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대학원 진학을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공부가 전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학원에 갈지 말지 선택의 기로에 있다면 가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은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한 선택지 중 하나다. 비싼 등록금 대비 효용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학원은 여전히 정규 교육과정으로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이다. 학원이 지식을 효율적으로 전달해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면, 대학원은 연구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학원 진학의 장점
대학원 진학의 가장 큰 이유는 ‘학위’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학위가 꼭 필요한 직업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직업들도 많다. 하려는 일에 학위가 필수요건이라면 망설임 없이 대학원에 진학할 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고민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 학위 과정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는 대학원이 기본적으로 ‘지식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부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지식이 습득되지만, 그보다는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으로 봐야 한다. 대학원에서는 ‘논문’이라는 형식에 맞춰 글 쓰는 법을 배운다.
논문은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기술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대학원에서는 자신의 관심 분야에 따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이를 풀어나가는 연습을 지속한다. 기본적으로 과제들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텍스트를 얼마만큼 읽을지, 그것을 얼마나 깊게 공부할지는 전적으로 나의 자율에 달려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문제를 스스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한국인들은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어색해한다. 주어진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내는 것에 익숙해진 탓이다. 나는 대학원 과정이 이러한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수정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문제 제기부터 방법론 설정, 문제 해결의 과정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논리적 사고가 길러진다.
논리적 사고와 연결되는 개념은 논리적 말하기다. 대학원 수업은 발제와 토론으로 이루어진다. 텍스트를 읽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논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기고, 훈련을 지속하면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걸 말로 표현하는 능력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 발제와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기도 하지만,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나면 성장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어떤 사회가 펼쳐질 것인지 많은 전문가가 의견을 낸다. 아직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가 정답일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문제 해결 능력’과 ‘유연성’을 공통적으로 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 알지 못하기에 그때그때 변화에 맞게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학위가 직접적으로 미래를 담보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학원 과정에서 ‘학위’라는 유형의 결과 외에 ‘문제 해결 능력’이나 ‘유연성’ 같은 무형의 성과를 얻은 사람이라면 새로운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논문 쓰기와 연구 방법
대학원에서 유무형의 성과를 얻어가기 위해서는 논문 작성이 필수적이다. ‘대학원=논문 쓰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나는 아직 논문 작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어서 ‘연구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논문 작성에서 팔 할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연구 방법’이다. 연구 방법은 가설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과학적 방법을 뜻한다. 동일한 가설에 대해 동일한 방법론을 사용했을 때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과학이다. 동일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면 주관적 신념에 불과하다.
연구는 크게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로 나뉜다. 양적 연구는 자료를 수집하고 계량화하여 현상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연구 방법을 뜻한다. ‘통계’와 거의 동의어다. 양적 연구방법론을 사용하는 학자들은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증명해 냄으로써 인과적인 법칙을 발견하려 한다. 이들은 계량화된 자료를 통해 증거를 제시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와 비교하여 질적 연구는 현상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려는 방법론이다. ‘통계’ 같은 계량화된 방식이 현상을 제대로 드러내 주지 못한다는 비판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질적 연구자는 어떠한 현상이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언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한다. ‘심층 인터뷰’나 ‘사례연구’가 이에 속한다.
자신에게 좀 더 와닿는 연구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지도교수가 어떤 연구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지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연구 방법을 써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통계가 진실을 더 많이 드러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적 연구 방법을 택한다.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해야 할 대상이고,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학원 과정의 의의와 한계
대학원에 간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후회하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배운 게 없어서 돈이 아깝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맥 쌓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첫 번째 이유를 꼽은 사람들은 논문을 쓰지 않고 졸업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실제로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지 않으면 딱히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논문지도를 받지 않을 바에는 학원을 택하는 것이 더 낫다. 두 번째, 대학원은 인맥을 쌓으러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인맥 쌓기에 실패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인맥을 쌓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모임 등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활용하는 편이 좋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뿐”이라는 말이 있다.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다 보면 저절로 겸손해진다. 책을 1,000권 읽은 사람과 책을 1권 읽은 사람 중 누가 더 모르는 것이 많을까.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1,000권 읽은 사람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책을 1권만 읽은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반면, 책을 1,000권 읽은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태도는 바로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각이다. 사람이 겸손해지면 무언가를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커진다. 그때서야 비로소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진지한 연구를 수행한다면,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인류가 집단지성을 쌓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처럼, 연구자 개개인이 수행한 연구들이 모여 인류 집단지성의 일부가 된다. 벽돌 한 장 놓고 가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각 분야의 ‘대가’라면 벽돌 쌓는 방향을 틀거나 여러 장의 벽돌을 한꺼번에 놓을 수 있겠지만, 꼭 대가가 아니더라도 인류가 집단지성을 공고하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마치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원 진학을 키워드로 검색하여 제 브런치에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아 작성해 보았습니다. 대학원 관련해서는 제 글 「대학원 무조건 합격하는 법」과 「직장 다니면서 대학원 졸업하기 힘들까?」를 참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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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슈뢰딩거의 나옹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