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 불리한 4대 이슈, 하지만 코로나란 이슈가 이슈를 덮었다
이승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세분석가: 그냥 여의도를 기웃거리는 정세분석가입니다.
이승환: 총선 판도는 어떻게 보십니까?
정세분석가: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가 집권여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했습니다. 실제 대통령 지지율도 올랐지요. 정치권에는 ‘이슈가 이슈를 덮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원래 이번 총선을 앞둔 국민들의 머릿속에 큰 이슈는 4가지였습니다. 남북관계, 최저임금, 부동산, 조국 논란이었죠. 전반적으로 집권여당에게 불리했는데, 코로나19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세계적으로 팬데믹 상황이 오면서, 정부에 우호적으로 돌아선 거죠.
이승환: 4가지 다 여당에 불리한 이슈였나요?
정세분석가: 남북관계는 우리 정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에 원래 어려운 일입니다. 무조건 마이너스로 볼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나머지 3가지, 최저임금, 부동산, 조국은 적지 않은 마이너스였다고 봅니다.
이승환: 최저임금은 좀 애매하지 않나요?
정세분석가: 부동산보다 더 마이너스였을 거라 봅니다. 자영업자들은 선거에서 중요한 스윙 보터입니다. 자영업자는 경기변동에 특히나 민감하기 때문이지요. 예로 이명박 말기에 자영업자들은 진보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보통 정치 업계에서는 스윙 보터를 세대로는 50대, 계층으로는 자영업자, 지역으로는 충청과 부울경으로 봅니다.
이승환: 부울경은 미래통합당 쪽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세분석가: 지난 2018년 지방선거는 탄핵 이슈와 맞물렸지만, 2016년 총선에서 이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부산 총 18개 지역구 중 5개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죠. 스윙보터라는 게 꼭 반반 싸움이 아니라, 왔다 갔다 하는 유권자들을 의미합니다.
이승환: 아무튼, 최저임금, 부동산, 조국이 코로나에 다 묻혔다…
정세분석가: 네. 최저임금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외에도 기초연금, 근로장려금 등 다양한 정책이 있었지요. 하지만 사람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경제정책은 최저임금입니다. 부동산과 조국도 마찬가지이지요. 선거에서 중요한 건, 상대방에게 유리한 이슈를 관심 밖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찬/반 자체가 성립되지 않도록 하는 거죠. ‘프레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프레임의 핵심은 불리한 건 까먹게 하고 유리한 건 기억나게 하는 겁니다. 지금은 모두가 코로나19 생각으로 가득하죠.
위성정당, 안 하면 바보 되는 이상한 제도… 연동형 비례제는 결과적으로 콩가루 돼
이승환: 바뀐 연동형 비례대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세분석가: 이번 연동형 비례제는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이상한 제도였습니다. 그 어느 정당도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으면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한 당이 만들면 다른 당도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꼼수든 말든 합법이긴 합니다. 이를 다 법으로 막는 것도 쉽지는 않은 게, ‘나쁘게 살지 말자’는 법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나라는 정당 간 합의 하에 연동형 비례제가 만들어졌지만, 한국은 애초에 정의당 등 한쪽이 유리해서 합의라 할 게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콩가루’가 된 거죠. 누가 잘했다 못했다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승환: 비례 나온 사람들이 좀 듣보잡이던데 어찌 보세요?
정세분석가: 아사리판에서 이상한 사람 좀 나오든 말든, 딱 그 정도로 봅니다.
이승환: 정당이면 좋은 의원을 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정세분석가: 위성 정당들이 급히 나오며 콩가루가 됐다고 봐야죠. 이번에 당선권 된 사람을 보면 그냥 관운이 좋다는 느낌입니다. 원래 비례의원을 긴 시간에 걸쳐 평가해야 하는데, 돌발적으로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1주일 안에 결정되고, 3일 안에 결정되고… 정당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 시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퀄리티가 떨어지는 분들도 좀 많았지요.
열린민주당, 범여권 표 깎아 먹는 효과… 총선 이후 주도권 이슈도 터질 것
이승환: 제3 정당들은 어떤 포지션으로 봐야 할까요?
정세분석가: 이번 선거에서 결과적으로 혜택을 제일 많이 받는 건 열린민주당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상황이 좋긴 하지만, 열린민주당이 또 그걸로 장사하며 민주당 표를 빼앗아가고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강성 진보, 온건 진보 등… 이 중 소위 ‘문파’ 유권자를 열린민주당이 김의겸, 최강욱 등으로 빼앗아가지요.
