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총리 후보 문창극은 누구인가
김용준, 안대희 등 느리지만 섬세하고도 완벽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던 박근혜 정부의 총리 인사. 이번에는 의외로 빠르다. 중앙일보를 통해 언론계에 들어선 40년 경력의 위대한 언론인 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중앙일보에서 칼럼을 쓰며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번 정부에서 언론인 출신으로 고위 공직자가 된 사람으로는 윤창중 전 대변인이 있었다. 두 사람의 글을 비교해보면 그 매력이 서로 상반된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윤창중 대변인의 칼럼이 칼과 같이 날카로워 롱기누스의 창을 연상케 한다면, 문창극 총리 후보의 칼럼은 방패와 같이 단단하여 여리고의 성벽을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도 문창극 총리 후보의 강점은, 칼럼에서 드러난 그의 정치적 성향이 놀라울 정도로 박근혜 정부의 기조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가 쓴 무수히 많은 칼럼 중에서도 몇 편의 명문을 꼽아 박근혜 정부의 기조와 비교해보도록 하자.
1. 경제민주화
박근혜 대통령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불리던 때부터 강조해 마지 않았던 경제민주화. 문창극 총리 후보가 과연 박근혜 대통령의 철학에 딱 맞는 칼럼을 한 편 쓴 적이 있다. ‘이건희 회장의 눈물‘이라는 칼럼이다. 평창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이건희 회장이 눈물을 흘린 것을 소재로 쓴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의 의미가 잘 드러난 명문이므로 일독을 권한다.
“돈 잘 버는 사람에겐 버는 특기가 있는 것이다. 삼성이 이렇게 커진 데는 직원들의 노력과 헌신은 물론, 리더십도 큰 몫을 한 것이다. 능력 있는 리더가 있었기에 그런 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다른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 대해서는 박수를 치면서 유독 기업가에게만은 인색하다.”
“분배는 가지고 있는 부(富)를 한번 나누는 것으로 끝나지만, 성장은 일자리를 통해 계속 수입이 나게 만든다. 현실적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능력 있는 기업가들이다. 그렇다면 기업인들에게 규모를 줄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더 커지도록 박수를 쳐주어야 한다.”
“삼성 이 회장의 눈물에 대해 “혼자 사면을 받은 부담을 이번에 덜었기 때문”이라고 측근들은 해석했다. 어찌 그것뿐이었겠는가. 나는 이 회장이 이번 활동을 하면서 나라에 대한 큰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믿는다. (중략) 대한민국의 소중함과 나라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느끼는 기회였을 것이다.”
2. 역사 바로세우기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차례 역사 바로세우기를 주문한 바 있다. 물론 대통령 본인도 후보 시절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인혁당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라는 발언으로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과연 문창극 칼럼 중에서도 이런 역사 바로세우기의 연장선상에서 쓴 칼럼이 있다. ‘수치의 옷을 이제는 벗자‘라는 칼럼으로,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기념한 것이다.
“한일병합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조선의 멸망은 외부와 내부의 두 요인에 의한 것이다. 지난 100년 우리의 시각은 밖에 대한 원망이 더 우세했다. (중략) 그러나 조선의 붕괴 원인은 내부에도 있다. 앞에서 보듯 집권층이 무능한 데다 나라 생각은 뒷전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일본만을 탓하며 지내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잘못과 못남은 없었는가? 우리의 잘못은 덮어두고 남의 탓만을 하는 마음이 올바른가? 이는 고종이 내부의 역량을 모으려 하지 않고 강대국에 기대려고만 했던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일본 탓은 이제 그만하면 족하다. 언제까지 남의 탓만 할 것인가. (중략) 이제부터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으며 다시 그런 수치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사회문제도 마찬가지다. 내가 못사는 것이, 실패한 것이 다른 사람의 탓, 제도의 탓이라고만 생각할 때 결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세계의 누가 지금의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불쌍한 나라라고 생각할 것인가. 더 이상 과거의 수치에 매달려 있지 말자. 이제는 수치의 옷을 벗어 버리자.”
한일 강제병합을 두고 일본 탓만 하는 어리석은 국민성을 ‘수치의 옷’이란 빼어난 비유로 묘사한 것이 과연 탁견이다. 또한 거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네가 못 사는 건 네 탓이니 남 탓 하지 말라는 경제민주화의 기본적인 철학을 녹여내었다.
