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릉 무장공비가 가장 먼저 찾은 음식이 광어다
“못 사는 남한에 광어회가 있겠느냐”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유일하게 생포된 북한군 무장공비 이광수. 그는 생포된 뒤 “광어회를 먹고 싶다”는 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왜 이런 이야기를 했냐 하니…
광어회는 고급 음식이다. 생포된 뒤 ‘뭘 먹고 싶으냐’고 묻기에, ‘못 사는 남한에 광어회나 있겠느냐’는 심정에서 그처럼 대답했다.
- 이광수, 공식 기자회견에서
말하자면 가난해서 고급 어종 광어회를 먹을 수 없는 남한 사람들을 놀리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는 것. 물론 1996년만 해도 남북한 GNP 차이는 10배 정도였다. (지금은 45배 정도)
2. 남한에 고급회 광어가 잔뜩 있는 이유는 양식의 성공이다
하지만 무장공비 이광수의 생각과 달리, 한국에서 광어회는 이미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광어 양식이 대중화되어 있었기 때문. 1980년대에 시작한 광어 양식은 1990년대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 이전까지 광어는 한국에서 고급 회였다. 지금 광어가 저렴한 것은 광어의 맛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맛이 좋고 한국 환경과 잘 맞아서 빠르게 양식에 성공한 결과다. 광어는 옛날부터 다양한 횟감 중에서도 돋보이는 감칠맛과 좋은 식감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3. 양식과 자연산, 광어 맛의 차이는 전혀 없다
나름 특급 간첩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던 것일까. 이광수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이것이 자연산이냐 기른 것이냐”를 물었다고 한다. 이에 수사관들이 “그러면 당신네는 무엇을 먹느냐”고 묻자, 이광수는 “우리는 자연산이 아니면 안 먹는다”고 대답했다고.
광어는 자연산과 양식을 구분하는 법이 매우 쉽다. 자연산 광어는 배 부분이 하얀색인 반면, 양식 광어는 배 부분에 검은 얼룩이 나타난다. 물론 접시 위의 회 친 광어만 가지고서는 구분하긴 힘들다.
맛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자연산과 양식 광어를 구분할 방법은 더욱 없어진다. 자연산이 양식보단 나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온갖 속설들이 있긴 하다. 자연산이 식감이 좋다거나… 하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을 때, 정답률은 50% 수준에 불과했다. 말이 좋아 50%지 찍은 거랑 정답률이 똑같았다는 얘기, 그러니 말 그대로 구분이 ‘전혀’ 안 된다는 소리다.
4. 양식 광어가 더 안정적 맛을 낸다
오히려 양식 광어가 더 나은 점이 있다. 맛의 품질이 균일하다는 것. 충분한 사료를 공급받으며 천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으니, 자연산보다 살코기가 두툼하고 영양이 살에 충분히 쌓이게 된다.
광어회의 별미 중 하나는 흔히 ‘엔가와’라 부르는 광어의 지느러미살이다. 살짝 기름지면서 부드럽게 올라오는 감칠맛이 일품인데, 이 역시 양식 광어에서 훨씬 두툼하게 썰려 나온다. 반면 아무래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는 자연산 광어는 지느러미살이 충분히 두툼하게 발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느러미살 마니아들은 실망할 수도…
5. 가을겨울 광어가 찐인 이유: 산란기를 피하라
여느 횟감 생선이 그렇듯 자연산 광어도 3–8월까지, 봄여름철에 맛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 광어가 산란 철이기 때문. 영양이 알에 집중되면서 살코기의 맛은 떨어진다. 산란 철이 끝나고 가을, 겨울철이 되면 자연산 광어의 맛도 올라오는 것.
6. 맛있는 광어는 자연산이 아닌 큰 광어다
광어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냥 광어의 크기 자체다. 크기가 클수록 지방이 많이 차 있어 감칠맛과 씹는 식감이 좋아지기 때문.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게 ‘대광어’. 보통 2kg 이상, 더 크면 3kg 이상의 광어를 지칭하며, 같은 무게를 기준으로 작은 광어의 약 1.5배 정도 시세를 형성한다.
