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서울국제도서전 ‘XYZ:얽힘’에 참여하는 글입니다.
인류세는 세금이 아니다
최근 ‘인류세’라는 새로운 단어가 자주 눈에 띈다. 사실 이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인류에게 매기는 세금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보니 인류세의 ‘세’는 ‘tax’의 의미가 아닌, 시대나 시기를 뜻하는 ‘世’였다. 그러니까 발음도 [일류쎄]가 아닌 [일류세]가 맞다.
인류세는 지질학적 시대 구분을 뜻한다. 지질시대는 지구가 탄생한 선캄브리아대부터 시작하여 육상 식물이 출현한 고생대, 공룡이 살던 중생대, 포유류가 등장한 신생대로 구분된다. 우리는 신생대 중에서도 제4기 홀로세(Holocene)에 산다. 그렇다면 인류세(Anthropocene)는 어디쯤일까? 바로 지금이다. 아직 공인되지는 않았지만, 홀로세가 끝나고 이미 인류세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인류세는 환경 문제다
우리가 어느 지질시대에 속해 있는지 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인류세’를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이유가 있다. 인류세는 곧 환경 문제를 뜻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인해 지구환경이 파괴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인류세의 출발이다. 인류세라는 용어를 처음 제기한 파울 크루첸(Paul Crutzen)은 인류세의 시작을 ‘산업혁명’으로 본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1784년에 지구의 순환에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때부터 지구가 파괴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물론 인류세라는 용어에 공감하지 않는 과학자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인간이 지구에 미친 영향을 측정해 시대를 구분 짓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 환경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지구의 45억 년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불과 몇십 년 동안 바꿨다. 지금부터 노력한들 예전의 지구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인류세는 지구가 되돌릴 수 없는 어떤 경계를 넘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인류세를 만들어낸 주범,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다. 플라스틱은 무엇보다 싸고, 가볍고, 쉽게 모양을 만들 수 있어 널리 이용된다. 하지만 인류 최고의 발명품처럼 여겨지는 플라스틱이 바로 인류세를 만들어낸 주범이다. 플라스틱은 자연 분해가 어려워 짧게는 450년, 길게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공룡의 화석으로 그 시대를 추측하는 것처럼, 인류가 멸종하고 난 이후에는 플라스틱 화석이 인류를 대변할 것이라 한다. 플라스틱 입자는 지구에 그대로 쌓여 지질학적으로 관찰 가능한 지층을 만들기 때문이다.
코에 일회용 빨대가 꽂힌 채 해안가로 떠밀려 온 바다거북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플라스틱은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인식해 사용량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플라스틱은 단 9%만 재활용되고, 12%가량은 소각된다. 나머지 80%가 땅에 매립되거나 바다로 간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해되면서 바닷속을 떠다니는데, 이 미세 플라스틱을 해양생물들이 먹고 자라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에게 돌아온다.
인간중심주의가 문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는 관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인간중심주의와 생태 중심주의다. 생태 중심주의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고 파악한다. 그렇기에 인간만의 이익보다는 자연 전체의 균형을 중시한다. 반면,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을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면서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관점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인간중심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이제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은 ‘신(新) 인간중심주의’나 ‘탈(脫) 인간중심주의’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우리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세』(2018)를 쓴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은 인간의 존재만을 최고로 여기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강한 힘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 바람직한 지구환경을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신인간중심주의’이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여기서 더 나아가 ‘탈인간중심주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동등한 행위자로 보며, 이 둘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학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인류세는 인간에게 강한 책임감을 부여한다. 인류세는 인간이 강한 힘을 가졌으므로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자연 앞에 미약한 존재였던 인간은 이제 없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힘과 영향력이 무한대로 늘어났고, 이제 인간은 지구를 보호해야 할 위치에 놓여있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2019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지구 온난화에 어른들이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한 바 있다. 툰베리 외에도 전 세계의 MZ 세대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촉구한다. 지구 온난화의 책임을 젊은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세대 간 차이는 있지만 결국 지구를 이렇게 만든 주체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도 인간이다. 인류세는 우리에게 책임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XYZ는 알파벳의 끝, 인류는 최후를 향해 간다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는 기후변화가 낳은 팬데믹”이라고 진단하고,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모두 같이 무너진다”라고 경고했다. 인간중심주의에서 탈피해 인간 외 모든 종과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환경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인류세 화두는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만든다. 이러한 성찰을 기반으로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간의 행동에 의해 생태계가 좌우되는 시대인 인류세는 앞으로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제시하는 담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인간의 능력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기도 하다.
원문: 슈뢰딩거의 나옹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