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1대 총선의 국민의당 6.8%, 근 190만 표의 득표는 한국 정치에 대한 아방가르드다. 칭찬이 아니다. 대놓고 말하면, 그는 이번 총선을 통해 한국 정치를 제대로 ‘멕였다’.
1. 정당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재미있는 라이벌은 사실 민생당과 국민의당이다. 말하자면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서나 할 법한 생체실험을 한 셈이다. 정당의 생존엔 무엇이 중요할까요? 껍데기일까요? 알맹이일까요? 우리 한번 분리해봅시다.
4년 전 원내 제3당으로 치솟았던 국민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정확히 둘로 갈라졌다. 민생당은 ‘알맹이’를 모두 가져갔다. 그들은 국민의당의 대부분을 승계했다. 대부분의 의석, 호남이라는 지지 기반, 원내교섭단체 제3당이라는 국회 지분과 정당 보조금, 3번이라는 번호, 심지어 초록색까지도.
그리고 국민의당은, 그 모든 걸 버리고 겉껍데기를 가져갔다. ‘안철수신당’과 ‘국민당’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결국 ‘국민의당’이라는 이름과 안철수라는 상징을 가져갔다. 그렇다면, 실험 결과는? 짜잔, ‘껍데기’가 살아남았습니다.
민생당은 지역구는 물론 정당 득표 3%도 얻지 못하고 전멸했다. 수십 년간 정계를 주름잡았던 거물들과 모든 정당 조직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반면 안철수 대표는 정치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승리를 거뒀다. 뒤집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이겼다. 개인방송처럼 생중계된 의료봉사와 마라톤은 탈정치를 넘어선 반정치였다. 오히려 시간을 벌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2. 12년 전 문국현을 능가하는 ‘신기묘산’
안철수 대표는 이번 결과를 ‘패배’라고 했다. 그렇지 않다. 본인 기대에는 못 미쳤던 것 같지만, 국민의당의 결과는 간신히 생존한 수준이 아니라 ‘대첩’에 가까웠다. 이 ‘저비용 고효율’은 12년 전 18대 총선의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을 능가한다.
비교해보자. 비슷한 상황에서 문국현은 ‘고작’ 3.8%를 득표했다. 비례 의석으로는 54석 중 2석이었고, 자신은 터줏대감 이재오와 은평을 지역구에서 겨뤄 승리하는 수고를 치렀다.
안철수는 문국현의 거의 두 배를 얻었다. 무엇보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출마자가 없어서 현수막조차 당사에 내건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이 사용한 비용이 있다면, 대표 자신의 몸과 ‘안철수 인형 탈‘ 검토 비용 정도였다. 실제로는 인형 탈조차 만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철수 대표는 자신을 끝까지 따라다닌 의원 2명의 자리를 포함한 의석 3개를 얻어낸 성공을 해내 버렸다. 그 의원들의 비례 순번이 정확히 당선권인 2번과 3번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정당의 얼굴 격인 1번은 차마 현직 의원들에게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앞날을 내다보는 것 같은 신기묘산이었다.
3. 사실상의 위성정당이었던 국민의당 시즌 2
거대 양당(이젠 초거대 여당과 중규모 야당이라고 해야겠지만)의 위성정당은 선거 내내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국민의당 시즌 2도 사실 위성정당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2월의 바른미래당 이합집산 때로 돌아가자. 사실 더 많은 ‘안철수계’ 의원들이 따라 올 수 있었다. 김삼화, 김수민, 김중로, 이동섭 의원 등이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는 따라오는 이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미래통합당은 이들을 받아들이고 모두 지역구 공천을 주었다.
총선 전 흔한 이합집산 같아 보이지만, 차라리 이렇게 해석하는 건 어떨까. 미래통합당은 새로운보수당이나 이언주의 전진4.0과만 합당한 게 아니라고. 사실은 안철수신당과도 합당 급의 지역구 연합정당을 결성했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더불어민주당의 ‘제2 위성정당’을 자처한 열린민주당이 있었던 것처럼, 국민의당도 사실상 미래통합당의 제2 위성정당이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더 나아가, 국민의당은 의원 상당수를 미래통합당에 ‘아웃소싱’했다고 보면 어떨까.
정당이 아니라 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에도 안철수 대표는 남는 장사를 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살릴 수 있었던’ 기성 의원은 최대 2명이었으니까. 미래통합당으로 ‘보내진’ 의원 4명은 전원 낙선했지만, 국민의당은 완벽하게 책임을 모면했다. 자금과 조직적 유세 지원은 물론 낙선의 책임도 모두 미래통합당의 몫이었다.
이 와중에 웃지 못할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민생당의 ‘셀프제명’ 가처분 소송이다. 법원이 민생당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미래통합당에 입당한 의원들도 도로 민생당 소속이 되었다.
물론 이중 당적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법원이 제명의 효력을 정지시킨 순간, 안철수계 의원들은 미래통합당 입당 취소냐 의원직 사퇴냐는 양자택일에 놓인 것이다. 대부분은 사퇴를 선택했고, 가처분 전 이미 공천에서 떨어진 신용현, 임재훈 의원은 잔류를 선택했다. 남은 20대 국회에서 한 명이라도 우호적인 의석을 가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미래통합당 지도부의 조언이었다.
4. 모든 군소정당의 어두운 복음 말씀
얼마 전 박상현 칼럼니스트의 글을 보았다. 그 글에서 그분은 안철수는 (여론과 교감하는) ‘센서’가 필요 없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절반은 동의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안철수의 ‘센서’와 프로그램의 결론이 ‘기성 유세활동은 필요 없다’는 최적화 결론으로 이어졌고 역사상 최저비용 고효율 결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당은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선거의 본질을 제대로 까발린 셈이다. 선거에 필요한 정당 조직, 정책, 유세, 모든 것은 생존의 핵심 요소는 아니었다는 것, 없어도 그만이었다는 거다.
그의 성공은 모든 군소정당에 어두운 복음 말씀이 될지도 모른다. 페이퍼 정당을 넘어선, ‘홀로그램 정당’. 다음 선거에서 더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보지만, 솔직히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5. 유전물질만으로 살아남는 정당은…?
선거 초기,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낸 ‘허경영당’ 국가혁명배당금당의 의외의 조직력과 자금력에 경악한 적이 있다. 유사정당이나 다름없는 정당이 여성 공천 비율 30%를 기록하며 기성정당의 허점을 드러냈다는 점도 충격이었다. 전국의 지역구 평균 출마자수가 4.3명이니까, 거칠게 요약하면 민주당 / 미래통합당 / 배당금당 / 기타정당과 무소속 4명 선거였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국민의당 시즌 2야말로 살아남지 못한 배당금당을 능가하는 ‘찐’이다. (배당금당은 전 지역구에서 2% 미만의 득표를 했으며, 2곳을 제외하고는 득표수 2,000표를 넘기지 못했다.) 8년간의 모색 끝에, 안철수 대표는 결국 답을 찾아낸 것이다.
정당이 생명이라면 의석과 조직은 유전물질이 아니다. 국민의당은 최초로 유전물질만으로 살아남는 진화에 성공한 셈인데… 공교롭게도 현실에서 유전물질만으로 복제에 성공하는 경우를 우리는 바이러스라고 한다. 대표의 백신업이 힌트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당 180석의 대승 속에서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도전을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튼 절규로 마무리한다. ‘Ahn드로이드는 전기정당의 꿈을 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