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6월 2일 광화문광장에서 1인시위/작업을 진행한 ‘여고생’ 송꼬순입니다.
내 일생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 오늘도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왔건만,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니 조국과 민족에게 빡침이 올라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데 집회 나가는 건 고사하고 1인시위라도 하기엔 왠지 철컹철컹할까봐 겁도 나고… 엄두를 못 내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실 거라 사려됩니다. 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나가 보니, 1인 시위. 생각보다 그렇게 안 무섭습니다. 나름대로 꿀팁 비슷한 것도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저와 같은 소심한 시민 여러분들을 위하여 공유합니다.
광화문광장 1인시위 꿀팁
1. 계급장있는 정복 경찰아저씨(의경아찌 아님)께 들은 꿀팁 하나. 1인시위는 신고 안 해도 할 수 있지만 ‘퍼포먼스’라면 사전에 신고를 하고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할 말 있으면 1인시위 합시다. 시위 같은데 시위라 하지 않는, “예술 비슷한” 애매한 행위가 오히려 더 둘러대기 복잡합니다.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데 경찰님께서 오시면 1인시위라고 강려크하게 답하시는 것도 괜찮은 공략입니다.
2. 사복경찰 있습니다. 제가 뵌 분만 해도 3분 계십니다. 사복에 무전기를 들고 계신다거나 블루투스 헤드셋을 계속 잡고서 주위를 맴도는 아찌들은 경찰이라 보시면 됩니다. 근데 뭐 위협하거나 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냥 유심히 저를 관찰하시는 정도. 거기서 사람을 때리거나 하는 사고만 안 치면 별 말씀 안하십니다. 청순한 여고생이 ‘노란리본’ 같은 무서운 물질을 달고 있으니 여러모로 신기하신가 봅니다.
3. 한 5분쯤 지나니 종로경찰서 정보과 경찰아저씨께서 정체를 물어보셨습니다. 물론 저는 말 잘 듣고 예의바르고 청순한 여고생이기에 새침하게 묵비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질문 내용은 “진짜 다친 거냐, 아니면 퍼포먼스 분장이냐?” 정도였습니다. 전 그냥 마스크만 가리키고 대답을 아니하였습니다. 침묵시위 하는 거냐고 물어보시고는 별 말씀 안 하시더군요. 경찰아즈씨들도 침묵시위 정도는 존중해 주십니다. 쫄지 마시고, 침묵시위 한다 마음 먹으셨으면 그냥 묵비권 행사하셔요. 안 잡아갑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4. 생각보다 1인 ‘시위’라는 게 그렇게 무섭거나 겁나거나 연행될 거리는 아닙니다. 다만 광화문광장은 워낙 많은 분들이 목소리를 내러 오시는 곳인지라 저 뒤의 ‘보수국민회의’의 53GOP총기난사사건을 부칸의 소행이라며 전 대통령들을 종북빨갱이로 모는 억지 넘치는 일장연설을 우렁차게 뿜으시는 분들의 시위가 간ㅡ혹 겹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는 자신의 항마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뒤 한 30초 정도만 버텨 주시면 큰 HP, 마나손실 없이 원하는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하루 41.9초에서 51.8초씩 TV조선같은 애국보수민족정론 종편을 감상하시면 큰 도움이 되… 되겠… 습니…
5. 사진 찍어가시는 분들 의외로 꽤 계십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카메라로 찍고 나서 갈 길을 가시지만, 당신의 포즈가 좀 청순하거나 섹시하다면 간혹 연락처를 물어보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신분을 물어보시고 명함을 달라고 하세요. 진짜 기자님이라면 명함을 바로 건네주실 겁니다. 그 다음은 그대의 선택입니다.
6. 제가 좀 귀엽긴 한가 봅니다. 좌우 사상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 여러분께서 다들 여고생으로 보아 주시니 아. 감격스럽습니다.
7. 관객들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저 녀석이 무슨 소리 하는 지 딱 보면 대부분 알아요. 그리고 그만큼 당신을 존중해줄 것입니다. 겁내지 마십시오. 겁먹을 만한 일 아닙니다.
8. 이순신장군님 앞의 정 중앙 자리는 새누리당 분들만을 위한 성지입니다. 저처럼 노란 리본을 단 아주 흔하고 평범한 여고생은 “포토존의 불청객으로 인한 외국인관광객들의 클레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아저씨께 이 얘기를 듣는 와중에도 이순신장군 황금의 포토존 앞에서 새누리당의 어떤 분께서 ‘믿어주세요’같은 내용의 1인시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이순신 장군님 앞에선 꼭 빨간 잠바를 입어줍시다. 빨간 잠바를 입으면 포토존 정중앙에 들어가도 클레임을 받지 않는 권능이 샘솟습니다.
덤. 당연히 보수단체의 시위도 존중받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 자리에서 들었던 연설들의 내용은 유가족들의 억울함을 대변한다기보다 특정 정치 세력의 편향된 주장을 대단히 큰 목소리로 연설하면서 딱 두 분의 전 대통령을 심하게 모독하는 발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느 보수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정치적 의도가 없는 순수 유가족’들만이 억울함을 주장하라는 멘트가 참 찰지게 떠오르는 현장이었습니다. (응?)
*후기
바로 어제 두시 반쯤, 그러니까 제가 오늘 시위를 한 시간과 비슷한 시간대에 저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책을 끼고 광화문을 아주 씩씩하게 걸어갔었습니다. 경찰아저씨들은 소련마크를 그리고 빨갱이서적 자본론을 든 20대 여성의 동태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경복궁 근처에서 자본론 책을 든 채로 세 분의 경찰아저씨에게 미술관 가는 길을 묻고, 미술관에서 나와 두 분의 경찰아저씨에게 청와대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경찰아저씨들은 친절하게 청와대 가는 길을 알려 주었습니다. 상대가 공산당 마크를 그리고 공산주의 서적을 들고 있었음에도 말이죠.
그런데 오늘, 저는 광장에서 정보과 경찰아저씨 한 분과 사복경찰아저씨 세 분의 시선을 매우 자주 느꼈고, 작업에 대한 질문까지도 받았습니다. 그분들은 광장을 점령하고 전직 대통령을 증거없이 모독하며 고성방가를 내지르는 보수단체의 행동보다 피켓시위중인 진보측 여성 두 분, 그리고 붕대감은 여고생인 저의 행동을 더 유심히 관찰하시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아마도 이 아저씨들은 어제 그 시간에도 광장에 계셨을 겁니다. 똑같은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루 전 “진짜 빨갱이 경전”인 자본론을 들고 군인처럼 걸어갈 땐 ‘안전한’ 인간이었고, 다음날 공산주의적 표식이라곤 고냥이 눈물만큼도 찾을 수 없는 복장으로 “노란리본”을 휘감았을 땐 관찰과 사진채증과 질문, 감시가 필요한 ‘위험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노란 리본”을 단 나는 그들에게 공산주의자보다 위험하고 의심스런 인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찰아저씨들과 보수국민 여러분들은 마르크스보다 노란리본을 더 무서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노란리본은 시청앞에도, 동아일보사 앞에도, 특별하지 않게 어디에나 대롱대롱 걸려 있는 존재인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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