3. 당근과 채찍을 이용한 대북 정책
철저한 원칙에 기반,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역시 문창극 총리 후보의 손에서 완성될 것임에 틀림없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하여 쓴 문창극 칼럼 ‘악에 속한 자들‘에서 새 총리 후보의 대북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키를 잡게 될 것인지를 엿볼 수 있다.
“비단 이번 천안함 공격이나 KAL기 폭파 때문만이 아니다. 그 체제는 자기 국민조차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수백만 명의 백성이 굶어죽어도 눈 깜짝하지 않는다. 북한 강제수용소의 실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고도 아무 감정이 없는 것, 그것이 본원적인 악의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악을 악이라고 부르는 것을 꺼렸다. 누구도 이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악의 포용만을 얘기했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인인 체하는 자일수록 더욱 그랬다. 악을 포용하는 것이 마치 큰 정치인이 되는 듯 착각했다. 햇볕정책은 그런 것이었다.”
“그들이 삐라를 두려워하고, 확성기 방송을 두려워하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안으로는 악의 동조자들을 고립시키고, 밖으로는 악의 세력을 뒤엎는 운동을 지원해야 한다.”
4. 법과 원칙
박근혜 대통령은 늘 법과 원칙을 중시해왔으며 이는 말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국정원 증거조작 사태를 목도한 박근혜 대통령의 서슬퍼런 개혁 의지를 보라. 또 자신이 인선한 고위공직자들의 위법, 탈법에 들이댄 엄중한 칼날을 보라. 그 날카롭기가 케이크칼과도 같아 무쇠와 같은 불법과 비도덕의 세계를 완전히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문창극 칼럼에서도 법과 원칙을 중시한 칼럼이 몇 편 있는데, 그중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칼럼이다. ‘마지막 남은 일‘이라는 칼럼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의 비자금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자금 조성과 재산 해외 도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는 단순히 소문 차원이 아니라 언론을 통해 몇 차례 공식적으로 제기된 문제다. ‘미 FBI, 김대중 대통령 비자금 미국 내 불법 유입 혐의 내사 착수’(월간조선 2006년 9월호) ‘2001년 국내 금융기관을 통해 비자금 3000억을 조성했다’(월간조선 2007년 1월호) ‘자유수호국민운동(의장 장경순 전 국회부의장), 김대중 수사 촉구 서명운동 전개’ 등을 비롯하여 아주 최근에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인터뷰’(월간조선 2009년 3월호)에서 “그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20조짜리 회사를 뜯어먹었다”고 증언했다.”
“사경을 헤매는 당사자에게 이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짧은 시간 내에 밝혀질 문제도 아니다. 바로 얼마 전 우리는 한 명의 대통령을 불명예스럽게 떠나보냈다. 나라의 명예를 위해서도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은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제기된 의혹들을 그대로 덮어 두기로 할 것인가. 바로 이 점이 안타까운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므로 장례의 격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해결점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이제 전적으로 가족 손에 달렸다고 본다.”
사자, 또는 사경을 헤매는 이에게 법과 원칙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가혹할런지도 모른다. 특히 야당 지지자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경을 헤맨다 해서 그의 과오를 덮고 묻지 않아야 할까? 훗날 박근혜 대통령이 천국으로 떠날 때가 온다면, 경황이 없는 중에 받은 6억이나 육영재단이나 정수장학회 문제를 모두 덮어주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는 칼럼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그 언론은 바로 월간조선이다. 우리는 월간조선에 비견할 만한 탐사언론을 몇 개 더 가지고 있는데, 한국논단, 자주민보 같은 곳이 바로 그곳이다. 이런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된 문제들은 즉시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수사하여 그 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5. 한국형 복지
비록 현실적인 문제로 한 걸음 후퇴하긴 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은 노인 기초연금 등 다양한 복지 공약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문창극 후보자와 호흡을 맞추게 될 새 내각은 어떤 복지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바로 문창극 칼럼 ‘공짜 점심은 싫다‘가 그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료 급식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다.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개인이 해야 할 일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구별되어 있다.”
