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필립: 미국에서 디벨로퍼로 일하던 김필립입니다. 트럼프가 했던 일하고 비슷한데 사이즈는 더 작은, 그런 걸 생각하면 됩니다. 부동산의 A-Z까지 모두 다한다는 부동산계의 일론머스크를 꿈꿉니다. 최근에는 모 그룹 자산시설관리 경영전략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이승환: 코로나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영향은 어떻게 보십니까?
김필립: 아직은 정말 큰 영향이 없습니다. 실물경제가 부동산에 영향을 주기까지는 시차가 좀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 직격탄은 가게 장사가 안 되는 거고, 이 때문에 임대료가 밀려봐야 한두 달 정도일 겁니다. 다만 원래 오프라인 소비가 안 좋았으니,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요. 정말 두려운 것은, 이미 온라인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고 있는데, 오프라인 리테일이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난 것입니다.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위기라고 봐요.
실물 위기, 결국 상업용 부동산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이승환: 그러면 당장은 큰 이슈가 아니다…
김필립: 그건 아닙니다. 상권보다 사무공간, 빌딩 쪽이 더 우려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리해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흔히 말하는 알바 위주로 해고되지만, 제조업 쪽 영향이 커지면 화이트칼라도 해고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장사가 안 되는 것도, 프랜차이즈 본사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듣는 도미노만 해도 이렇습니다. 미국의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이 어려우니 그들이 사입해오던 물품 주문이 취소되기 시작했고, 아시아의 무역업체들이 정리해고에 들어갑니다. 해외의 리테일이 국내 화이트칼라 고용에 영향을 바로 미치고 있는 것이죠. 코로나 전에는 기술 발전이 오피스와 노동 수요를 줄인다고 했는데, 코로나19는 시장 자체의 수요를 줄여버리니 더 강력했습니다.
이승환: 오피스 수요가 줄면 어떻게 됩니까?
김필립: 주거는 어차피 먹고사는 공간이니까, 단기적으로 가격이 떨어져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빌딩은 대부분이 대출을 크게 끼고 구입합니다. 임대 수익이 떨어지면 대출금과 이자를 제때 못 내게 되겠죠. 벌써 미국은 주택담보대출의 연체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금융기관도 영향을 받고 대출금을 회수하려는 악순환에 들어갑니다. IMF 외환위기는 그 끝까지 간 거죠.
이번에는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모든 산업과 부동산은 엮여 있습니다. 직장인들이 직장을 잃으면 오피스의 공실도 늘어나고 가계소득도 줄어들어 주택담보대출에도 영향이 있고… 결국 금융경색이 일어나니 기업활동이 더 위축되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미국보다 주체의 규모가 작은 한국 빌딩은 위기가 올 수 있다
이승환: 미국부터 무너지고 한국도 무너지고…?
김필립: 미국의 빌딩이나 대형 상권은 좀 다릅니다. 한국은 빌딩도 매각 차익을 남기기 위한 단기 소유가 많지만, 미국 대형 부동산은 존버 쪽입니다. 예를 들면 IFC를 인수한 브룩필드도 일부 투자금을 회수했을 뿐, 당장 매각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뉴욕에는 50년 이상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도 많습니다.
이승환: 그게 어떤 차이를 낳지요?
김필립: 부동산의 소유주체가 자주 바뀌면 임대료를 높이며 건물 가치를 올립니다. 반면, 미국의 큰손들은 긴 시각으로 공실이 많아도 좀 손해 보며 버티는 편이지요.
물론 미국도 부동산 펀드로 매입한 호텔 등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이 과거 객실가동률에 근거해서 레버리지(금융)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객실가동이 지금 같이 현저히 떨어지면 현금흐름이 나빠져 펀드의 수익률 저하는 피할 수 없어요. B2C 기반의 부동산에 기반한 부동산 펀드나 리츠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이승환: 한국은 어떻습니까?
김필립: 한국과 미국의 건물 부채비율 대비 상환비율 갭이 큽니다. 한국은 5년 단기 펀드 구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임대료와 권리금을 빠르게 올리려 하죠. 그리고 최근에는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빈 오피스 건물도 높은 가격에 매각되는 사례들이 많았어요. 최근 오프라인 리테일 자산을 개발하기 위해서 설정된 리츠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판에 공실률이 높아지면, 기초 가격이 상당한 펀드나 리츠가 단기적으로는 걱정이 됩니다.
높은 레버리지, 최근 들어간 프로젝트는 파국 맞을 수도
이승환: 가장 위험한 이들은 누구일까요?
김필립: 한국은 최근 높은 가격에 건물을 구매한 이들이 많습니다. 아파트도 그렇잖아요? 5억에 아파트 산 사람이 15억 갔다가 10억으로 떨어져도 무슨 상관입니까? 하지만 갭투자로 12억에 산 사람은 망했지요. 갭투자의 핵심은 회전율입니다. 오를 때는 신나게 레버리지 먹지만, 하락이 일어나면 도망갈 길이 없습니다. 코로나로 수출이 멈추고 유동성이 떨어지는 지금, 공실이 계속 늘어나면 자산 레버리지를 심하게 건 사람들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이승환: 와… 살 떨리겠네요.
