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역사 덕후가 박유하 교수가 이슈화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여, 차가운 커피와 함께 간단한 인터뷰를 가졌다.
꼬인 한일관계 청산, 한국 정부의 책임도 크다
리: 안냐세요. 박유하 교수 논문은 보셨나요?
덕: 봤지요.
리: 어떻던가요?
덕: 별로더라고요.
리: 뭐가 별로에요?
덕: 근거가 빈약하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역사적 사연이 있어서 이렇게 되었다는 모두 생략하고, 우리가 용서해야 발전적 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식이니.
리: 그래서 결론은 폐기?
덕: 아뇨. 전 솔직히 결론에는 동의해요. 용서해야죠. 언제까지 한일관계가 이렇게 어그러져 있으면 곤란해요. 이거 경제 문제만이 아니라, 안보 문제이기도 한데.
리: 그러면 질문, 어떻게 하면 일본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덕: 박유하 논문의 논리는 굉장히 빈약해요. 하지만 전 질문을 좀 의미 있게 바꿔야 한다고 봐요. “뭣 때문에 한일 관계가 이렇게 엉망이 됐나?”로.
리: 누구의 책임입니까?
덕: 1차적 책임은 당연히 침략국인 일본 잘못이고… 최종 잘못도 역시 침략국인 일본 책임이죠. 그런데 지금처럼 반일, 혐일, 반한, 혐한까지 나오는 데까지는 한국 정부의 병크가 상당히 컸어요.
일본이 독일보다 모범적으로 배상한 것은 사실
리: 어떤 병크인가요?
덕: 이게 지금까지 문제의 핵심인데, 흔히 한일협정이라 하는 “한일기본조약”이에요.
리: 아… 일본이 사과하고 배상했다는 그 근거가 되는 조약 말이군요.
덕: 그렇죠. 이게 지금까지 한일관계 개선을 막는 원천 조약이나 다름 없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리: 대체 조약을 어떻게 짰기에 그런 거죠?
덕: 제가 물어 보죠. 일본 애들이 이미 사과하고 배상 다 했다고 하죠. 이거 맞는 말 같아요?
리: 전 어려서 아무 것도 몰라요.
덕: 한일기본조약에 따르면 맞는 말이에요. 거기 보면 식민 지배기에 생긴 모든 피해에 대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규정이 있어요. 그러니까 서류적으로는 다 끝난 게 맞죠.
리: 우와!!! 그런 미친 조약을 왜 맺은 거죠?
덕: 그런데 한국이 그때 정말 거지 나라였거든요. 당시 기준으로 GDP가 30억 달러였어요. 그런데 일본으로부터 지원 받은 게 무려 8억 불이었어요. 당시 일본 외환보유고가 14억 불이었으니 엄청난 돈을 쓴 건 사실이죠. 어쨌든, 그 돈이 포스코를 만드는 등 한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입니다.
리: 다른 나라가 받은 배상에 비교하면 어떤가요?
덕: 다른 나라보다 더 크죠. 차이가 있다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이렇게 퉁치는 계약이 없어서, 하나하나 따지면서 배상해 나가고 있죠. 그리고 식민지국에 배상해 준 나라가 일본밖에 없기도 해요.
리: 흔히 모범적인 사례로 독일이 언급되지 않나요?
덕: 아니오. 일본과 달리 독일은 배상 안 했어요. 나치 쪽으로만 배상했고, 전쟁 피해국에 돈 안 줬어요. 특히 아프리카 애들은 그냥 무시했죠. 얘네 얼마나 불쌍하게 뜯겼는데, 그냥 황폐화 시켜놓고 분쟁만 일으키는 꼴이 됐죠.
리: 나쁜 놈들이네요?
덕: 생각보다 많이 나빠요. 독일 애들 매뉴얼 극찬하는데, 이게 좋게 말해서 그런 거지, 생각이 없어요. 전쟁에서는 사람이 아니야. 실제 법정에서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명령 받은 거 따랐다고 다 증언하고 그랬어요.
리: 그래도 일본은 교과서에도 안 다루는데, 독일은 공식 사과하지 않았었나요?