이승환: 사실 네임드가 많다 보니, 열린민주당이 더 기존 더불어민주당에 가까운 느낌이 있는데… 사실상 같은 당으로 봐도 되지 않나요?
정세분석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결국 주도권 이슈가 나올 겁니다. 극단적으로 더불어시민당이 0%, 열린민주당이 40%를 받는다고 가정해 보지요. 그러면 현재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책임 문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느 정당이 더 많은 지지자의 신임을 받았느냐에 따라, 어느 지도부가 더 힘이 있는지 드러날 수 있습니다. 또 범여권 표를 깎아 먹는 효과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열린민주당 지지자들은 어차피 강성 지지층이기에, 열린민주당이 없어도 더불어민주당을 찍을 사람들입니다. 어쨌든 국민들이 김의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상태이기에, 두 당의 비례 지지율 합산은 더불어시민당 혼자 존재할 때보다 낮은 걸로 나옵니다.
한국 정당의 기본 포지션은 민주당계 40%, 미래통합당계 40%를 기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장의 정당 지지율이 아닌 세력이자 에너지로서의 비율이지요. 10–15%가 진보성향 정당에 애정을 가지고, 5–10%가 기타 등등입니다. 그런데 열린민주당이 인지도 있는 후보 중심으로 민주당계 지지율과 정의당, 애매한 계층까지 일부 가져갑니다.
이승환: 에… 정의당까지 가져간다 볼 수 있을까요?
정세분석가: 정의당 지지기반이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습니다. 지역구는 민주당에, 비례는 정의당에 표를 던지는 유권자가 많지요. 이들은 특정 정당 지지자라 칭하긴 애매하지만, 큰 선거일수록 민주당에 표를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선 때는 다 민주당, 총선에서도 지역구는 민주당, 광역과 기초자치단체장도 민주당에 투표합니다. 비례나 구의원, 시의원 정도만 정의당에 투표하지요.
정의당, 진보정당 1세대의 종말 겪을 수 있어
이승환: 그러면 열성 정의당 지지층은 어느 정도로 봐야 할까요?
정세분석가: 그건 대통령 선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 대선은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는데, 심상정은 6%를 얻었습니다. 적어 보이지만 1997년 권영길 후보의 1%, 2002년의 3.5%에 비하면 많이 올라온 거죠. 사실상 3–4%가 적극적 정의당 지지층입니다.
반면, 덜 중요한 투표에서는 찍어줄 수 있다는 층까지 합치면 최대 15%까지도 잠재 지지층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13%를 기록한 적도 있죠. 2016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지지율도 10% 정도였습니다.
이승환: 이번 선거법 개혁으로 제일 손해를 본 정당은 어디일까요?
정세분석가: 특별히 손해 본 정당은 없습니다. 정의당에서 가졌던 과도한 기대가 무너진 정도죠. 여론조사를 보면, 정의당 지지율이 6–8% 나오는데, 이는 투표를 하지 않는 무응답자와 무당파도 반영된 결과입니다. 이들은 투표하지 않으니 실제 득표율은 좀 더 올라가겠죠. 통상적으로 2–3% 올라감을 생각하면 10% 내외일 겁니다. 2012년 총선에서 유시민, 이정희, 노회찬, 심상정이란 스타플레이어가 있던 통합진보당 득표율이 10% 이하였음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닙니다.
이승환: 그러면 정의당에 별로 나쁜 결과도 아니겠군요.
정세분석가: 정의당이 정말 손해 보는 건 지역구일 겁니다. 현재 정의당이 가진 지역구는 창원 성산의 여영국과 경기 고양의 심상정, 둘 뿐입니다.
이승환: 그래서 야권 연대가 탄생했군요.
정세분석가: 네, 민주당 입장에서도 정의당 후보가 같은 지역에 출마하면 당선에서 멀어지니까요.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생긴 이후, 야권연대를 통해 넓은 의미에서 연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2012년 심상정 후보가 대선 후보를 중도 포기하며 문재인을 지지했지요. 2016년 노회찬 당선 때는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승환: 민주당 입장에서는 짜증 나고, 정의당 입장에서는 서럽겠습니다.
정세분석가: 힘으로 관철된 결과든, 협상이든 배려든, 소선거구제하에서 진보정당은 독자노선의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 관계도 헤어지고도 먹고 살 수 있을 때 이별이 깔끔하잖아요. 한쪽만 돈을 많이 벌면, 그쪽 입김이 세집니다. 결과적으로, 진보정당은 다자구도 선거에서 매우 불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지지자는 물론 플레이어들도 심리적으로 타격이 좀 있었습니다. 때문에 소위 말하는 범 진보개혁연대 논의가 없었지요. 중앙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지역에서의 단일화는 요원합니다. 지역 선거에 나간다는 건, 그야말로 인생 걸고 선거운동 하는 거니까요. 누구 한 사람 포기하라고 하는 건 쉽지 않죠.
