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국제학 덕후: 역사 덕후로 살다 보니 국제학 덕후로 진화한 흔한 덕후입니다.
이승환: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학 덕후: 코로나는 금방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처럼 겨우 제어하는 유지 되면 그나마 다행이고, 언제 확진자가 확 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요.
이승환: 기존 금융위기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국제학 덕후: 과거처럼 금방 잠잠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존의 판데믹 예상은 1)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제3세계에서 바이러스가 선진국으로 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2) 선진국은 그사이에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을 마련하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동아시아로 넘어오고, 손쓸 새도 없이 미국과 유럽으로 넘어갔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 전 세계 금융시장이 망가지는 건 물론이고, 실물경기 충격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듯합니다.
국제공조가 필요한 지금, 또라이 지도자들만 가득하다
이승환: 그래도 이런저런 대책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국제학 덕후: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런 판데믹은 금융시장에 처음입니다. 상황은 심각한데 답은 안 보이니, 과거의 모든 대책을 쏟아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나왔는데 공포를 잠재우지 못합니다. 그러면 상황이 더 악화할 때는 무엇으로 진정시킬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승환: 2008년 금융위기 정도의 충격일까요?
국제학 덕후: 조심스럽지만, 그 정도에서 끝날 가능성이 제일 높은 건 사실입니다. 판데믹 경험은 없지만, 여러 위기의 경로를 겪었기에 통화 스와프 등의 조치도 빠르게 한 것이지요. 어느 정부가 잘했다기보다, 이미 여러 위기관리 대책들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상으로 갈 불안 요소는 여전히 많습니다.
이승환: 뭐가 불안 요소입니까?
국제학 덕후: 정치적 지도자들이 다들 또라이입니다. 수사가 아니라,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이 매우 중요합니다. 2008년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가이스너 재무장관이 총대 메고 공조를 끌어냈습니다. 위기일수록 시장 교란을 통해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이들이 있지만, 각국 정부가 일치단결해서 행동했죠. 반면, 현재의 유가 전쟁에서 보듯 지금 시장의 리더십은 너무 불확실합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상황이 안정돼야 하는데, 각자도생 모습이 보이면 보일수록 어떤 카드도 효과가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는 강력한 리더십과 정책이 필요하다
이승환: 경제가 아닌 방역에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학 덕후: 방역은 이미 자국이 급해서 각자도생 전략으로 공조가 무의미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WHO와 미국의 리더십 문제가 있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초반 WHO가 ‘심각한 판데믹 아니니 자중해라’는 메시지를 보냈죠. 이로 인해 전 세계인이 신뢰를 버렸습니다.
이승환: WHO는 또 왜 그 꼴인 거죠?
국제학 덕후: 중국은 소프트 파워 확대를 위해 여러 국제기구에 영향력을 확대합니다. WHO 테드로스 사무총장도 중국의 지지로 당선됐지요. 미국 입장에서는 정치적 리더십을 되찾아야 하는데, 트럼프는 국제기구에 돈을 쓰는 데 매우 회의적입니다. 티도 안 나고, 말도 안 듣는단 거죠. WHO가 미국을 무시하고 중국의 이익과 체면에 신경을 쓰다 보니, 공조는 멀어지고만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빨리 판데믹 선언하고 적극적 제스처를 취했어야 할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이승환: 하지만 미국이 이제 와 뭔가를 할 수 있을까요? 이미 내놓은 대응책들도 할 건 다 한 것 같은데…
국제학 덕후: 정치적 리더십이 뚜렷할 때 메시지가 먹히고,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을 잡을 수 있습니다. 같은 정책이라도 뒷받침될 때 효과는 다릅니다. 100을 기대할 수 있는 정책이라도 신뢰가 뒷받침되면 200의 효과를 낼 수 있지만, 신뢰가 없으면 10의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승환: 2008년 경제위기를 예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국제학 덕후: 그때 가장 큰 문제는 부실채권 규모가 파악이 안 됐습니다. 얼마나 터질지, 채권자들이 얼마나 물릴지, 여기에 대해 우왕좌왕했죠. 이때 오바마의 전폭 지지 하에 버냉키, 폴슨, 가이트너 삼각 편대가 나섰습니다.
