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고미 요시오: 빔산토리 한국 지사에서 일하는 고미 요시오라고 합니다. 빔산토리 한국 지사의 유일한 일본인이고, 현재 하이볼 마케팅 업무를 담당합니다.
리: 고미… 가 일본어로 쓰레기 아닙니까…
고미 요시오: 맞습니다. 어릴 때는 그걸로 정말 많이 놀림 받았지요(…)
리: 한국에서 하이볼은 성과가 좀 좋았나요?
고미 요시오: 네, 제 덕분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2013년 가쿠빈이 한국시장에 처음 런칭되었는데, 작년 2019년에는 그때보다 50배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리: 우와… 큰 성장이군요. 이를 위해 뭘 했습니까?
고미 요시오: 기본적으로 이자카야 시장 자체의 성장이 컸습니다. 이자카야가 커지면서 자연히 하이볼 시장도 성장했습니다. 일본에서 하이볼은 한국의 소주, 맥주처럼 어느 가게에 가도 있거든요.
리: 그렇다면 여기에 본인의 기여는…
고미 요시오: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지요. 한국 온 이후, 매일 같이 하이볼만 마십니다. 하이볼이 들어갈 가게가 보이면, 몸으로 뛰며 방문했지요. 그래서 제가 먹고 싶은 걸 저녁에 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매일 같이 하이볼 마시러 가야 하니까… 뭐, 그 밖에도 하이볼 프로그램, 하이볼 제조기, 디지털 마케팅에 SNS 운영 등… 특히 불매운동 때는 더욱 가게에 열심히 다녔던 것 같습니다.
리: 그러고 보니 불매운동 타격은 좀 없었나요?
고미 요시오: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타격이 컸죠. 사람들이 애초에 이자카야에 가질 않았으니까요. 캔맥주는 완전 바닥 찍었고, 호로요이도 타격이 컸죠. 그나마 요즘 동물의 숲 덕택에, 불매 분위기가 좀 줄어서 다행입니다. 닌텐도에 감사해야죠.
한국인과 결혼하고, 한국을 좋아해 한국에 남고자 한 일본인
리: 한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고미 요시오: 와이프가 한국인입니다. 산토리 들어가기 전에 파나소닉의 인재 양성 학교? 그런 곳에서 3년간 전 세계를 누비며 공부하고 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부평 대우자동차에서 일하다가 길에서 영어나 일본어 할 줄 아느냐고 말 걸었는데, 일어일문학과 졸업했다 하더라고요.
리: 결혼은 순탄했습니까?
고미 요시오: 다 좋은데… 집사람이 남자는 군대 안 가면 남자가 아니라 해서… 한일관계를 증진하자는 이상한 프로그램을 통해 해병대에 2주간 간 적이 있습니다.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일본인이었죠. 전혀 즐겁지 않았지만, 그들과 지금까지 연락하는 걸 보면 군대란 게 신기하긴 합니다.
리: 산토리는 어쩌다 입사하게 됐습니까?
고미 요시오: 한국에 2년 머무르며 정도 들었고, 한국에 진출할 수 있는 회사를 모색했죠. 일본 대부분 회사는 이미 한국에 진출했기에, 나중에 좀 더 제가 메인으로 진출할 기회가 열릴 회사를 찾았고, 그게 산토리였습니다.
리: 그나저나 산토리도 아니고 빔산토리는 어떤 회사죠?
고미 요시오: 위스키로 유명한 짐 빔(JIM BEAM)을 산토리에서 인수합병하여, 사명이 ‘빔 산토리’로 바뀌었습니다. 짐 빔 하이볼에 들어가는 위스키 짐빔이 여기 제품이지요. 산토리는 주류 이외에도 음료수, 레스토랑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빔 산토리는 세계 3위 주류 회사로 위스키와 하이볼에 주력합니다.
리: 산토리는 왜 짐 빔을 인수한 거죠?
고미 요시오: 당시 산토리가 글로벌 진출에 대한 의지가 크기도 했고 하이볼 조합이 너무 좋았습니다. 산토리의 가쿠빈이 엄청나게 히트를 쳤고, 이후 다양한 하이볼 조합을 시험했습니다. 그 중 짐 빔 하이볼이 너무 맛이 좋게 나와서 아예 인수까지 해 버린 거지요.
하이볼은 토닉 워터보다 탄산수를 섞어야 맛있는 이유
리: 산토리에서 하이볼 비중은 어떻게 되나요?