이승환: 그러면 당분간 진보연대는 요원하다…
정세분석가: 거꾸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가능하겠죠. 지도부끼리 쇼부 본다고 연대가 되는 게 아닙니다. 국민 다수, 또는 최소한 범민주당과 범정의당 지지자 사이 공감대가 있을 때 일어날 수 있지요.
진보정당 관점에서 이번 선거는 역사적 시점이 될 겁니다. 한국의 진보정당은 NL과 PD가, 민족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에서 주도했죠. 분당 등 여러 갈등을 겪었지만, 이번 정의당 비례대표 명단을 보면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열심히 활동한 김종철 등은 당선권에 배치되지 못했습니다. 심상정도 쉽지 않은 선거라, 초창기 정당을 일으킨 이들이 공직에 1명도 없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도권에 진출한 1세대의 종말이 될 수 있는 거죠.
이승환: 그래도 그간 진보정당이 지역에서 한두 석이라도 꾸역꾸역 차지하지 않았나요?
정세분석가: 영남 진보벨트라 부르던 중화학 공업지대에서 진보정당이 당선됐던 이유는, 과거 영남에서 민주당을 호남당으로 보는 지역주의가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진보 성향을 가진 영남 노동자들도 민주당은 찍지 않으려 했죠. 이 지역구도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통해 깨집니다. 2016년 부산에서 민주당이 5석을 먹은 건 의미가 큽니다. 3당 합당 이후 부산에서 민주당 계열 당선자는 조경태 1명뿐이었습니다.
이승환: 정말 엄청난 지역감정이었군요.
정세분석가: 네. 2016년이 한국 정치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울산 북구와 동구는 민주당에서 아예 후보를 내지도 못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2018년 다자구도 하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죠. 이는 지역주의적 대립구도가 무너지며 ‘영남 진보벨트’가 ‘영남 민주당벨트’로 바뀐 겁니다. 진보정당은 마지막 지역기반을 잃은 셈이죠. 지금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건, 정당득표율로 비례대표를 일정 비율 가져가는 것뿐입니다. 정의당 입장에서는 전환기에 들어선 거죠.
미래통합당, 경제보수 탄압하며 과거의 안보보수가 주류로 등장해
이승환: 미통당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세분석가: 보수 내부의 긴 역사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트라우마가 많은 나라입니다. 식민지 경험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국민 전체를 강력한 민족주의에 빠지게 했습니다. 또한 분단과 한국전쟁은 북한과의 체제대결에 빠지게 했고, 강력한 권위주의를 심어줬지요. 그런데 북한과의 체제대결이야 누구나 동의했지만, 권위주의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권위주의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박정희와 김대중으로 갈라졌죠. 여기서 박정희로 갈라진 게 바로 전통적 안보 보수입니다. 권위주의를 긍정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거죠.
이승환: 또 다른 보수로는 무엇이 있나요?
정세분석가: 경제보수입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시장을 강조하지요. 3당 합당은 TK로 대표되는, 권위주의를 긍정하는 안보보수와 PK로 대표되는,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경제보수의 연합이기도 했습니다. 3당 합당 이전에는 안보보수가 보수당을 이끌었지만 이후에는 김영삼, 이회창, 이명박 등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이 보수당을 이끌었지요.
이승환: 이명박이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보기는 힘들지 않나요?
정세분석가: 이명박도 1학기 정도는(…)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입니다. 이명박을 지지한 사람들 면면을 보면, 이재오, 김문수 등 운동권 출신이 많습니다. 이들은 박근혜는 민주화 세력이 아니기에 지지하지 않았던 거죠. 이후 젊은 피라 불린 오세훈, 원희룡, 남경필, 손학규, 모두 다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유승민, 남경필 등 개혁보수를 탄압하며 이 흐름이 바뀝니다. 그리고 기존의 권위주의 안보보수라 할 수 있는 김기춘, 황교안 등이 주류로 등장하지요.
이승환: 보수에 있어서는 비극의 시작이군요.
정세분석가: 2016년 이후 부울경 라인에 민주당 당선자가 많아진 이유는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조차 박근혜 정부에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경남이 경제적으로는 안정을 중시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자부심이 적지 않은 곳입니다. 2016 총선은 개혁보수가 권위주의 보수를 심판한 셈이죠.
