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필요해? 정부가 강제로 붙여줄게!
최근 앱 개발사들 사이에서 한창 난리인 법안 하나가 있다. 앱 개발사가 앱을 출시하려면 반드시 ‘모든’ 앱 마켓에 출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게임을 내고 싶거든 무조건 애플 앱스토어에도 내야 하고, 심지어 갤럭시스토어에 원스토어에도 출시해야만 한다.
이 개정안의 의도는 간단하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의 시장 지배력이 너무 압도적이니, 다른 앱 마켓에도 강제로 앱을 내게 해서 경쟁을 붙이자는 것이다. 이 무슨 대형마트 지배력이 너무 강하니 재래시장에도 강제로 제품을 납품하게 하는 법안인가 싶지만, 시장이 정말 저런 식으로 ‘교정’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국회의원 27명의 발의로 법안이 올라왔고, 지난 11월 9일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외우기는커녕 발음하기도 힘들다), 약칭 과방위에서 공청회가 열리기도 했다. 워낙 논쟁이 거센 법률안이라 공청회에서도 갑론을박이 꽤 거셌는데, 전문가들로부터 여러 각도로 뼈 때리는 얘기들이 나온 모양이다.
구글과 애플은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불공정행위를 벌이고 있는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왜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시장 지배력에 문제가 제기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는 서로 대체 가능한 스마트폰 운영체제로서, 단순히 독과점을 논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게다가 시장의 선택에 따른 자연스런 독과점 자체를 처벌하는 건 불가능하며, 이를 이용한 불공정행위가 있었을 때에만 규제가 가능한데, 현재 구글과 애플이 불공정행위를 하고 있다는 근거 또한 불충분하다.
이 논쟁의 계기는 이렇다. 최근 구글이 앱내결제(In-App Purchase)에 30%의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구글/애플과 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컨텐츠 업계 간의 ‘수수료 전쟁’이 촉발되고, 이것이 구글과 애플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진 상황이다. 간단히 말해, 이 수수료 30%가 과도하고, 이런 과도한 수수료를 징수할 수 있는 건 다 구글과 애플의 시장 지배력 때문이므로, 이들의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자, 30%의 수수료가 과도한가, 과도하지 않은가는 여기에서 결론을 지을 문제가 아니다. 사실 30%여도 좋고, 20%면 개발사들에겐 좋을 것이고, 또 40%라면 마켓 운영사에 좋을 것이다. 이건 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건 그냥 시장이 정할 문제다.
지난 과방위 공청회에서도 이런 맥락의 이야기가 나왔다.
앱스토어의 본질은 디지털 콘텐츠를 유통하는 상점입니다. 유통하는 상점이 입점하고 있는 기업에 수수료나 임대료를 받는 것은 일반적인 재산권 행사에 해당합니다. 앱스토어라고 해서 유통업자가 판매자에게 수수료를 징수하는 것이 부당하다거나 규제를 당해야 한다고 할 아무런 이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카이스트 경영대학 이병태 교수의 일갈이다. 이병태 교수는 계속 말했다.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소비자와 공급자를 직접 연결해주고, 결제 구조를 플랫폼 회사가 가져야 무임승차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론입니다. 유통은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이용하는데 수수료를 안 내게 해 달라는 것은 남의 재산권을 무임승차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행세라고 하는 주장은 비논리적이고 정당성이 없습니다.
많은 국내 언론은 국내 컨텐츠 제작사의 이익을 그대로 대변하여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수수료를 ‘통행세’에 빗대곤 했다. 그러나 ‘통행세’ 비유는 마치 애플과 구글이 조폭처럼 멀쩡한 길을 막아놓고 부당한 돈을 요구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안드로이드와 iOS,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앱스토어라는 플랫폼은 구글과 애플이 구축한 것이고, 이를 유지 보수하는 데에도 비용이 든다.
물론 플랫폼 사업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특히 모바일 사업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급변하기에, 선제적으로 규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규제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구글과 애플이 시장 지배력을 악용하여 적정 수준을 현저히 이탈하는 수수료를 징수하려 한다면, 혹 최소한 그런 낌새가 보인다면, 선제적 규제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구글플레이가 없었다면, 중소개발자의 글로벌 진출은 불가능했다
스타트업 개발사의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공청회에는 마침 2014년 설립된 스타트업 게임개발사 슈퍼어썸의 조동현 대표도 출석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가 촉발한 ‘글로벌 앱마켓’의 시대는 슈퍼어썸과 같은 중소규모 스타트업 기업에게는 굉장한 기회를 부여했다. 원래 해외 시장 진출이란 중소업체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도전이었다. 설령 배포 크게 해외 배포를 결정한다 해도, 글로벌 결제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해외 신용카드사 및 이동통신사, PG사와 접촉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각국 규제를 준수하며 사업을 전개해야 하는데, 이는 중소개발사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과업이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는 이런 과업을 한 번에 해결해준다. 글로벌 마켓을 통해 앱을 배포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고, 각 국가의 규제 및 법령을 준수하며 사업을 전개할 수 있게끔 인프라를 제공하는 등 글로벌 사업 전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조동현 대표는 말한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같은 글로벌 앱마켓은, 저희와 같은 중소개발자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조동현 대표는 특히 중요한 부분을 지적한다. 이렇게 억지로 앱 마켓 간 경쟁을 붙여 봤자 중소개발사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조동현 대표는 최근 국내외에서 촉발된 ‘수수료 전쟁’ 또한 ‘와닿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강제로 사용한다기보단, 콘텐츠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개발 비용 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업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좀 더 들어보자.
