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당선자 등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의 대거 당선을 축하합니다. 이번 선거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분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교육감 선거결과는 우리의 미래를 규정하는 교육에서의 희망을 내비쳐주는 가슴 뿌듯한 쾌거입니다.
물론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의 지휘 하에 놓여 있는 지방교육의 수장입니다. 따라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장이나 지사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장보다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변화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김상곤 교육감이 불러온 새바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학교의 변화는 물론이고 ‘복지’를 시대의 화두로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만큼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조심조심하면서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이와 관련해 조희연 당선자의 발언에 대해 한 마디 ‘쓴 소리’를 할까 합니다.
국민들은 자식을 “일류대학” 보내려고 표를 던지지 않았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일반고에서 일류대학에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발언했습니다. 일반고의 교육환경을 외고 같은 특수고 못지 않게 만들겠다는 의미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교육감이 등장해 학생들 학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류” 운운 하는 발언은 이른바 진보교육감에게는 별로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말하자면 ‘오버’한 것이지요. 학생들 사이의 학력경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만, 그게 지나쳐서 모두가 일류대학 가는 데 목을 매는 현실을 개선하려고 진보교육감이 등장한 게 아닌가요.
대학 사이의 ‘지나친’ 서열화나 이른바 일류대학을 졸업해야 이른바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는 대학교육을 담당하지도 않고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를 책임지지도 않는 교육감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런 한계 속에서 다들 “일류 대학”에 자식을 보내고 싶어하고, 그런 학부모들의 욕구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학력경쟁(실제는 문제풀기능력 경쟁)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교육감을 국민들이 원했다면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을 리 없습니다.
그걸 무시하고 일류대학 운운하는 발언을 당선 제1성으로 내던진 것은 다소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오류는 진보적 인사들이 리더가 되었을 때 흔히 저지르는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은 자신의 ‘반미성향’에 대한 우려를 고려한답시고, 미국에 가서는 “미국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식의 ‘아부성’ 발언은 반대편으로부터 진정한 신뢰를 얻지는 못하면서 자신의 정체성만 훼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노무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진보, 보수의 프레임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만큼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취임 초기 김상곤도 이명박과 만나서는 “이명박의 교육정책과 자신의 교육정책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선거 때 “반MB”를 내세우던 것과 도대체 아귀가 맞지 않는 발언이었지요.
이런 식으로 진보파들이 발언하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공격 프레임에 갖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공격프레임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는 셈입니다. 그래서 친미를 부적절하게 강조하고, 이명박과의 친근성을 부적절하게 표현한 것이지요. 조희연도 이런 식으로 적이 만든 프레임에 무의식적으로 갇혀 있기 때문에 “알고보면 나도 그런 사람 아니예요”라는 식의 발언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어쩌다 내뱉은 단어 하나를 가지고 너무 확대해석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단어 하나 사용에서의 실수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이 문제에 대한 평상시 고민(내공)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해 수구파의 공격 프레임에 자신도 모르게 갖히게 되는 것이지요.
어쨌든 조당선자의 “일류” 운운하는 발언처럼 정체성을 크게 훼손하는 발언을 하다보면 진보파로부터 공격을 받고, 그 공격 때문에 또 정반대로 극단적인 발언이나 정책을 취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지도자나 나라가 가는 길이 항상 중앙의 올바른 길일 수는 없습니다. 약간 왼쪽으로 가기도 하고, 다시 약간 오른쪽으로 가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가서 시궁창에 빠져 버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중용’을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경지입니다. 조희연 당선자를 비롯한 진보교육감들은 그런 점에 특히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보수가 짜놓은 프레임에서 걸리면, 정체성을 잃는다
그러면 어떻게 말했어야 할까요. 우선 “일류”라는 표현은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일반고의 학력 신장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지요. 경우에 따라선 “학력신장과 인격함양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해도 되겠지요.
앞으로 친전교조 교육감이라는 공격 프레임도 작동할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그 프레임에 걸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정책을 시행하면서 혹시 친전교조라고 비난받지나 않을까 하는 게 주요 고려사항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옳은 정책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 친전교조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지요.
“나는 친전교조가 아니다”라고 몸부림칠 게 아니라, “나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위해선 전교조든 교총이든 어떤 분들의 목소리도 경청하겠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미묘한 차이 같지만 “전교조냐 아니냐”의 프레임을 벗어나서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위하는 것이냐 아니냐”로 프레임을 바꾸는 전략입니다.
그리고 이는 수구진영의 공격에 대한 대화 상의 단순한 프레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진보교육감이 실제로 취해야 할 정책적 기본자세에 관련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진보교육감은 전교조에 지나치게 편향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전교조 특히 그 지도부의 정책에는 현실과 괴리된 부분도 있고, 전교조 조직이 그동안 초기의 참교육 정신과 달리 이익집단화한 측면도 전혀 없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친전교조 정책이라고 비난받을 만한 정책이라고 해서 애써 회피하는 자세 역시 수구진영의 프레임에 갖혀서 진보의 정체성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은 ‘자기 중심’이고, 중심을 잃으면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무엇이 학생, 학부모, 교직원에게 진정으로 좋은가를 기준으로 일을 해나가야 하겠지요.
이제 시작, 한 걸음씩 바꿔 나아갈 때
조 당선자는 극적 승리로 인해 언론에 크게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인터뷰 요청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의 교육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인터뷰가 아니라면, 가급적 당분간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꼬투리를 잡으려고 수구언론들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니까요.
조 당선자는 아이디어도 많고 말도 잘 하는 편이지만 100 마디 옳은 말 하다가 한 마디 실수하면 치명상(“한 방에 훅”)을 입을 수도 있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당분간은 자신의 “말을 하기”보다는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쪽”에 치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 기우가 지나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진보교육감들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하면서 뚜벅뚜벅 걸어나갔으면 합니다. 그리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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