당시 구제금융 7,000억 달러를 쓰고 3,000억 달러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금융시장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때 금융회사들이 스트레스 테스트로 고해만 한다면 속죄는 정부가 해주겠다고 선언합니다. 돈을 얼마든지 퍼부어서 쓰러지지 않게 해주겠다고 한 거죠. 다행히 당시 오바마와 삼각 편대는 신뢰를 받는 인물들이었죠. 그들의 확실한 신호에 시장은 바닥을 다지고 회복에 들어섭니다.
이승환: 그렇다고 해서 부실 채권이 줄어드는 건 아니잖아요.
국제학 덕후: 가장 위험한 건 위기 중간입니다. 이때는 사람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감염되고 죽고 파산할지, 위기 진행 중에는 알 수가 없죠. 그럴 때일수록 리더십을 가진 정부들이, 반드시 막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를 줘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 감염자가 30만입니다. 앞으로 300만, 3,000만, 3억?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면, 사람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서 생각합니다.
포퓰리즘 지도자들 사이에 경제위기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승환: 그쯤 되면 체념하고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은데요…
국제학 덕후: 정말 리더십이 뚜렷하다면 체념시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체념시키는 것도 능력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리더십이라면 모두가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겁니다. 이미 모든 자금을 유동화하지요. 기업도 일단 해고하고 볼 겁니다. 사실 현실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잘 가지 않지만, 이에 기반해 행동하니 패닉으로 가는 거죠.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문제가 됐던 게, 부실 채권 때문에 멀쩡한 채권도 부실화됐던 겁니다. 다들 대출금을 회수하며 부정적 예언의 현실화가 된 거죠. 이렇게 안 가도록 하는 게 정치적 리더십인데, 어느 나라도 딱히 미덥지는 않습니다.
이승환: 2011년 유로존 위기는 어떤가요?
국제학 덕후: 많은 위기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계속 공조하며, 그 위험을 떠받아줬기에 유로존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나 몰라라 했으면 진작 박살 났겠죠. 유로존의 위기는, 그나마 부실이 그리스, 포트투갈 같은 작은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때도 나왔던 이야기가, 이탈리아까지 넘어가면 끝장이니까 이탈리아까지 넘어가기 전 막아야만 한단 거였죠. 지금은 이탈리아부터 충격의 시작입니다. 이탈리아는 이전부터 경제가 굉장히 불안했습니다. 이미 공장 문 닫고 산업을 셧다운 해 전염병 막겠다는데, 앞으로 경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입니다.
이승환: 각자도생하면 결국 발권 능력을 가진 미국만 제일 좋지 않을까요?
국제학 덕후: 저는 오히려 중국이 더 좋을 거라 봅니다. 정치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집권과 체제 유지입니다. 처음 코로나19가 우한에서 발생했을 때, 중국의 성장률 꺾이고 위신이 깎이며 중국 체제 위기론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으로 번지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선전전을 벌이지요. 심지어 지금은 백신을 빨리 개발하려고 애씁니다. 중국이 백신마저 먼저 개발하면, 위기를 극복한 체제, 세계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 포지션이죠. 선진국보다 더 잘 대처했다는 서사로 공산당 독재에 힘을 실을 수 있습니다.
이승환: 미국의 트럼프 역시 재선 이슈가 있지 않습니까?
국제학 덕후: 트럼프도 쉽지 않지요. 국제적 리더십을 가지기엔 너무 멀리 왔습니다. 그간 경제와 금융으로 달렸는데, 치적이 날아가는 상황이라 조바심도 클 겁니다. 이제 와서라도 국가 공조로 새로운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재선이 너무 코앞입니다. 결국 또 하던 식으로 희생양을 만들려 하지 않을까 싶네요. 시진핑도 중국 위기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진정되니까 기어 나와 열심히 선전합니다. 트럼프도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국제 공조와는 거리가 멀 듯합니다.
정부, 눈먼 돈이 아닌 재기의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자금 투여해야
이승환: 한국은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학 덕후: 사실 지금 한국이 방역을 잘했다고 자화자찬할 상황이 아닙니다. 이미 경제가 망가질 게 눈에 뻔합니다. 방역 잘하고 병 안 걸린다고 끝이 아니라, 경제 활동을 정상화하는 게 중요하지요.
