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싶어도 아플 수 없는 사람들
혼자 서비스업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 그에게 가장 두려운 일 중 하나는 ‘아픈 것’이다. 무한경쟁 한국 사회에 아프다고 편히 쉴 수 있는 사람이 뭐 얼마나 되겠냐마는, 1인 서비스업은 ‘쉰다’는 의미가 또 남다르다.
1인 자영업자에게 쉰다는 건 가게 문을 닫는다는 뜻이다. 가게 문을 닫는다는 건, 그만큼 매출이 날아간다는 뜻이다. 소득이 아니라 매출이다. 임대료 등 비용은 그대로 나가는데, 매출만 송두리째 빠지는 거다. 그럼이 사람의 하루 소득은 0원이 아니라 마이너스가 된다. 거기에 갑작스레 문을 닫으면 손님들이 떨어져 나간다. 떨어진 손님 수는 생각처럼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
아파도 쉴 수 없던 사람들을 위해, 일용직과 소상공인에게도 유급병가를
서울시가 작년 6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 제도는 이런 ‘사회안전망의 바깥’을 채워주는 제도다. 사회안전망의 바깥에 있는 소상공인, 일용직 근로자 등을 위해 서울시가 ‘병가’를 대신 주겠다는 것이다.
그럼, 왜 이런 제도가 필요한 것일까? 아파도 못 쉬고 일하는 건, 우리 모두 비슷하지 않나? 사실 꼭, 그렇게 비슷하지만은 않다.
소상공인 A씨가 월 25일을 일하며 매출은 1000만 원을 올리고, 비용은 700만 원을 지출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A씨의 월 소득은 300만 원 수준일 것이다.
그가 만일 아파서 5일을 쉬게 된다면, 그가 잃어버리는 매출은 총 200만 원이다. 하지만 비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재료값 등 원가야 아낀다 쳐도,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임대료,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은 그대로 나간다. 5일을 쉰 대가로, 월 소득이 30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줄어들어 버리는 것이다. 1/5이 아니라, 2/3가 사라진다.
결국 A씨는 아파도 쉬기보다 그냥 일을 하는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명백히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더라도 말이다. 스스로의 생명권을 해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건 사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소상공인뿐 아니다. 1인 자영업자. 일용직 노동자. 아르바이트생. 임시근로자. 택배기사. 대리기사. 그 외 특수고용직 노동자. 이들도 다 마찬가지다. 아프면 아픈 대로, 검사라도 받을려 치면 그것도 문제, 아픈 기간만큼 벌이가 뚝 끊기니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사실 이들 중에는 건강검진조차 받기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건강검진도 어쨌든 받으려면 하루치 벌이를 날려먹어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건강검진은 심지어 의무사항이다! 아픈 거야 참고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간다 치지만, 건강검진은 당장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괜히 일당만 하루치를 날려먹으니, 받기 싫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세부 내용은 이러하다. 입원 10일, 공단 건강검진 1일을 합쳐 연간 총 11일까지, 이들 취약계층에게 유급병가를 지원해주는 것이다. 지원금액은 서울시 생활임금(2020년 기준 일당 84,180원)에 준해 지급된다.
5일간 입원하면 약 42만 원, 10일 이상 입원한다면 약 84만 원. 사실 잃어버린 매출에 비하면 이것도 충분하다고 볼 순 없는 돈이다. 하지만, 100% 손해를 다 메꿀 순 없을지라도 그래도 꽤나 도움이 되는 든든한 돈이다. 이 정도 돈만 주어져도, 적어도 아픈 몸을 억지로 부여잡고 일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다.
대상은 서울시민으로서,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의 근로사업자 및 사업소득자인 사람. 한 가구에서 2명 이상 신청해도 가능하며, 한방병원, 치과병원, 정신병원 입원 등에도 역시 적용된다. 정확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입원 또는 검진일 기준 1개월 전부터 심사 완료 전까지 서울시에 주민등록이 등재된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서,
- 기준중위소득 100% 이하의 근로사업자 및 사업소득자
- 입원(검진) 3개월 전부터 24개월 이상 근로했거나 45일 이상 사업장을 유지해온 사람
단 미용, 성형, 출산, 요양 등의 분야는 제외되며, 산재보험, 실업금여, 자동차보험 등과 중복 수혜는 불가하다.
