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가장 미친 아이디어 중에 나온다
‘룬샷’은 주창자를 나사 빠진 사람으로 취급하며,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를 말한다. 하지만 언제나 가장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룬샷’에서 나온다. 미친 아이디어를 무시해선 안 된다. 혁신을 위해서는 미친 아이디어를 키워줘야 한다.
전설이 된 애플의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광고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적응자, 혁명가, 문제아. 하지만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생각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만이, 세상을 진실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미침’을 관리할 줄 모르면 조직은 엉망이 된다
여기까지는 흔한 얘기다. 하지만 정작 조직 운영에 적용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 재미없어도 건강하던 회사는 순식간에 힙스터 넘치는 방만한 조직이 되어 버린다.
물론, 혁신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다. 다만 혁신에 이르는 길이 그게 아니란 것뿐이다. 회사에 잡스 같은 혁신가가 있는가, 아니면 혁신을 알아볼 수 있는 개개인의 안목과 문화… 사실 이런 건 ‘덜’ 중요한 요소다. 진짜 중요한 건, ‘룬샷’을 키울 수 있는 ‘구조’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적 제품’으로 성공한 게 아니다
잡스는 ‘혁신’의 대표적 아이콘이다. 그는 혁신적 제품 ‘매킨토시’를 개발하고도 쫓겨난 비운의 CEO로 그려진다. 그의 뒤를 이어온 CEO들이 번번이 실패할 때, 잡스는 그 천재성으로 픽사를 성공시킨다. 그제야 애플은 다시 잡스를 모셔오고, 잡스는 ‘아이폰’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잡스의 스토리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매킨토시는 ‘안’ 팔렸다. 지금 봐도 심플한 디자인, 마우스를 도입한 사용성 등은 지금 봐도 놀랍다. 하지만 끔찍하게 안 팔렸다. 이 모든 건 잡스의 책임이었다.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욕을 퍼붓는, 독선적 성격은 유명하다.
애플 복귀 이후의 성공은 잡스 자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복귀 이후에도 그의 독선적 성격은 유명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잡스는 ‘룬샷’, 미친 아이디어를 혼자 밀어붙였다. 하지만 복귀 이후의 잡스는 ‘룬샷’, 획기적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구조에 집착했다.
그의 밑에는 엄청난 참모진이 있었다. 개발의 달인 워즈니악, 관리의 달인 팀 쿡, 디자인의 달인 아이브, 광고 마케팅의 달인 포스탈까지. 그리고 잡스는 이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미친 아이디어, ‘룬샷’을 성공시키기 위한 디테일에 집착했다. 그 결과 애플의 닫힌 생태계는 독점 시장으로 진화했다. 음악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유일한 창구, 개발자들이 만든 모바일 앱이 거래되는 유일한 스마트폰으로.
관리하지 못할 혁신은 독이 되어 회사를 망하게 한다.
‘팬암’의 CEO 후안 트리프는, 비행기가 뭔지 아는 진짜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그 팬암을 몰락으로 이끈 건, 바로 그 엔지니어적 관점에서의 혁신적 기술에 대한 집착이었다. 타 항공사가 국내선 위주로 갈 때, 팬암은 기술력을 끊임없이 높이며, 국제선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잡스의 제품 집착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전략이 없었다. 그저 기술 혁신만을 부추기며 좋은 제품을 내놓았을 뿐이었다. 그들이 자신감을 가진 국제선은 절반이 빈 채로 출항했다. 나중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선을 인수했다. 이렇게 자금이 마를 때쯤 다른 항공사들은 로비로 여러 규제를 풀며, 팬암과 국제선까지 맞짱을 뜨기 시작한다. 이렇게 팬암은 사라졌다.
즉석 사진의 명가 ‘폴라로이드’는 디지털로의 이행을 따라가지 못하고 몰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폴라로이드의 창업자 에드윈 랜드는 1971년 이미 디지털 사진의 가능성을 알아본 선구자적 인물이었다. 그들은 ‘혁신적 안목’이 있었음에도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혁신 역량을 조직 구조가 받치지 못한 것이다.
더 극단적 이야기를 하자. 지금 우리는 마우스로 PC를 조절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를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가져왔고, 현대 컴퓨터 인터페이스는 거기서 정립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찾아낸 스티브 잡스의 안목에 놀란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이 있다. 그 아이디어를 ‘못 찾아낸’ 제록스의 안목이다.
제록스는 그 어느 회사보다도 뛰어난 ‘룬샷’, 미치고 과감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내부에서 진압당해 제품으로 나오질 못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거대 프랜차이즈 조직이 저항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경우야 하도 흔해서 굳이 예를 더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삼성은 안드로이드가 제 발로 인수해달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룬샷을 키우는 건 개인의 역량이 아닌 구조다
때로 천재급 리더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정신 나간 룬샷으로 대박을 친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리더에게 요구되는 건, ‘룬샷’을 키워낼 수 있는 조직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만들지 않으면 리더는 자신의 성공에 취해, 자신만의 룬샷이 정답이라 생각하게 된다.
