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의 노트> 2편. 자축, 자조, 조롱, 경마성 논조가 없는 국제비교를 보고 싶었는데 잘 없어서 직접 찾아보고 적은 글. 현재 확진자, 검사자, 사망자 통계를 일 단위로 확인할 수 있는 5개국 (한국, 일본,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상황을 비교해 보았다.
짬짬이 쓰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려서 비슷한 내용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기는 하지만, 시작했으니 마무리는 짓도록 한다. ㅠㅠ 입국금지의 실효성을 알아본 <비전문가의 노트> 1편은 여기로.
0. 들어가며
데이터는 만능이 아니다. 특히 국제비교는 익숙하고 매력적인 만큼 단점도 많다. 국가별로 상황과 정책이 다르고, 국가 내 방침도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데이터가 없는 추론은 가정에 의존하며 가정의 영역에 들어간 토론은 공전하기 마련이다. 데이터는 가정을 줄이거나 우리가 어디서 (암묵적으로) 가정을 도입하는지를 드러내는 데 유용하다.
이 글의 최우선 목적 역시 그간 발표된 각국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으로 한정한다. 도표만 던질 순 없고 가능한 주의 깊게 기술 및 해설을 달아 둘 것이나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권한다. 나는 역학과 의학 모두 전혀 모른다.
한일영이불 5개국을 선정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내가 아는 한 이들 5개국만이 쓸 만한 국가 차원 확진, 검사, 사망자 통계를 일 단위로 제공한다.[1]
대부분의 국가가 일회성 발표에 그치거나 자료가 없다. 가령 국제비교 단골 손님인 미국, 확진자가 급증하는 독일, 스페인은 검사자 데이터가 없어 포함시킬 수 없었다. 진원지 중국은 제외했다.
이견이 있겠지만 이들 5개국 비교가 영 틀려먹은 건 아니라고 믿는다. 이 5개국은 위도와 1인당 GDP가 비슷한 편이다. 한일-영이불의 지리적 거리도 가깝다. 천 명당 의사 수도 비슷하다. 천 명당 병상 수는 조금 달라서 한일이 높고 영이가 낮으며 프랑스가 중간 정도다. [2]
선 요약 & 결론.
- 한국과 이탈리아는 50번째 확진자 발생 후 일주일간 추세가 매우 유사하지만, 한국은 확산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는 확진자-사망자 비율 (치명률)이 6%를 넘어선 반면 한국은 1% 미만에서 관리 중이다.
- TK를 뺀 한국의 인구 대비 확진자 수, 검사자 수, 확진자-검사자 비율 (관찰된 발생률) 추이는 영국과 가장 비슷하다. 한국이 상황을 더 잘 통제하고 있는 듯하다. 영국의 관찰된 발생률은 증가 추세지만 한국과 非TK 한국 추세는 모두 안정적이다. 또한 영국은 인구 대비 검사자 수 (수검률) 보다 관찰된 발생률이 더 빠르게 상승 중이다.
-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환자 발생 양상은 매우 유사하고 검사 역량도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아직은 이탈리아의 확진자 중 사망자 수 (치명률)이 훨씬 높다. 잠복기를 고려하면 프랑스는 한동안 한국보다는 이탈리아에 가까운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 일본은 특이하다.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패턴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일본의 낮은 수검률은 당국이 증상자를 까다롭게 선별하고 있다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결론: 보리스 존슨 수상이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연설을 한 시점의 영국은 상황이 악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에 비해 관찰된 발생률이 낮고 非TK 한국과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영국은 한국과 같은 대규모 아웃브레이크를 겪지 않아 의료자원을 온존했음에도 그러하다. 1차 대규모 감염 통제는 축하할 일이나, 마음을 굳게 다잡아야 할 듯 하다.
1. 확진자 통계 읽기
익숙한 확진자 수는 간단히 살펴보자. 그래프가 0일 기준 오른쪽으로 길수록 확진자 50명 돌파가 빠른 국가다.
한국의 경우 TK 외 지역 통계를 모아 “비非TK 한국” 으로 따로 분류했다. 신천지가 전국적인 집단이었으므로 완전한 분리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상황을 보수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로그 눈금에 주의.
