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이란 단어가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에게 이보다 반가운 소식은 없었을 것이다.
게임은 역시 병이었어, 그러니까 하면 안 돼.
하지만 중독 분야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분명히 언급하자면, WHO와 세계정신과학회에서 정의한 게임 중독과 현재 부모들이 생각하는 게임 중독의 의미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WHO가 제시한 ‘게임 중독’의 진단 기준은,
- 게임을 도저히 멈출 수 없을 만큼의 조절력 상실
- 다른 일상 활동보다 현저하게 게임에 우선순위 부여
- 부정적 문제가 발생함에도 게임에 과몰입
이 같은 패턴이 개인과 가족, 교육이나 직업적 능력, 대인관계의 영역에서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고 최소 12개월 동안 지속되거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부모들은 이 사실을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확대·재생산하고, 자의적으로 왜곡해 수용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게임 중독의 개념은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은 이슈이며 과연 어느 수준의 과몰입이 병으로 불릴 정도가 되는지도 아직 정확한 합의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로는 게임 중독이라는 공식 진단명은 아직 없다. 게임 사용 장애라는 부가적인 참고 진단만이 있는데, 이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일상생활이 게임으로 지배될 수준의 과몰입
- 게임을 못 할 때 금단 증상, 짜증 불안감, 슬픔이 생긴다.
- 내성이 생겨 점점 게임 시간이 늘어난다.
- 조절 능력의 소실
- 다른 인간관계나 취미에 대한 흥미가 현격히 떨어진다.
- 부정적 감정, 무기력감, 죄책감,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게임을 한다.
- 인터넷 게임으로 대인 관계, 직장, 학교생활에서 큰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
이중 최소한 4가지 이상이 12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게임 사용 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중독과 장애라는 단어를 지칭할 때 진단 및 사용에 있어 상당한 전문성과 신중함이 필요함에도 게임 중독과 병이라는 말이 남발되는 이유는 아마 상당한 정치적·경제적인 의도와 우리나라 부모들이 아이가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감정, 과도한 통제 욕구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게임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선입관과 아이의 정신적 성장을 방해한다는 믿음의 근거는 대체 어디서 오는가. WHO에서 분명히 언급했지만 게임 중독을 의심할 수 있는 여부는 단순히 게임에 몰입하는 시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통제 능력의 상실 여부이다. 진료실로 아이를 끌고 와서 부모들은 말한다.
공부도 안 하고 게임만 하는데 그게 조절 능력이 망가진 거 아니에요?
얘 게임에 미쳤어요. 혼 좀 내주세요.
1시간이라도 더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을 0.1%라도 높여야죠.
왜 이 소중한 시간을 게임에 허비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게임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공부보다 훨씬, 부모의 잔소리보다 훨씬 재미있기에 그 누가 뜯어말려도 하는 것이다. 입시와 비교, 열등감, 흙수저, 왕따. 이 모든 것과 무관하게 내가 영웅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그곳이 게임이기에 하는 것이다.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해서 게임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야말로 현실의 냉혹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 집 주소만 인터넷에 쳐도 부모의 경제적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부모의 직업, 경제력이 자기 인생의 약 80%를 결정하는 지금, 우리 아이들의 선택권은 엄청나게 좁다.
이러한 열등감과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게임인 건 아닐까. 여름방학 때 세계 일주를 할 수 있고 스페인에 가서 직접 메시를 만나볼 수 있는 게 가능한 아이라면 컴퓨터로 하는 축구 게임이 얼마나 시시할까. 그리고 그런 아이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판단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게 중독이 아니냐? 술·담배처럼 어른의 간섭도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물론 아직 판단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게임은 지나친 자극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술·담배와 게임은 엄연히 다르다. 물질 중독은 도파민의 보상회로를 자극해 쾌감을 준 다음, 이 쾌감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반복되면 내성과 금단증상을 거쳐 중독이 형성된다.
게임 중독을 도박처럼 행위 중독의 하나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도박은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것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떤 이는 게임 내의 지나친 과금이나 뽑기 등이 사행성을 조장하기에 도박과의 유사성을 주장하지만 이는 억지스러운 점이 많다. 축구를 보다가 만약 돈 내기를 한다면, 축구 역시 도박과 유사하다는 말인가. 이는 부분이며 부작용일 뿐, 본질이 아니다.
더구나 모든 중독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이 물질이나 행위가 분명히 본인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알면서도 강박적으로 지속하고 반복하게 되는 것’에 있다. 게임을 할 때 아이가 ‘게임을 하면 시험도 망치고 대학도 못 가고 인생을 망치게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강박적인 집착에 의해 PC방에서 떠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중독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저것은 단지 부모의 선입관일 뿐 아이는 절대로 저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고 싶어서, 게임 속 친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그저 재미있어서. 훨씬 단순한 이유로 하는 것이다.
만약 공부하기 싫어서 게임으로 도피하는 아이에게 허용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그러한 패턴이 강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는 부모라면 이는 충분히 공감할만한 걱정이다. 하지만 부모 스스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볼 때 단순히 ‘안 된다, 어른이 되면 알 것이다’라는 식의 교육이 과거의 자신에게 어떤 감정과 영향을 주었는지 회상해본다면 그 전달 방법을 우리는 조금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자주 언급하는 레퍼런스로 PC방에서 2박 3일 동안 게임을 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중국 청년이나 2005년 스타크래프트를 50시간 정도 하다 사망한 20대 무직 청년의 예를 든다. 물론 심각한 게임 중독에 해당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정말 극히 드물며 과잉 일반화할 만큼 합리적인 근거가 되지 못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게임 자체는 병이 아니다. 술이나 도박, 심지어 마약에 비유하는 일련의 시각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게임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은 호불호의 차원이지, 해도 된다 vs 절대 해서는 안 된다의 명제가 아니다. 게임을 하는 게 좋거나 혹은 시간 낭비라는 판단은 적어도 자기 스스로가 해야 하는 것이지 부모를 비롯한 타인이 무조건적으로 금지할만한 것, 심한 경우 불법적인 것과 비교할만한 것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염려와 무관하게 e스포츠와 게임 산업은 폭발적으로 발전하며 경제적, 사회적 순기능을 분명 가졌다. 우리는 게임 중독이 담은 필연적인 명제에서 인간의 욕구와 외로움, 불안이 양립하는 고민에 처한다. 그리고 모두 안다. 어차피 아무리 말려도 게임은 재미있기에. 별다른 기회 비용이나 돈을 투자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 가장 간단하면서도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거의 유일한 것이기에. 이 유희는 어떤 정책이나 사회적 억제에도 굴하지 않고 퍼져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나친 불안감을 내려놓고 게임의 순기능에 집중하고, 어떻게 게임이란 도구를 슬기롭고 건강하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정확한 근거 없이 섣불리 나쁜 것으로 매도하고 중독이란 꼬리표를 붙인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지거나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지나치게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에게 ‘너 중독이야, 병이니까 무조건 하지 마’라는 통제나 훈육을 해서는 안된다. 공감과 소통 없는 말은 명령일 뿐이며 반감과 역작용을 불러올 뿐이다.
당신의 아이가 어떤 게임을 하고, 게임 안에서는 어떤 역할에 흥미를 느끼는지 아는가? 게임 속 인물들을 가지고 아이와 대화를 해본 적은 있는가? 혹시 외롭거나 친구가 없는 건 아닐까, 불안하거나 우울한 어떤 일을 잊고 싶어서 게임을 하는 건 아닐까… 그 원인에 대한 진지한 배려와 이해가 선행된다면 비로소 우리는 이 중요하고 까다로운 문제를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 박종석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