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강자의 횡포’에 대한 ‘약자의 저항’이 아니다
모바일 앱 시장을 둘러싼 수수료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7월, 구글은 자사의 앱 시장 플랫폼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유통된 앱에 대하여, 앱내 결제에 대해서도 수수료 30%를 부과하기로 하고 이런 내용을 국내 인터넷 업체들에 설명했다.
이런 구글의 조치에 대해 국내 컨텐츠 업계들은 수수료 30%가 과도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내의 많은 언론은 이런 컨텐츠 업계들의 시선을 적극(!) 반영하여, 구글의 이런 요구가 ‘통행세’나 다름없는 ‘횡포’ 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 했던가. 사실 구글의 요구를 ‘통행세’에 견주며 ‘횡포’로 표현하는 국내 언론의 논조가 그리 공정한 것은 아니다. 구글의 요구가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지만, 국내 컨텐츠 업계를 불의에 저항하는 약자 포지션에 놓고 보는 것도 많이 곤란하다.
이건 사실 본질적으로 컨텐츠 유통에서 나오는 수익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갈 것인가 – 더 나아가, 모바일 앱 시장에서 누가 주도권을 가질 것인가를 두고 다투는 ‘헤게모니 투쟁’에 가깝다.
결제수수료 30%
우선 결제수수료 30%. ‘수수료 전쟁’을 낳은 이 숫자는 사실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이건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과 앱 스토어를 내놓고 ‘스마트폰 시대’를 열어젖혔을 때부터, 앱 결제 수수료 30%는 시장의 규칙처럼 자리잡았다. 구글은 심지어 통신사와 수익을 분배하면서도 여전히 앱 결제 수수료 30%를 유지하며 ‘갓구글’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개발자들은 30%의 결제수수료를 크게 환영했는데, 이는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앱 시장의 수수료가 그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일단 명목상의 결제수수료는 15% 수준이었으나 실제로 사용자들에게 앱이 제대로 노출되려면 4-50%까지 높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지옥으로 가는 버튼’으로까지 불렸던 핸드폰 인터넷 버튼은 엄청난 통신료를 사용자들에게 부과했다.
그 지옥도와 비교하면… 스마트폰 앱 시장의 30% 수수료는 앱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의 놀라운 편의성, 속도, 보안 및 결제 솔루션 등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합리적인 수준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스마트폰 등장 이후 모바일게임 업체들은 ‘7:3’ 비율을 이른바 ‘황금율’ 이라고 부르며 ‘제대로 된 콘텐츠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고 환호하기도 했다. (참고: 머니투데이 기사)
심지어 당시에는 구글과 애플이 지금처럼 ‘지배적인 플랫폼’을 형성하고 있던 시절도 아니다. 앱 스토어가 등장했을 그 무렵만 해도 대세는 여전히 피처폰이었다. 노키아가 여전히 세계 1위 기업이었고, 한국에서는 아이폰 3GS가 수입되고 나서도 ‘햅틱폰’ 시리즈가 더 많이 팔리던 시절이다. 30%는 스마트폰 시장을 자리잡게 하기 위한 일종의 당근이었던 것이다.
구글의 이번 요구 또한 갑작스런 것이 아니다. 결제수수료 30%는 그동안 계속 있었던 약관이다. 다만 디지털 컨텐츠의 인앱 결제에 대해서는 유예하고 있던 것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하겠단 얘기일 뿐이다. 무슨 영세한 개인사업자도 아니고, 네이버나 카카오급의 대형 사업자들이 기존 약관을 모르고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디지털 컨텐츠에 대한 30%의 수수료가 과도하다는 것도 핑계에 가깝다. 가장 대표적인 디지털 컨텐츠 산업인 게임을 예로 들어 보면, 앱 스토어, 플레이 스토어는 물론 스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플랫폼들이 20~30% 대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심지어 수수료 전쟁을 촉발시킨 라인이나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누가 구글의 수수료 정책에 영향을 받는가?
