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상대적으로 느슨한 긴장감의 일본
이승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헌모: 일본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이헌모입니다.
이승환: 일본의 코로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이헌모: 일본인들도 더 많은 확진자가 있지 않을까 불안감이 있습니다. 오늘 야후재팬의 뉴욕 확진자 1만 명 뉴스에도 “뉴욕이 1만 명인데 도쿄가 이 정도 숫자인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댓글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고열이 4일 이상 이어진다든가 자가 증상이 심했을 때 비로소 병원을 가고, 의사가 코로나를 의심할 때에야 진단하는 아베 정권의 방역 정책은 그럭저럭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이승환: 코로나 확진자가 적은데, 그래도 불안감은 좀 덜하죠?
이헌모: 개인적 불안감은 절대 작지 않습니다. 여기도 마스크나 휴지 사재기가 없지 않아요. 그런데 일본인들 국민성이 좀 특이해요. 한국은 심하게 표현하면 무슨 일 터지면 일단 정부부터 까고 보잖아요. 좋게 보면 정치적 의사 표현이 강합니다. 하지만 일본인은 의사 표현이 그리 뚜렷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집단적으로 표출이 안 될 뿐이지, 개개인의 코로나에 관한 불안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승환: 개학 연기나 이런 건 마찬가지인가요?
이헌모: 네. 제가 근무하는 대학도 졸업식과 입학식을 모두 취소했고, 개강도 연기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자영업자가 죽어나는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보다 상점가 손님이 줄긴 했지만 망할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오늘 도쿄에 벚꽃 만개했던데, 벚꽃놀이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더군요. 시간이 갈수록 긴장이 풀리는 느낌입니다.
이승환: 사회적 거리두기 안 하나요?
이헌모: ‘자숙 요청’ 정도입니다. 어제 교수들하고 저녁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느끼기에 일본에서 말하는 자숙 요청은 한국으로 따지면 계엄령이나 마찬가지다”라고. 교수들이 다 웃으면서 맞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에 살지만 참 알기 힘든 나라입니다.
이승환: 근데 왜 일본인들은 밖에 잘 나가는 거죠?
이헌모: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검진을 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확진자 수가 아직 1,000명 정도니까요. 확진자가 빠르게 늘지 않고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니 긴장이 좀 풀린 면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아베가 그토록 올림픽에 매달렸던 이유: 이미 추락한 정부 신뢰
이승환: 코로나 제압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베 정권에 신뢰가 있어서 그런 걸까요?
이헌모: 그보다 일본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정부를 향한 맹목적 신뢰랄까요? 권력에 순종하는, 그런 게 기본 베이스에 있습니다.
이승환: 일본에서도 이런 이야기 하잖아요? 기업은 일류, 행정은 이류, 정치는 삼류…
이헌모: 정치인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잘 돌아가고 관료가 우수하니까, 정치인 중 멍청이가 많아도 괜찮다는 생각이죠. 그런데 이런 생각도 아베 정권이 장기화하며 깨져갔습니다. 관료집단의 인사권을 수상 관저에서 쥐니, 행정관료들이 수상 관저에 맞추고, 데이터 조작, 부정 스캔들 등의 이슈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아베 정부 신뢰는 많이 떨어졌습니다. 과거에는 우수한 행정조직에서 선제적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국회와 수상의 재가를 받아서 좋은 정책이 실현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상 관저에서 상명하복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섣불리 나서봤자 나중에 독박 쓸까 두려워하죠. 책임이 따르는 결정을 회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이승환: 올림픽 강행은 어떻게 보세요?
이헌모: 무리죠. 일본 사람들도 10이면 7–8은 무리라고 봅니다. 추측이지만 아베 정부도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건 당연히 알 겁니다. 그런데 아베 정권이 올림픽에 후쿠시마 부흥 등 여러 상징적 의미를 많이 부여했어요. 코로나 때문이긴 하지만, 올림픽을 못 열면 일본은 경제적 손실부터 시작해서 데미지가 굉장히 큽니다. 아베 정권에게는 정치적으로 치명타가 될 수 있지요.
그래서 아베가 강조하는 게 ‘완전한 준비체제를 갖추었다’는 거예요. 일본은 충분히 잘 준비했는데, 결국 IOC나 WHO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연기한다는 면피책 같습니다.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꼼수인 거죠.
이승환: 아베가 그렇게 엉망인데 왜 지지율이 유지되지요?
이헌모: 야당의 사분오열과 무력함이 가장 큽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정치 무관심도 있지만, 관점이 한국과 다소 다릅니다. 자민당이 반세기 이상 집권한 게 우리에겐 부정적인 일당독재로 보이지만, 일본인들은 무난하게 나라를 이끌어온 걸로 보는 거죠. 다만 아베 정권이 장기화되며, 통계 조작에 작년 역성장까지 나왔으니 일말의 불안감도 없지 않을 겁니다. 코로나 대응과 올림픽이 아베 정권에는 매우 치명타가 될 수 있으니, 올림픽에 그만큼 집착하는 거겠죠.
