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노동을 하며 산다
‘노동’은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극소수의 금수저(…)를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노동을 하고 산다. 그럼에도 노동은 어딘가 어려운, 이야기하기 조금 껄끄러운 그런 화제로 여겨지곤 했다. 우리 삶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들 입에 올리기는 꺼리는 이야기.
2020년은 마침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 19 대유행뿐 아니라, 노동계의 상황 전반이 녹록치 않다. 노동법 개악 논란이 불거지고, 최저임금 인상 속도는 급격히 늦춰졌으며, 심지어 주 52시간제 등 이미 도입된 제도들마저 자꾸 삐걱거린다.
나와 내 주변의 노동 이야기, 한국노총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2020년은 노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해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노동조합총연맹인 한국노총이 특별한 이벤트를 열었다. 어쩐지 어려운 노동을 조금 친숙하게 만들어 줄 이 이벤트의 이름은 ‘난생처음 노동문화제’다. 작년에 이어 2회를 맞이한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행사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친근하게 노동의 의의,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어렵고 무거운 법이나 제도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내 일상 속 노동 이야기를 영상과 글로 자유롭게 풀어내는 것이다. 마치 보통 사람이 ‘난생 처음’으로 해 보는 것처럼. 그래서 난생처음 노동문화제인 것이다.
독후감 분야와 동영상 분야로 나뉘어 있다. 동영상 분야는 개인으로도, 팀으로서도 참여 가능하다. 노동을 사랑하는 13세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동영상 분야의 1등(1명/팀) 상금 200만 원, 2등(1명/팀) 100만 원, 3등(2명/팀) 50만 원, 특별상(1명/팀) 30만 원과 상패를 시상한다.
접수 기간은 11월 5일에서 12월 13일까지. 전문가 심사와 일반 심사(SNS 댓글 및 좋아요)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할 예정이다. 온라인([email protected])을 통해 접수 가능하며, 자세한 내용은 한국노총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제2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 개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코로나19로 인해 취업길은 더 막막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노총의 공모전은 관련 분야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공모전에서의 수상 기록이 내 노동을 위한 포트폴리오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노동 + 동영상, 어떤 얘기를 해야 하지?
형식에는 제한이 없다. 단편영화와 같은 오리지널 스토리 창작물,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은 물론 뮤직비디오, 1인 방송 형식이나 토크쇼 등 영상 하면 떠오르는 어떤 포맷이든 무방하다. 분량은 30초 이상, 5분 이내.
어떤 소재, 어떤 주제를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럴 때에는 온고지신이 제일 좋은 답니다. 1년 전 열렸던 ‘난생처음 노동영상제’의 수상작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감이 잡힐 것이다.
1등 한국노총상: <웃잡사(웃음을 잡는 사람들)> (인피니티 88)
무려 1등을 수상한 영상은 예능인의 꿈을 꾸는 무명 개그맨이자, 현재는 보안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영민 씨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미니 다큐멘터리다.
개그맨과 보안직원, 상반된 직업 안에서도 소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청년의 이야기다. 개그맨 지망생일 때는 편의점 도시락만 먹었지만, 직업을 가져서 핫바든 사이다든(…)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김영민 씨의 농담과 웃음이 백미.
가치 없는 일은 없다. 어디서든 활력 있고 주도적으로 일하며 보람과 행복을 찾길 바란다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모두가 반짝이는 ‘나만의 자리’를 찾길 바라는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2등 노동프렌들리상: <노동이냐 근로냐, 그것이 문제로다> (강성찬)
평범한 노동자 네 사람이 모여 독일, 프랑스의 초중등 노동 교육과정 문제를 함께 풀어보는 형태의 토크쇼 컨텐츠다. 헷갈렸던 노동의 개념을 쏙쏙 알려주는 콘텐츠다.
첫 도입은 근로와 노동의 개념 차이 설명으로 시작한다. 근로는 보통 ‘근로자의 날’ 같은 좋은 단어에, 노동은 흔히 중노동, 막노동처럼 부정적인 단어에 쓰이는 경우가 많아 근로가 노동보다 좋은 단어로 보이는 느낌이지만… 사실 근로는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이고, 우리가 보통 말하는 ‘일’의 개념을 말할 때는 ‘노동’이란 말이 좀 더 정확하다고.