덕: 사과도 무진장 한정적이죠. 그리고 일본 입장에서도 사과는 수 차례 했고, 돈까지 냈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독일에 비해 많이 한 것은 맞아요.
독도를 지키려는 이들조차 탄압하게 만든 한일기본조약
리: 아무튼, 일본 입장에서는 한일기본조약으로 다 끝인 건데 한국이 자꾸 딴지 거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건가요?
덕: 음… 사실 한국의 병크는 한 번에 퉁치기로 처리하다 보니 애초에 피해자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은 거에요. 얼마를 받는지는 둘째 문제고, 일단 피해 상황을 제대로 조사하고 청구해야 아구가 맞지 않겠어요? 그런데 한국은 당장 돈이 급하니까 그냥 무시한 거죠. 그리고 이게 진짜 헬게이트를 낳은 게…
리: 낳은 게?
덕: 일제 강점기가 길어서 피해자가 아주 널려 있었어요. 그런데 조사를 제대로 안 했으니, 일본에서 받은 돈이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지도 않았어요. 그럼 누가 먹었냐? 정부에서 다 먹고 극소수의 피해자, 그것도 정부에 가까운 사람들이 나눠 먹은 거죠. 정치자금으로도 많이 흘렀어요. 참고로 그거 핵심은 김종필이고.
리: 애국 정부가 아니라 매국 정부인 건가요?
덕: 뭐, 경제적 문제가 있을 테니, 거기까지는 차치한다고 해도 독도 같은 경우에는 정부가 입밖에 못 나오게 막기까지 했죠. 요즘 독도 시끄럽잖아요. 그게 언제부터인지 아세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가 나온 80년대부터에요. 사실 그때는 좀 약했고, 김영삼 정부 들어서 본격화 됐죠.
리: 왜 이전에는 이슈화되지 않은 거죠?
덕: 이슈화는 고사하고 박정희 시대에는 오히려 독도를 지키고자 한 사람들이 자국정부에 의해 탄압당하는 쪽이었어요. 홍순칠이 독도의용수비대 대장이에요. 울릉도 출신으로 6.25때 참전했다가, 53년부터 56년까지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고 이끌어요. 박정희 초기에는 근무공로훈장도 받았는데, 이 사람이 72년에 독도 수비 강화해서 실효지배력 키우라 한다. 그러자 73년 중앙정보부 끌려가서 독도 우리 땅이라고 떠들지 말라고 고문 당했죠.
또 북한방송에서 남한의 홍순칠 동무가 일제로부터 독도를 지켰다는 방송을 때려요. 그러니까 전두환이 잡아가서 간첩으로 만들어 버려요. 결국, 전두환 때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리다 86년에 사망했죠. 또 “독도는 우리땅” 노래도 처음에는 가처분신청, 금지곡 된 적이 있어요. 전두환은 아예 독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죠 우리 땅인데 우리가 못 갔어요.
리: 오… 왜 그 전 정부는 일본에 대해 세게 나가지 않았을까요?
덕: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먼저 그럴 상황이 아니었어요. 먹고 살기 더럽게 바쁜데…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외부 세력이 필요했는데, 80년대까지는 그게 북한이었거든요. 70년대까지는 북한이 우리보다 더 잘 살았어요. 오죽하면 거기서 전력 공급도 받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공동의 적이 사라지고 나서 외부의 적을 찾게 됐는데, 그게 종군 위안부, 독도 등과 겹치며 일본이 되어 버린 거죠.
리: 또 하나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덕: 그게 바로 한일기본조약에 있어요. 사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독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해요. 둘 다 자기 땅이라 생각하는데, 별 관심 거리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독도 가지고 이슈화가 되면 이제 기본조약 겨우 맺은 상태에서 무진장 피곤하잖아요. 그래서 서로 언급하지 말자고 미리 협정에다 박아 둔 거죠. 어차피 그때는 독도 하나가지고 티격태격할 상황도 아니니까.
리: 그런데 왜 문제가 된 거죠?