이승환: 어쨌든 다시 미래통합당으로 합치지 않았습니까?
정세분석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여전히 개혁보수, 경제보수는 그 당의 주류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을 좇는 유권자의 마음도 다 돌아서지 않습니다. 유승민도 원희룡도 미래통합당의 주류라 하기 힘들기에, 당적 결합으로 보기 힘든 것이지요. 김영삼은 김대중과 함께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이뤄낸 사람입니다. 3당 합당 이후 보수주의는 민주주의와 함께했지만, 지금 미래통합당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을 끌어안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표정은 별로 고향에 온 것 같지 않다(…)
정세분석가: 결국 자리를 얼마나 내주느냐죠. 이번 공천도 바른미래당 계열에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들이 주류로 있었던 마지막 시절은 이명박 정권이었죠. 이명박은 국가주의를 완전히 부정하진 않았지만, 국가와 시장 관계를 적절히 하는 ‘실용보수’로 집권한 거죠. 집권 이후에 광우병 촛불시위의 영향과 친박 연대에게 얻어맞고 다시 권위주의 보수로 어느 정도 회귀하긴 했습니다만.
안보보수에 얽매인 미통당 지도부, 강한 리더십 있어야 중도층 흡수 가능
이승환: 안보보수만으로는 먹힐 수 없나요?
정세분석가: 보수 내에서 안보보수가 헤게모니를 잃은 이유는, 실제로 북한이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핵무기 비대칭 전력 문제는 있으나, 북한에 의해 남한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통당 국회의원 중에도 없습니다. 한국전쟁의 아픈 경험이 마음속에 자리한 어르신 일부뿐입니다. 이분들이 태극기 들고나오는 건 정말 애국심이라 봅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 눈에는 이해하기 힘들지요. 마찬가지로 서초동 조국 집회를 두고 광주항쟁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요.
이승환: 그러면 보수가 다시 지지율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세분석가: 안보보수의 이탈을 최소화하되,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개혁적 경제보수가 주도권을 잡아야겠지요. 하지만 이번 공천에서 개혁적이라는 인상이 드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카카오뱅크 이용우 대표,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 열린민주당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좋든 싫든 김의겸 전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등이 떠오르죠. 그런데 미통당은 뭔가 뉴페이스가 떠오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정도면 아마 정치 고(高)관여 0.1%, 적게 봐도 1%일 텐데, 우리가 모른다는 건 정말 심각한 겁니다. 그러니 지지율 반등이 없는 거죠.
이승환: 하지만 박근혜 탄핵을 인정해버리면, 안보보수 표를 잃게 된다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정세분석가: 어차피 탄핵 반대하는 분들은 열성 지지층이라, 탄핵 이슈로 지지층 이탈은 없다고 봅니다. 여기에 지도부가 얽매여 있는 게 보수의 진짜 문제이지요. 보수가 중도층을 흡수하려면, 역량을 넘은 강한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새로운 질서와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겠지요.
이승환: 리더십… 하니, 결국 인물론이 떠오르는군요.
정세분석가: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500만 표 차이로 대패했습니다. 2008년 총선에서도 대패해서, 당시 민주당 의석수가 80여 석에 불과했습니다. 이를 2012년까지도 복구하지 못해 발생한 게 안철수 현상이지요. 안철수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보지 말고, 안철수를 찾으려 했던 에너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민주당으로 안 된다, 친노로 안 된다, 이런 공감대가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민주당 지지층, 또는 범 진보 지지층은 바깥에서 사람을 찾게 되지요. 쓸 만한 놈 어디 있나, 하다가 걸린 게 안철수입니다.
이승환: 그러면 2012년 떠오른 문재인은 어떻게 봐야 하지요?
정세분석가: 소위 친노라 불린 사람들 안에서도 친노스럽지 않은 사람을 찾은 게 문재인이지요. 그 상징적인 장면이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입니다. 절제, 예의, 품격… 이런 것들이 기존 친노와 차별성을 부여했지요. 친노스럽지 않은 친노 문재인, 아예 민주당 바깥에서 찾은 안철수. 이 둘의 에너지가 맞붙었지만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단일화 합의조차 못 하며 어느 한 쪽이 승기를 가져갈 수 없었죠. 결국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서야 판이 정리됐습니다. 민주당도 10년 걸린 거죠.
이승환: 판이 정리됐다는 건 어떤 의미이지요?