고미 요시오: 산토리의 태생은 위스키 회사이지만, 산토리를 살린 건 하이볼입니다. 1980년대 일본 경제가 워낙 좋아서 위스키 인기가 엄청났죠. 그런데 버블 꺼지고 외국에서 싼 위스키가 들어오며 인기가 확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위스키 시장을 다시 성장시키기 위해 꺼낸 카드가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하이볼입니다. 이게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죠.
리: 하이볼 자체를 산토리에서 만든 건가요?
고미 요시오: 전 세계적으로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대중에게 보급한 건 산토리의 역할이 컸습니다. 하이볼을 언제 어디서나 맛있게 즐길 방법을 연구하고 보급했죠. 기존에는 위스키와 탄산수를 임의로 섞었다면, 산토리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동일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기계까지 만들었습니다.
리: 한국 하이볼과 일본 하이볼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고미 요시오: 일본에서는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습니다. 반면, 한국은 주로 단맛이 나는 토닉 워터를 섞지요. 물론 다양하게 드시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산토리는 하이볼 제조 공식에 자신감이 있는 만큼, 탄산수를 섞는 문화를 보급하려 노력 중입니다.
리: 산토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더 맛있는 이유가 뭔가요?
고미 요시오: 하이볼은 물이 아닌 탄산수를 씁니다. 여기서 핵심은 탄산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차가워야 해요. 위스키도 유리잔도 차갑게 하고, 얼음도 사이즈가 있어야 하지요. 대충하면 탄산이 빠르게 나가고 하이볼 특유의 맛을 즐길 수도 없지요. 사장님들께 이걸 잘 지키도록 교육하는 것도 제 주요 역할입니다. 위스키 1/4, 탄산수 3/4에 레몬은 바닥에 깔고… 이런 간단하지만 중요한 원칙을 안 지키면 그 맛이 안 나오니까요.
하이볼 장인 고미 부장님이 알려주는 하이볼 제조법
고미 요시오: 토닉워터는 단맛이라서 금방 물립니다. 마치 콜라를 계속 마실 수 없는 거랑 비슷하지요.
‘하이볼 명가’로 지정된 술집에서는, 최고의 하이볼을 맛볼 수 있다
리: 산토리가 탄산수도 보급하나요?
고미 요시오: 일본에서는 판매하는데 한국은 아직입니다. 아무래도 제조나 유통에 여러 힘든 점이 있어서요. 그래서 요즘은 아예 하이볼 서버라는 기계를 보급합니다. 하이볼을 쉽게, 언제 어디서든 같은 맛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기계이지요. 금액이 좀 되는데, 하이볼 명가에는 무료로 대여해드립니다.
리: 하이볼 명가? 그건 뭐예요?
고미 요시오: 음식을 정말 맛있게 한다, 싶은 가게에 하이볼 서버를 보급 중입니다. 모든 술이 그렇듯, 하이볼도 음식을 더 맛나게 하잖아요. 그래서 음식이 맛있는 곳에 하이볼 서버를 넣어주고 사용법을 알려드립니다. 이 기계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같은 맛으로 산토리 제조법에 맞는 하이볼 맛을 느낄 수 있지요.
리: 이미 시작한 프로그램인가요?
고미 요시오: 서른 군데 이상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이자카야 위주로 보급 중인데, 아니라도 점주님이 관심이 많다거나 음식과 조합이 좋은 가게에도 들어갔니다. 예로 ‘금돼지식당’이라는 삼겹살집에도 들어가 있어요. 사실 하이볼은 맥주보다 이익률도 높아서 관심 가지는 사장님들은 계속 늘어났니다. 그런데 하이볼을 위한 부대시설 설치가 힘든 곳이 있어서 다 받아들이지는 못했죠.
리: 정말 지겹도록 하이볼과 다른 음식을 먹을 텐데, 어떤 안주와 조합이 좋나요?
고미 요시오: 기름기 많은 음식과 잘 어울리지요. 간단히 이야기하면 탄산수와 섞은 거잖아요. 치킨이나 피자 먹을 때 콜라 시키는 거랑 같은 이치죠. 마찬가지로 이자카야에도 가라아게 같은 기름기 가득한 음식이 많고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서양에서도 대중화되는 하이볼
리: 일본에서는 하이볼이 잘 나가나요?
고미 요시오: 한국의 쏘맥 같은 존재지요. 어디든 있습니다. 이자카야, 가라오케, 바…
리: 그러면 산토리의 하이볼 말고 경쟁사 하이볼도 많겠군요.