“무료 급식은 배급 장면을 연상케 한다. 좀 심하게 비유하자면 우리 아이들이 공짜 점심을 먹기 위해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는 것과, 식량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북한 주민이 그 내용 면에서는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의식주를 포함해 모든 것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 독립적인 개인은 사라지고 의타적인 인간만이 넘치게 된다. 이에 비례해 국가의 간섭은 심해진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은 시혜를 베푸는 국가에 반납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북한처럼 나라에서 먹여주고 입혀 주는 대로 살 것인가?”
쓸데없는 복지는 우리를 북한처럼 만들 것이다. 왜 박근혜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이 좌초하고 있는지, 이 칼럼은 넌지시 그 이유를 알려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애국우민의 발로로써, 무상보육 정책이 아기들을 북한처럼 만들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일부러 좌초시키고 있는 것이다.
6. 통일은 대박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로 통일 이후를 준비할 것을 주장하였다. 안타깝게도 문창극 후보는 이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애국의 출발점‘이라는 칼럼을 통해서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통일을 앞세우며 대한민국을 격하시킨 것이다. 우리 체제를 지켜내는 것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통일이 되면 마치 딴 나라가 오는 듯이 국민을 오도했다. 대한민국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외친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에 대해 “딴 나라가 오는 듯이 국민을 오도”한 것이라고 정면 비판한다. 그리고 이렇게 칼럼을 맺는다.
“악은 스스로 드러난다. 스님들의 타락도, 종북파들의 실체도 그들 간의 권력싸움으로 드러났다. 종북파가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차제에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은 아예 정당활동을 못하도록 국회가 확실하게 입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오히려 그들을 변화시키자. 설령 주사파 한두 명이 국회에 들어간들 이 나라를 흔들 수 없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수많은 ‘우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잡습니다] ‘애국의 출발점’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김대중·노무현’을 ‘박근혜’로 잘못 표기하는 잘못이 있었으므로 이에 바로잡습니다.
때로는 내부 비판도 서슴치 않을 강단 있는 언론인
그는 이처럼 박근혜 정부와 발도 잘 맞추어왔으나, 또한 박근혜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김대중·노무현 을 100번 정도 까면 박근혜도 한 번 정도는 까는 실로 절묘한 균형추를 통해 좌우를 성역 없이 비판한 참 언론인이었던 것이다. 그가 박근혜를 비판한 명 칼럼이었던 ‘박근혜 현상‘을 보자.
“나라에서는 요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뽑지도 않았고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았는데 권력이 한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오히려 그런 현상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박근혜 현상이다.”
“민주주의는 투명해야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나야 국민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국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녀 스스로가 휘장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물론 그는 비판만 하지 않는다. 비판할 점이 있으면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위대한 전신 박정희 각하와 자애로운 대지모신 육영수 여사의 큰 따님이시고 그 자신이 또한 반인반신이시며 눈물의 여신이신 박근혜 폐하의 황송한 은혜에 대해서는 감읍하여 용비어천가를 써내는 감성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명칼럼 ‘하늘의 평화‘를 보자.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폐하께서 대통령에 당선되신 데 대한 그의 소회를 밝힌 글로, 실로 세기의 명문이다.
“민주주의에서 한 표는 똑같은 효력을 갖고 있다. 한 표라도 이긴 쪽이 승리자다. 그러나 표의 값이 같다고 표의 무게도 같을까? 이 나라 현대사를 몸으로 체험하고, 인생 50년 역정을 견뎌온 사람의 한 표와 지금 겨우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사람의 한 표 무게가 같을 수 있을까? (중략) 비록 표의 값으로는 아슬아슬한 과반을 넘겼지만 그 표의 무게로 본다면 우리 현대사의 좌우 시소게임을 완전히 끝장내게 한 그런 선거였다.”
“역사의 신은 늘 우리 일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베일 뒤에서 지켜보고 있기만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그는 베일을 뚫고 나타나는 것 같다. 마치 동화에서 수호천사가 자기 나타나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구해 주듯이 말이다. 우리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대한민국을 지켜 주었던 그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는 비록 ‘역사의 신’ ‘수호천사’와 같은 애매한 표현을 썼으나, 그의 마음 속에는 위대한 두 반인반신 박정희 각하와 육영수 여사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육신은 죽었으되 그 영혼만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그 위대한 신들의 넓은 바다와 같은 은혜로, 대한민국이 여신 박근혜 폐하의 치하에서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음을 찬미한 것이다.
한편 김대중·노무현은 종북 수괴의 화신으로 사탄과도 같은 존재이므로 딱히 칭찬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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