실제로 저희 슈퍼어썸의 매출은 모두 모바일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지난 3분기 전체 매출의 약 6%가량만이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의 결제 수수료로 지불되었습니다. 한국만 한정해서 본다면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물론 비용 절감을 할 수 있는 기업들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제 수단을 자유롭게 붙일 수 있는 대형사들이나 인력 활용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는 해외 게임사에게 보다 유리하게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수수료 30%는 독점적 지위 남용이 아니라, 그냥 원래 있던 약관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 ‘수수료 전쟁’을 촉발한 30%라는 수수료가 갑작스러운 게 아니란 것이다. 이건 원래 구글의 정책 가이드라인에도 명시되어 있던 것이다. 다만 적용에 일종의 유예를 두고 있었을 뿐이다. 애플이 처음 앱스토어를 시작할 때부터, 수수료 30%는 사실 고정적이었다.
혹 어떤 사람들은 구글과 애플이 지배적인 사업자가 된 만큼 커진 시장 규모를 생각해 수수료를 낮춰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개발사와 컨텐츠 제작사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수수료를 더 낮추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행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조동현 대표도 이 부분을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수수료 비율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7:3이었습니다.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수수료가 인상되었다면 부담이 되었겠지만, 시장지배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수수료가 인상되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의 마켓이 동등하게 30% 수수료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정안은 오히려 스타트업과 중소규모 기업의 부담을 가중한다
공청회에서 조명희 의원이 지적하는 부분도 중요하다. 기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시장 마케팅이 비교적 자유롭기를 바란다. 과도한 법안이 시장을 제약하면 기업의 활동도 제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에 새로이 진입하려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규제에 대체로 부정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이 개정안은 복수의 앱 마켓에 앱 출시를 강제함으로써, 개발사에 오히려 부담을 전가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디지털 콘텐츠도 새로운 유통 경로를 추가하려면 비용이 필요하다. 별도의 빌드를 만들고 관리해야 하며, 고객 응대도 다 따로 돌아가야 한다. 결제 모듈도 따로 관리해야 한다. 인적 자원이 그만큼 추가로 투입되어야 한다. 스타트업이나 인디 개발자, 중소규모 개발사들에게는 어려운 부담이다.
공청회에서 정희용 의원은 “동등접근성이 적용되어 다수의 앱 마켓에 입점한다면 매출이 증가할 것이라 생각하느냐”고 질문한다. 이에 대해 조동현 대표의 대답은 이렇다.
매출은 새로운 유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매출 증가분보다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클 겁니다.
마켓별로 별개의 빌드를 만들고, 등록하고, 결제를 검증하고, 유지 보수하고 고객 피드백에 대응하고… 이런 모든 과정이 다 비용인 것이다. 심지어 이런 비용은 처음 앱을 등록할 때뿐만이 아니라, 업데이트할 때마다 발생한다.
그래서 조 대표는 이렇게 분명히 말한다. 어떤 앱 마켓에 앱을 등록할 것인지는, “기업과 개인의 선택 영역인 것 같다”고 말이다.
국가가 억지로 경쟁을 유발한다고 성공하는 사례는 없다
법안이 대기업들만을 대상으로 시행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외국 기업의 외국 게임들도 원스토어 출시를 강제할 것인가? ‘슈퍼 마리오 런’ 처럼 앱스토어 독점으로 먼저 출시되었던 게임이나, ‘애플 아케이드’ 처럼 아예 특정 플랫폼 독점을 내걸고 나온 서비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서비스들은 그냥 한국 출시를 포기해버리지 않을까?
무분별한 규제는 원했던 효과는 못 얻고 국내 시장을 갈라파고스로 만드는 효과만 낳을 수 있다. 이병태 교수의 일갈이다.
담합은 당연히 어느 나라나 처벌을 합니다. 하지만 독점이라고 처벌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스토어가 여러 개 있으면 수수료가 낮아질 것처럼 예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법을 만든다고 구글과 애플에 경쟁하는 원스토어가 커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이건 거대한 착각입니다. 중국처럼 아예 구글을 못 들어오게 하는 나라를 빼놓고,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이는 소비자가 선택한 독점이기 때문입니다.
법의 목적도 불분명… ‘원스토어’ 장려법 되어선 안 돼
애당초 이 법안의 목적 자체도 불분명하다. 공청회에서 황보승희 의원은 “대한민국 국민 입장에서”는 자국내 동종 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지 않느냐며, 인큐베이팅 단계에서 적절한 보호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사실 이건 더 위험한 발언이다. 어떻게 들으면, 이 법안의 목적이 ‘원스토어’ 장려법이라는 커밍아웃으로 들리기도 한다. 법으로 무언가를 강제하는 게, 특정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하지만 지금 개정안은 결국 ‘원스토어’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준밖에는 되질 않는다.
원스토어의 운영사가 어디인지를 알면 이는 더 황당해진다. 네이버와 통신3사다.… 위피라는 구닥다리 플랫폼으로 한국 모바일 업계의 갈라파고스화를 불러일으켰던, 이런저런 명목으로 50% 가까운 수수료에 게임 하나 다운받을 때마다 수천 원의 통신비를 뜯겨야 했던 그 시절, 그 지옥 같은 통신환경을 낳았던 주범 말이다. 이에 대해 이병태 교수는 말한다.
입법의 목적이 불분명합니다. 원스토어,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기업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건지, 컨텐츠나 앱 개발하는 개발자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건지,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건지를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경쟁 앱스토어를 키워서 국내 업체의 유통을 높인다는 것은 실현될 수 없는 정책 목표입니다. 법을 만들어서 강제로 올려라, 10대, 20대가 리니지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다운 못 받는 소비자가 어디 있습니까.
리니지 같은 대형 게임은 지금도 원스토어에 올라와 있다. 다만 아무도 원스토어를 쓰지 않을 뿐이다. 그건 구글의 시장 지배력 때문일 수도 있고, 통신사의 원죄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원스토어가 소비자들에게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