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목숨을 잃은 학생과 선생님들의 명복을 빈다.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은 어른들 말을 믿고 선실에 가만히 박혀서 기다렸다. 선생님들도 아이들 곁에 머물며 챙기다가 끝내 함께 갇혔다.
이렇게 순종을 배우고 실천한 아이들을 모범생이라고 기르는 한국 교육에 의문을 품어본다. 설마 어른들과 국가를 믿기만 하고 제 목숨도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일이 교육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이 학생, 선생님들은 자기 잘못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다. 배를 모는 사람들, 관리하는 사람들, 나아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서럽게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온 세상에 다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가운데는 실종자 가족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교육부 장관이 벌인 ‘컵라면 추태’도 끼어들었다. 뒤이어 경기교육청은 이번 참사에 대한 교사들의 의사표시를 금지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내기도 했다.
교육부에서 가로막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참사가 벌어지기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3년 12월 18일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에 ‘최근 일부 학교에서 학생들이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내용을 학교 내에서 벽보를 통해 주장함으로써 학년말 면학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므로, 생활지도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하는 공문을 내려 보낸다. 대학가를 시작으로번진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고등학교에도 나붙기 시작하자 이를 가로막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에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은 공문을 문구만 약간 다듬거나 그대로 살려서 학교에 보낸다. 서울과 전북 교육청이 ‘학생의 행복과 인권을 강조하며’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
이때 한 사람, 전북 교육감은 교육부에서 온 공문을 완전히 뜯어고쳐서 ‘학생 의사 표현의 자유 관련 알림’을 내려 보낸다. ‘학생은 헌법 제21조 1항 등에 의하여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으므로,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사회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그 형식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각급 학교의 장은 학생의 의사표현의 자유가 위법하게 침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주실 것’을 밝혀 적고 있다.
이렇게 교육감 한 사람이 어떤 판단을 하는가는 시도 교육청, 그 아래 지역 교육청, 초중고등학교, 유치원, 기타 각종 학교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교육감은 ‘지방교육자치에 대한 법률’에 따라 지역의 학생, 교사, 교육행정공무원, 학부모들을 지키고 돕는 사람이다. 따라서 교육감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자기 일을 하느냐에 따라 학교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차이가 난다. 이를 위해 법률에서는 교육감을 주민들이 직접 선거로 뽑도록 하고 있다.
교육감의 막강한 권한,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교육감은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사는 시, 도의 유치원, 초등 교육과 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자리, ‘작은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시도교육청의 예산을 편성하는 권한을 갖는다. 교육감은 예산을 쓰는데 앞 뒤 순위를 조정할 수 있다. 경기도교육감이 교육예산을 ‘아이들과 교사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혁신학교 설립’, ‘초중학교 학생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일’에 쓰겠다고 해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혁신학교는 학급당 학생수 25명 안팎으로 줄이고, 행정 전문 인력을 배치함으로써 교사들이 수업에 충실할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교육 과정 운영에서 교사들이 자율로 할 수 있게 해주어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학교, 배움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다. 혁신학교는 학벌 사회의 배경 아래 경쟁 교육으로 내달려온 공교육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어보려는 시도이고, 이미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시도 교육감은 국제학교, 특목고 설립, 학교 안에 우열반 편성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기도 한다. 아예 이름난 대학에 합격한 학생 수마다 얼마씩의 지원금을 교사들에게 예산으로 지원하는 교육감도 있다. ‘실력 향상’을 구호로 내걸고, 초등학교 6학년부터 방학도 없이 아이들을 ‘야자’로 내모는 교육청이 있는가 하면, ‘행복 교육’을 실천하겠다며 겉만 번지르르한 행사를 열고 교육감이 쓴 책을 팔아먹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교육청도 있다.
다음으로, 교사, 교육공무원에 대한 인사권이다. 교육감은 교장, 교감, 장학사·장학관 등 교육 전문직과 공립 유·초·중·고교 교원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을 비롯해 충남, 인천 교육감 등이 저지른 잦은 인사 비리 사건에서 보듯 교육감은 인사권을 무기로 교사들을 한 줄로 세울 수 있다. 교육감 선거가 끝나면 인사를 둘러싼 뒷말이 휩쓸고 지나가고, 검은 돈이 오가며, 교육감 선거가 인사 비리의 ‘화수분’이라는 탄식도 흘러나온다. 한편, ‘시국 선언’을 한 교사에 대한 징계 여부도 교육감 권한이다.
또 교육감은 교육과정 운영에 관한 결정을 내린다. 일제고사(학업성취도 평가), 0교시 수업, 심야 강제 보충 수업 같은 것들이 모두 교육감이 최종 권한을 갖는 일이다. 교육감이 이런 문제를 아이들 눈높이에서, 교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된 학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 편성’을 해 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밖에 조례작성, 교육규칙제정 권한도 있다. 경기, 전북, 광주, 서울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 공포한 것도 이 권한에서 비롯되었다. 아울러 교육감은 고등학교 신입생을 뽑을 때 학교별 선발시험을 거칠지, 평준화를 시행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학교에서 치르는 각종 시험의 형태도 교육감 손에 달렸고, 학교급식도 교육감이 계획을 수립해 실시하게 돼 있다. 서울에서 곽노현 전 교육감이 추진하던 ‘친환경급식’을 ‘농약은 과학이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내세워 뒤집은 것도 이런 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유권자와 학부모가 바뀌면 교육이 바뀐다
교육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는 것은 주민이 원하는 교육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유권자인 학부모들은 정작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매우 적다. 학부모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학교는 바뀌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사람답게 숨쉬며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자면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학교가 바뀌면 친환경 급식과 학습 준비물이 제공되고, 안전한 교실과 폭넓은 창의체험활동이 보장된다. 그리고 선생님과 학부모가 서로 공감하며 소통하는 학교를 누릴 수 있다. 이런 일을 하자면, 우리 동네 교육감을 제대로 뽑으면 된다. 아주 쉽다.
*이 글은 계간 <창작과 비평> 2014년 여름호, 471~474쪽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