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와서 ‘아, 미국이란 이런 나라구나’하고 생각하게 만든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 와서 처음 살던 집은 미국식 아파트먼트로, 우리나라의 주상복합 오피스텔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다달이 십여만 원을 추가해서 지하 2~3층의 주차공간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주차공간이ㅋㅋ 처음 가 봤을 때 엄청 황당했다.
물론 아파트의 모든 사람들이 세울 만한 충분한 자릿수가 있도록 설계되었을게 분명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주차를 하는 방식이다. 이걸 진짜 사진을 찍어놨어야 설명이 편한데…
진짜 90퍼센트의 차가 선을 무시하고 두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트럭 같은 애들은 아예 세 자리씩 차지하며 대각선으로 대어둠. 이게 내가 뭐 한두 대 잘못 세운 애들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전 주차장의 모든 차들이 이런 식으로↓ 대고 있었음.
믿어지지 않겠지만 진짜다. 무법천지 후진국 이야기가 아님. 미국 도심지 번듯한 오피스텔에서 주민들이 주차를 매일같이 이런 식으로 하고 있었다.
지정된 슬롯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님. 원칙적으로는 관리사무소에 등록할 때 지정된 슬롯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게 필수가 아니었음;; 그냥 스스로 자리를 찾아 만족하고 주차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고,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만 관리사무소에 와서 자리를 찾아달라 부탁하는 게 관례였음.
문제는 이렇게 하면 관리사무소라고 해서 어느 자리가 빈 자린지, 누가 주차를 하는 자리인지 알게 뭐임;; 뭐 주차 장부랍시고 보여주는데, 이것도 진짜 사진 찍어 보여드리고 싶음. 자리별로 누가 차지했는지 아닌지 표시를 해뒀는데 yes라고 써있다가 직직 긋고 no라고 썼다가 반복한 나머지 결국 ?? 라고 적혀있고… 진짜 뻥 아니고 그렇게 생겼었음.
우리도 처음에는 관리사무소에다 자리를 할당해달라고 하고 지정된 자리에다 주차를 했는데, 다음날 와보니 니들이 내가 일 년 전부터 매일 세우던 자리를 뺏었다고 쪽지가 붙어있었다. 그래서 다시 관리사무소에 얘기해서 다시 자리를 할당받아도, 그 자리엔 이미 누가 세워뒀거나 아까 말한 것처럼 옆차가 선을 한참 넘어 세워놔서 도저히 세 울수 없는 상황이거나 이러길 반복. 며칠 삽질한 끝에 겨우 빈 자리를 찾아 세울 수 있었다.
결국 혼돈의 카오스 상태를 보다 못한 아파트 매니저가 기존의 자리 할당을 모두 리셋했다. 일정 기한을 주고 관리사무소에 자리와 차번호를 등록하도록 하고 등록이 안된 차는 일괄 견인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야 해결이 됐다. 거짓말처럼 모든 차들이 줄을 제대로 맞춰 세우게 된 것도 놀라운 점.
이 에피소드에서 내가 느낀 미국은 이렇다. 일단 옵티미스틱하게 사람들의 자율에 맡겨서 시스템을 돌려본다. 사소한 문제들은 자정되리라 기대하며 넘어간다. 하지만 문제가 심각해지면 그제야 룰을 정하고 규제를 시작한다.
이런 게 우리나라나 독일 같은 나라와 다른 점인데, 유럽식 모델에서는 새 시스템을 도입할 때 좀더 패시미스틱하게 룰을 많이 정해두고 시작하는 편인 것 같다. 어느 쪽이 더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우리나라의 확진자 대비 사망자수와 미국의 확진자 대비 사망자수를 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 것이다 ㅋㅋㅋ