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같이 비가 많이 오는 봄 날씨에는 오후에 집이나 사무실 앞 커피 바에 들어가 책 보면서 커피 마시는 게 취미라면 취미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에 시원하고 선선한 빗소리 들으면서 책 보거나 메모하는 게 내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다. 평소에 블랙이나 아메리카노만 먹는 내가 우유가 들어간 카푸치노를 드물게 먹는 날이기도 하다.
요새는 아예 그러지를 못하니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쓰고 나가서 카푸치노를 사 온다. 마침 집 근처에는 시카고 커피 씬(scene)의 자랑인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의 바가 있다. 인텔리젠시아 커피는 한국에는 시카고를 사랑하는 조수용 대표와 매거진B를 통해 잘 알려진 브랜드이기도 하다.
1995년에 처음 문을 연 인텔리젠시아는 25년 동안 고품질의 원두만을 직접 조달해 최상급의 커피를 만들어 파는 ‘third-wave’ 커피 브랜드 중 하나다. 서부에 Philz와 Blue Bottle, 그리고 Stumptown이 있고, 동부에 La Colombe이 있다면 중부에는 인텔리젠시아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는 유럽계 홀딩회사인 JAB Holdings가 인텔리젠시아, 스텀타운 둘 다 소유하고 있다).
사람들이 인텔리젠시아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맛있고, ‘시카고’ 커피이며 (내 고향이다), 중간 브로커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로부터 직접 커피를 수입하는 몇 안 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고, 원두를 포함해 우유와 그 외 원재료들을 최상품들로 구성하는 몇 안 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커피 브랜드가 운영하는 매장보다 인텔리젠시아 커피 바의 경험이 훨씬 더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나는 스타벅스도 좋아하고, 인텔리젠시아의 모회사인 Peet’s Coffee(인텔리젠시아는 JAB의 손자회사다)의 아메리카노도 너무 좋아하지만, 인텔리젠시아 바에서 직접 먹는 커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
인텔리젠시아는 모든 면에서 가치를 타협하지 않는 브랜드다. 그래서 그들은 규모를 늘리지 않기도 하고 (여전히 시카고, 뉴욕, LA를 포함해 13곳이 전부다), JAB에 매각하고 나서도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장치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지속 가능성을 영위하면서 생산자와 수요자를 포함한 가치사슬에 있는 모든 구성원을 행복하게 하는 기업이 존재한다. 의류계에 파타고니아(Patagonia)가 있다면 커피계에는 인텔리젠시아가 있다. 인텔리젠시아는 돈 잘 버는 기업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기업을 만드는 기업이다 (물론 돈도 잘 벌 거다 :D)
코로나 19로 아쉽게 직접 바에 방문해 커피를 마시는 경험은 당분간 누리지는 못하겠지만, 여전히 비 오는 날이면 인텔리젠시아 카푸치노를 찾는다.
만일 코로나 19가 다행히도 곧 잠잠해진다면, 시카고 여행을 꼭 한 번쯤은 오기를 권한다. 나는 여기서 20년을 넘게 살았어도 여전히 시카고를 사랑하고 이곳에서 사는 게 정말 행복하다.
다만, 파리나 서울, 뉴욕, 베이징, LA 등과 같은 화려한 도시를 선호한다면 시카고는 하루 이틀 지나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다. 뉴욕이나 서울보다는 느리지만 안정감 있게 움직이는 도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