위해 만들어진 노동 인권 교양서이다. 직업인으로서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될 이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동법 이슈와 인권 상식을 ‘당부’의 형태로 담고 있다.
3.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노동 이야기 (오승현, 청소년부)
- 한줄평: 술술 읽히는 노동입문서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을 위한 노동 교양서다. 이제 곧 사회인이 될, 혹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아르바이트나 현장 실습 등의 형태로 사회에 나서게 될 학생들을 위해 꼭 알아야 할 노동 이슈들을 담고 있다. 개념뿐 아니라 최저임금, 알바 노동자 등, 실제 노동현장과 밀접한 이야기도 잘 담겨 있다.
4. 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오준호 외, 청소년부)
- 한줄평: 기본소득 아는 척하려면 필독서
이번 책은 최근 가장 뜨거운 ‘기본소득’ 이슈다. 책의 부제, ‘우린 모두 사회가 준 유산의 상속인’는 기본소득 철학을 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인류는 자연과 앞선 세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아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이 유산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동재산이다. 이런 세계관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5. 별난 사회 선생님의 수상한 미래 수업 (권재원, 청소년부)
- 한줄평: 온갖 상식을 한 권에 압축
권재원 선생님은 상당한 다작가인데 역사, 음악, 통계, 수학, 연극, 사상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왔다. 넓은 지적 토양을 바탕으로, 이 책은 미래에 닥칠 ‘위기’를 다룬다. 자동화와 AI 등이 일으킬 노동의 위기, 미디어 지형 변화가 일으킬 진실의 위기와 사생활의 위기, 인구구조 변화와 노년의 위기 등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비관과 낙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통찰로 능동적인 미래상을 그린다.
6. 철도원 삼대 (황석영, 일반부)
- 한줄평: 황석영,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황석영의 2020년 신작 소설이다. 이 이야기의 구상은, 1989년 평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평양백화점에서 현장 안내를 맡은 노인이 옛날식 서울말을 쓴다는 데 주목한 황석영은 그가 서울 영등포 출신으로 전국노동조합평의회 소속 철도 기관수였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이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황석영은 우리 근현대문학에, 근대 산업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문학계의 빈 자리와 더불어 한국 노동계에 헌정할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철도 노동자 삼대의 노동의 역사, 그리고 부당한 해고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투쟁의 역사가 펼쳐진다. 이는 단순히 삼대 세 사람의 노동자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한국 노동 백 년의 역사이기도 하다. 여기에 실존 노동운동가의 역사는 물론 여성운동사까지 함께 얽히며 소설 속에서 유창하게 흐른다.
7. 저 청소일 하는데요? (김예지, 일반부)
- 한줄평: 노동의 꿈과 의미를 아름답게 그려낸 만화
이 책을 상징하는 가장 좋은 문장은 바로 표지에 적힌 이 문장일 것이다.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작가 김예지는 ‘그림 그리기’를 꿈꾸며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줄줄이 낙방 후, 작가가 택한 길은 ‘청소’였다. 이 책은 ‘청소’라는 낯선 일을 시작하며, 작가가 외부의 편견은 물론 저자 스스로의 편견과도 싸워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8. 까대기 (이종철, 일반부)
- 한줄평: 택배 노동자의 있는 그대로의 삶
작가 이종철은 실제로 6년 동안 택배 일을 하며 만화를 그렸고, 그렇기에 현장 노동자만이 전달해줄 수 있는 생생한 경험이 만화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작품의 제목인 ‘까대기’란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뜻하는 은어다.
작가는 “택배 일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택배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 미련하다고 생각될 만큼 정직하게, 일한 만큼 돈을 벌어가는 사람들이라고. 투잡으로 ‘까대기’에 나선 이들의 이야기도 작가를 매혹했다고 한다.
9.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임진실, 일반부)
- 한줄평: 택배 노동자의 있는 그대로의 삶
이 이야기는 현장실습생이라고 불리는 청소년 노동자의 죽음이다. 그의 죽음을 중심으로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담아낸 르포다. 공정이니 뭐니 하며 청년 세대의 절망에 주목하자 하면서도 그 담론은 늘 수도권 대학생들, 화이트칼라들의 이야기에 국한된다. 그 속에서도 소외되는, 죽음을 통해서만 겨우 그 존재를 잠시 드러내곤 하는 사회의 주변인들의 이야기. 그래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라는 제목은 더없이 무겁다.
독후감… 쓰지 않겠는가?
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영상 분야도 있다. 여기는 1등이 200만 원! 물론 한국노총 공모전에서 1등한 게 기업에 가산점이 될까 걱정하는 분도 있겠지만, 노조 조직률이 높은 곳은 대개 대기업이다. 대기업 들어가기 힘든 세상, 노조가 환영하는 인재로 도장 받을 수 있다.
영상을 제작하기에 열흘은 좀 빡세지만 책을 읽고 독후감 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12월 13일까지, 주말에 책 한 권을 끝내고 글을 써보자. 수상하지 못해도, 그 독서의 깊이는 귀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