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경이롭다. 수천 년 이상 인류의 모든 기록을 담아왔다. 책과 마주한 시간은 경이롭다. 때로는 위로와 기쁨을, 때로는 지식과 설렘을 준다. 책은 여행이고 동반자이고 스승이며 나 자신이다. 우리와 각별한 관계를 만들어온 책은 객관화가 어려운 ‘감성적’ 미디어다. 오늘은 미안하게도 이 아늑한 미디어의 해체 현상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책의 해체 현상은 책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책의 진화이다. 다만 그 진화가 계속 이어져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책의 형태를 언젠가 (완전히) 벗어나게 될 수도 있다. 이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집에서 TV가 없어지는 것과 책이 없어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니까. 책이라는 미디어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그럼 책이 왜, 어떻게 해체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다.
현상의 이해
칠순이 넘은 필자의 노모는 정년 퇴임 후 제2의 전성기를 살고 계시다. 무척 바쁜 그녀의 일상을 관찰해보니, 그녀에게 새 삶을 선물한 것은 매일 만나는 친구도 손자도 아닌 ‘책’이었다. 엄마의 책상과 책, 신문 스크랩들은 평생 익숙한 광경이지만, 지금 책과 마주한 마법의 시간은 온전히 엄마의 것이다.
늘 쫓기는 삶을 살았던 그녀는 지금에야 비로소 긴 호흡으로 책을 읽는다. 그 인생의 깊이만큼 인사이트도 깊다. 엄마의 서재는 고갈되지 않는 이야기 같다. 우리 모두에게 책은 본래 이런 존재가 아닐까.
반면 필자의 집에는 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컴퓨터고 전자책이고 뭔가를 읽고 쓰고 공유할 수 있는 ‘도구’들만 잔뜩 있다. 손글씨를 쓰는 일도 점점 없어져서 누군가에게 생일카드라도 써야 할 때는 난감하다. 노란색 포스트잇과 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가 있는 엄마의 책상과 참 대조되는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이 대조되는 모습은 점점 더 극명해지다가 나중에는 한쪽이 아예 없어지게 될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까지와 같이 책을 정의한다면 책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의 진화에 따라 책을 다시 정의할 수 있다면 책의 진화는 계속될 것이다.
책을 정의하는 두 가지 기준
지금의 책 모양이 처음 갖춰진 것은 약 1세기로 추정된다. 고대에는 두루마리 방식을 사용했다. 그 후 휴대도 간편하고 읽기 편하게 개발된 것이 양면 페이지로 구성된 지금의 책이다. 양피지나 종이에 필사본으로 만들어지던 것이 15세기 이후부터 인쇄물로 제작된다. 책이 대중화되고 일반인들에게도 서재가 생기고 정보가 흐르게 되는 엄청난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약 500년 동안 책은 거의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책이란 ‘겉표지를 제외하고 최소 49페이지 이상으로 구성된 비정기간행물’을 일컫는다. US postal system에서도 최소 24페이지 이상의 내용으로 구성된 출판물로, 적어도 22페이지는 읽을 것을 포함한 인쇄물이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도 책이라면 어느 정도의 페이지 두께를 떠올리게 된다. 제법 완결된 스토리와 깊이를 담으려면 일정 분량이 필요하다.
또한 ‘광고를 목적으로 하여 공짜로 배포되는 것은 출판물의 범위에서 제외된다’는 내용도 유네스코에서는 명시하고 있다. 출판물의 국제적 통계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다소 엄격하게 정의되었겠지만 책은 공짜가 아닌 유료이고 서점에서 판매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기획과 집필, 편집, 유통 등을 모두 고려하면 한번 책을 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저자의 산고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많은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퀄리티 필터링도 이뤄진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당연히 유료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책의 기준가까지 정부에서 정해놓았고(La Loi Lang, 1981) 할인율도 법적으로 엄격하게 따라야 한다. 그러나 책을 정의하는 이 두 가지 기준은 이미 허물어졌다.