김필립: 그나마 이미 건물이 돌아가고 있는 곳은 낫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생길 수 있는 곳은, 지금 막 신축건물이나 프로젝트를 시작한 곳들이죠. 유동성 공급이 중단되고, 대출 심의 자체가 중단될 수 있어요. 중금리 대출로 빌라 등에 설정된 P2P대출 등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가 각 나라 시스템의 취약점을 드러내 줬듯, 우리가 흔히 지나쳤던 취약한 고리, 특히 부동산의 대출시장을 많이 드러내주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봐요.
이승환: 당장 경제 충격은 미국이 더 클 것 같은데, 그쪽도 위험하지 않나요?
김필립: 미국이야 이미 금리도 제로까지 내렸고, 금융으로 버티는 방법도 있습니다. 미국은 에쿼티 파이낸싱이라고 건물 가격의 100%까지도 담보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은행 대출 여부가 정부에 묶여있는 게 많지요. 그리고 미국은 원래 상업 부동산 시장이 좋았습니다. 긴 시간 금리도 낮았고, 세금 조정으로 양도차익도 먹기 좋았죠. 상업 부동산에 있어서는 공화당과 민주당 정책 사이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이승환: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다 꼬라박지 않았습니까?
김필립: 엄청났지요. 그때는 아예 금융과 관련된 모든 자산시장이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그런 이슈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영향은 있을 겁니다. 인력, 산업, 거기에다 글로벌까지 얽혀 있으니까요. 모든 산업이 그렇듯 버틸 힘이 없는 곳부터 무너질 겁니다. 임대료 좀 밀려도 괜찮은 곳은 버티겠죠. 오히려 돈 있는 사람은 지금 신났습니다. 앞으로 나올 급매물 상업용 빌딩을 레버리지로 사려고 준비하는 자산가들 많습니다.
공유 오피스, 한국에는 타격 가능성
이승환: 공유오피스는 어찌 보세요?
김필립: 한국에서는 타격이 클 것 같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공유오피스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위워크는 고정비를 줄이려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총무과에서 인당 비용 계산하니 100만 원이라고 해요. 그걸 위워크가 90만 원에 해결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은 되려 공유오피스가 더 비쌉니다. 한국의 공유오피스는 필수재보다는 부가가치가 많이 얹어진 고급 상품이잖아요. 다만 일부 작고 특색 있는 공유오피스는 적정 임대료와, 지금은 많이 없어진 탄력적인 좌석 요금제 등을 다시 도입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이승환: 그래도 공유 오피스가 시설과 보증금 이슈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까?
김필립: 소호 사업자가 힘들어지면 멋 부리던 걸 다 뺍니다. 쓸데없는 통신비, 멤버십, 다 끊지요. 이 중 임대료보다 큰 건 없습니다. 요즘 재택이 불가능한 세상도 아니고요. 잘하는 기업은 상관없겠지만, 이들은 대개 자체 오피스가 있을 겁니다.
이승환: 미국은 공유 오피스가 더 싸다는 게 신기하네요?
김필립: 애초에 공유 오피스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미국의 위워크는 시설업, 아웃소싱입니다. 총무과를 대신하는 아웃소싱 시장이죠. 반면 우리는 소비재형입니다. 때문에 미국은 총무과에서 원가구조를 따지지만, 한국에서는 임대료 경쟁 시장으로 분류됩니다.
미국의 공유 오피스는 기업의 임시 사업부서 사람들이 몸만 들어오면 되도록 전산까지 다 맞춰줍니다. 총무과 일을 다 줄여주고 아껴주는 거죠. 한국은 아직 그 단계가 아니기에, 시장이 안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결국, 오프라인이 온라인에 밀리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
이승환: 상가 쪽은 어떻게 보시나요?
김필립: 한국은 임대료 밀릴 때 모아둔 돈이 얼마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대출 많이 낀 생계형 건물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큰 돈이 들어간 기관형 상가도 그리 사정이 좋진 않습니다. 예로 IFC몰 같은 경우 매출 연동형으로 계약했다고 해도 미니멈 개런티는 있을 겁니다.
큰 건물이면 잘 버틸 거라 생각하는데, 마냥 그렇지는 않습니다. CGV, 마트, 대형 서점이 장사가 안 돼서 떠나면 연쇄 엑소더스가 펼쳐질 수도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작은 점포는 이 코로나 사태를 한 번의 이벤트로 보지만, 큰 기업의 CEO는 잠재적 리스크로 봅니다. 이런 이벤트에 취약한 산업 자체의 리스크로 보고 점포 축소 등의 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이승환: 뭐, 코로나가 천년만년 갈 건 아니니까요.
김필립: 심리적 문제가 있습니다. 수요가 줄어든 동안 금융 심사하는 사람은 의심이 커집니다. 그게 사모펀드든 은행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가 다 끝나고 매출이 원상 복귀돼야 부정적 시각을 버리겠지요. 그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승환: 미국 상가는 어떤가요?
김필립: 거기는 원래 어려웠습니다. 온라인 때문에 ‘리테일 엑소더스’라는 말까지 생겼죠. 아마존만 신나서 오프라인 여기저기 인수 중입니다. 저는 한국도 쿠팡이 롯데마트를 사고, 네이버가 CGV 인수하고…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이게 미국에서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으니까요. 이번 코로나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리테일 시장을 좀 더 극명하게 보여줄 뿐이라 생각합니다. LP 시장이 살아난다, 레트로가 대세다, 해봐야 스포티파이를 이길 수는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