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세상이다. 통신과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IT 기술들이 생활 깊숙히 들어오면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들이 나타나고 있다. 주민등록 등본을 비롯한 각종 행정업무들을 이제는 집에 앉아서 컴퓨터를 통해 받을 수 있게 됐고 세금납부와 연말정산 등도 모두 인터넷을 통해 가능하다. 과거에는 직접 발품을 팔거나 혹은 정보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던 일들이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일들을 집에서 처리할 수 있고 심지어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을 통해서도 가능해졌다.
사회전반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이제 IT 시스템들이 쓰이는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기업들이 매출과 재고, 회계 등을 처리하는 것도 IT 시스템이고 카드사들은 고객들의 카드사용 내역을 분석해 개인별로 할인서비스를 차등화한 맞춤형 카드를 선보이기도 한다. 정부에서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에 앞서 실제 구축 이후의 효과를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 역시 전문 소프트웨어를 통해 처리한다.
초중고 공교육은 물론 사교육 현장까지도 이러닝과 스마트 패드, 디지털교과서 등 IT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추적, 분석해 학교별로 학생들의 학업 성적을 얼마나 올리고 있는지 그 성과를 분석해 학교별 순위도 공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모두 IT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등 주요 IT 부문에서 지난 수십년간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네트워크는 1, 2, 3세대를 거쳐 LTE로 대변되는 4세대(4G) 통신망으로 진화하고 있고 CPU와 반도체 등의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은 서버, 슈퍼컴퓨터 등 연산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웹 기술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서비스와 소프트웨어가 인터넷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IT 기술들은 앞으로도 더 많은 발전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제품과 서비스를 쏟아낼 것이다. 휘는 전자책과 실시간 번역기 등 지금은 영화나 책속의 상상 속 모습도 하나둘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IT는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기본 전제가 되고 있다. 앞으로 IT와 생활이 접목된 어떤 새로운 서비스와 제품이 나올지 지금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
그러나 한가지 근본적인 물음을 우리는 놓치고 있다.
과연 IT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하고 있을까? 세상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바로잡고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충분히 활용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성과만 놓고보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쉽지 않다.
IT 시스템을 이용해 카드 사용내역을 분석하고 새로운 카드상품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영업자의 탈세를 막고 고소득자에게 합당한 세금을 매기는 일은 상대적으로 훨씬 지지부진하다. 개인의 각종 금융활동을 자동으로 평가해 신용등급을 산출하는 정교한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금을 공급해 경제를 살찌우는 순기능보다는 불법대출, 리베이트 등 과거 수기로 운영하던 은행 시절에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이지고 있다. 디지털 교과서와 국가장학금 소득분위 산정 등 IT 기술을 적용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논란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든 가능하게 할 것만 같은 IT 신기술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왜 세상은 더 행복하고 정의롭게 바뀌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용도로 사용되기에는 현재의 기술수준이 아직 모자라기 때문일까.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일부 소재와 유전공학 분야의 한계가 뚜렷한 분야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방식과 관련된 기술 분야는 이미 그 발전 속도가 더뎌질 만큼 고도로 진화된 상태다.
하드웨어가 대표적으로 과거 IBM 메인프레임으로 대표되던 고성능 컴퓨팅 제품은 이미 더 저렴하고 유연한 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고 일반 PC를 서로 연결해 슈퍼컴퓨터에 버금가는 성능을 내는 기술도 이미 구글 등이 적용해 활용하고 있다.
웹 기술의 경우 액티브X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 기술만 써야했던 시기가 있었으나 이 역시 표준 기반의 대체 기술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고 최근에는 HTML5처럼 휴대폰과 PC, 태블릿PC 등 다양한 기기에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차세대 웹 기술도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발전이 계속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IT 시스템들의 핵심은 사실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이라는 소프트웨어 제품이다. 카드결제 내역과 같은 수십억~수백억건 분량의 방대한 데이터 더미 속에서 일정한 경향성을 찾아내 이를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로 데이터베이스다.
데이터베이스 기술 역시 과거에는 오라클 등 일부 다국적 기업의 전유물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관련 기술이 전세계로 확산, 평준화되면서 이제는 큐브리드와 티베로 등 국산 데이터베이스 제품도 통신과 금융 같은 대용량 데이터 관리에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을 언급하지 않아도 현재의 IT 기술이 충분한 수준에 다다랐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봐도 명확하다. 세금정책을 사례로 놓고 보면 저소득층에 대한 감세 등 선별적 정책을 IT 시스템을 통해 시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 즉 차별적 정책이 가능하다는 반증이다. 소득원 추적 시스템을 투명하고 촘촘하게 강화하는 것은 또다른 과제지만 현 시스템 내에서도 충분히 공평과세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적인 기반은 갖춰진 셈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닌 의지와 철학이다
결국 IT 기술이 세상을 더 정의롭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적인 한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지와 철학의 문제다.
IT가 정치적인 색깔을 갖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공평과세를 실현하지 못하는 IT시스템은 역설적으로 탈세에 능한 사람들을 보호 혹은 방관하고 있다. 개인의 신용평가 시스템과 경제활동 내역 분석 시스템은 경제의 선순환 대신 일부 기업과 그 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데만 더 충실히 활용되고 있다. 첨단 통계이론이 집약된 고가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정부의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사업효과를 왜곡하고 부풀리는데 활용된다.
IT 민주화(IT Democratization)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IT 민주화는 이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는 첨단 기술들이 소수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를 더 정의롭게 하는데 쓰여질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이해하고 시스템을 수정하는 작업이다.
한가지 긍정적인 것은 IT가 더이상 일부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검색과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이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영역과 기술에 대해 충분히 더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블로그와 SNS가 활성화되면서 IT 전문가들의 화법도 훨씬 대중적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IT 기술 자체가 표준화, 패키지화되가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Cloud Computing 이라는 일련의 기술 흐름이 대표적인데 포탈사이트의 메일 서비스처럼 필요한 IT 서비스를 이용하고 사용한 만큼 지불하는 방식이다. 클라우드의 등장은 IT 시장 자체가 가전시장처럼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세탁기와 TV, 에어컨을 구매하면서 액정 기술, 촉매제, 모터 구동방식 등을 신경쓰지 않는다. 기능과 가격, 용도에 따라 제품을 비교해 구입을 결정한다. 클라우드의 등장은 IT 서비스가 전혀 어렵지 않고 충분히 대중적인 기준에 따라 비교, 선택할 수 있는 단계로 진입하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IT의 문턱을 크게 낮추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IT는 정치와도 비슷한 측면이 많다. 아는 만큼 더 자세히 보이고 또 보이는 만큼 바꿀 수 있다. 클라우드의 확산 등으로 IT의 문턱이 낮아지는 것은 곧 사회 시스템에 대한 논의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변화는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인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고 최근 몇년간 뚜렷한 후퇴조짐이 보이고 있는 정치 민주화를 되돌리는 데도 매우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IT 기술은 그 자체로 만능이 아니다. 요술봉은 온갖 기묘한 기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착한 마법사 손에 들어 가느냐, 나쁜 마법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쓰임새가 크게 달라지는 것과 같다. 결국 IT는 도구일 뿐 성과를 만드는 것은 철학과 의지다.
원문: MovD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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