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비어 있어도 풍요로운 시대
코로나19 유행이 참 지난하게도 계속된다. 사실 과거 같으면 감염병 그 자체는 물론이고 의식주 등 우리의 삶 자체가 뒤흔들렸을 것인데… 실제로, 세계적으로는 사재기 열풍이 벌어지고 필수재가 바닥나는 상황이기도 하고. 하지만 한국은 꽤 안정적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중이다.
그 일등 공신 중 하나가 배달앱이다. 덕분에 이 국난 와중에도, 참 풍족하게 먹었다. 냉장고가 가득 차고 마트에 음식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넘어, 이제는 심지어 냉장고가 비어 있어도 풍요로운 시대가 되었다.
문제는, 배달앱 시대의 그 풍요가 썩 영양학적으로 훌륭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난 좋은 채소를 구분할 줄 모른다
우리는 가장 풍요로운 식탁을 마주하지만, 가장 풍요롭다는 것이 영양학적으로도 성립하는 말은 아니다. 모순의 시대다. 과일과 견과류의 소비량도 늘어나지만, 그 이상으로 트랜스지방, 가당 음료, 가공육도 증가한다. ‘외식’의 시대를 넘어 찾아온 ‘배달’의 시대는 더욱이 영양 불균형을 가속화한다. ‘배달’ 음식은 특히나 당분, 지방, 나트륨이 잔뜩 들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모순은 비단 외식이나 배달만의 탓은 아니다. 건강한 식생활을 추구한다는 것도 똑같은 모순을 안는다. 예를 들어 일본은 전반적으로 건강한 식생활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모든 식생활이 다 건강한 건 아니다. 생선을 좋아하지만 소금도 많이 먹고, 채소를 많이 먹지만 정제 탄수화물도 좋아한다.
가장 모순적인 건 이거다. 식사는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행위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식사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보다도 더 빨리, 급하게 먹는다. 점심시간은 더 짧아진데다 그나마도 급히 때우고 다른 여가를 즐기려 한다. 심지어 ‘소일렌트’처럼 1분이면 마셔버리는 간편식마저 등장했다. 식사는 우리 삶에서 점점 ‘중요하지 않은 것’ 취급을 받는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런 모순적인 풍요로 인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생활습관병을 앓는다. 마트에서 취급하는 식재료의 품질은 오히려 떨어지는데, 사실 좋은 식재료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을 우리는 오히려 잃어버린다. 솔직히 나는 좋은 채소, 좋은 과일, 좋은 고기를 구분할 줄 모른다. 아마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식사에 대한 ‘생각’이 필요해
이에 대해 푸드 칼럼니스트 비 윌슨은 말한다. 이건 소비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를 우리가 직접, 주체적으로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공급’ 측면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식물성 기름을 먹는다. 그건 우리가 식물성 기름을 유독 많이 먹고 싶어 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급 체인이 그 재료를 택했기 때문이다. 식물성 기름은 싸고 가공이 용이하며, 저렴하게 다양한 가공식품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산업적’ 측면 때문에 심지어 국가적으로도 식물성 기름의 생산 가공을 장려하고, 그로 인해 식물성 기름의 소비는 더 늘어나게 된다.
공급자들의 마케팅, 영업 전략이 우리가 먹는 걸 결정한다. 심지어 ‘슈퍼푸드’라며 각광받는 새로운 음식들도 마찬가지다. 공중파의 아침저녁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는 매번 다른 식품들이 ‘슈퍼푸드’라며 등장하고, 마트에는 그 ‘슈퍼푸드’들이 매대에 쫙 깔린다.
이런 너무 복잡한 음식, 너무 많아진 선택지가 오히려 식생활을 풍요롭지 않게 만드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상한 사짜 건강법들이 유행하며, 건강한 식사를 하려는 노력이 스트레스가 되어버리고, 식탁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린다.
따라서 식사를 바꾸려면 소비자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비 윌슨은 우리의 식탁이 어떻게 바뀌었으며, 왜 그렇게 바뀌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를 한 권의 책으로 담았다. 『식사에 대한 생각』이다.
비 윌슨은 가디언,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음식 칼럼을 기고하는 ‘음식 칼럼니스트’다. 프랑스의 초기 유토피아 사회주의 연구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작 『포크를 생각하다』 『식습관의 인문학』 등에 이어 신작 『식사에 대한 생각』에서도 식문화의 현주소에 대한 논쟁적 관점을 내놓는다.