책의 컨테이너의 해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책의 형태(shape)는 ‘페이지’ 묶음이 만들어왔다. 그러나 양면으로 구성된 ‘페이지’ 단위는 더 이상 책의 필수적 요소가 아니다. 종이책이 유일한 컨테이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웹북에서는 스크롤 다운을 통해 하나의 챕터를 한 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위치(location)’만이 중요할 뿐 페이지의 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전자책에서도 페이지의 개념은 없다. 내가 보고 싶은 활자의 크기에 따라 페이지는 바뀔 수 있고, 내가 읽고 있는 부분이 전체 내용 중 몇 ‘%’에 해당하는지 ‘과정’을 숫자로 볼 수 있을 뿐이다. 마치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을 할 때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나타내주는 것과도 같다. 페이지는 없어졌지만 책을 읽는 것은 여전히 여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전자책이나 웹북의 모습은 책 이전 시대의 두루마리 형태와 오히려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페이지로 낱낱이 분리되지 않는 대신 페이지 안에 갇혀 있지도 않다. 페이지 개념은 휴대와 열독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존재해온 것이다.
그러나 휴대는 종이보다 ‘비트(bit)’로 구성된 전자책이나 웹북이 훨씬 간편해졌다. 읽는 것 또한 페이지에 기준할 필요가 없어졌다. 페이지에서 해방되는 대신 각각의 이야기들은, 문장들은, 단어들은 훨씬 더 자유로운 형태로 하이퍼링크를 타고 서로 다른 스토리와 책들을 오가며 오히려 ‘연결’되기를 지향하기 시작한다. ‘페이지와 종이로 구성된 책’의 형태가 ‘비트’ 단위로 해체되면서 책의 콘텐츠와 컨텍스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책의 콘텐츠 해체
웹이나 전자책으로 출판이 가능해지면서 ‘출판’이라는 행위 자체는 ‘단호한 결심’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책의 완성을 지루하게 기다리면서 독자는 지치고 스토리는 이미 낡은 주제가 되어 버리는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먼저 나온 챕터를 먼저 출판하여 독자와 상호작용하고 그 반응을 수용하여 그다음 챕터가 연달아 출판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책이 시의성을 잃지 않고 빠르게 시장과 독자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과 독자의 반응을 계속 접하면서 집필이 이뤄지기 때문에 효율적인 방법으로 완성도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책의 미래를 실험하고 설명한 책, 『Book: The futurist’s manifesto(2012)』의 사례이다. 챕터가 완성됨에 따라 웹으로 먼저 수차례 출판하고 나중에서야 오프라인 출판을 했다. 이 과정에서 웹 버전은 무료로 배포되었는데, 이러한 출판 방식이 책의 시의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 뿐만 아니라 프리 마케팅까지 저절로 병행되는 사례가 되었다.
책이 무료로 배포되는 사례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책을 만드는 원가가 거의 ’0′에 가깝다 보니 공짜 책으로 책을 마케팅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책은 나아가 하나의 스타트업이나 인터넷 서비스와 같은 존재로 발전하고 있다. 책 출판에 대한 펀딩을 받는 대신 책의 콘텐츠 자체는 무료 버전으로 배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물론 반드시 1, 2, 3… 등의 순차적인 챕터 구성만이 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것 또한 책의 컨테이너가 규정해 준 하나의 스토리텔링 방식에 불과하다. 블로그 포스트를 책으로 출판하거나 심지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의 토론을 책으로 출판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여기서는 200-300페이지 분량의 기승전결이 필요하지 않다. 웹에서 피로감 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작은 스토리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책을 구성할 수도 있다.