덕: 한국에서 먼저 걸고 넘어진 거죠. 아까 말했듯 외부의 적도 필요하고, 또 김영삼이 지르는 거 되게 좋아하잖아요. 실제로 김영삼이 홍순칠에게 보국훈장 삼일장 훈장 줘요. 그러니까 이제 일본은 조용히 있기로 해 놓고 왜 그러냐고 따지고 드냐고 그러면서 문제가 커진 거죠. 사실 독도 문제는 이슈화 되지 않는 쪽이 한국에게도 유리해요. 오랫동안 점유한 만큼 유리해지기도 하고, 이슈화가 안 되면 아무도 분쟁 지역인지도 몰랐을 거니까.
한국 정부,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리: 위안부는 어땠나요?
덕: 관심도 없었죠.종군위안부라는 호칭 자체가 세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중반부터에요. 그 전에는 솔까말 정신대로 통일이었죠. 약간 정부 입장을 실드 치자면… 우리가 알아야 할 게, 그때 한국은 인권 국가가 아니었어요. 그냥 인권 개념도 없었죠. 전쟁 통이니 그럴 수도 있고, 저것들 전쟁 때 살려고 그냥 몸 판 년들이다… 이런 시각이 그냥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위안부 문제가 여성학 쪽에서 접근이 이뤄졌던 거고.
리: 그런데도 참 일본에 시비 안 걸고… 우리 국민이 착했던 겁니까, 무시했던 겁니까?
덕: 조약의 비준 및 조인 자체도 사실 당시에 반발이 엄청 심했어요. 반공코드와 질 살아보세, 그리고 월남전 등으로 그냥 묻힌 거죠. 그리고 아예 조약에 그렇게 써 뒀어요. 너무 시끄럽게 하지 말자고.
리: 그렇게 서로가 빡쳐 가며 관계가 악화된 건가요?
덕: 국민 하나하나한테 일해라 절해라 하는 건 웃긴 것이고, 처음 이야기했듯 1차 책임자이자 최종 책임자가 일본인 것은 맞죠. 그런데 사태를 이렇게까지 키운 책임의 상당 부분이 한국 정부에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정권이 피해자 무시하고 일본에게 돈 받고 자기들끼리 배분했으니까요. 이처럼 한국 정부가 해온 짓에 대해 언론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죠.
또 교육도 마찬가지로, 아까 교과서 이야기 했지만 한국 교과서 보면 한일기본조약에 대해 제대로 안 써놨잖아요. 일본 교과서만 가지고 뭐라 할 건 아니에요. 우리도 잘못된 거 잡아나가야 하는데… 지금처럼 감정이 격화된 상태에서 잘 될지 모르겠네요.
리: 그럼 우리 어떻게 하나요?
덕: 나도 몰라요. 그런데 한일기본조약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가 주장하는 것들을 모두 관철시키려면 이걸 전면무효화하고 1965년 6월 이전으로 돌아갈 각오가 있어야 해요. 애초에 잘못된 시작이었으니까, 제대로 된 끝맺음이 있기는 힘들겠죠.
리: 끝으로 박유하 교수의 주장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덕: 박유하 논리가 엉망이기는 한데, 한국에서 죽일 년 취급할 자격 있냐고 묻는다면, 전 사실 없다고 봐요. 이게 순수하게 일본이 사과, 배상 안 해서 생긴 문제냐, 첫 단추 잘못 낀 거냐… 라고 묻는다면 전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싶네요. 물론 1차적으로, 최종적으로 일본 책임이죠. 하지만 우리 내부에서는 박정희 정권 때 있었던 일을 제대로 청산하고 알릴 필요는 있겠죠.
리: 님 덕력 쩌네요.
덕: 아무튼 저는 문민정부 이후 정부가 유지해 왔던 반일 코드에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보는 편이에요. 언론과 학계도 여기에 대해 좀 방기한 부분이 있고요. 사실 이건 덕이 아니라 역사 좀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다 알지만, 그 어느 권력집단도 알리려 노력하지 않았죠. 엔하위키만 가도 잘 정리돼 있어요.
리: 엔하위키가 덕이 만드는 위키죠.
덕: ……
Isabel marant schuheThe Thing That Makes Fast Braces Un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