노키아는 한때 압도적인 세계 1위의 휴대전화 기업이었으나, 애플이 촉발한 스마트폰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삽시간에 몰락했다. 하지만 노키아 내부에서도 이미 아이폰 이전에 풀스크린이나 앱스토어 등 스마트폰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나와 있었다. 다만 자기 방식의 성공에 취한 경영진이 무시했을 뿐.
경영진은 왜 이런 아이디어를 무시했던 것일까? 단순히 경영진이 보수적이라서? 그랬다면 대기업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 경영진이 스타트업에 있었다면 누구보다 앞장서 혁신적 아이디어를 옹호했을 것이다. 변한 건 그가 어느 조직에 있느냐는 것뿐이다.
거대한 기업에서는 ‘룬샷’을 통과시키는 것이 어렵다. 거쳐야 할 절차도 많고, 반대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기업 규모가 크다 보니, ‘룬샷’이 성과를 내고 큰 매출을 얻더라도 정작 N빵해보면 그 성과가 커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자연히 보신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작은 기업은 애당초 연 매출이 거의 없는 상태다. 여기에서 ‘룬샷’이 성공하면 이 기업의 성과는 무한대로 치솟는다. 다들 ‘룬샷’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렇기에 사실 큰 조직은 ‘룬샷’을 키우기에 부적절한 데가 있다.
큰 기업도 스타트업처럼 운영해야 ‘룬샷’을 탄생시킬 순 있다. 하지만 이를 안정적인 대규모 사업으로 이끌어나갈 순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동적 평형’ 개념을 내세운다. ‘룬샷’을 고안해내는 강력한 연구 그룹과, 기업을 확장해나가는 프랜차이즈 그룹이, 아이디어를 상호 교환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압도하지 않는 동적 평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혁신을 구조로 만들기 위한 ‘룬샷’이 피해야 할 함정
먼저, 리더가 기술 그 자체를 이끌어서는 안 된다. 리더가 너무 강력해져서 일종의 ‘선지자’가 되어버리면 결국 리더가 어떤 룬샷을 언제 어떻게 등장시킬지를 전부 결정하고, 동적 평형은 무너지고 만다.
이건 애플, 팬암, 폴라로이드가 모두 빠졌던 함정이다. 이 기업들은 모두 기술을 잘 이해하는 건 물론 업계를 리드하는 혁신적 리더가 있었지만, 리더의 독선적인 결정으로 인해 가장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고도 몰락했다.
한쪽은 룬샷이 ‘너무 힘을 받아서’ 함정에 빠졌다면, 다른 한쪽은 룬샷이 ‘너무 힘을 못 받아서’ 함정에 빠졌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동적 평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미묘한 조율을 찾아낸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하다. 리더는 스스로 기술을 이끌 게 아니라, 부서 간에 기술이 잘 오가도록 경영해야 한다. 미치고 위험한 아이디어, ‘룬샷’을 이끄는 예술가와 ‘프랜차이즈’를 이끄는 군인들 사이에 동적 평형을 유지하고, 두 그룹을 연결할 수호자를 훈련해야 한다.
룬샷의 최적화: 동적 평형의 임계치를 찾는 법
결국 리더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동적 평형을 이루는 팀의 규모나 성격은 어떻게 정해져야 할까? ‘룬샷’은 이를 도식화하기 위한 여러 변수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직위에 따른 연봉 상승률이 높을수록, 구성원들은 사내 정치에 신경 쓰게 된다. 반면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지분의 비율이 많다면, 구성원들은 승진보다는 프로젝트 성공에 매진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더 미묘한 변수로, 개개인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적합한 능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능력이 클수록 프로젝트에 매진할 테지만, 작다면 사내 정치 쪽을 선택할 것이다.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효율적으로 프로젝트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조직마다 다 다르다. 그렇기에 이런 요소들을 최대한 정량화해, 동적 평형을 이루는 팀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승진에 따른 연봉 인상률과 지분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 비교적 정형화된 답을 얻어야 한다는 게, ‘룬샷’의 교훈이다.
저자 사피 바칼은 스탠퍼드대학 출신의 물리학자다. 그는 말한다. 조직은 ‘문화’처럼 측정하기 힘든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규모나 승진 인센티브와 같은 측정 가능한 요소에 의해 대체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혁신’ 역시 ‘문화’가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고 항변한다.
최종적으로는 ‘조직 구조’를 형성하는 정량적 변수와 수학적 공식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꼭 맞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조직을 사랑하고 성장을 원한다면 ‘반드시’ 해야 할 고민을 안겨주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 해당 기사는 흐름출판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