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패했다. 개혁-진보 세력의 패배다.
사람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는다. 문재인, 친노, 민주당, 지역, 세대 등 수많은 원인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경상도의 고정 지지율이 있으니 원래 필패라는 비관적 분석도 있다. 모든 분석이 의미가 있다.
다만 내가 흥미롭게, 동시에 비관적으로 본 것은 ‘태도’의 문제다. 왜 ‘태도’가 문제되지 않는가? 예로 이정희. 이정희가 진보적인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준 건 사실이다. 허나 이는 나이 든 어른들 눈에는 그저 ‘머리 좋다고 싸가지 없이 구는 년’으로 비칠 뿐이다. 학교 다니면서 그런 친구들이 어떤 대우 받는지는 우리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정희 : 최저임금을 올려야 이분들 월급이 올라가는데, 8월 7일날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박 후보께 이런 질문, 왔었죠? 최저 임금 얼만지 아시냐. 대답 못 하셨는데,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최저임금 얼만지, 내년 최저임금은 얼만지, 또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 얼만지. 그동안 좀 파악 하셨는지요.
박근혜 : 예… 그… 최저임금과 관련해가지고, 그 당시에… 어, 그… 아르바이트 하는데 평균 시급이 얼마냐고 이렇게 제가 들었습니다. 원래 저한테 온 질문이 아니고 옆에 질문이 갑자기 저한테 넘어오는데, 저는 평균 시급이라는 걸로 생각을 하고 , 어… 그렇게 얘기를 해서 그때 장면을 보시면 알 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다 이미 설명이 나갔는데 그때 아마 그것을 잘 못 보시고 어… 잘못된, 그… 정보만 갖고 얘기를 (헛기침) 하시는 것 같습니다. 최저, 임금에 대해서, 그 모른다는 거는 말이 안 되죠.
이정희 : 얼마죠?
박근혜 : 4천580원.
이정희 : 내년에는요?
박근혜 : 4천860원…
이정희 : 네… 최저임금 못 받는 노동자는 몇 명인가요?
박근혜 : 근데 이런 그… 대선후보 토론에 나와 가지고 이 스무고개 하듯이 ‘이거를 상대가 모르면 골탕을 한 번 먹여야지’ 하는 식으로 계속 스무고개 하듯이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별로 그렇게 바람직한 대선 토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미래에 큰 비전을 놓고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희망을 드리고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건가, 이런 것을 얘기하기도 바쁜데 스무고개 하듯이 ‘요거는 얼마, 조거는 얼마’ 그러면서 계속 그런 식으로 하게 되면 이건 뭐 학교에서 응, 선생님하고 뭐 그 저기 학생들이 ‘너 이것 숙제 해왔냐’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느낌을 받아서, 국민들도, 대선 후보 토론이 좀 이상하지 않냐…
이정희 : 궁금해하시는 서민들 말씀 전해 드렸습니다.
이정희는 이미 ‘국민쌍년’이 되었으니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좌빨’과 ‘깨시민’은 어떨까? 여기서 언급하는 이들은 이정희와 마찬가지로 품위를 잃고 정념을 가감 없이 쏟아낸 이들을 이야기한다. 아마 일반인이 보기에는 매한가지였을 테다. 감정이 지나쳐 비판을 넘은 욕설과 감정 배출로 점철된, 그리고 그런 글들이 추천되고 리트윗되며 널리 퍼지는 모습.
혹자는 죽어라 조기숙, 공지영, 서영석을 씹었다. 나꼼수를 씹은 사람들도 많았다. 역으로 공지영의 팬도, 나꼼수의 팬도 많았다. 조기숙의 팬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쪽에서는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냐고 말하고, 한쪽은 너희 때문에 망하니까 그만 좀 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두 입장은 때로 뒤바뀐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매몰되어 ‘품위’를 잃은 모습은 일반인이 보기에 매한가지로 추하다. 학창시절 양아치들을 떠올려보자. 자기들 나름의 문화가 있지만, 보통 학생들은 그걸 쿨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눈살을 찌푸리고 평범한 학생들끼리 쉬는시간에 씹을 뿐이다.