이탈리아는 이미 헬게이트가 열렸고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 잠복기를 고려하면, 프랑스가 진정세를 보이더라도 한국보다는 오래 걸릴 듯하다. 영국은 50명 돌파 이후에도 상황을 그런대로 통제해 왔으나 점점 점점 기하급수적인 폭발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확진자 수가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은 TK 상황이 통제 가능한 범위로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산발적 집단감염이 보고되고 있으나 기하급수적인 폭발은 억제하고 있다. 일본은 가장 먼저 확진자 50명 선을 돌파했지만 증가세가 가장 완만하다. 한국은 물론 외신에서도 의아한 눈길을 보내고 있지만, 사실 비TK 한국과 일본은 추이가 비슷하다.
그간의 한국 사정을 돌아보면, 놀랍게도 TK 신천지 클러스터가 없었더라도 확진자 50명 돌파는 이틀 늦춰질 뿐이다. 타 지역에서도 감염은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비TK 한국의 확진자 수는 그렇게 50명 돌파 후 일주일 정도 프랑스, 영국과 비슷하게 움직이지만 결국 증가 추세가 약화된다. TK로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와중에도 비TK 아웃브레이크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상황을 통제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데 확진이 되려면 검사를 받아야 하고, 검사를 받으려면 감염되거나 그에 준하는 상태로 여겨져야 한다. 최종 확진자 수는 각각의 단계에 영향을 받는다. 그 점을 차근차근 고려해 본다. 지금부터 전개하는 논리는 의/역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나 용어와 다를 수 있다. 그걸 떠나 여기부터 안 읽을 분들 많아질 것 같지만…
확진자 수를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이 항등식은 인구가 같을 때 발생률이 높아지면 혹은 발생률이 같을 때 인구가 늘어나면 확진자가 늘어난다는 당연한 사실을 요약한다. 인구 10만 명 당 발생률 패턴은 전반적으로 확진자 수와 유사하지만 절대 수치상 일본이 다른 4개국에 비해 낮다는 점이 좀 더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알듯이 우리가 보는 확진자는 전체의 일부다. 검사받지 않으면 확진자로 잡히지 않는다. 위 수식을 바꾸어 쓸 수 있다. 검사자 수 대비 확진자 수를 인구수 대비 확진자 수와 구분하기 위해 관찰된발생률이라고 부르자.
이 항등식은 확진자 수가 높은 이유가 관찰된발생률이 높아서인지, 수검률이 높아서인지, 인구가 많아서인지를 가르쳐 준다. 다음 절에서 검사자 수와 검사율을 살펴본다.
2. 검사자 통계 읽기
각국 검사자 수 현황은 다음과 같다. 일본 데이터는 중간에 구조적 변동 (structural break)을 겪어서 적당한 보정을 거쳤다. 그림을 보면 보정 필요성이 바로 눈에 들어올 것이다. [3] [4]
질병관리본부는 지역별 검사자 수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아, 비TK 한국 검사자 수는 지역별 확진자 수를 이용해 추산했다. [5]
한일영 3국은 일찌감치 검사를 시작했다. 한국의 검사 역량은 TK에 집중되어, 비TK 한국을 기준으로 하면 3국의 추이도 비슷하다. 특히 비TK 한국과 영국은 절대 수준도 매우 유사한 수준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감염자 수가 늘어나면서 급히 검사 수를 끌어올렸다. 자세히 보면 비TK 한국 이상으로 빠르게 검사를 수행했다. 한국인들은 검사 역량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이 두 국가도 주어진 상황 하에서는 나름대로 선진국의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하는 편이 공평하겠다.
신규 검사자 수만 보면, 그간의 한국 추이는 알려진 대로다. 이탈리아는 한국 수준에 근접했고 프랑스 역시 이탈리아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 한편 일본은 신규 검사자 진폭이 크다. 다른 국가들은 일일 검사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서면 그 아래로 잘 내려오지 않고 꾸준히 증가한다. 일본은 100명과 1,000명 사이를 오간다.