어렵게 느껴지는 노동권 개념을 친숙하게 잡아주는 콘텐츠다. 외국에 비해 부실한 한국의 노동 교육의 현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우리의 사회 교육은 ‘근로’자가 되기 위한 교육인가, ‘노동’자가 되기 위한 교육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콘텐츠다.
3등 리스펙노동상
- <사북에서 바라본 우리의 노동> (청년정치크루)
- <퇴짜, 청년백수 전성시대> (치클무비랩 염주원)
- <내 삶의 노동이 더 가치있기를> (Worker)
<사북에서 바라본 우리의 노동> (청년정치크루)
<사북에서 바라본 우리의 노동>은 조금 무거운 소재를 다룬 기행기다. 탄광 경제의 흥망성쇠와 80년 4월 사북항쟁이 바로 그 주인공이기 때문.
주인공은 탄광 역사촌과 사북의 석탄역사체험장을 방문한다. 한국의 전후경제를 이끌던 빛과 불이었지만, 동시에 노동권이 유린당하던 시절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사북 광부들은 파업을 벌였으나, 언론은 ‘광부들의 폭동’이니 ‘유혈 난동’이니 하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그들을 폭도로 몰아갈 뿐이었다. 이제는 역사가 그들을 재평가해 민주화 항쟁 유공자로 인정받고 있지만, 지금도 저비용 고위험 노동환경은 여전히 심각하다. 다소 무겁지만 시대정신을 가장 정확하게 직격하는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퇴짜: 청년백수 전성시대> (염동수)
제목처럼 영화 <타짜>를 패러디한 가상의 영화 예고편 형식의 영상이다. 청년실업 문제의 심각성을 경쾌한 터치로 그려내고 있다.
하루 종일 이력서를 고치고, 곳곳으로 면접을 보러 다니며,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합격 통보를 기다리는 청년들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하지만 경쾌한 구성과 빠른 속도감, 유행어, 재미있는 연기가 버무러져 칙칙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청년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노동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내 삶의 노동이 더 가치 있기를> (Worker)
뮤직비디오 형태로 만든 감각적인 단편 영상이다. 아르바이트로 힘든 하루를 보내는 주인공이 일과 후 프랑스 여행 사진이 올라간 SNS피드를 보며 꿈을 다진다는 내용.
제작자는 ‘노동’이라는 용어가 청년들에게 너무 무거웠다며, 인식을 긍정적인 쪽으로 바꾸고 싶었다고 말한다. 다만 ‘노동’이라는 단어를 대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정면돌파하는 마음으로 노동의 성과와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노동은 무겁고 심각한 것만이 아니에요
어렵게 느낄 필요 없다. 노동은 그냥 우리의 삶 그 자체니까. 이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노총은 늘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오죽하면 2018년에는 당대를 풍미한 마미손의 ‘소년점프’를 패러디한 ‘노동점프’를 만들기도 했다고…
이외에도 한국노총 유튜브 페이지에는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가 업로드된다.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보여주는 ‘세상잡’, 팟빵에서 인기리에 선보였던 ‘노발대발’을 유튜브로 옮겨 온 ‘보이는 노발대발’, 직장 생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있긔없긔’ 등등등.
물론 쉽지는 않다. 뉴미디어의 주 소비층에게 ‘노동’은 썩 친숙하지 않은 소재니. 그래서 ‘난생처음 노동문화제’는 간극을 줄이기 위한 한국노총의 노력 중 하나다. 청년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을 꾸준히 쌓아 나가는 것 말이다.
공모전에 도전하고 싶은가? 무겁고 전문적인 이야기만이 해답은 아니다. 오히려 내 삶과 밀착된 이야기를 해 보자. 코로나19로 인해 취업길이 막힌 청년 세대 이야기, 흔한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마주하는 갑질의 얼굴들 같은 것 말이다. 가볍게 시트콤처럼 터치해도 된다. 유튜브 유행 공식? 얼마든지 써도 된다.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해 전태일 기념관 등에 방문하는 것도 가치 있을 것이다.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모든 일들이 곧 내 노동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내 노동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게 ‘난생처음 노동문화제’의 취지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