뭔가 식문화 관련 책이라고 하면 비과학적이거나 유사과학적인 담론을 끼워 넣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다르다. 비 윌슨은 본인의 음식 칼럼니스트로서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인물답게, 식문화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식문화의 현주소는 어떠한지 다양한 통계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며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초가공식품의 대두, 음식의 언어가 사라진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현대는 음식 다양성이 위협받는 시대다. 유통되는 바나나의 품종은 캐번디시 단 하나뿐이고, 많은 어린이가 토마토를 소스로만 접한다(!). 세계인의 입맛은 균일해지고, 음식의 언어가 사라진다. 사과의 품종은 원래 600종에 이르지만, 정작 영국에서 판매되는 사과는 열 가지 종류뿐이라고 한다. 품종이 단순화되며, 품종에 따라 서로 다른 영양을 섭취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시리얼, 라면, 스낵바, 탄산음료 등의 ‘초가공식품’이 등장하고, 당분, 지방, 나트륨 등의 소비량이 지나치게 늘어난다.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식탁에 이들 식품 체인의 초가공식품들이 파고들면서, 더 자극적인 음식을 소비하도록 한다.
특히 탄산음료 등 가당 음료는 심각하다. 가당 음료는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칼로리를 그것도 당분만으로 인체에 공급한다. 하지만 포만감은 낮다. 어찌 보면 이건 인류의 역사와 연결된 것일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굶주림에서 풍요로 인류의 식습관이 갑작스레 변화하면서, 감각에 일종의 불일치가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금방 먹어 치우는 물 같은 물건이 칼로리가 높을 리가 없어! 더 먹어야 해!
좋은 음식은 ‘시스템’에서 나온다
좋은 음식은 삶의 질에 유관하고, 식품 품질의 규제가 필요하다. 이건 시스템의 문제다.
비 윌슨은 한국을 좋은 예로 든다. 한국은 기근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농경사회에서, 거대 식품 회사들이 등장하고 대규모 마케팅이 벌어지는 선진국가로 급격히 진입했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 완벽한 식사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채소를 많이 먹고 비교적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한다. 비 윌슨이 한국을 두고 이런 놀라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나라는, 배추를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비 윌슨은 국가가 주도하는 ‘한식 진흥’ 정책 등이 그 비결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한다. 국가 주도로 이뤄지는 한식 권장, 이미지 광고, 여기저기서 이뤄지는 김장 체험 활동이나 전통 식문화 체험 같은 것들. 심지어 여기저기서 욕을 먹곤 하는 한식 세계화 전략(…) 등도 어쩌면 한국이 ‘초가공식품’의 덫에 걸리지 않은 비결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흔히, 특히 서구 일부 국가는 채소를 맛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것조차도 문화적인 현상이다. 초가공식품의 범람, 채소를 권하지 않는 사회적 배경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실제로 채소를 ‘맛없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질의 채소가 저렴한 값에 공급되면 채소의 소비가 늘 뿐 아니라, 채소에 대한 선호도 자체도 증가한다고 한다.
좋은 식문화를 위해서는 국가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칠레는 시리얼 상자에 만화 캐릭터를 넣을 수 없도록 아예 금지를 시켜 버렸다. 아이들이 시리얼을 너무 쉽게, 친숙하게 접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설탕, 포화지방, 칼로리, 소금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을 경우 반드시 경고문을 표기하도록 한 곳도 있다. 아예 비만세, 탄산세와 같은 세금을 도입하는 경우도 있고, 패스트푸드 광고를 금지하거나 학교에서 탄산 등 판매를 금지하는 경우도 있다. 채소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도록 유통을 개혁하고, 맛있는 채소를 먹을 수 있도록 마트의 진열방식을 바꾸고, 채소 공급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식도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식생활은 과거보다 불건강해지고, 뭐 조상님들의 지혜를 본받아 과거의 건강한 식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는 식의 얘기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20세기 초까지도 대부분의 국가는 기근에 시달렸고, 심지어 어떤 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오늘날의 식탁이 아무리 나쁘다 한들 기근보다 나쁜 식탁이 있을 순 없다.
하지만 더 나은 식탁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비 윌슨은 이것이 ‘국가적인’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 또한 거기에 공감한다. 우리가 먹는 건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그건 시스템의 문제고, 그래서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다.
물론 개개인의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비 윌슨은 에필로그를 통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을 제시하기도 한다. 접시 크기 줄이기, 물 대신 음료 먹지 말기,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기, 단백질과 채소부터 먹기, 유행하는 음식 피하기. 비교적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실천들이다.
※ 해당 기사는 어크로스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