심지어 거꾸로, 단행본으로 여러 차례 엮인 책이 나중에 블로그 포스트로 정리되어 기록될 수도 있는 일이다. 여기서 책은 무엇이고 블로그 포스트는 무엇인가? 책은 출판이고 포스트는 출판이 아닌가? 어떤 것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서점에도 쓰레기 같은 책은 널렸다. 책이 더 가치 있고 블로그 포스트는 그에 못 미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의 컨테이너 해체와 콘텐츠 해체 현상은 그동안 책의 ‘물리적 형태’ 및 그에 기반 둔 ‘사용자(독자) 경험’이 만들어온 책의 정의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책도 출판이고 블로그 포스트도 출판이다. 적어도 기록을 보존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공유할 방법을 지닌 컨테이너에 담겨 있다면 책의 기능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가져온 책에 대한 ‘사용자 경험’은 바뀔지 모르지만 그 ‘지식에 대한 경험’은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발견들을 더 할 수 있는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책의 컨텍스트에 달려있다.
책의 컨텍스트의 재구성
책을 읽는 것은 여행이다. 웹북과 전자책에서는 하이퍼링크를 통해 새로운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목적지(한 권의 책을 정독)까지 가는 방법은 직행도 있지만 읽으면서 저자에 대한 궁금증이 더 생기기도 하고, 저자가 제시한 이론이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기도 하고, 저자가 연결해 놓은 참고자료들을 다 둘러보면서 목적지에 다다를 수도 있다. 책의 컨텍스트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며 그 경로는 독자가 결정한다.
아래는 커뮤니티와 함께 성경책을 읽는 경험을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유버전(YouVersion)의 화면이다. 성경책은 가장 오래된 책이면서도 가장 오랫동안 살아있는 책이다. 유버전은 책을 커뮤니티와 함께 읽고 성경책을 개인화할 수 있는 도구로 탄생했으며 현재 100여 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종이책에서 벗어나면 다양한 컨텍스트가 열린다.
책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하면서 전자책이 책의 미래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문제의 핵심은 전자책이나 웹북이라는 컨테이너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책의 형식 때문에 많은 변화가 야기된다. 하지만 핵심은 그로 인해 변화하는 ‘컨텍스트’에 있다.
책의 미래는 단순히 전자책이 아니다. 휴대가 간편하고 출판이 수월한 것만을 놓고 책의 미래를 얘기하는 것은 전자책을 CD롬에 비교하는 것과도 같은 안타까운 오류를 범하게 한다. 마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SMS와 비교하는 것과도 같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핵심은 사람들의 ‘관계’와 ‘네트워크’가 품고 있는 잠재성이지 ‘문자로 하는 대화, 웹에서 하는 대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책과 나의 관계의 진화
책의 컨테이너와 콘텐츠, 컨텍스트의 변화는 결국 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어떤 형태에 담겨 전달되든 관계없이 지식을 기록, 공유, 보존할 수 있는 모든 도구가 책이 될 것이다. 다만 듣거나 보는 방식이 아니라 ‘읽는’ 방법으로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이 영화나 음악과 다를 뿐이다. 여기에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합쳐지면서 텍스트 기반 스토리텔링은 더욱 풍부해진다.
우리의 동반자이고 스승이고 나 자신으로서의 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대상들과 나의 관계는 조금씩 바뀌게 될 것 같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아 적는 학생 역할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될 것이고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딪히고 출판하고 표현하면서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오가닉 미디어 시대에 진화된 책과 나의 관계이다.
미래에는 누구나가 저자이자 독자가 될 것이다. 수많은 읽을거리 속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콘텐츠에 대한 필터링은 독자가 사후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의 시간을 줄여주고 효율적으로 콘텐츠와 연결해주는 역할을 출판사가 하게 될지도 모른다.
책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이 바뀌고 그에 따라 이 미디어와 나의 관계가 바뀌는 것이다. 지식과 사고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역할은 계속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책에 대한 정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책은 사라질 것이다. 책과 나의 관계 진화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지각하는 방식(perception) 또한 진화하게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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