절대수치는 그렇다 치고, 인구 대비는 어떤가? 10만 명당 검사자로 본 수검률은 이렇다.
확진자 통계에서 그랬듯 누적/신규 모두 전반적인 추세는 인구대비를 하지 않은 경우와 비슷하다. 수치 수준을 보면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격차가 비슷한 수준에 머무른다. 비TK 한국과 영국은 거의 같아진다. 일본은 홀로 10만 명당 10명 미만의 누적 검사자에 머물고 있으며, 확진자 50명 돌파 후에도 신규 검사자 수가 10만 명당 1명 미만을 오가는 유일한 국가다.
확진자와 검사자 수를 알고 있으니 관찰된 발생률을 살펴보자. 누적 그래프에는 다시금 보정 필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과 일본(평활화)를 모두 넣었다. 신규 확진자 – 신규 검사자 차트는 그래프가 겹쳐서 약간 읽기 힘들다. ㅠㅠ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관찰된 발생률은 급격히 상승 중이다. 영국은 오랫동안 비TK 한국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 왔지만 최근 2-3일 사이 상승 국면에 돌입했다. 신규 확진자 – 신규 검사자 대상으로 보면 상황이 더 선명해진다. 역시 한국과 매우 유사했지만, 한국보다 빨리 10% 수준에 도달했다.
일본의 양상은 다른 국가들과 사뭇 다르다. 누적 그래프를 보면 다들 상승 추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혼자 10% 수준의 높은 비율을 보여 주다가 50번째 확진자 발생을 기점으로 하락하더니, 50번째 확진자 발생 후 16일째부터 반등하여 상승하기 시작한다. 신규 그래프는 아예 난리가 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보았듯 검사자 수가 100명에서 1,000명을 오가니 분모가 확확 바뀌기 때문이다. 문제는 16일째부터 발생한 진폭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검사자 수가 작은 날끼리 비교해도, 검사자 수가 컸던 날끼리 비교해도 증가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 이야기에 앞서 살펴본 관찰된발생률과 수검률을 한꺼번에 발생률과 연관시켜 보자. 앞에서 나왔던 식을 적절히 변형하면 이런 식이 나온다.
발생률이 5% 상승할 때 관찰된발생률이 5%, 수검률이 0% 상승하면 검사에 박차를 가하는 속도보다 병이 퍼져나가는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반대로 관찰된발생률이 0%, 수검률이 5% 상승하면 검사를 빠르게 돌리고 있지만 대규모 감염자 그룹이 발견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마이너스 성장도 가능하다. 관찰된발생률이 -5%, 수검률이 10% 상승한다면 검사 역량이 바이러스 확산보다 더 빠르게 향상되어 광범위한 선제적 검사를 시행하게 된 상황 (희망편). 반대로 관찰된발생률이 10%, 수검률 -5% 상승이라면 바이러스가 방역당국을 압도하여 결국 대규모 검사에서 점점 손을 떼는 형국일 것이다 (절망편). 편의상 절망편이라 불렀지만 어디까지나 검사보다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일본 자료에 숨겨진 의미가 드러날까?
애석하게도 일본 자료는 변동성이 너무 커서 여기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도출하기 어려워 보인다. 쭉 일정한 적색 선에서 보이듯 평활화도 문제다. 일본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이 방법은 오히려 영국의 상황을 보는 데 유용하다.
3. 영국 뜯어보기
영국은 지금까지 본 자료에서 한국, 특히 비TK 한국과 놀랄 만큼 비슷했다. 그런데 한국이 안정 국면으로 복귀했다고 여겨지던 지난 3월 12일 보리스 존슨 수상은 ‘집단면역’을 언급하며 사실상 포기 연설을 했다. 왜?
물론 영국의 천 명당 병상 수는 한국의 20% 수준이고 관찰된발생률 증가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지만,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섬이라는 이점을 살려 한국이 대구에 했듯 의료자원을 조기에 집중 투입하는 방법은 없었겠느냐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영국에는 신천지도 없지 않나.