언론도 시민도 사회를 바꾸려는 의식이 약한 일본
이승환: 대체 아베 정권이 지키려는 가치나 방향은 뭐죠?
이헌모: 아베 정권이 내건 슬로건이 “아름다운 일본”과 “전후 레짐에서의 탈피”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전후 체제에 갇혀 있는, 점령군에게 강요받은 헌법 체계에 묶인 나라라는 거죠. 그걸 자기들의 자주헌법으로 개헌해서, 떳떳하게 자주 독립국가를 만든단 생각입니다. 패전 후 점령군에게 강요당한 헌법, 사회 시스템, 가치관을 탈피해서 애국심에 가득 찬 아름다운 일본을 복원시킨다는 원대한 꿈이죠.
이승환: 일본 언론은 코로나랑 아베 정부에 대해 뭐라 안 해요?
이헌모: 우리나라 언론은 정부를 때리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일본은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이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정도이고, 비판의 수위도 강렬하지 않습니다. 특히 TV 보면 정말 왓치독 역할이 없습니다. 아베정권의 소극적인 코로나 검진을 비판하는 전문가가 방송에 나오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시청자는 물론이고 타 방송에서도 욕 많이 먹어요. 비현실적인 위험만 강조하고 선동해서 불안을 부추긴다,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이승환: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때도 그랬나요?
이헌모: 네. 지금은 그런 사건들에 관해 일절 언급도 없고… 한국인 눈에는 신기한 나라입니다. 정치학 공부하는 사람끼리 농담하는 게 “세계에서 정치하기 제일 좋은 나라가 일본이다”예요. 물론 정부 비판이 없지야 않지만, 한국과 비교할 강도가 아닙니다.
이승환: 그래도 학생운동이나 시민단체의 역사가 있잖습니까.
이헌모: 1960년대 전공투라거나 적군파라거나 많았죠. 이후 일본 언론이나 단체의 반정부 활동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 당시 활약했던 이들이 시민활동가로 많이들 활동했지만, 이미 너무들 늙었죠. 예를 들어서 일본에서 ‘아베 정권의 헌법 개정 반대 시민 심포지엄’ 같은 데 가서 보면, 대부분 다 노인네들이에요. 전반적으로 정치에 별로 관심도 없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서 정권을 바꿔본다거나 하는 생각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낡은 시스템과 기득권의 개혁 없이는 앞으로 더 힘들어질 일본
이승환: 앞으로 한일 공조나 이런 걸 기대하긴 힘들까요?
이헌모: 아베 정권에서 먼저 하자고 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일본회의 같은 보수 우익 단체들이 아베 정권을 떠받듭니다. 이 사람들은 아직도 한국은 일본보다 한 수 아래의 나라로 봅니다. 요즘 한국 경제와 문화의 위상이 많이 올라가고, 또 한국이 종군위안부 문제, 징용 판결, 이런 목소리를 냈잖습니까. 그때 아베 측 사람들이 한 번 한국에 본때를 보여주자 했던 게, 작년의 화이트리스트라 생각합니다. 그것도 흐지부지되고 코로나 이슈에 잠겼지만요.
이승환: 한국의 방역에 관한 보도는 어떤가요?
이헌모: 한국 정부의 선제적 방역이 해외 뉴스로 많이 뜨지 않습니까? 그런데 일본에서는 별로 보도하지 않습니다. 일본 언론이 참 문제가 되는 게, 일본인의 눈과 귀를 막습니다. 한국이 너무 설치다가 의료 붕괴 일어나서, 정말 치료받을 사람들이 치료 못 받아 사망하는… 이런 뉴스 위주로 뜹니다.
이승환: 그런데도 일본이 잘 나가는 게 참 신기하군요…
이헌모: 앞으로가 문제죠. 앞으로 10년, 20년… 정말 일본이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망가집니다. 아날로그 시대, 그러니까 1980–1990년대까지 일본 시스템이 좋았습니다. 모든 걸 꼼꼼하게 챙기고, 심지어 결제받을 때도 6–7개 도장 찍으며 체크하고… 그런데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에는 맞지 않아요. 이게 일본의 발목을 많이 잡을 겁니다.
이승환: 왜 안 바뀌는 거죠?
이헌모: 1990년대까지 해오던 방식을 버리면, 지금 기득권이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거기에 대한 저항이 없지 않죠.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의견 조율하고 여전히 도장 받고… 이런 게 디지털 시대에 일본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부작용도 있지만, 뭐든 빨리빨리 하려는 한국은 디지털 시대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이승환: 일본의 미래에 좀 긍정적인 건 없습니까?
이헌모: 좋게 생각하면 국민들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해야 할 역할에 충실합니다. 이게 잘 굴러가면 좋은데, 정치가 바로 설 때 시너지가 나겠지요. 또 집착에 가까운 장인 정신이 있어서, 여전히 노벨상이나 이런 건 계속 나오리라 봅니다. 아무튼 전 사회 전반적으로는, 일본 기득권이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정보화시대에 맞추지 않으면 앞으로 좀 곤란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