7. 감칠맛을 원한다면 광어를 숙성해 먹으면 된다
한국에서는 원래 대부분 활어회를 먹어왔는데, 최근에는 ‘감칠맛’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만 하루 이상 숙성한 선어회의 소비도 늘어났다. 회는 시간을 들여 숙성할수록 이노신산이 늘어나 감칠맛이 올라온다. 다만 하루가 지나지 않으면 사후경직으로 단단한 느낌이 나기에 하루를 삭혀두는 것.
8. 광어는 태생적으로 살이 많아 가성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국민 횟감’이라는 면 때문에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광어는 감칠맛에서는 어떤 어종도 따라오기 힘들다. 여기에 살코기 수율이 워낙 높아서, 광어 한 마리를 회 뜨면 절반이 살일 정도다. 다른 생선의 거의 두 배다.
같은 무게의 회를 주문했는데 광어가 훨씬 양이 많아 보이는 게 그런 이유다. ‘많아 보이는’ 게 아니고 실제로 그냥 ‘많은’ 거다. 같은 무게의 생선이면 실제로 광어가 살코기가 훨씬 더 많이 나오니까.
9. 광어는 온갖 요리가 가능하다
사실 광어는 여러 요리에 모두 출중한 맛을 내는 전천후 식재료다. 오히려 ‘광어는 회’라는 선입견에 갇혀 광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가려진(?) 느낌이랄까.
서더리 매운탕의 주된 재료로 사용될 정도니, 일단 탕으로도 물론 훌륭하다. 하지만 그보다 추천할만한 조리법은 조림이나 찜 요리. 오늘 기분 좀 내고 싶다 하면 스테이크로 굽는 것도 좋다.
조림과 구이, 탕은 ‘맛남의 광장’에서 백종원이 선보인 세 가지 요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백종원이 보여준 요리는 광어구이와 광어 조림, 광어 미역국 등. 회로 먹어도 감칠맛이 살아있을 정도니, 굽거나 조리거나 찌는 등의 방식으로 조리까지 하면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감칠맛이 확 살아날 수밖에.
또 튀김으로도 좋다. 흰살생선 특유의 담백한 맛에 살코기가 두툼하고, 수분이 많아 튀기면 아주 부드럽게 완성되기 때문이다. 두툼하게 손질된 큰 살코기를 생선까스로 바로 구워내거나, 살짝 두툼하게 썰어내 피쉬앤칩스로 즐기는 것 모두 추천.
마무으리. 광어를 살립, 아니… 코로나로 힘든 어민을 살립시다
최근 광어는 연어 등 경쟁 어종의 대두 등으로, 광어 양식업계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백종원의 ‘맛남의 광장’이 그런 양식업계에 도움이 되기 위한 취지에서 제주 올레시장을 찾기도 했다.
사실 정말 아까운 일이다. 다른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질 높은 생선을 이렇게 값싸게 먹을 수 있는데, 그 미식의 세계가 이렇게 가려진다는 게.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양식을 너무 잘해서 희소성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렇다는 건 더욱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뽕이 아니다. 다른 횟감들은 일본 등 외국 양식기술이 더 뛰어난 경우가 많은데, 유독 광어만은 그냥 한국이 찐이다. ‘국민 횟감’이란 말이 따라붙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세계 최고 품질의 광어가 유통되기에, 굳이 수입해올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요즘 시대에 맞게 영양성분 체크. 당(탄수화물)이 다이어트와 성인병의 주된 적이란 사실이 상식으로 통하는 요즘, 광어의 영양성분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기왕 고단백식이라면 붉은 육류보다 흰살생선이 좋다는 건 상식. 심지어 광어는 단백질 비율이 닭가슴살 수준으로 높은 데다, 적은 칼로리로 높은 포만감을 주는 거의 완벽한 다이어트 식품이다.
회로서도 완벽하지만, 조림, 튀김, 탕, 정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게 광어라는 생선이다. 횟집에서는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 전화주문 등을 통해 손질된 회나 필렛을 구하기도 쉬워졌으니, 광어 배달 한번 어떨까. 오늘은 한번 새로운 광어에 도전해보는 게 어떨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외국에선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최상급 재료가 한국에만 유독 넘쳐나는 게 바로 광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