혹자는 역시 문재인 정부가 존슨 내각에 비해 안일하다는 식으로, 또는 반대로 보리스 존슨이 자국 인명을 경시한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어느 편이나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데이터는 한 가지 힌트를 건넨다. 영국의 발생률, 관찰된발생률, 수검률 증가율 변화 양상은 이렇다.
영국은 5개국 중 유일하게 수검률보다 관찰된발생률이 빠르게 상승한 국가다. 검사 역량이 바이러스 전파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심지어 이미 50번째 확진자 등장 시점부터 관찰된발생률이 수검률보다 빠르게 상승했다. 영국이 검사를 꾸준히 해왔다는 점과 잠복기를 감안하면 생각보다 상황이 엄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 (치명률)이 6%에 달한 이탈리아도 아직 수검률 상승률이 더 높다. 프랑스도 그렇다. 이탈리아를 보면 다음과 같다. 0일 차 데이터가 심하게 튀어 1일부터 표시했다.
적색 선과 녹색 선이 엎치락뒤치락하다 적색 선이 우위에 섰다. 다만 이탈리아는 최근 들어 수검률 증가율이 다시 낮아지고 있는데, 검사에 힘을 덜 쏟겠다는 중앙정부 발표와 상응하는 듯하다. 5개국에 포함하진 않았지만 스웨덴이 검사와 역학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배경도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한국과는 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국은 1차 집단감염이 발생하는 순간 관찰된발생률 상승률이 수검률 상승률을 앞질렀다. 0-5일 동안 관찰된발생률이 수검률보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현상은 검사 대상을 대량으로 늘려 확진자를 다수 찾아냈음을 보여준다. 수검률을 계속 확대한 결과 5일-10일에는 검사자 중 확진자가 줄어든다. 15일 이후부터 관찰된발생률은 아예 하락세로 돌아섰다. 위에서 말한 ‘희망편’에 가까운 사례다.
비TK만 떼어 놓아도 비슷하다. TK가 진정세로 돌아서며 비TK 수검률이 가파르게 상승하지만 관찰된상승률엔 오히려 감소 폭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은 상당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4. 일본 뜯어보기
그럼 일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일본 국민들의 위생 의식이 투철해서 감염이 덜 되고, 증상도 적고, 그래서 검사도 덜 하는 건가? 일본 정부가 데이터를 조작하고 있나?
가장 정직한 답은 ‘현재 공개된 데이터로는 알 수 없다’지만, 몇 가지 추론은 해 볼 수 있다. 확진자 수를 좀 더 세밀하게 다루어 보자. 말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감염의심자와 감염자를 혼용해서 쓰도록 한다.
(잠재)감염률의 뜻은 직관적 의미 그대로다. 기침을 한다고 다 코로나 감염자는 아니지만 검사가 필요할 수는 있다.
검사도달률은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감염자 수가 일정하면 검사도달률은 아픈 사람들을 병원에 보낼 수 있는지, 환자를 진단할 의료진과 장비가 있는지, 검사대상 선정 기준이 어떤지에 따라 정해진다. 교통 및 의료 역량이 같다면 검사도달률은 환자가 많을수록, 검사 기준이 낮을수록 높아진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전국민 전수조사를 해치우지 않는 한 총 감염자 수를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사도달률과 감염률 역시 알 수 없다. 그럼 이 식은 아무 쓸모가 없나? 그렇지는 않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마지막 식에서 수검률 부분만 떼어내면 이렇다.
한국과 일본의 전반적인 의료 역량이 비슷하다고 하자. 적어도 천 명당 병상 수와 의사 수만 두고 보면 그래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3월 15일 누적 검사자 수 기준 한국의 수검률은 10만 명당 517.3명, 일본은 9.6명이다. 한국이 일본보다 50배 이상 높다. 비TK 한국 수검률은 10만 명당 111.6명이므로 역시 10배 이상 차이다. 검사 수가 적은 비TK 기준으로도, 한일 감염률이 같다면 일본의 검사도달률이 한국보다 10배 이상 낮아진다. 양국 검사도달률이 같으려면 일본 감염률이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어야 한다. 한국 전체와 비교하려면 50분의 1 수준의 감염률이 필요하다. 이 숫자가 현실적인가?