고미 요시오: 네, 하지만 산토리의 점유율이 압도적입니다. 애초에 하이볼은 경쟁보다 산토리의 리드로 생겨난 시장입니다. 2008년 위스키가 너무 떨어지니까 되살리려 하이볼 프로젝트를 한 거죠. 아사히 등도 하이볼을 하지만, 가쿠빈과 짐빔이 하이볼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의 주점은 보통 맥주와 위스키를 같은 회사 하나만 넣습니다. 하지만 산토리 하이볼은 어디나 있지요. 시장의 80% 정도가 산토리의 가쿠빈과 짐빔입니다.
리: 가쿠빈, 짐빔 외에 다른 하이볼도 판매하나요?
고미 요시오: 짐빔에서 같이 넘어온 모든 과정을 손으로 하는 ‘메이커스마크’ 위스키 하이볼도 점점 인기입니다. 가쿠빈이나 짐빔보다야 비싸지만, 고가보다는 중급에 가깝습니다. 일본에서는 아예 프리미엄으로 야마자키, 하쿠슈, 히비키를 하이볼로 즐기는 분들도 많습니다.
리: 중국에서도 일하셨다 들었는데, 중국에서도 하이볼이 인기가 있나요?
고미 요시오: 한국만큼은 아닙니다. 주류 시장은 경제성장과 관계가 깊습니다. 경제성장이 이뤄지기 전에는 즐기기보다는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경우가 많죠. 일본도 예전에는 스트레이트로 많이 마셨지만, 탄산수를 섞은 하이볼이 대세가 되어가죠. 한국도 선진국이라 점점 빡센 술에서 벗어납니다. 반면 중국은 아직까지 술은 독하게 먹는다는 생각이 많죠.
리: 미국이나 유럽 시장은 어떤가요?
고미 요시오: 하이볼을 마시는 사람은 마시지만, 성격들이 급해서인지 스트레이트나 레몬에 얼음 넣어 먹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열심히 영업하는데 그만큼 성과가 나오진 않네요. 오히려 그쪽은 야마자키나 하쿠슈 같은 고급 위스키들이 더 잘 나갑니다. 산토리에서는 여기에 꽤 만족하는 편입니다. 먼저 시작한 서양에서도 산토리의 고급 위스키가 인정받은 셈이니까요. 일본에서는 이걸로 하이볼도 만들곤 합니다.
계속해서 한국에 하이볼 문화를 보급하는 것이 꿈
리: 한중일 3개국에서 일해 봤는데, 어디가 일하기 좋고 나쁘던가요?
고미 요시오: 나라별 특성보다도… 일본 회사인 산토리와 미국 회사인 빔산토리는 문화가 좀 많이 다릅니다. 빔산토리는 브랜드보다 실적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산토리는 아직까지도 전통 일본 기업처럼, 모든 사원이 회사와 함께 간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래서 좀 더 브랜드에 관해 깊게 생각하게 되지요. 어디가 좋은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외국계는 정말 다르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리: 산토리가 좀 답답한 기업이란 느낌도 드네요.
고미 요시오: 확실히 좀 옛날 회사라는 느낌은 있지요. 하지만 그만큼 사원에 대한 책임감도 강한 회사입니다. 예를 들어 산토리의 HR 규정에는 구성원이 성과를 잘 내지 못한다면, 그건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회사의 책임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리: 앞으로 목표는 무엇입니까?
고미 요시오: 저야 당연히 한국에 하이볼을 더 잘 정착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이미 빠르게 성장했지만, 아직도 하이볼에 많은 욕심과 미련이 있습니다. 더 많은 이자카야와 고깃집 등에서 하이볼을 마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리: 직장인이라면 목표는 임원 아니겠습니까?
고미 요시오: 열심히 하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보다 지금 한국에서 하이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너무 좋아요. 일본 사람이 가게 가서 한국어로 “잘 부탁합니다” 인사하고 다니며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것도 재밌고요. 보통 다른 위스키 회사들은 그냥 돈으로 영업하려 하는데, 산토리는 레시피 교육에 기계와 홍보 등 다양한 지원을 해줘서 좋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하이볼을 보급할 수 있었겠지요.
리: 하이볼 말고 다른 술 업무를 맡아보고 싶진 않나요?
고미 요시오: 맥주는 이미 한국에서 불매운동으로 망한 것 같고(…) 전통주는 애초에 산토리나 아사히 같은 대기업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금지된 건 아닌데, 뭔가 대기업이 골목상권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라…
리: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고미 요시오: 이 기사가 나갈 때쯤이면, 정기 전환배치로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이기에 자주 찾아오고자 합니다. 제가 없더라도 앞으로도 산토리 하이볼 많이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