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가가 예상외로 강하게 바닥을 탈출하고 있다. 코로나만 잡히면 V자도 가능할 것 같은 기울기다. 그럼에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밝은 면이 아닌 어두운 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하이투자증권의 2020년 전망 주제는 ‘저금리와 고부채의 충돌’이었다. 업계 최고의 전략가이신 조익재 전무님이 워낙 부채에 대한 위험을 강조하셨기에 우리 리서치 식구들은 올해 들어 부채에 대해 예민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부채란 녀석은 늘 이자부담을 동반한다. 그래서 늘 한계기업을 판단할 때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비율 (영업이익/이자비용: interest Coverage ratio)이 1 미만인지 여부를 보는 것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할 수 없다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저금리, 제로금리, 마이너스 금리로 가면서 기업이 부채를 당겨 쓰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거기에 미국은 법인세 대폭 감면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부채의 부담을 잊고 살아왔다. 오랜시간 주가가 위로만 오른 행복한 시간이 펼쳐졌다.
부담 없는 빚의 시대에 미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부채를 들고 있다. 그동안 넘어지는 기업은 넉넉한 가격에 M&A 되거나 정부의 돈으로 회생되기도 했다. 국가경제도 MMT로 돌아갔지만, 기업에도 비슷한 원리가 작동해왔다. 부채쯤이야, 하는 인식들. 민폐 끼치는 기업이 별로 없었다.
2.
그러던 것이 코로나19로 인한 공급-수요의 동시 충격을 받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두 달 정도 경제활동이 멈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21조 달러의 GDP 중 4조 달러의 구제금융을 풀겠다는 게 두 달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 공급과 수요가 멈추는데 고정비 지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현금이 안 도는 항공사, 여행사, 서비스업이 가장 먼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기간을 버티겠다고 금 같은 안전자산까지 매도해 현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달러 품귀현상도 이런 이유 때문에 발생했다.
FED의 150bp 전격 인하로 정책금리는 0%가 됐다. 그럼에도 금융시장이 기업부채(CP와 회사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신용평가기관도 계속 주저하던 기업에 대해 신용등급 강등에 나섰다.(신평사는 늘 이런 식이다. 비올 때 잽싸게 우산을 치운다)
S&P는 올해 280개가 넘는 기업의 신용등급을 내렸는데, 이는 10년 만의 최대 수준이다. 무디스 역시 160개사의 정크본드 기업을 비롯해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180건이나 진행했다. 최근 신문기사에 나온 추락천사(Fallen Angel)란 용어가 적격 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신분이 변한 채권을 의미한다. 포드(BB+), 갭(Ba1), 메이시스(Ba1) 등이 투기등급으로 강등됐다. 회사채에 투자했던 투자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무디스는 이번 사태로 정크본드 발행 기업 가운데 10%가 채무불이행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부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당연히 하이일드 채권 같은 허약한 녀석들이 먼저 반응할 수 밖에 없다. 하이일드 채권은 저금리 시대에 고수익 상품으로 국내외에서 인기가 많았다. 하이일드 채권만 모아 만든 HYG 같은 ETF도 인기가 많았다.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이라도 기업이 잘 굴러가면 고수익 구조에 문제가 없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얘기가 다르다. 무너지면 다 잃을 수도 있기에 빨리 털고 싶은게다.
뿐만 아니라 셰일가스 기업의 한계 상황이 유가 급락으로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 원가가 40달러 정도라고 알려진 셰일가스가 20달러대 유가에서 이익을 낼 리 만무하다. 문제는 하이일드 채권시장에서 에너지 기업의 비중이 10%선에 달한다. 하이일드 본드 ETF인 HYG에서의 비중도 7.65%에 달한다. 그 에너지 기업 중 대부분이 셰일가스 관련 기업들이다. 덩치가 큰 녀석들도 최근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파산 가능성 언급이 계속 나온다.
적격 등급 회사채와 투기등급 회사채의 스프레드가 계속 벌어지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파산을 우려한 나머지 이들 하이일드 본드에서 발을 떼려 하는 것도 상황이 악화되는 이유다. 연준의 구제 프로그램(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TARP)에도 적격 등급 회사채에 국한한다는 규정이 있다. 채권 관련 ETF 매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조치로 선택받는 자와 버림받는 자가 나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투기등급에 속한 기업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면서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길게 봐서는 적자생존의 메커니즘이 돌아가야 기업생태계와 경제가 건강해질 수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모든 기업이 다 좀비화되므로)
버림받는 기업들이 TARP 안전망 밖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시장은 동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융위기 시절에도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기 전에 많은 모기지 회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전조가 있었음)
3.
쓰다 보니 너무 다크포스가 가득하네… 조금 희망적인 톤으로 바꾸어…
다행히 코로나가 조기에 끝난다면, 백신이 빨리 개발되어 상황 종료가 된다면,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기업들은 억눌린 수요의 분출로 빠르게 현금이 돌면서 소생할 수 있다.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던 V자 반등에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달 정도를 가정한 미국의 조치들이 더 장기화되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 생각하기 싫고, 부정적인 글이라 긍정적 투심을 가진 분들들께 부담을 드리는 것 같다. 그럼에도 객관적인 균형은 잡고 투자에 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자꾸 어두운 얘기를 꺼내본다.
아침에 바이올린을 열심히 해서 맑아진 마음 덕분에 이런 혼탁한 글도 차분히 쓸 수 있었나보다. 내 마음도 다시 균형점으로 돌아왔다.
원문: 고태봉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