애플은 이미 자사의 모바일 운영체제 iOS의 ‘앱 스토어’에서 같은 수수료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유료 앱을 구매할 때와 마찬가지로 인앱 결제에도 자사의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도록 하고, 결제수수료로 30%를 떼어간다.
즉 모바일 컨텐츠 업계들은 애플 iOS에서는 애플 인앱 결제를 적용하면서, 구글 플레이에서는 구글 인앱 결제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 iOS에서 내는 결제 수수료를,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도 똑같이 낼 수는 없단 식이다. 모바일 컨텐츠 앱들은 그래서 안드로이드 앱에서는 아예 인앱 결제를 쓰지 않거나, 다른 외부 결제 수단을 앱 내에 탑재하여 결제수수료를 회피한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함의가 하나 있다.
앱애니(App Annie)는 세계 최대의 앱 분석 플랫폼으로, 모바일 앱 시장의 데이터와 트렌드, 시장 경쟁 상황, 사용률과 참여도, 점유율, 전환율 등 세밀화된 지표를 제공하고 있다. 앱애니를 통해 iOS 앱 스토어에서 가장 높은 매출들을 올리는 앱들을 검색해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톱 매출’을 올리는 이들 앱들 중, iOS에서는 애플 인앱 결제를 사용하면서 안드로이드에서는 구글 인앱 결제를 사용하지 않는 앱들을 찾아보자. ‘톱 매출’ 30위권 내에서 이런 앱들을 골라보면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웹툰, 웨이브, 네이버 시리즈, 스푼라디오 등이 있다. 상위 300위권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다음 웹툰, 벅스, 네이버 시리즈 온, 지니, 네이버 엔드라이브, 플로, 위버스, 카카오뮤직, 바이브 등이 여기에 추가로 포함된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이들 앱에서는 대체로 공통점이 하나 엿보인다. 네이버(라인 포함), 카카오, 그리고 SKT / KT등 통신사 계열 앱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 결국, 공룡 기업들 얘기다. 네이버, 카카오, 통신사 같은 ‘공룡 기업’들이 구글 인앱 결제를 도입하기 싫다며 ‘통행세’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건 결국 헤게모니 다툼일 뿐이다
작금의 ‘수수료 전쟁’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네이버나 카카오, 통신사 같은 대기업들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그냥 대기업이라서가 아니다. 네이버나 카카오, 통신사 등은 컨텐츠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컨텐츠 퍼블리셔이자 플랫폼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급성장했고, 앱 스토어와 플레이 스토어를 통해 전세계에 다양한 컨텐츠를 유통하면서 글로벌 사업을 벌이고 있다.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시리즈, 다음 웹툰, 시리즈 온, 카카오뮤직 등이 모두 컨텐츠 퍼블리싱을 주사업으로 하는 하나의 ‘플랫폼’이다.
결국 이건 플랫폼으로서의 헤게모니 싸움인 것이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라는 ‘플랫폼’에 내는 수수료를 아끼게 되면, 카카오와 네이버가 ‘플랫폼’으로서 거둘 수 있는 수수료는 극대화된다.
게다가 위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카카오와 네이버도 퍼블리셔로서, 또는 플랫폼으로서 20-30%대의 수수료를 거두고 있다. 스스로는 플랫폼으로서 수수료를 거두면서 구글 플레이 스토어라는 플랫폼에 내는 수수료는 ‘통행세’ ‘횡포’로 빗대는 것은 모순이다.