이미 자영업자는 난리입니다. 수출기업들로 전 세계 물류가 막히며 수출도 못 하지요. 일반인 분들도 해외직구 물품들이 각국 물류센터나 배송센터에서 멈춰선 채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상황을 실감하고 계실 겁니다. 사실 한국 기업들의 자금 상황은 최근 몇 년간 계속 좋지 않았습니다. 버틸 체력, 여유 자금 있는 곳이 많지 않지요. 이 상황이 몇 개월만 더 이어지면 흑자도산이 줄줄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승환: 국가에서 돈을 쫙 풀면 어떨까요?
국제학 덕후: 대출도 대출 나름입니다. 경영진이 단기적 위기라 생각하면, 버티고 회복하려 하겠지요. 하지만 장기 위기라 생각하면 대출이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회사를 빨리 청산하는 게 낫죠. 극단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면, 돈 떼어먹고 손절할 기회로 볼 겁니다. 앞으로 경기가 좋지 않다는 시그널이 계속될수록 이런 문제는 심각해질 겁니다.
이승환: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돈을 뿌리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국제학 덕후: 정부는 돈을 뿌릴 수밖에 없지요. 다만, 지금처럼 전망이 불투명하고 리더십이 없어서는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돈을 100 뿌렸을 때 온전히 100의 효과를 보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20은 악용하더라도 80은 건전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성과를 내게 해야죠. 반대로 20의 성과를 낸다면 큰일입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정부의 지원을 ‘재기의 기회’보다 ‘눈먼 돈’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이것도 거듭된 위기 속에 학습된 결과죠. 당장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약삭빨라진 많은 사람은 이 와중에도 절박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챙겨갈 거고 정책의 효과를 갉아먹을 겁니다.
올해 제대로 대처 못 하면 떨어진 실물경기로 내년이 더 위험
이승환: 음… 그러면 정부는 뭘 해야 하나요?
국제학 덕후: 원론적이지만 전 세계가 위기에 있어서 한배를 탔다는, 하나의 방침 하에 함께 액션을 취한다는 시그널을 줘야 합니다. 한국 정부의 각론은 너무 많지만, 메시지부터 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의 메시지가 좀 모호합니다. 위기는 막겠다며 적극적으로 돈을 풀지는 않죠. 처음에는 사회적 접촉 통제는 잘 됐는데 외신에서 한국 잘한다 하니 시민 긴장은 풀어집니다. 어디까지 행동해야 할지 선을 명확히 이야기하는 게 중요한데, 누가 와도 쉽지는 않은 상황이긴 합니다.
이승환: 총선 때문에 더 애매해지는 것 같아요.
국제학 덕후: 맞습니다. 너무 조일 수도 없고 풀 수도 없고… 난처한 상황에서 주저하는 중이죠. 자칫하다가는 어차피 정부와 질본이 알아서 잘 잡겠지, 하는 순간 세컨드 웨이브가 올까 걱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부가 코로나에 온 힘을 기울임에도, 안심할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승환: 한국의 경제위기는 어찌 봅니까?
국제학 덕후: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의 기업은 기초체력이 너무 약해진 상황에서, 코로나와 금융위기를 쌍으로 맞은 상태입니다. 올해에는 사태 수습에만도 정신없고, 내년이 진짜 곡소리 터질 해라고 봅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 금융의 추세가 꺾인 것이나 일시적 채무 위기보다 더 위험한 건, 실물 경기의 방향 꺾인 겁니다. 지금까지는 10년 넘게 미국 경기의 우상향이 좀 받쳐줬지만, 미국은 물론 유럽, 일본, 중국까지 수축기에 들어간 이상, 한국의 경기침체기가 2년은 갈 것 같습니다.
이승환: 하지만 한국은 미국에 비해 쓸 수 있는 부양책이 좀 남아있지 않나요?
국제학 덕후: 네. 그래서 올해는 어떻게 넘어간다 쳐도, 내년이 더 걱정입니다. 올해는 부족하지만 정부가 뿌린 돈, 그동안 쌓은 돈으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죠. 하지만, 본격적으로 외부발 충격이 가시화되면 더 힘들지 않을까요. 당연히 이런 비관론을 잘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 지도자들, 우리 정책 당국자들을 봤을 때 크게 믿음이 가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