일본의 개인주의 문화와 위생 관념이 한국에 비해 월등하여 일본 감염률이 비TK 한국의 절반이라고 하자. 그러면 검사도달률은 한국보다 5배 낮아진다. 한국 검사 기준을 통과한 한국인 5명 중 한 명만이 일본 검사 기준을 통과한다는 의미가 된다. 한국 전체 대비로는 25배니 말할 것도 없다.
이탈리아와 영국 수검률에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이탈리아 수검률 10만 명당 184.6명, 영국 60.2명이므로, 같은 계산을 거치면 각각 이탈리아인 9.6명, 영국인 3명 중 한 명만이 일본 기준을 통과한다. 프랑스는 3월 10일 기준 22.9명이고 같은 날짜 일본의 6.9명과 비교하면 프랑스인 1.7명이 일본 검사를 통과한다고 보게 되는데, 위에서 보았듯 프랑스 수검률이 일본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므로 영국 정도와는 곧 비슷해질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일주일 전에는 일본이 검사 기준을 올려 잡아 간접적으로 수치를 통제한다는 심증은 무성했지만 추측성 보도 수준의 증거조차 찾기 어려웠다. 이 추론도 완벽한 물증은 아니지만, 현재 일본 데이터를 설명하기 위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 정도는 꺼낼 수 있는 듯하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의료 자원은 제한되어 있고 검사에 올인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선택이다. 사전에 상대적 우월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2% 선에서 진동하며 서서히 상승하는 일본의 사망자-확진자 비율 (치명률)을 보면 우려를 거두기 어렵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한국과 일본은 이웃이다. 일본 시민사회와 경제에 닥치는 보건 위협이 적절히 제어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피하고 싶었다. 열심히 무언가 적어 보았지만 나는 한국 검사도달률이 일본을 압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본의 감염률이 한국을 밑돈다면 축하를 건네고 우리 일에 집중하면 된다.
감염률 순위는 올림픽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숫자를 대입해 보면 세계 제일 고령화 국가의 조치에는 보수적보다는 소극적이라는 수식이 더 알맞아 보인다. 다시, 한국과 일본의 천 명당 병상 수와 의사 수는 거의 비슷하다.
5. 나가며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통제 국면에 접어들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요할 듯하다. 일본 상황은 의아하고 걱정스러워 보인다. 우리와 상당히 비슷했던 영국 역시 대규모 확산 초입에 진입했다. 우리는 수검률을 한껏 끌어올린 상태에서 관찰된발생률을 일정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언제 치고 올라갈지 모른다.
언제까지 억제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2주가 고비’라는 말을 한 달째 들은 것 같다. 이제는 확실히 인정해야 할 시점인 듯하다. 우리는 더 긴 싸움에 접어들고 있다고. 2차 대전 당시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영국군이 독일군을 격파했을 때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끝의 시작도 아닙니다. 시작의 끝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차 대규모 지역감염을 진정 국면으로 전환시켰으나, 백신 없이 세계적 확산과 국지적 지역감염을 마주하는 한국의 현재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1차 사태 때 소진된 의료자원을 다잡을 여유도 충분치 않고 경제정책과 보육정책 등 어려운 과제도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처칠의 연설을 마저 인용하고 싶다. 그는 그 후로도 3년 더 전시내각을 이끌어야 했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연설을 맺었다.
이 승전은 전세계의 새 희망이 될 것입니다. (The whole event will be (…) a new hope for the whole world.)
원문: 김선함의 노션
주석
[1] 모든 데이터는 3월 14일 발표 기준, 프랑스 검사자 수만 3월 10일 기준. 이탈리아와 프랑스 검사자 수는 2월 24일부터만 존재한다. 데이터 출처는 맨 마지막 주석 참조.
