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한 호텔은 한때 잠비아 대사님의 집이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호텔에 취업해 귀빈층 라운지에서 G.R.O(Guest Relations Officer의 준말로, 비서처럼 가까이서 고객을 세심히 챙겨드리는 업무를 담당하는 호텔 직원)로서 일을 했다. 그 호텔에는 잠비아 대사님께서 장기 투숙을 하고 계셨다. 신생 대사관이라 대사님의 전용 숙소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소위 ‘어깨뽕’이 없었다. 그래서 대사님과의 대화는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빅토리아 폭포가 그리도 아름다운 곳인 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잠비아에 대해 호기심을 많이 보이자, 잠비아 여행지에 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도록 비서분에게까지 나를 소개하는 메일을 보내 주셨다. 그래서 비서분께서는 친히 전화번호까지 알려주시며 약속을 잡자고 하실 정도였다.
내가 대체 뭐라고 한 국가의 대사라는 막중한 외교 파워를 가진 분께서 그렇게 신경을 써 주시는 것인가 싶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당신의 나라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분과의 만남은 우리의 레이더에서 벗어난 많은 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에티오피아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대학교 졸업반이던 때였다.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에티오피아-대한민국 수교 50주년 기념행사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았다.
와, 에티오피아. 그것도 수교 50주년을 기념한다는 깊은 의미가 담긴 행사라니!
나는 에티오피아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발칸 반도 6개국 여행을 앞두고 있던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인천공항 서점에서 윤오순 작가의 『공부 유랑』이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졸 출신으로 증권 회사에서 일을 하다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뒤늦게 이화여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배우는 것이 너무나 좋아져 서른 넘어서 중국으로, 일본으로, 영국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결국엔,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커피를 공부하게 된다. 그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고, 저자의 배움에 대한 자세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에티오피아도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 공고는 무척 반가웠다. 자원봉사자로 지원을 하기 전에 에티오피아에 관해 더 조사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에티오피아에 대한 인식이 많이 없다. 아프리카에 있는 한 나라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에티오피아는 ‘강뉴(Kagnew) 부대’라는 한국전 참전 용사를 파병한 적이 있다. 게다가 253전 253승이라는 무패 신화를 달성하기까지! 용맹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귀중한 봉급을 모아 ‘보화원’이라는 보육원을 설립해서 한국전이 낳은 전쟁고아들까지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
에피오피아는 제게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책을 읽으면서 에티오피아가 커피로 지역민을 살리는 ‘커피 투어리즘’을 실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관광경영학을 전공하는 데다 평소 지속 가능한 관광이라는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제게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가 지금은 살면서 꼭 한 번 가고 싶은 나라가 되었고, 그곳에서 공부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와 우리나라의 수교 50년 행사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매우 반가웠습니다. 양국의 관계를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할 의미 있는 자리에 저도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자원봉사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이하 중략)
나는 행사장에서 귀빈분들을 수행하고 통역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진행된 어느 행사의 사회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 전까지는 한 번도 에티오피아, 아니 아프리카에서 오신 분들과 대화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행사장에서 만나 뵌 그분들은 커피로 비즈니스를 하시기도 하고, 여행사를 운영하시기도 했다. 나의 얼음장 같던 편견을 서서히 깨부수는 과정은 짜릿했다.
게다가 행사가 끝난 직후에는 에티오피아 항공이 인천-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주 4회 직항 노선을 운행할 예정이었다.
와, 그렇게 먼 나라와 직항 노선이 생긴다니. 그것도 일주일에 4회씩이나!
과연 1950년대 한국전에 참전하신 에티오피아 용사분들께선 예상이나 하셨을까? 당신의 나라와 우리나라를 잇는 간편한 에스컬레이터가 2013년에 생긴다는 사실을.
행사장에서 에티오피아 여행지 영상을 보면서, 에티오피아는 내가 몰랐던 매력을 참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죽기 전 한 번은 에티오피아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당신이 상상하는 아프리카 댄스는 아프리카 댄스가 아니다
우리가 ‘아프리카 댄스’라는 말을 듣자마자 떠올리는 몸짓이 있다. (이 표현은 다소 불편할 수 있으니 양해를 구한다) 소위 ‘우가우가’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하지만, 진짜 아프리카 댄스는 그렇지 않다. 치열한 자기 탐색을 위한 열렬한 몸짓에 더 가깝다.
2017년 4월, 나는 지리산 산내마을에 위치한 ‘문화기획달’ 단체의 주최로 열린 1박 2일 댄스 워크샵에 참여했다. 태국의 ‘댄스 만달라’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애 있는 보보 민족의 춤 ‘보보동’을 경험하는 자리였다.
사실 부르키나파소라는 국가는 그때 처음 알았다. 한 번 들어서는 기억하기 어려운 국가명이었다. 하지만 보보 민족의 춤은 한 번에 눈에 들어왔다. 이 댄스 워크샵은 ‘까르’라는 예명을 쓰는 ‘쿨레칸’ 멤버가 진행했다.
우리 모두는 여행자들이며, 어디를 가든 자신의 존엄성과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쿨레칸은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무용가 엠마누엘 사누(Emmanuel Sanou)가 2016년 한국에서 만든 무용 단체다. 위의 문장을 모토로 운영되고 있다.
처음으로 본 아프리카 댄스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보보동을 비롯한 아프리카 댄스가 주는 극한 자유와 생동감은 이전에 배웠던 어떤 댄스를 추면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흥겹게 몸을 마구 털어대며 나는 아프리카 댄스만이 주는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그 신나 보이는 몸짓 너머에 있는 깊은 철학도 사유해 보았다.
나에게 아프리카란
오늘 왜 이렇게 아프리카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브런치 나우’를 보다가 코트디부아르에서 생활하는 여성분의 이야기에 관해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글이 내 기억 속 아프리카와 관련된 모든 경험을 소집하는 호루라기 역할을 한 셈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어제 유튜브에서 발견한 ‘African Relaxing Music’이라는 음악을 듣고 있다. 음악은 제목 그대로 정말 relaxing하다. 강추!
나는 아프리카 대륙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가 살아오면서 마주한 아프리카의 의미는 각별하다.
우리가 6·25전쟁 당시 고통으로 신음할 때,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준 용맹한 나라가 있는 대륙이다. 내가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보였을 때, 무시하지 않고 환영해준 고마운 분의 나라가 있는 대륙이다. ‘예술가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 믿으며 나에게 깨달음과 자유를 선물해준 분이 계신 나라가 있는 대륙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발걸음을 해본 적은 없어도, 나는 아프리카에 굉장히 고마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아프리카가 무지와 편견이라는 나의 먼지를 살살 털어내고, 탐구심과 존중감을 뿌려주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강뉴’ 부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기사
- 「’무패신화’ 에티오피아 ‘강뉴부대’를 아세요?」 (KBS, 2017.06.23)
- 「우리를 위해 아무 대가 없이 싸웠던 그분들을 기억해야죠」(여느Yonu님의 브런치, 2019.11.13)
그리고 오늘부터 에티오피아 공정무역 커피를 즐겨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포털애 검색하면 손쉽게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달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