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중심으로 한 버블, 꺼지기 시작했다
이승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고길동: 금융시장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도봉구 쌍문동에서 중형 자동차를 몰고 여의도로 출근합니다.
이승환: 미국이 돈을 뿌리는데도 왜 주식은 떨어지나요?
고길동: 주식 시장과 실물 경제는 좀 다릅니다. 주식에서 많이 먹었으면 당연히 팔고 싶겠죠? 미국은 10년간 너무 올라서 팔고 싶을 겁니다. 한국은 10년간 먹지도 못했지만(…) 미국과 중국 수출로 먹고살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주식은 외국인 비중이 높습니다. 이들이 팔고 나가면 빠질 수밖에 없죠.
이승환: 그, 미국은 왜 이리 많이 빠집니까?
고길동: 이미 전 세계적으로 버블이 존재했습니다. 미국은 2008년 경제위기에 GM, 크라이슬러, 리만브라더스 파산을 겪었습니다. 미국은 기축통화 달러의 발권 국가이기에, 금리를 낮추고 돈을 무한대로 찍어내며 자산 가격을 받칠 수 있었죠. 전 세계가 부채로 버텨온 겁니다. 미국은 기업부채, 한국은 가계부채, 남미와 유럽은 공공부채로 차이는 있지만요.
실물 경기 위기이기에 달러만 찾고 주가는 떨어진다
이승환: 이번에도 돈 찍어냈는데 왜 이 모양이죠?
고길동: 최근 미국 FRB(연방준비제도; 중앙은행 시스템)가 이자율을 150bp(1.5%)에서 제로금리까지 낮추는 데 1개월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007년 금융위기 때 1년 이상 걸린 프로세스를 몇 주만에 압축적으로 진행한 거죠. 덤으로 트럼프가 천조국답게 1조 달러를 (1250조 원) 푼다고 합니다. 2007년 금융위기 때의 학습 효과로 빠르게 대응한 것이죠. 하지만 자산시장에서는 이걸 현재 경제위기가 심각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주식을 비롯한 모든 자산이 폭락했습니다(주: 미국은 이후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고, 다시 주가는 오르는 중이다).
이승환: 근데 이번엔 주식뿐 아니라 안전자산이란 애들도 다 떨어졌잖아요. 달러만 빼고?
고길동: 주식시장과 달리, 기업 경기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기업이 회사를 돌릴 현금이 없기 때문에, 모든 자산을 팔아서 현금화하는 중이죠. 예를 들어 보잉(항공), 힐튼(숙박)은 코로나의 피해가 큰 대표적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 대출이 힘들겠죠? 그렇기에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뿐 아니라, 당장 기업을 돌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 수 있는 건 다 파는 겁니다.
이승환: 근데 코로나 장기화하면 여행업, 숙박업에 돈 써도 폭삭 아닐까요?
고길동: 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소비에 이어 고용까지 무너지는 겁니다. 격리가 이어지면 소비가 둔화하고, 소비가 둔화하면 가장 먼저 서비스업이 무너집니다. 현재 서비스업은 미국 전체 고용의 86%를 책임집니다. 반대로 고용이 무너지면, 또 소비가 무너지고 진짜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한국도 이미 여행, 극장, 숙박업이 무너지는데, 이에 대책이 절실합니다.
주식투자, 반드시 긴 호흡으로 해야만 한다
이승환: 개미들은 기관 뭐하냐고 난리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고길동: 사실 한국 기관은 돈이 별로 없습니다. 최근 라임사태에서 볼 수 있듯, 한국 투자사들의 신용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이미 많은 투자금이 해외로 가지요. 국내 기관이 받아주기 싫은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개인만 받습니다. 남은 건 연기금 정도죠.
이승환: 그 와중에 주식을 사는 개미들은 어떻게 봅니까?
고길동: 요즘 개인은 삼성전자 몰빵 분위기인데, 과거 금융위기 때 개잡주를 사던 모습에 비하면 많이 현명해졌다고 봅니다. 은행에 돈 맡겨봐야 세금 내면 0.6% 정도 남는 저금리 장에,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3년을 버틸 수 있으면 먹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IMF 외환위기, 2008년 경제 위기, 다 짧지 않았지만, 버틴 이들은 결실을 봤습니다.
이승환: 아싸, 그러면 저도 삼성전자 주식 사면 됩니까?!
고길동: 그건 개인 선택이고(…) 삼성전자가 만드는 반도체는 비접촉 비즈니스의 기반이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수혜주입니다. 이마트 아닌 쿠팡, CGV 아닌 넷플릭스 같은 곳은, 장기적으로 수혜를 입을 것인데, 이 기반에 반도체가 있지요. 다만 V자 반등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 리세션(경기침체) 가능성이 있습니다. U자, 또는 L자형 반등은 긴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2020년은 세계적으로 무너질 실물 경기를 버텨야 하는 싸움
이승환: 요즘 유가 전쟁은 어떻게 보나요?
고길동: 미국의 에너지 기업 중 셰일 가스 업체가 많습니다. 이들이 차지하는 고위험 채권이, 미국 전체 회사채 중 10% 정도 되지요. 지금 유가가 배럴당 22달러인데, 셰일 가스의 손익분기점은 낮아야 배럴당 30달러 정도입니다. 이미 미국은 서브프라임으로 고위험채권의 위험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체 자산 시장에 영향이 없도록, 선제적으로 제로금리 정책을 취한 것이기도 하지요.
이승환: 그럼 셰일 가스 업체들 존버 성공하나요?
고길동: 글쎄요. 미국이 셰일가스를 전략비축유로 비싸게 사주겠다고 선언하긴 했습니다. 허나 기름은 보통 드라이빙 시즌(6–7월)에 많이 소진됩니다. 그때까지 코로나가 잡히지 않는다면, 여전히 기름 쓸 일이 없고 셰일 가스 업체들이 파산할 수 있습니다.
이승환: 유럽은 어떻게 보세요?
고길동: 유럽은 한국, 중국과 달리 코로나를 잘 제어하지 못합니다. 역내권이라 서로 간 경제활동이 활발해서 타격이 더욱 클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브렉시트로 영국에도 못 팔아 울상인데, 제조업에 타격이 클 수 있습니다. 이미 중국의 2월 자동차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92%를 찍었고,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2분기 GDP를 -24%로 예측했습니다. 중국과 미국이 이 정도인데, 유럽의 타격은 훨씬 더 클 수 있습니다.
이승환: 미국보다 심각하다?
고길동: 네. 유럽은 미국과 달리 이미 제로금리였습니다. 재정이 몰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보입니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이겠지만, 미국은 달러를 찍어낼 수 있고, 보잉이 파산해도 어떻게든 떠받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건전하다는 독일도 도이치방크의 재정 건전성이 좋지 않죠. 가난한 나라일수록 이번 코로나는 큰 위기로 작용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