나는 이번 선거가 누구의 책임인지 모르겠다. 다만 박근혜 지지자들이 좀 더 얌전하고, 품위있어 보였을 것이다. 적어도 웹에 기록이라도 적게 남겼다. ‘상식’이라는 말에 반발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굳이 멋내지는 않더라도 좀 더 품위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건 사회생활을 해본 대다수의 사람들의 상식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마치 동사서독간의 대결을 연상케 하는 김종인과 윤여준의 토론을 보자.
손석희 : 두 후보 모두 사실 지금 또 한 가지는 서민하고 민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서로를 향해선 또 서민과 민생을 논할 자격은 없지 않느냐, 이렇게 문제제기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누가 서민과 민생을 위한 후보인가, 두 분께서 보시기엔 어느 분이 더 적합한 분이라고 보시는지 이번에는 김종인 위원장께 먼저 드리겠습니다.
김종인 : 제가 보기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당연히 서민이 부자보다 훨씬 많아요. 우리나라도 보면 20:80정도 이렇게 되기 때문에 표를 먹고서 자라는 이런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선거 때만 되면 서민위주의 모든 정책을 내세울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양 후보가 다 똑같이 서민위주 뭐 중산층을 갖다 예를 들어서 박근혜 후보가 70%로 다시 만들어보겠다, 이제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하는 것은 만약에 이제 그런 식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 우리 현 사회가. 만약에 그걸 방치했을 경우에는 이 사회가 하나의 갈등구조 속에 빠져서 경우에 따라선 폭발도 할 수 있는 이런 시점에 와 있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그 문제를 간과하고선 정권의 안정을 갖다 유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윤여준 : 그렇습니다. 그건 저도 전적으로 말씀에 동의하는데 다만 이런 차이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뭐냐 하면 자, 서민이라는 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얘기하죠. 우리말로 속되게 표현하면 춥고 배고픈 사람을 서민이라고 한다고 치면 전혀 춥거나 배고픈 걸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춥고 배고프다는 게 관념입니다.
손석희 : 관념에 머무를 것이다,
윤여준 : 관념이죠. 그런데 추워보고 배고파본 걸 경험해본 사람은 관념은 아니죠. 그런 차이는 있을 거라고 봅니다.
손석희 : 김종인 위원장께서는 혹시 재반론 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김종인 : 재반론이라기보다 윤여준 위원장님께서 박근혜 후보의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또 문 후보의 살아온 과정을 비교할 것 같으면 문 후보가 서민의 애환을 더 잘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은 자기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건 안 자랐건 간에 관계없이 그 문제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할 것 같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점에 있어서는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 별로 염려를 안 하셔도 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윤여준 : 그런데 인식은 그래야 되죠. 분명히. 인식은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런데 가슴 속에 있는 연민의 정이라는 게 있어요. 그렇죠? 인식이전에 마음이 가는 것, 그 연민의 정이죠. 춥고 배고픈 사람에 대한 연민, 내 처지가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이 늘 그런 사람한테 가는 것, 이건 연민의 정이거든요. 저는 그런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한다는 말씀입니다.
정치는 모든 일상이라는 말이 있다. 동의한다. 역으로 일상은 정치행위이며, 동시에 운동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은 행동부터 조심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욕설과 조롱으로 마구 치고 나가는 이들에 대한 경계심도 필요하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 중 상당수가 당신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공격에 매우 민감할 것이다.
나는 일상에서의 정치가 좀 더 차분해지기를 바란다. 니치 마켓에서만 통하는 막나가는 쿨함은 정치적 확장을 되려 막아버린다. 우리 모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대화가 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아마도 논리적이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예의를 지키는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지만 문제는 분열이 아니라, 그것을 개싸움으로 보이게 하는 태도다.
모든 ‘쿨’의 기반에는 ‘저항’의 정서는 물론 ‘성공’이라는 결과물이 함께 깔려 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조건은 태도다. 만약 지금과 같은 공격적인, 전투적인 자세가 유지된다면 ‘저항’만 강하고 ‘성공’과는 거리가 있는 망나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당신들의 열정과 생각을 존중한다. 하지만 행동에서 세련됨이 아닌 전투성이 묻어 나온다면, 그저 소모적인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