심지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통신사는 ‘위피’가 지배하던 피쳐폰 시대, 앱 유통에 과도한 수수료와 통신료를 징수하던 바로 그 주체였다. 그야말로 모바일 앱 시장의 암흑기, 모바일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을 온몸으로 틀어막던 그 시대 말이다. 아이폰의 앱 스토어와 안드로이드의 플레이 스토어가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모바일 앱 시장의 가능성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을 것이다.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 시리즈, 웨이브와 시즌, 플로와 시즌. 이런 컨텐츠 플랫폼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유무형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러니 그들도 적정한 수수료를 책정하고 컨텐츠 생산자로부터 그를 징수하는 것이다. 이 수익은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플레이 스토어는? 앱 스토어는? 심지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모바일 앱 시대를 연 2000년대 최고의 발명품들이 공짜로 만들어졌을 리 없다. 시대를 바꾼, 그래서 이젠 아예 우리 삶의 ‘디폴트’가 되어버린 플랫폼들이다. 카카오나 네이버가 적정한 수수료를 거두는 것이 정당하다면 애플과 구글이 적당한 수수료를 거두는 것도 당연히 정당해야 한다.
인앱 결제 수수료 30%의 영향을 받는 건, 단 1% 뿐
또 한 가지 짚어볼 부분은, 인앱 결제 수수료 30%의 영향을 받는 건 전체 앱의 단 1% 뿐이라는 것이다.
90% 이상의 무료 앱은 구글플레이에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앱을 유통할 수 있다. 디지털 컨텐츠의 경우에도, 무료 컨텐츠들은 수수료 없이 얼마든지 유통할 수 있다. 또 쇼핑이나 배달, 택시 서비스를 비롯한 실물 재화 / 서비스 업종도 수수료를 따로 낼 필요가 없다. 구글이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은 오직 유료 디지털 컨텐츠 유통에 대해서 뿐이다.
플랫폼에도 정당한 몫이 제공되어야 한다.
카카오페이지와 시리즈가 그렇듯이, 앱 스토어와 플레이 스토어에도 마찬가지다.
구글플레이의 지원 국가는 세계 190개국. 여기에 한국의 컨텐츠 서비스들이 구글플레이 빌링을 이용해 유료 컨텐츠를 수출하고 있는 국가 수는 45개국 이상에 달한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빌링은 한국에서만 해도 신용카드, 통신사 간편결제, 페이코 /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와 문화상품권 등 수많은 결제 수단을 제공하며, 세계적으로는 300개 이상의 결제 수단을 지원하고 있다.
컨텐츠의 힘은 물론 중요하다. 카카오, 네이버 등이 세계로 진출하고 성공한 건 당연히 컨텐츠 그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앱 스토어나 플레이 스토어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의 힘이 없었다면, 190개국에서 서비스되며 300개 이상의 결제 수단을 제공하는 강력한 ‘플랫폼’ 그 자체의 힘이 없었다면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과업이었을 것이다.
결국 다시 살펴보더라도, 이건 대기업들이 컨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사업에서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벌이는 싸움일 뿐이다. … 뭐, 소비자로서는… 누가 헤게모니를 쥐게 되든지 단기적으론 큰 상관없는 문제긴 하다. 애플이든 구글이든, 카카오든 네이버든, 우리가 걱정해주기엔 너무 큰 회사들이니까.
하지만 이건 시장의 룰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 시리즈가, 웨이브와 지니가 컨텐츠 플랫폼으로서 적정한 대가를 손에 쥐어야 한다면, 플레이 스토어와 앱 스토어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 룰이 없다면 대체 누가 플랫폼을 구축하겠는가? 대체 누가 뭐 하러 아이폰을 만들고 안드로이드를 만들고, 우리의 삶을 바꿀 혁신을 만들어낼 것인가? 결국 혁신의 열매는 무임승차하는 해적들의 것으로 전락하고, 그 어떤 기업도 아이폰과 앱 스토어, 안드로이드와 플레이스토어 같은 혁신에 나서지 않게 될 것이다.
어느 정도 수수료가 적당한가, 플랫폼은 컨텐츠 제공자들을 위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떻게 플랫폼을 유지 보수해야 하는가… 당연히 논의는 많을수록 좋다. 한 번 혁신적인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지배적인 플랫폼에는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해야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게 수수료 자체가 부당하다는, 앱 스토어와 플레이 스토어라는 플랫폼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수준이 되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건 사실 어쩌면 헤게모니 다툼조차도 아니다. 그냥 노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