정세분석가: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선전한 기반, 안철수를 지지한 핵심 유권자가 호남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호남의 에너지를 그대로 품었습니다. 호남 출신 비서실장 임종석, 호남 출신 국무총리 이낙연을 앉혔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매우 성심성의껏 대처했습니다. 이로써 길고 긴 범개혁 세력의 에너지를 민주당으로 집중할 수 있었죠. 리더십과 구조가 상호 작용한 사례입니다.
안철수, 미래통합당이 패배하더라도 리더십 발휘하기 힘들 것
이승환: 안철수가 복귀했지만 죽 쑤는 건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세분석가: 흥미로운 여론조사가 있습니다. 2019년 12월, 2020년 3월 대선후보 여론조사를 보면, 코로나 전후임에도 이낙연 전 총리의 지지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짐작건대 이미 호남의 지지는 이낙연이 대표하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안철수는 지역적 기반이 사라졌습니다.
이승환: 그래도 안철수가 대구 봉사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이미지 전환을 시도하던데…
정세분석가: 정치는 권력에 도전하는 과정입니다. 누군가가 권력을 가졌을 때, 그리고 강한 의지를 밝힐 때 관심이 집중되지요. 그런데 안철수가 복귀하며 날린 멘트가 크게 둘입니다. 출마하지 않겠다, 보수당 통합에 참여하지 않겠다… 반(反)정치의 정치랄까요?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 같은 발언입니다. 그러니까 의료봉사를 통해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이 지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설령 미래통합당이 패배하고 황교안 리더십으로 안 된다는 공감대가 보수에 형성돼도, 안철수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이승환: 제3지대로 부활할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요?
정세분석가: 안철수 현상이 생긴 기반에는, 민주당이 역사상 최약체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참여정부가 실패했다는 생각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친노 세력에 대해서도 실력 없는 사람들이라는 시각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한 상태입니다. 비교적 잘한다고 생각하니 정부 지지율이 50% 내외로 나오는 것이죠.
이승환: 하지만 전통적으로 제3지대는 자주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정세분석가: 제3지대가 실은 아주 아주 좁은 영역입니다. 기존 제3지대는 민주당이 무력했기에 생긴, 원래 민주당이 가졌을 공간이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미래통합당이 어려우니 그들이 가졌을 공간이 열린 것이지요. 한쪽의 위기가 올 때, 새로운 세력을 차기 리더로 여기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안철수는 대안적 플레이어라기보다는 약간의 치장물에 불과해 보입니다.
이승환: 민생당의 미래는 어떻게 보세요?
정세분석가: 끝났다고 봐야죠. 여기도 지지기반이 호남인데, 이미 문재인 정부는 호남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과거 참여정부 때는 영남 정권이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낙연과 임종석, 5·18 광주항쟁 껴안기를 통해 잘 해결했지요. 노무현 정부 시절 영남지역의 지지기반을 늘리려다 호남을 자극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은 겁니다. 지금 민생당은 후보자들이 이낙연과 친하다는 현수막을 거는 수준입니다. 민주당 선대 위원장이 이낙연인 마당에, 민생당은 참패를 겪을 겁니다.
이승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정세분석가: 현재 한국의 성공적인 발전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합작품입니다. 코로나19의 성공적 방역 역시 산업화가 없었다면 이런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건강보험도 300인 이상 사업자만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1977년에 박정희가 도입한 게 사실입니다. 그 정도 수준의 GDP를 가진 국가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도입이었죠. 이후 김대중이 집권하며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해서, 건강보험 보장성이 본격적으로 확대됐고요. 이것도 결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합작품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수의 성공’ 역사를 모르는 대표적 집단이 현재의 보수세력입니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완전 종료된 지금, 그들의 가진 역사성은 경제 성장이지, 국가 안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독하게 반공-반북을 외치지요. 진보는 참여정부의 시행착오에서 배워왔지만, 보수는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겁니다. 앞으로 유권자들은, 성공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역사의 다음 페이지를 여는 세력에게 표를 줄 것입니다.
이승환: 다음 페이지?
정세분석가: 한국은 이미 대단한 나라가 됐습니다. 코로나19로 방역만 떠오르지만, 이미 유럽 어지간한 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양극화가 심하고 저성장은 불안합니다. 복지 확대도 필요하지만, 노동과 경제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하지요. 이런 다양한 질문에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민주당도 경제정책을 비롯해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미래통합당에는 미래도 없고, 통합도 없습니다. 1970년대 북괴와 맞선다는 마인드로 2020년대를 대응하죠. 이미 2018년 지방선거로 한 번 죽었는데, 이번에 또 죽는다면 차라리 보수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