신청 절차는 간단하다. 관련 서류를 준비해 동 주민센터나 보건소에 신청하면 된다. 필요한 서류는 신청서,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입퇴원 확인서 및 건강검진 서류, 근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 그리고 통장 사본 등. 복잡해 보이지만 뭐 삼십 분이면 다 뽑을 수 있는 서류들이고, 병가 지원금은 신청 후 30일 이내 지급된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구멍
코로나19가 일으킨 충격은 모두를 공평하게 때리지 않았다. 비정규직인 B가 회사에서 잘린 이유가 코로나19 확진 때문이었다는 얘기는 비밀도 아니다. 식당을 하는 C는 본인이 아팠던 것도 아니고, 다만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이유로 영업장을 2주 동안 폐쇄해야 했다.
‘다들 힘들어, 안 힘든 사람 없어.’ … 라고들 얘기하지만, 이들의 삶이 유독 이렇게 팍팍하게 느껴지는 데도 이유는 있다. 이들의 삶의 기반이 실제로 유리처럼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일용직 노동자, 아르바이트생, 자영업자… 이들은 대표적인, ‘사회안전망 밖에 있는’ 이들이다. 이들에겐 근로기준법이란 남의 나라 얘기다. 연차니 병가니 다 아이고 의미 없고, 고용보험 물론 없고, 건강보험료는 되려 더 비싸고, 코로나19와 같은 재해가 닥쳤을 땐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그 타격을 맨몸으로 전부 받아내야 한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사회안전망의 구멍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하지만 이런 흐름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촉발한 것 또한 아마 코로나19일 것이다. 그동안 개인플레이로 어떻게든 버티던 사람들도, 미증유의 재난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기존 사회안전망에 뚫린 빈틈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가 외면하던 그 구멍을 더 이상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하게 직시하게끔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4월 발표된, 서울시의 소상공인 생존자금 지원이다. 지난 4월, 서울시는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140만 원가량의 ‘생존자금’을 긴급 지원하기로 발표했다.
기존의 소상공인 지원 정책은 대출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빚을 내서 버티라는 거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사태에 한계상황까지 내몰린 소상공인들에게 ‘더 빚을 내라’니,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엔 되지 않았다.
소상공인에 대한 직접 지원은 이 위기 상황에서 가장 힘든 게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진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일지를 고민한 결과다.
다른 지자체도 규모와 범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영세 소상공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도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자 등에 대한 현금 지원 계획을 발표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비상상황에 즈음하여 전국민 고용보험을 새로운 화두로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의 병가지원 제도를 비롯해, 코로나19 이후 도입되고 있는 소상공인 지원 정책, 전국민 고용보험 등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복지 방정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사실상 복지 사각지대에 버려진 수준이었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소상공인 등도 사회안전망 안에 품으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간 사회복지제도의 부담을 기업에게 맡겨 놓고, 그 안전망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그냥 내던져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은퇴자의 노후 보장을 위해, 기업에게 퇴직금을 적립하도록 강제하는 식이다.
물론 이런 방식도 썩 나쁘지는 않다. (퇴직금을 강제로 쌓아야 하는 기업인에겐 좀 나쁘겠지만.) 문제는, 이러면 ‘기업 밖에’ 있는 사람들, 비정규직부터 시작해 프리랜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소상공인 등은 사회안전망에서 밀려나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 특히 대기업이 사회안전망의 중심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서울시의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 제도는, 말하자면 기업 밖의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갖춰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최소한, 아파도 아픈 티도 못 내고 일하게 놔두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넓고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소상공인 지원,전국민 고용보험… 이건 서울형 유급병가 제도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국민도 놓치지 않겠다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사회 안전망에 품겠다는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마땅히 응원해야 할 일이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사회 안전망 밖으로 추락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야말로, ‘선진국’ 한국이 마땅히 다해야 할 책무가 아니겠는가.
※ 해당 기사는 서울시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