[2] 위도범위는 북위 기준 한국 33-43, 일본 20-45, 영국 51-59, 이탈리아 38-46, 프랑스 43-47. 1인당 GDP (PPP)는 4-5만 달러로 유사하며 순위도 26-29, 33위로 딱 붙어 있다(IMF, 2019년 기준). 천 명당 의사 수 역시 한국 2.3, 일본 2.4, 영국 2.8, 프랑스 3.2, 이탈리아 4명 정도로 비슷한 편이다 (WHO, 2017년 기준). 천 명당 병상 수는 꽤 다르다. 2017년 기준 한국 12.3, 일본 13.1, 영국 2.5, 이탈리아 3.2, 프랑스 6.0개. (OECD, 2017년 기준)
[3] 일본 데이터는 국내, 우한 전세기 귀국 교민, 다이아몬드 프린세스를 구분한다. 여기서는 국내 확진/검사자 수만을 이용했다.
[4] 일본 검사자 수는 3월 4일에 3,600명 급증한다. 후생노동성 주석에 따르면 이 급격한 변화는 지자체 자료를 합산하면서 발생했다. 그 전부터 해온 검사 수를 몰아서 더했단 이야기다. 반면 확진자 수는 꾸준히 더했기 때문에 별도의 보정이 없으면 3월 4일 전까지 확진자-검사자 비율이 증가한다는 착시가 발생한다. 보정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검사자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2월 17일을 기준으로 17일에 걸쳐 서서히 증가하도록 단순지수평활화 (simple exponential smoothing) 를 이용해 보정했다.
[5] 추산 방법은 다음과 같다. 31번 확진자 이전에는 대구경북 확진자가 없었다. 따라서 31번 이후 보고된 일일 신규 확진자의 TK-비TK 비중을 구해 총 검사자 수에 곱해 TK-비TK 검사자 수를 얻었다. 이 방법은 TK와 비TK의 신규 확진자-검사자 비율이 같을 때 타당하다. 실제로는 TK 확진자-검사자 비율이 더 높았다면? TK 5명, 비TK 5명을 검사해 TK 3, 비TK 2명이 나왔다고 하자. 확진자 60%가 TK, 40%가 비TK이므로 우리는 검사자 10명을 TK 6명, 비TK 4명으로 배분하게 된다. 실제보다 TK 검사자를 많다고 보게 되는 것. 어느 쪽이 참일지는 알 수 없다. TK 신천지 클러스터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나왔으니 TK가 더 높을 수도 있다. 반면 TK로 검사 역량이 집중되는 가운데 비TK 검사 기준이 더 까다로워졌다면 비TK가 더 높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나 가능하며 일 단위로 바뀔 수도 있으므로 여기서는 그냥 같다고 가정했다. 추가 논의는 [주6]을 참고.
[6] 신천지 대규모 감염이 발생한 후 나온 기사에 따르면 TK 외 지역에서는 신천지 신도들을 대상으로 전화 문진을 진행했다. 신천지 신도들이 신분 노출을 꺼려 검사를 기피했다는 점에서 증상을 축소해서 말했을 수 있다. 따라서 비TK 검사 수가 적었으리라고 의심할 수 있다. 실제로 TK 신도의 누적 관찰된발생률은 62%, 타 지역은 1.7%에 그쳤다고 한다. 일 단위로는 신규 확진자 100%가 TK 확진자인 날도 많았을 것이다. 이 경우 주5의 가정은 부적절하지만, 그 결과 TK 검사자를 실제보다 많다고, 비TK 검사자를 실제보다 적다고 추산하게 된다. 비TK에 투입된 자원을 줄여 비TK 한국에 필요 이상의 페널티를 주는 셈이다. 따라서 주5의 가정을 유지해 만들어낸 비TK 한국에 기초한 해석은 충분히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7] 데이터 출처는 다음과 같다.
- 한국: 질병관리본부 코로나바이러스-19 국내 발생현황 정례브리핑.
- 일본: 후생노동성 일일 현황보고 및 일문자료
- 영국: 보건사회복지부 일일 업데이트. 시계열 형태 데이터는 제공하지 않음.
- 이탈리아: 공공안전부 일일 업데이트
- 프랑스: COVID-19 역학관련사항(Point épidémiologique) 리포트, WHO Situation Reports.
- 각국 인구: UN Population Prospect, 2019년.
- 한국 인구: 주민등록인구통계,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